仲尼篇
仲尼閒居,子貢入侍,而有憂色。子貢不敢問,出告顏回,顏回援琴而歌。孔子聞之,果召回入,問曰:「若奚獨樂?」回曰:「夫子奚獨憂?」孔子曰:「先言爾志。」曰:「吾昔聞之夫子曰:『樂天知命故不憂。』回所以樂也。」孔子愀然有閒,曰:「有是言哉?汝之意失矣。此吾昔日之言爾,請以今言爲正也。汝徒知樂天知命之無憂,未知樂天知命有憂之大也。今告若其實:修一身,任窮達,知去來之非我,亡變亂於心慮,爾之所謂樂天知命之無憂也。曩吾修《詩》《書》,正禮樂,將以治天下,遺來世,非但修一身,治魯國而已,而魯之君臣日失其序,仁義益衰,情性益薄。此道不行一國與當年,其如天下與來世矣?吾始知《詩》《書》、禮樂無救於治亂,而未知所以革之之方,此樂天知命者之所憂。雖然,吾得之矣。夫樂而知者,非古人之所謂樂知也。無樂無知,是真樂真知,故無所不樂,無所不知,無所不憂,無所不爲。《詩》《書》、禮樂,何棄之有?革之何爲?」顏回北面拜手曰:「回亦得之矣。」出告子貢。子貢茫然自失,歸家淫思七日,不寢不食,以至骨立。顏回重往喻之,乃反丘門,弦歌誦書,終身不輟。
중니가 한가로이 거하는데 자공이 들어와 모시니 근심하는 낯빛이 있었다. 자공이 감히 묻지 못하고 나와 안회에게 일렀다. 안회가 거문고를 잡고 노래하였다.
공자가 듣고 과연 안회를 불러들여 물었다. 「너는 어찌 홀로 즐거우냐.」
안회가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어찌 홀로 근심하십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먼저 네 뜻을 말하여라.」
말하였다. 「제가 옛날 선생께 들으니 『하늘을 즐기고 하늘이 준 바를 알므로 근심하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제가 즐거운 까닭입니다.」
공자가 서글피 한동안 있다가 말하였다.
「그런 말이 있었느냐. 네 뜻이 어긋났다. 이는 내가 옛날에 한 말일 뿐이니 이제 하는 말로 바로잡기를 청한다.
너는 다만 하늘을 즐기고 하늘이 준 바를 아는 이에게 근심이 없는 줄만 알고, 하늘을 즐기고 하늘이 준 바를 아는 이에게 근심이 큰 줄은 모른다. 이제 너에게 그 알맹이를 일러 주겠다.
한 몸을 닦고 막히고 통함을 맡기며, 오고 감이 나에게 달린 것이 아님을 알아 마음과 생각에 흔들림과 어지러움이 없는 것, 이것이 네가 이른바 하늘을 즐기고 하늘이 준 바를 알아 근심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날 나는 「시」와 「서」를 닦고 예와 악을 바로잡아 천하를 다스리고 오는 세상에 남기려 하였다. 한 몸을 닦고 노나라를 다스리는 데 그치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노나라의 임금과 신하는 날로 그 차례를 잃고 어짊과 옳음이 더욱 쇠하고 정과 성품이 더욱 엷어졌다. 이 도가 한 나라와 한 시대에도 행해지지 않는데 천하와 오는 세상에서야 어떠하겠느냐.
나는 비로소 「시」와 「서」와 예와 악이 다스림과 어지러움에 도움이 되지 못함을 알았으나 그것을 고칠 길은 아직 알지 못한다. 이것이 하늘을 즐기고 하늘이 준 바를 아는 이가 근심하는 바다.
그러하나 나는 그것을 얻었다. 무릇 즐기고 안다는 것은 옛사람이 이른바 즐기고 앎이 아니다. 즐김도 없고 앎도 없는 것이 참으로 즐김이요 참으로 앎이다. 그러므로 즐기지 않는 바가 없고 알지 못하는 바가 없고 근심하지 않는 바가 없고 하지 않는 바가 없다. 「시」와 「서」와 예와 악을 어찌 버리겠느냐. 무엇을 고치겠느냐.」
안회가 북쪽을 향하여 손을 모아 절하며 말하였다. 「저도 얻었습니다.」
나와서 자공에게 일렀다. 자공은 아득히 넋을 잃고 집에 돌아가 이레를 지나치게 생각하며 자지도 먹지도 않아 뼈만 남았다. 안회가 거듭 가서 깨우치니 이에 공자의 문으로 돌아와 거문고 타고 노래하고 글 외기를 죽도록 그치지 않았다.
