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朱篇
楊朱游於魯,舍於孟氏。孟氏問曰:「人而已矣,奚以名爲?」曰:「以名者爲富。」「既富矣,奚不已焉?」曰:「爲貴。」「既貴矣,奚不已焉?」曰:「爲死。」「既死矣,奚爲焉?」曰:「爲子孫。」「名奚益於子孫?」曰:「名乃苦其身,燋其心。乘其名者,澤及宗族,利兼鄉黨,況子孫乎?」「凡爲名者必廉,廉斯貧;爲名者必讓,讓斯賤。」曰:「管仲之相齊也,君淫亦淫,君奢亦奢。志合言從,道行國霸。死之後,管氏而已。田氏之相齊也,君盈則己降,君歛則己施。民皆歸之,因有齊國;子孫享之,至今不絕。若實名貧,僞名富。」曰:「實無名,名無實。名者,僞而已矣。昔者堯舜僞以天下讓許由、善卷,而不失天下,享祚百年。伯夷、叔齊實以孤竹君讓,而終亡其國,餓死於首陽之山。實、僞之辯,如此其省也。」
양주가 노나라에 노닐 때 맹씨의 집에 묵었다. 맹씨가 물었다. 「사람이면 그만이지 이름은 무엇에 쓰오.」
말하였다. 「이름으로 가멸어지오.」
「이미 가멸었으면 어찌 그치지 않소.」
말하였다. 「귀해지려는 것이오.」
「이미 귀해졌으면 어찌 그치지 않소.」
말하였다. 「죽음을 위해서요.」
「이미 죽었으면 무엇에 쓰오.」
말하였다. 「자손을 위해서요.」
「이름이 자손에게 무슨 보탬이 되오.」
말하였다. 「이름은 그 몸을 괴롭히고 그 마음을 태우오. 그러나 그 이름을 타는 이는 은택이 겨레에 미치고 이로움이 온 마을에 미치는데 하물며 자손이겠소.」
「무릇 이름을 위하는 이는 반드시 청렴하고 청렴하면 가난해지오. 이름을 위하는 이는 반드시 사양하고 사양하면 천해지오.」
말하였다. 「관중이 제나라 재상일 때 임금이 음탕하면 저도 음탕하고 임금이 사치하면 저도 사치하였소. 뜻이 맞고 말이 좇아져 도가 행해지고 나라가 으뜸이 되었소. 죽은 뒤에는 관씨일 뿐이었소.
전씨가 제나라 재상일 때 임금이 차면 저는 덜고 임금이 거두면 저는 베풀었소. 백성이 다 그에게 돌아가 이로 말미암아 제나라를 차지하였고 자손이 누려 지금까지 끊이지 않소.
이처럼 참된 이름은 가난하고 거짓 이름은 가멸소.」
말하였다. 「참됨에는 이름이 없고 이름에는 참됨이 없소. 이름이란 거짓일 뿐이오. 옛날 요와 순은 거짓으로 천하를 허유와 선권에게 사양하고도 천하를 잃지 않아 백 해를 누렸소. 백이와 숙제는 참으로 고죽의 임금 자리를 사양하고 마침내 그 나라를 잃고 수양산에서 주려 죽었소. 참됨과 거짓의 갈림이 이처럼 뚜렷하오.」
楊朱曰:「百年,壽之大齊。得百年者千無一焉。設有一者,孩抱以逮昏老,幾居其半矣。夜眠之所弭,晝覺之所遺,又幾居其半矣。痛疾哀苦,亡失憂懼,又幾居其半矣。量十數年之中,逌然而自得亡介焉之慮者,亦亡一時之中爾。則人之生也奚爲哉?奚樂哉?爲美厚爾,爲聲色爾,而美厚復不可常厭足,聲色不可常翫聞,乃復爲刑賞之所禁勸,名法之所進退,遑遑爾競一時之虛譽,規死後之餘榮,偊偊爾順耳目之觀聽,惜身意之是非,徒失當年之至樂,不能自肆於一時。重囚纍梏,何以异哉?太古之人知生之暫來,知死之暫往,故從心而動,不違自然所好;當身之娛非所去也,故不爲名所勸。從性而游,不逆萬物所好;死後之名非所取也,故不爲刑所及。名譽先後,年命多少,非所量也。」
양주가 말하였다.
