서북 여러 나라西北諸戎
「양서 제이전」 한 권 「서북 여러 나라」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남조 양나라가 본 서른여섯 나라. 무령왕이 「다시 강국이 되었다」고 알린 표문, 신라가 처음 제 이름으로 등장하는 기록, 부처의 머리카락과 아육왕탑 이야기, 그리고 부상국·여인국 같은 바다 끝 전설까지 — 남해에서 서역까지 가장 폭넓은 제이전이다.
1서북 여러 나라의 서문
西北諸戎,漢世張騫始發西域之迹,甘英遂臨西海,或遣侍子,或奉貢獻,于時雖窮兵極武,僅而克捷,比之前代,其略遠矣。魏時三方鼎跱,日事干戈,晉氏平吳以後,少獲寧息,徒置戊己之官,諸國亦未賓從也。繼以中原喪亂,胡人遞起,西域與江東隔礙,重譯不交。呂光之涉龜茲,亦獲蠻夷之伐蠻夷,非中國之意也。自是諸國分幷,勝負強弱,難得詳載。明珠翠羽,雖仞於後宮;蒲梢龍文,希入於外署。有梁受命,其奉正朔而朝闕庭者,則仇池、宕昌、高昌、鄧至、河南、龜茲、于闐、滑諸國焉。今綴其風俗,爲《西北戎傳》云。
서북의 여러 융(戎)은, 한나라 시대에 장건이 처음 서역의 길을 열고 감영이 드디어 서해에 다다라, 혹 시자(侍子)를 보내고 혹 공물을 바치니, 그때는 군사력을 다해 겨우 이겼으나 앞 시대에 견주면 그 경략이 멀었다. 위나라 때는 세 나라가 솥발처럼 맞서 날마다 싸움을 일삼았고, 진씨(晉氏)가 오를 평정한 뒤 조금 평안을 얻어 무기교위 벼슬만 두었을 뿐 여러 나라가 복종하지도 않았다. 이어 중원이 상란하고 호인(胡人)이 잇달아 일어나니, 서역이 강동과 막혀 겹통역이 오가지 못했다. 여광이 구자에 간 것도 만이(蠻夷)로 만이를 친 것이지 중국의 뜻이 아니었다. 이로부터 여러 나라가 갈라지고 합쳐지며 이기고 지고 강하고 약함을 자세히 실을 수 없다. 명주와 물총새 깃이 후궁에 가득해도, 포초와 용문 같은 명마는 바깥 관서에 드물게 들어왔다. 양나라가 천명을 받자 정삭을 받들고 대궐에 조회한 것은 구지·탕창·고창·등지·하남·구자·우전·활 여러 나라다. 이제 그 풍속을 엮어 서북융전(西北戎傳)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