陳大夫聘魯,私見叔孫氏。叔孫氏曰:「吾國有聖人。」曰:「非孔丘邪?」曰:「是也。」「何以知其聖乎?」叔孫氏曰:「吾常聞之顏回曰:『孔丘能廢心而用形。』」陳大夫曰:「吾國亦有聖人,子弗知乎?」曰:「聖人孰謂?」曰:「老聃之弟子有亢倉子者,得聃之道,能以耳視而目聽。」魯侯聞之大驚,使上卿厚禮而致之。亢倉子應聘而至,魯侯卑辭請問之。亢倉子曰:「傳之者妄。我能視聽不用耳目,不能易耳目之用。」魯侯曰:「此增異矣。其道奈何?寡人終願聞之。」亢倉子曰:「我體合於心,心合於氣,氣合於神,神合於無。其有介然之有,唯然之音,雖遠在八荒之外,近在眉睫之內,來干我者,我必知之。乃不知是我七孔四支之所覺,心腹六藏之所知,其自知而已矣。」魯侯大悅。他日以告仲尼,仲尼笑而不答。
진(陳)나라 대부가 노나라에 사신으로 와 사사로이 숙손씨를 보았다. 숙손씨가 말하였다. 「우리 나라에 성인이 있소.」
말하였다. 「공구가 아니오.」
말하였다. 「그렇소.」
「무엇으로 그가 성인인 줄 아시오.」
숙손씨가 말하였다. 「내가 늘 안회에게 듣기를 『공구는 마음을 버리고 꼴을 쓸 수 있다』 하였소.」
진나라 대부가 말하였다. 「우리 나라에도 성인이 있는데 그대는 모르시오.」
말하였다. 「성인이 누구를 이르오.」
말하였다. 「노담의 제자에 항창자(亢倉子)라는 이가 있어 노담의 도를 얻어 귀로 보고 눈으로 들을 수 있소.」
노나라 임금이 듣고 크게 놀라 상경을 시켜 두터운 예로 그를 불러오게 하였다. 항창자가 부름에 응하여 이르니 노나라 임금이 말을 낮추어 물었다.
항창자가 말하였다. 「전하는 이가 함부로 한 말입니다. 나는 귀와 눈을 쓰지 않고 보고 들을 수는 있으나 귀와 눈의 쓰임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노나라 임금이 말하였다. 「이는 더욱 이상하오. 그 도가 어떠하오. 과인이 끝내 듣기를 바라오.」
항창자가 말하였다. 「나는 몸이 마음에 맞고 마음이 기운에 맞고 기운이 신에 맞고 신이 없음에 맞습니다. 아주 작게 있는 것과 아주 가는 소리라도, 멀리 세상 끝 밖에 있든 가까이 눈썹과 속눈썹 안에 있든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내가 반드시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일곱 구멍과 팔다리가 깨달은 것인지 마음과 배와 여섯 장부가 안 것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저절로 알 뿐입니다.」
노나라 임금이 크게 기뻐하였다. 다른 날 중니에게 일렀더니 중니는 웃고 대답하지 않았다.
商太宰見孔子曰:「丘聖者歟?」孔子曰:「聖則丘何敢,然則丘博學多識者也。」商太宰曰:「三王聖者歟?」孔子曰:「三王善任智勇者,聖則丘弗知。」曰:「五帝聖者歟?」孔子曰:「五帝善任仁義者,聖則丘弗知。」曰:「三皇聖者歟?」孔子曰:「三皇善任因時者,聖則丘弗知。」商太宰大駭,曰:「然則孰者爲聖?」孔子動容有閒,曰:「西方之人有聖者焉,不治而不亂,不言而自信,不化而自行,蕩蕩乎民無能名焉。丘疑其爲聖,弗知真爲聖歟?真不聖歟?」商太宰嘿然心計曰:「孔丘欺我哉!」
상(商)나라 태재가 공자를 보고 말하였다. 「구(丘)는 성인이시오.」
공자가 말하였다. 「성인이야 제가 어찌 감히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널리 배우고 많이 아는 사람입니다.」
상나라 태재가 말하였다. 「삼왕은 성인이오.」
공자가 말하였다. 「삼왕은 슬기와 날램을 잘 쓴 이들입니다. 성인인지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말하였다. 「오제은 성인이오.」
공자가 말하였다. 「오제은 어짊과 옳음을 잘 쓴 이들입니다. 성인인지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말하였다. 「삼황은 성인이오.」
공자가 말하였다. 「삼황은 때를 따르기를 잘한 이들입니다. 성인인지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상나라 태재가 크게 놀라 말하였다. 「그러면 누가 성인이오.」