「백 해가 목숨의 가장 큰 끝이다. 백 해를 얻는 이는 천에 하나도 없다. 설령 하나가 있다 하여도 어려서 안겨 있는 때와 어둑히 늙은 때가 거의 그 반을 차지한다. 밤에 잠들어 없어진 때와 낮에 깨어 흘려보낸 때가 또 거의 그 반을 차지한다. 아프고 앓고 슬프고 괴로운 때와 잃고 근심하고 두려운 때가 또 거의 그 반을 차지한다.
그 남은 열몇 해 가운데를 헤아려도 느긋이 스스로 얻어 낀 걱정 하나 없는 때는 한 시각도 없다.
그러면 사람이 사는 것이 무엇을 위함인가. 무엇이 즐거운가. 좋은 옷과 두터운 밥을 위함이요 소리와 빛깔을 위함일 뿐이다. 그런데 좋은 옷과 두터운 밥도 늘 물리도록 넉넉할 수 없고 소리와 빛깔도 늘 즐겨 들을 수 없다.
이에 다시 형벌과 상에 금하고 권함을 받고 이름과 법에 나아가고 물러남을 당한다. 허둥지둥 한때의 헛된 기림을 다투고 죽은 뒤의 남은 영광을 꾀한다. 비틀비틀 귀와 눈이 보고 듣는 것을 좇고 몸과 뜻의 옳고 그름을 아끼다가, 살아 있는 동안의 지극한 즐거움을 헛되이 잃고 한때도 스스로 마음껏 하지 못한다. 무거운 죄수가 겹겹 차꼬를 찬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아득한 옛사람은 삶이 잠깐 오는 것인 줄 알고 죽음이 잠깐 가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므로 마음을 좇아 움직이고 저절로 그러함이 좋아하는 바를 어기지 않았다. 제 몸의 즐거움을 버릴 바가 아니었으므로 이름에 권함을 받지 않았다. 성품을 좇아 노닐고 만물이 좋아하는 바를 거스르지 않았다. 죽은 뒤의 이름을 취할 바가 아니었으므로 형벌이 미치지 않았다. 이름과 기림의 먼저와 나중, 나이와 목숨의 많고 적음은 헤아릴 바가 아니었다.」
楊朱曰:「萬物所異者生也,所同者死也。生則有賢愚、貴賤,是所異也;死則有臭腐、消滅,是所同也。雖然,賢愚、貴賤非所能也,臭腐、消滅亦非所能也。故生非所生,死非所死;賢非所賢,愚非所愚;貴非所貴,賤非所賤。然而萬物齊生齊死,齊賢齊愚,齊貴齊賤。十年亦死,百年亦死;仁聖亦死,凶愚亦死。生則堯舜,死則腐骨;生則桀紂,死則腐骨。腐骨一矣,孰知其異?且趣當生,奚遑死後?」
양주가 말하였다.
「만물이 다른 바는 삶이요 같은 바는 죽음이다. 살아서는 어짊과 어리석음과 귀함과 천함이 있으니 이것이 다른 바요, 죽어서는 썩고 스러짐이 있으니 이것이 같은 바다.
그러하나 어짊과 어리석음과 귀함과 천함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니요 썩고 스러짐도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삶은 살게 한 바가 아니요 죽음은 죽게 한 바가 아니며, 어짊은 어질게 한 바가 아니요 어리석음은 어리석게 한 바가 아니며, 귀함은 귀하게 한 바가 아니요 천함은 천하게 한 바가 아니다.