공자가 낯빛을 고치고 한동안 있다가 말하였다. 「서녘 사람 가운데 성인이 있습니다.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절로 미덥고, 달라지게 하지 않아도 절로 행해집니다. 넓고 넓어 백성이 이름 지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가 성인일까 하나 참으로 성인인지 참으로 성인이 아닌지 알지 못합니다.」
상나라 태재가 잠자코 속으로 셈하였다. 「공구가 나를 속이는구나.」
子夏問孔子曰:「顏回之爲人奚若?」子曰:「回之仁賢於丘也。」曰:「子貢之爲人奚若?」子曰:「賜之辯賢於丘也。」曰:「子路之爲人奚若?」子曰:「由之勇賢於丘也。」曰:「子張之爲人奚若?」子曰:「師之莊賢於丘也。」子夏避席而問曰:「然則四子者何爲事夫子?」曰:「居!吾語汝。夫回能仁而不能反,賜能辯而不能訥,由能勇而不能怯,師能莊而不能同。兼四子之有以易吾,吾弗許也。此其所以事吾而不貳也。」
자하가 공자에게 물었다. 「안회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말하였다. 「회(回)의 어짊은 나보다 낫다.」
「자공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말하였다. 「사(賜)의 말재주는 나보다 낫다.」
「자로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말하였다. 「유(由)의 날램은 나보다 낫다.」
「자장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말하였다. 「사(師)의 의젓함은 나보다 낫다.」
자하가 자리를 비켜 물었다. 「그러면 네 사람이 어찌 선생을 섬깁니까.」
말하였다. 「앉거라. 내가 너에게 말해 주겠다. 무릇 회(回)는 어질 수는 있으나 돌이키지 못하고, 사(賜)는 말 잘할 수는 있으나 어눌하지 못하고, 유(由)는 날랠 수는 있으나 겁내지 못하고, 사(師)는 의젓할 수는 있으나 어울리지 못한다. 네 사람이 가진 것을 다 합하여 나와 바꾸자 하여도 나는 그러지 않겠다. 이것이 그들이 나를 섬기며 두 마음을 두지 않는 까닭이다.」
子列子既師壺丘子林,友伯昏瞀人,乃居南郭。從之處者,日數而不及。雖然,子列子亦微焉。朝朝相與辯,無不聞。而與南郭子連牆二十年,不相謁請;相遇於道,目若不相見者。門之徒役以爲子列子與南郭子有敵不疑。有自楚來者,問子列子曰:「先生與南郭子奚敵?」子列子曰:「南郭子貌充心虛,耳無聞,目無見,口無言,心無知,形無惕。往將奚爲?雖然,試與汝偕往。」閱弟子四十人同行。見南郭子,果若欺魄焉,而不可與接。顧視子列子,形神不相偶,而不可與羣。南郭子俄而指子列子之弟子末行者與言,衎衎然若專直而在雄者。子列子之徒駭之,反舍,咸有疑色。子列子曰:「得意者無言,進知者亦無言。用無言爲言亦言,無知爲知亦知。無言與不言,無知與不知,亦言亦知。亦無所不言,亦無所不知;亦無所言,亦無所知。如斯而已,汝奚妄駭哉?」
자열자가 호구자림을 스승 삼고 백혼무인을 벗 삼은 뒤에 남쪽 성곽에 살았다. 그를 따라 사는 이가 날마다 세어도 다 세지 못하였다. 그러하나 자열자는 또한 드러나지 않았다. 아침마다 서로 따져 물어 듣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남곽자와 담을 잇대고 스무 해를 살면서도 서로 찾아뵙기를 청하지 않았고, 길에서 만나도 눈이 서로 보지 못하는 이 같았다. 문하의 제자들은 자열자와 남곽자가 서로 원수진 줄로 의심 없이 여겼다.
초나라에서 온 이가 자열자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남곽자와 어찌 원수십니까.」
자열자가 말하였다. 「남곽자는 모습이 차 있고 마음이 비어 있소. 귀에 들음이 없고 눈에 봄이 없고 입에 말이 없고 마음에 앎이 없고 꼴에 두려움이 없소. 가서 무엇을 하겠소. 그러하나 시험 삼아 그대와 함께 가 보겠소.」
제자 마흔 사람을 골라 함께 갔다. 남곽자를 보니 과연 흙 인형 같아 더불어 사귈 수 없었다. 자열자를 돌아보니 꼴과 신이 서로 짝하지 않아 더불어 무리 지을 수 없었다.
남곽자가 이윽고 자열자의 제자 가운데 맨 끝줄에 선 이를 가리켜 말을 걸었는데, 화기롭기가 마치 오로지 곧고 씩씩한 이 같았다.
자열자의 무리가 놀라 집에 돌아와서도 다 의심하는 낯빛이 있었다. 자열자가 말하였다.
「뜻을 얻은 이는 말이 없고 앎에 나아간 이도 말이 없다. 말 없음을 말로 삼는 것도 또한 말이요, 앎 없음을 앎으로 삼는 것도 또한 앎이다. 말 없음과 말하지 않음, 앎 없음과 알지 못함도 또한 말이요 또한 앎이다. 또한 말하지 않는 바가 없고 알지 못하는 바가 없으며, 또한 말하는 바가 없고 아는 바가 없다. 이러할 뿐이니 너희가 어찌 부질없이 놀라느냐.」
子列子學也,三年之後,心不敢念是非,口不敢言利害,始得老商一眄而已。五年之後,心更念是非,口更言利害,老商始一解顏而笑。七年之後,從心之所念,更無是非;從口之所言,更無利害,夫子始一引吾並席而坐。九年之後,橫心之所念,橫口之所言,亦不知我之是非利害歟,亦不知彼之是非利害歟,外內進矣。而後眼如耳,耳如鼻,鼻如口,口無不同。心凝形釋,骨肉都融,不覺形之所倚,足之所履,心之所念,言之所藏。如斯而已,則理無所隱矣。
자열자가 배울 때, 세 해 뒤에는 마음이 감히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못하고 입이 감히 이롭고 해로움을 말하지 못하였는데 비로소 노상(老商)이 한 번 곁눈질할 뿐이었다.
다섯 해 뒤에는 마음이 다시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입이 다시 이롭고 해로움을 말하였는데 노상이 비로소 한 번 낯을 펴고 웃었다.
일곱 해 뒤에는 마음이 생각하는 대로 따라도 다시 옳고 그름이 없고 입이 말하는 대로 따라도 다시 이롭고 해로움이 없었는데, 스승이 비로소 나를 이끌어 자리를 나란히 하고 앉았다.
아홉 해 뒤에는 마음이 생각하는 대로 놓아두고 입이 말하는 대로 놓아두어, 나의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도 알지 못하고 저의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도 알지 못하였으니 밖과 안이 다한 것이다.
그런 뒤에 눈이 귀 같고 귀가 코 같고 코가 입 같아 입에 같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마음이 엉기고 꼴이 풀려 뼈와 살이 다 녹았다. 꼴이 기댄 데와 발이 밟은 데와 마음이 생각하는 바와 말이 감춘 바를 깨닫지 못하였다. 이러할 뿐이니 이치가 숨는 바가 없었다.
初,子列子好游。壺丘子曰:「禦寇好游,游何所好?」列子曰:「游之樂所玩無故。人之游也,觀其所見;我之游也,觀其所變。游乎游乎!未有能辨其游者。」壺丘子曰:「禦寇之游固與人同歟,而曰固與人異歟?凡所見,亦恆見其變。玩彼物之無故,不知我亦無故。務外游,不知務內觀。外游者,求備於物;內觀者,取足於身。取足於身,游之至也;求備於物,游之不至也。」於是列子終身不出,自以爲不知游。壺丘子曰:「游其至乎!至游者,不知所適;至觀者,不知所眂。物物皆游矣,物物皆觀矣,是我之所謂游,是我之所謂觀也。故曰:游其至矣乎,游其至矣乎!」
처음에 자열자가 노닐기를 좋아하였다. 호구자가 말하였다. 「어구가 노닐기를 좋아하는데 노닒의 무엇을 좋아하는가.」
열자가 말하였다. 「노닒의 즐거움은 즐기는 것에 옛 그대로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남이 노닒은 그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요, 제가 노닒은 그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노닒이여, 노닒이여. 그 노닒을 가릴 수 있는 이가 아직 없습니다.」
호구자가 말하였다. 「어구의 노닒이 참으로 남과 같은가, 그런데도 참으로 남과 다르다 하는가. 무릇 보이는 것에도 늘 그 달라짐이 보인다. 저 물건에 옛 그대로가 없음을 즐기면서 나에게도 옛 그대로가 없음을 알지 못한다. 밖으로 노닒에 힘쓰고 안으로 봄에 힘쓸 줄 모른다. 밖으로 노니는 이는 물건에서 갖추기를 구하고, 안으로 보는 이는 제 몸에서 넉넉함을 얻는다. 제 몸에서 넉넉함을 얻는 것이 노닒의 지극함이요, 물건에서 갖추기를 구하는 것은 노닒의 지극하지 못함이다.」
이에 열자가 죽도록 나가지 않고 스스로 노닒을 알지 못한다 하였다. 호구자가 말하였다. 「노닒이 지극하구나. 지극히 노니는 이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지극히 보는 이는 무엇을 보는지 모른다. 물건마다 다 노니는 것이요 물건마다 다 보는 것이니 이것이 내가 이른바 노닒이요 내가 이른바 봄이다. 그러므로 이르노니, 노닒이 지극하구나, 노닒이 지극하구나.」
龍叔謂文摯曰:「子之術微矣。吾有疾,子能已乎?」文摯曰:「唯命所聽。然先言子所病之證。」龍叔曰:「吾鄉譽不以爲榮,國毀不以爲辱;得而不喜,失而弗憂;視生如死,視富如貧;視人如豕,視吾如人。處吾之家,如逆旅之舍;觀吾之鄉,如戎蠻之國。凡此衆疾,爵賞不能勸,刑罰不能威,盛衰、利害不能易,哀樂不能移。固不可事國君,交親友,御妻子,制僕隸。此奚疾哉?奚方能已之乎?」文摯乃命龍叔背明而立,文摯自後向明而望之。既而曰:「嘻!吾見子之心矣,方寸之地虛矣。幾聖人也!子心六孔流通,一孔不達。今以聖智爲疾者,或由此乎!非吾淺術所能已也。」
용숙(龍叔)이 문지(文摯)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재주가 묘하오. 나에게 병이 있는데 그대가 그치게 할 수 있겠소.」
문지가 말하였다. 「분부하는 대로 듣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그대가 앓는 증세를 말씀하십시오.」
용숙이 말하였다. 「내가 마을에서 기려도 영광으로 여기지 않고 나라에서 헐어도 욕으로 여기지 않소. 얻어도 기쁘지 않고 잃어도 근심하지 않소. 삶 보기를 죽음같이 하고 가멸음 보기를 가난같이 하며, 남 보기를 돼지같이 하고 나 보기를 남같이 하오. 내 집에 있기를 여관에 든 듯하고 내 마을 보기를 낯선 나라같이 하오.