그러니 만물이 고르게 살고 고르게 죽으며, 고르게 어질고 고르게 어리석으며, 고르게 귀하고 고르게 천하다. 열 해도 죽고 백 해도 죽으며, 어질고 거룩한 이도 죽고 모질고 어리석은 이도 죽는다. 살아서는 요와 순이라도 죽으면 썩은 뼈요, 살아서는 걸과 주라도 죽으면 썩은 뼈다. 썩은 뼈는 하나이니 누가 그 다름을 알겠는가. 또한 살아 있는 동안에 나아갈 일이니 어느 겨를에 죽은 뒤를 돌보겠는가.」
楊朱曰:「伯夷非亡欲,矜清之郵,以放餓死。展季非亡情,矜貞之郵,以放寡宗。清貞之誤善之若此!」
양주가 말하였다. 「백이가 바람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맑음을 뽐냄이 지나쳐 주려 죽기에 이른 것이다. 전계(展季)가 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곧음을 뽐냄이 지나쳐 겨레가 줄어든 것이다. 맑음과 곧음이 착한 것을 그르침이 이와 같다.」
楊朱曰:「原憲窶於魯,子貢殖於衛。原憲之窶損生,子貢之殖累身。」「然則窶亦不可,殖亦不可,其可焉在?」曰:「可在樂生,可在逸身。故善樂生者不窶,善逸身者不殖。」
양주가 말하였다. 「원헌(原憲)은 노나라에서 가난하였고 자공은 위나라에서 재산을 늘렸다. 원헌의 가난은 삶을 덜었고 자공의 재산은 몸을 얽었다.」
「그러면 가난도 안 되고 재산도 안 되니 될 바는 어디에 있습니까.」
말하였다. 「될 바는 삶을 즐기는 데 있고 몸을 편안히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삶을 잘 즐기는 이는 가난하지 않고 몸을 잘 편안히 하는 이는 재산을 늘리지 않는다.」
楊朱曰:「古語有之:『生相憐,死相捐。』此語至矣。相憐之道,非唯情也;勤能使逸,飢能使飽,寒能使溫,窮能使達也。相捐之道,非不相哀也;不含珠玉,不服文錦,不陳犧牲,不設明器也。晏平仲問養生於管夷吾。管夷吾曰:『肆之而已,勿壅勿閼。』晏平仲曰:『其目柰何?』夷吾曰:『恣耳之所欲聽,恣目之所欲視,恣鼻之所欲向,恣口之所欲言,恣體之所欲安,恣意之所欲行。夫耳之所欲聞者音聲,而不得聽,謂之閼聰;目之所欲見者美色,而不得視,謂之閼明;鼻之所欲向者椒蘭,而不得嗅,謂之閼顫;口之所欲道者是非,而不得言,謂之閼智;體之所欲安者美厚,而不得從,謂之閼適;意之所欲爲者放逸,而不得行,謂之閼性。凡此諸閼,廢虐之主。去廢虐之主,熙熙然以俟死,一日、一月、一年、十年,吾所謂養。拘此廢虐之主,錄而不舍,戚戚然以至久生,百年、千年、萬年,非吾所謂養。』管夷吾曰:『吾既告子養生矣,送死柰何?』晏平仲曰:『送死略矣,將何以告焉?』管夷吾曰:『吾固欲聞之。』平仲曰:『既死,豈在我哉?焚之亦可,沈之亦可,瘞之亦可,露之亦可,衣薪而棄諸溝壑亦可,袞衣繡裳而納諸石椁亦可,唯所遇焉。』管夷吾顧謂鮑叔黃子曰:『生死之道,吾二人進之矣。』」
양주가 말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살아서는 서로 가엾이 여기고 죽어서는 서로 버린다』 하였다. 이 말이 지극하다.