무릇 이 온갖 병은 벼슬과 상으로도 권할 수 없고 형벌로도 겁줄 수 없고 성함과 쇠함과 이로움과 해로움으로도 바꿀 수 없고 슬픔과 즐거움으로도 옮길 수 없소. 참으로 나라 임금을 섬기지 못하고 벗을 사귀지 못하고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지 못하고 종을 부리지 못하오. 이것이 무슨 병이오. 어떤 처방으로 그치게 하겠소.」
문지가 이에 용숙에게 밝은 쪽을 등지고 서게 하고, 문지는 뒤에서 밝은 쪽을 향하여 그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말하였다.
「아, 내가 그대의 마음을 보았소. 한 치 자리가 비었소. 거의 성인이오. 그대의 마음은 여섯 구멍이 흘러 통하고 한 구멍이 트이지 않았소. 이제 거룩한 슬기를 병으로 여기는 것이 아마 이 때문일 것이오. 내 얕은 재주로 그치게 할 바가 아니오.」
無所由而常生者,道也。由生而生,故雖終而不亡,常也。由生而亡,不幸也。有所由而常死者,亦道也。由死而死,故雖未終而自亡者,亦常也。由死而生,幸也。故無用而生謂之道,用道得終謂之常;有所用而死者亦謂之道,用道而得死者亦謂之常。季梁之死,楊朱望其門而歌;隨梧之死,楊朱撫其尸而哭。隸人之生,隸人之死,衆人且歌,衆人且哭。
말미암는 바 없이 늘 사는 것이 도다. 삶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므로 마쳐도 없어지지 않으니 떳떳함이다. 삶으로 말미암아 없어지는 것은 다행하지 못함이다.
말미암는 바 있어 늘 죽는 것도 도다. 죽음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므로 아직 마치지 않고 절로 없어지는 것도 떳떳함이다. 죽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은 요행이다.
그러므로 쓰임 없이 사는 것을 도라 하고, 도를 써서 마침을 얻는 것을 떳떳함이라 한다. 쓰는 바 있어 죽는 것도 도라 하고, 도를 써서 죽음을 얻는 것도 떳떳함이라 한다.
계량(季梁)이 죽자 양주는 그 문을 바라보며 노래하였고, 수오(隨梧)가 죽자 양주는 그 주검을 어루만지며 곡하였다. 종의 남과 종의 죽음에는 뭇 사람이 노래하기도 하고 뭇 사람이 곡하기도 한다.
目將眇者,先睹秋毫;耳將聾者,先聞蚋飛;口將爽者,先辨淄澠;鼻將窒者,先覺焦朽;體將僵者,先亟犇佚,心將迷者,先識是非,故物不至者則不反。
눈이 장차 어두워질 이는 먼저 가을 터럭을 보고, 귀가 장차 먹을 이는 먼저 모기 나는 소리를 듣고, 입이 장차 맛을 잃을 이는 먼저 치수(淄水)와 승수(澠水)를 가려내고, 코가 장차 막힐 이는 먼저 타고 썩는 냄새를 깨닫고, 몸이 장차 뻣뻣해질 이는 먼저 몹시 내달리고, 마음이 장차 헷갈릴 이는 먼저 옳고 그름을 안다. 그러므로 물건은 끝에 이르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는다.
鄭之圃澤多賢,東里多才。圃澤之役有伯豐子者,行過東里,遇鄧析。鄧析顧其徒而笑曰:「爲若舞,彼來者奚若?」其徒曰:「所願知也。」鄧析謂伯豐子曰:「汝知養養之義乎?受人養而不能自養者,犬豕之類也;養物而物爲我用者,人之力也。使汝之徒食而飽,衣而息,執政之功也。長幼羣聚而爲牢藉庖廚之物,奚異犬豕之類乎?」伯豐子不應。伯豐子之從者越次而進曰:「大夫不聞齊魯之多機乎?有善治土木者,有善治金革者,有善治聲樂者,有善治書數者,有善治軍旅者,有善治宗廟者,羣才備也。而無相位者,無能相使者。而位之者無知,使之者無能,而知之與能爲之使焉。執政者,迺吾之所使,子奚矜焉?」鄧析無以應,目其徒而退。
정나라의 포택(圃澤)에 어진 이가 많고 동리(東里)에 재주 있는 이가 많았다. 포택의 무리에 백풍자(伯豐子)라는 이가 있어 길이 동리를 지나다 등석(鄧析)을 만났다.
등석이 그 무리를 돌아보고 웃으며 말하였다. 「너희를 위하여 놀려 주겠다. 저기 오는 이가 어떠냐.」
그 무리가 말하였다. 「알기를 바랍니다.」
등석이 백풍자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기름과 길러짐의 뜻을 아는가. 남에게 길러지면서 스스로 기르지 못하는 것은 개와 돼지의 무리요, 물건을 길러 물건이 나에게 쓰이게 하는 것은 사람의 힘이다. 그대의 무리로 하여금 먹여 배부르게 하고 입혀 쉬게 하는 것은 정사를 잡은 이의 공이다. 어른과 아이가 떼 지어 모여 우리와 짚자리와 부엌의 물건이 되니 개와 돼지의 무리와 무엇이 다른가.」
백풍자가 대꾸하지 않았다. 백풍자를 따르던 이가 차례를 넘어 나아가 말하였다.
「대부께서는 제나라와 노나라에 재주 있는 이가 많다는 것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흙과 나무를 잘 다루는 이가 있고, 쇠와 가죽을 잘 다루는 이가 있고, 소리와 음악을 잘 다루는 이가 있고, 글과 셈을 잘 다루는 이가 있고, 군사를 잘 다루는 이가 있고, 종묘를 잘 다루는 이가 있어 뭇 재주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자리를 매기는 이가 없고 서로 부릴 수 있는 이가 없습니다. 자리를 매기는 이는 앎이 없고 부리는 이는 능함이 없는데, 아는 이와 능한 이가 그에게 부림을 받습니다. 정사를 잡은 이는 곧 우리가 부리는 이인데 그대는 무엇을 자랑하십니까.」
등석이 응할 말이 없어 그 무리에게 눈짓하고 물러났다.
公儀伯以力聞諸侯,堂谿公言之於周宣王,王備禮以聘之。公儀伯至,觀形,懦夫也。宣王心惑而疑曰:「女之力何如?」公儀伯曰:「臣之力能折春螽之股,堪秋蟬之翼。」王作色曰:「吾之力能裂犀兕之革,曳九牛之尾,猶憾其弱。女折春螽之股,堪秋蟬之翼,而力聞天下,何也?」公儀伯長息退席,曰:「善哉王之問也!臣敢以實對。臣之師有商丘子者,力無敵於天下,而六親不知,以未嘗用其力故也。臣以死事之。乃告臣曰:『人欲見其所不見,視人所不窺;欲得其所不得,修人所不爲。故學眎者先見輿薪,學聽者先聞撞鐘。夫有易於內者無難於外。於外無難,故名不出其一家。』今臣之名聞於諸侯,是臣違師之教,顯臣之能者也。然則臣之名不以負其力者也,以能用其力者也,不猶愈於負其力者乎?」
공의백(公儀伯)이 힘으로 제후에게 이름났다. 당계공(堂谿公)이 주 선왕에게 말하니 왕이 예를 갖추어 그를 불렀다.
공의백이 이르렀는데 모습을 보니 나약한 사내였다. 선왕이 마음에 헷갈려 의심하며 말하였다. 「그대의 힘은 어떠한가.」
공의백이 말하였다. 「신의 힘은 봄 메뚜기의 다리를 꺾고 가을 매미의 날개를 견딜 만합니다.」
왕이 낯빛을 고치고 말하였다. 「내 힘은 무소와 외뿔소의 가죽을 찢고 아홉 소의 꼬리를 끌면서도 오히려 약함을 한스러워한다. 그대는 봄 메뚜기의 다리를 꺾고 가을 매미의 날개를 견디면서 힘으로 천하에 이름났으니 어찌 된 일인가.」
공의백이 길게 한숨짓고 자리에서 물러나 말하였다.
「좋습니다, 왕의 물으심이. 신이 감히 사실대로 대답하겠습니다.
신의 스승에 상구자(商丘子)라는 이가 있어 힘이 천하에 맞설 이가 없었는데 육친이 알지 못하였으니 그 힘을 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이 죽기로 섬겼더니 이에 신에게 일렀습니다.