서로 가엾이 여기는 도는 오직 정만이 아니다. 수고로운 이를 편하게 하고 주린 이를 배부르게 하고 추운 이를 따뜻하게 하고 막힌 이를 통하게 하는 것이다. 서로 버리는 도는 서로 슬퍼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구슬과 옥을 물리지 않고 무늬 비단을 입히지 않고 희생을 벌이지 않고 명기(明器)를 놓지 않는 것이다.
안평중이 관이오에게 삶을 기르는 법을 물었다. 관이오가 말하였다. 『놓아둘 뿐이다. 막지도 말고 가로막지도 말라.』
안평중이 말하였다. 『그 조목은 어떠합니까.』
이오가 말하였다.
『귀가 듣고자 하는 대로 놓아두고, 눈이 보고자 하는 대로 놓아두고, 코가 향하고자 하는 대로 놓아두고, 입이 말하고자 하는 대로 놓아두고, 몸이 편하고자 하는 대로 놓아두고, 뜻이 가고자 하는 대로 놓아둔다.
무릇 귀가 듣고자 하는 것은 소리인데 듣지 못하면 밝은 귀를 막았다 하고, 눈이 보고자 하는 것은 고운 빛깔인데 보지 못하면 밝은 눈을 막았다 하고, 코가 향하고자 하는 것은 산초와 난초인데 맡지 못하면 코를 막았다 하고, 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옳고 그름인데 말하지 못하면 슬기를 막았다 하고, 몸이 편하고자 하는 것은 좋고 두터운 것인데 좇지 못하면 알맞음을 막았다 하고, 뜻이 하고자 하는 것은 놓아 노니는 것인데 행하지 못하면 성품을 막았다 한다.
무릇 이 여러 막음이 사람을 헐고 사납게 하는 주인이다. 헐고 사납게 하는 주인을 버리고 흐뭇이 죽음을 기다리기를 하루든 한 달이든 한 해든 열 해든 하는 것이 내가 이른바 기름이다. 이 헐고 사납게 하는 주인을 붙들어 매어 놓지 않고 근심스레 오래 살기에 이르러 백 해든 천 해든 만 해든 하는 것은 내가 이른바 기름이 아니다.』
관이오가 말하였다. 『내가 이미 그대에게 삶을 기르는 법을 일렀으니 죽음을 보내는 법은 어떠한가.』
안평중이 말하였다. 『죽음을 보내는 일은 간략하니 무엇을 이르겠습니까.』
관이오가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그것을 듣고 싶네.』
평중이 말하였다. 『이미 죽었으면 어찌 나에게 있겠습니까. 태워도 좋고 물에 잠가도 좋고 묻어도 좋고 드러내 놓아도 좋고, 섶으로 싸서 도랑에 버려도 좋고 곤룡포와 수놓은 치마를 입혀 돌곽에 넣어도 좋습니다. 오직 만나는 대로일 뿐입니다.』
관이오가 포숙과 황자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살고 죽는 도를 우리 두 사람이 다하였다.』」