『사람이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자 하면 남이 엿보지 않는 것을 보고, 남이 얻지 못하는 것을 얻고자 하면 남이 하지 않는 것을 닦아라. 그러므로 보기를 배우는 이는 먼저 수레에 실은 섶을 보고, 듣기를 배우는 이는 먼저 종 치는 소리를 듣는다. 무릇 안에 쉬움이 있는 이는 밖에 어려움이 없다. 밖에 어려움이 없으므로 이름이 제 한 집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제 신의 이름이 제후에게 들리니 이는 신이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신의 능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하나 신의 이름은 제 힘을 믿어서가 아니라 제 힘을 쓸 줄 알아서 난 것이니, 제 힘을 믿는 이보다 오히려 낫지 않겠습니까.」
中山公子牟者,魏國之賢公子也,好與賢人游,不恤國事,而悅趙人公孫龍。樂正子輿之徒笑之。公子牟曰:「子何笑牟之悅公孫龍也?」子輿曰:「公孫龍之爲人也,行無師,學無友,佞給而不中,漫衍而無家,好怪而妄言,欲惑人之心,屈人之口,與韓檀等肄之。」公子牟變容曰:「何子狀公孫龍之過歟?請聞其實。」子輿曰:「吾笑龍之詒孔穿,言『善射者能令後鏃中前括,發發相及,矢矢相屬,前矢造準而無絕落,後矢之括猶銜弦,視之若一焉。』孔穿駭之。龍曰:『此未其妙者。逢蒙之弟子曰鴻超,怒其妻而怖之。引烏號之弓,綦衛之箭,射其目。矢來注眸子而眶不睫,矢隧地而塵不揚。』是豈智者之言與?」公子牟曰:「智者之言固非愚者之所曉。後鏃中前括,鈞後於前。矢注眸子而眶不睫,盡矢之勢也。子何疑焉?」樂正子輿曰:「子,龍之徒,焉得不飾其闕?吾又言其尤者。龍誑魏王曰:『有意不心。有指不至。有物不盡。有影不移。髮引千鈞。白馬非馬。孤犢未嘗有母。』其負類反倫,不可勝言也。」公子牟曰:「子不諭至言而以爲尤也,尤其在子矣。夫無意則心同;無指則皆至;盡物者常有;影不移者,說在改也;髮引千鈞,勢至等也;白馬非馬,形名離也;孤犢未嘗有母,非孤犢也。」樂正子輿曰:「子以公孫龍之鳴皆條也。設令發於餘竅,子亦將承之。」公子牟默然良久,告退,曰:「請待餘日,更謁子論。」
중산 공자모(公子牟)는 위나라의 어진 공자였다. 어진 이와 노닐기를 좋아하고 나랏일을 돌보지 않았으며 조나라 사람 공손룡(公孫龍)을 좋아하였다. 악정자여(樂正子輿)의 무리가 그를 비웃었다.
공자모가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 내가 공손룡을 좋아하는 것을 비웃는가.」
자여가 말하였다. 「공손룡의 사람됨은 행함에 스승이 없고 배움에 벗이 없으며, 말재주가 넉넉하나 알맞지 못하고, 흩어져 넘쳐 갈래가 없으며, 괴이함을 좋아하여 함부로 말하고, 남의 마음을 홀리고 남의 입을 굽히려 하여 한단(韓檀) 무리와 그것을 익히고 있소.」
공자모가 낯빛을 고치며 말하였다. 「어찌 그대는 공손룡의 허물을 그리 말하는가. 그 알맹이를 듣기를 청하네.」
자여가 말하였다.
「내가 웃는 것은 공손룡이 공천(孔穿)을 속인 일이오. 이르기를 『잘 쏘는 이는 뒤 화살의 촉이 앞 화살의 오늬에 맞게 하여 쏘는 대로 서로 이어지고 살마다 서로 붙어, 앞 화살은 과녁에 닿았는데 끊어져 떨어지지 않고 뒤 화살의 오늬는 아직 시위를 물고 있어 보면 하나 같다』 하였소. 공천이 놀랐소.
공손룡이 말하기를 『이것은 묘한 것이 아니오. 봉몽(逢蒙)의 제자에 홍초(鴻超)라는 이가 있어 제 아내에게 성이 나 겁을 주려고 오호(烏號)의 활에 기위(綦衛)의 화살을 메겨 그 눈을 쏘았소. 화살이 와서 눈동자에 닿았는데 눈시울이 깜박이지 않았고, 화살이 땅에 떨어졌는데 먼지가 일지 않았소』 하였소. 이것이 어찌 슬기로운 이의 말이겠소.」
공자모가 말하였다. 「슬기로운 이의 말은 본디 어리석은 이가 깨달을 바가 아니오. 뒤 화살의 촉이 앞 화살의 오늬에 맞는 것은 뒤가 앞과 고르기 때문이오. 화살이 눈동자에 닿았는데 눈시울이 깜박이지 않은 것은 화살의 기세가 다한 것이오. 그대는 무엇을 의심하오.」
악정자여가 말하였다. 「그대는 공손룡의 무리이니 어찌 그 흠을 꾸미지 않겠소. 내가 또 더 심한 것을 말하겠소. 공손룡이 위나라 왕을 속여 말하기를 『뜻은 있어도 마음은 없다. 가리킴은 있어도 이르지 않는다. 물건은 있어도 다하지 않는다. 그림자는 있어도 옮기지 않는다. 터럭이 천 균을 끈다. 흰 말은 말이 아니다. 외로운 송아지는 일찍이 어미가 있은 적이 없다』 하였소. 그 무리를 저버리고 이치를 뒤집음이 이루 말할 수 없소.」
공자모가 말하였다. 「그대가 지극한 말을 깨닫지 못하고 심하다 하니 심한 것은 그대에게 있소. 무릇 뜻이 없으면 마음이 같고, 가리킴이 없으면 다 이르며, 물건을 다한 것은 늘 있소. 그림자가 옮기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고쳐짐에 있고, 터럭이 천 균을 끈다는 것은 기세가 지극히 고르기 때문이며, 흰 말이 말이 아니라는 것은 꼴과 이름이 갈리기 때문이며, 외로운 송아지가 어미가 있은 적 없다는 것은 어미가 있으면 외로운 송아지가 아니기 때문이오.」
악정자여가 말하였다. 「그대는 공손룡이 우는 소리가 다 조리 있다 하는구려. 설령 다른 구멍에서 나온다 하여도 그대는 또 그것을 받들겠소.」
공자모가 잠자코 한참 있다가 물러가기를 아뢰며 말하였다. 「며칠 기다렸다가 다시 그대를 찾아 논하기를 청하오.」
堯治天下五十年,不知天下治歟、不治歟,不知億兆之願戴己歟、不願戴己歟,顧問左右,左右不知;問外朝,外朝不知;問在野,在野不知。堯乃微服游於康衢,聞兒童謠曰:「立我蒸民,莫匪爾極。不識不知,順帝之則。」堯喜問曰:「誰教爾爲此言?」童兒曰:「我聞之大夫。」問大夫,大夫曰:「古詩也。」堯還宮,召舜,因禪以天下。舜不辭而受之。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쉰 해에 천하가 다스려지는지 다스려지지 않는지 알지 못하고, 억조 백성이 저를 떠받들기를 바라는지 바라지 않는지 알지 못하였다.
곁의 사람에게 물으니 곁의 사람이 알지 못하고, 바깥 조정에 물으니 바깥 조정이 알지 못하고, 들에 있는 이에게 물으니 들에 있는 이가 알지 못하였다.
요임금이 이에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넓은 거리에 노닐다가 아이들의 노래를 들었다. 「우리 뭇 백성을 세우심이 그대의 지극함 아님이 없네.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 채 임금의 법을 따르네.」
요임금이 기뻐하며 물었다. 「누가 너희에게 이 말을 가르쳤느냐.」
아이가 말하였다. 「저희는 대부에게 들었습니다.」
대부에게 물으니 대부가 말하였다. 「옛 시입니다.」
요임금이 궁으로 돌아와 순을 불러 천하를 물려주었다. 순이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關尹喜曰:「在己無居,形物其箸。其動若水,其靜若鏡,其應若響。故其道若物者也,物自違道,道不違物。善若道者,亦不用耳,亦不用目,亦不用力,亦不用心。欲若道而用視聽形智以求之,弗當矣。瞻之在前,忽焉在後;用之彌滿六虛,廢之莫知其所;亦非有心者所能得遠,亦非無心者所能得近。唯默而得之而性成之者得之。知而亡情,能而不爲,真知真能也。發無知,何能情?發不能,何能爲?聚塊也,積塵也,雖無爲而非理也。」
관윤희(關尹喜)가 말하였다.
「제게 머무는 바가 없으면 꼴 있는 물건이 절로 드러난다. 그 움직임은 물 같고 그 고요함은 거울 같고 그 응함은 메아리 같다. 그러므로 그 도는 물건을 따르는 것이니, 물건이 스스로 도를 어길 뿐 도는 물건을 어기지 않는다.
도를 잘 따르는 이는 귀를 쓰지도 않고 눈을 쓰지도 않고 힘을 쓰지도 않고 마음을 쓰지도 않는다. 도를 따르고자 하면서 보고 듣고 꼴과 슬기로 구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앞에 있는가 하고 보면 문득 뒤에 있다. 쓰면 빈 곳마다 가득 차고 버리면 그 있는 데를 알지 못한다. 또한 마음 있는 이가 멀리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마음 없는 이가 가까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잠잠히 얻어 성품으로 이룬 이라야 얻는다.
알면서 정이 없고 능하면서 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앎이요 참으로 능함이다. 앎 없음에서 일어나면 어찌 정이 있겠으며, 능하지 못함에서 일어나면 어찌 함이 있겠는가. 흙덩이를 모은 것이요 티끌을 쌓은 것이라, 비록 함이 없어도 이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