子產相鄭,專國之政。三年,善者服其化,惡者畏其禁,鄭國以治,諸侯憚之。而有兄曰公孫朝,有弟曰公孫穆。朝好酒,穆好色。朝之室也聚酒千鍾,積麴成封,望門百步,糟漿之氣逆於人鼻。方其荒於酒也,不知世道之安危,人理之悔吝,室內之有亡,九族之親疏,存亡之哀樂也。雖水火兵刃交於前,弗知也。穆之後庭比房數十,皆擇稚齒婑媠者以盈之。方其耽於色也,屏親昵,絕交遊,逃於後庭,以晝足夜;三月一出,意猶未愜。鄉有處子之娥姣者,必賄而招之,媒而挑之,弗獲而後已。子產日夜以爲戚,密造鄧析而謀之,曰:「僑聞治身以及家,治家以及國,此言自於近至於遠也。僑爲國則治矣,而家則亂矣。其道逆邪?將奚方以救二子?子其詔之!」鄧析曰:「吾怪之久矣,未敢先言。子奚不時其治也,喻以性命之重,誘以禮義之尊乎?」子產用鄧析之言,因閒以謁其兄弟,而告之曰:「人之所以貴於禽獸者,智慮;智慮之所將者,禮義。禮義成,則名位至矣。若觸情而動,耽於嗜慾,則性命危矣。子納僑之言,則朝自悔而夕食祿矣。」朝穆曰:「吾知之久矣,擇之亦久矣,豈待若言而後識之哉?凡生之難遇而死之易及。以難遇之生,俟易及之死,可孰念哉?而欲尊禮義以夸人,矯情性以招名,吾以此爲弗若死矣。爲欲盡一生之歡,窮當年之樂,唯患腹溢而不得恣口之飲,力憊而不得肆情於色;不遑憂名聲之醜,性命之危也。且若以治國之能夸物,欲以說辭亂我之心,榮祿喜我之意,不亦鄙而可憐哉?我又欲與若別之。夫善治外者,物未必治,而身交苦;善治內者,物未必亂,而性交逸。以若之治外,其法可暫行於一國,未合於人心;以我之治內,可推之於天下,君臣之道息矣。吾常欲以此術而喻之,若反以彼術而教我哉?」子產忙然無以應之。他日,以告鄧析。鄧析曰:「子與真人居而不知也,孰謂子智者乎?鄭國之治偶耳,非子之功也。」
자산이 정나라 재상이 되어 나라 정사를 오로지하였다. 세 해에 착한 이는 그 가르침에 굴복하고 모진 이는 그 금함을 두려워하여 정나라가 다스려지고 제후가 그를 꺼렸다.
그런데 형에 공손조(公孫朝)가 있고 아우에 공손목(公孫穆)이 있었다. 조는 술을 좋아하고 목은 여색을 좋아하였다.
조의 집에는 술 천 종을 모으고 누룩을 쌓아 언덕을 이루어, 문에서 백 걸음 떨어져 바라보아도 지게미와 술 기운이 사람의 코를 찔렀다. 술에 빠져 있을 때에는 세상 도리의 편안함과 위태로움과 사람 이치의 뉘우침과 부끄러움과 집 안의 있고 없음과 아홉 겨레의 가깝고 멂과 살고 죽음의 슬픔과 즐거움을 알지 못하였다. 물과 불과 병기의 날이 앞에 오가도 알지 못하였다.
목의 뒤뜰에는 방을 잇대어 수십 칸을 두고 다 어리고 나긋한 이를 골라 채웠다. 여색에 빠져 있을 때에는 가깝고 친한 이를 물리고 사귐과 노닒을 끊고 뒤뜰에 숨어 낮으로 밤을 채웠다. 석 달에 한 번 나오는데 뜻이 오히려 흡족하지 않았다. 고을에 처녀 가운데 곱고 어여쁜 이가 있으면 반드시 재물을 주어 부르고 중매를 놓아 꾀어 얻지 못하고서야 그만두었다.
자산이 밤낮으로 이를 근심하여 가만히 등석을 찾아가 꾀하였다.
「제가 들으니 몸을 다스려 집에 미치고 집을 다스려 나라에 미친다 하였습니다. 이는 가까운 데서 먼 데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제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다스려졌으나 집은 어지럽습니다. 그 도가 거꾸로 된 것입니까. 장차 무슨 길로 두 사람을 건지겠습니까. 그대는 일러 주십시오.」
등석이 말하였다. 「내가 괴이하게 여긴 지 오래되었으나 감히 먼저 말하지 않았소. 그대는 어찌 그들이 성할 때에 맞추어 목숨의 무거움으로 깨우치고 예와 옳음의 높음으로 이끌지 않소.」
자산이 등석의 말을 써서 틈을 타 그 형과 아우를 뵙고 일렀다.
「사람이 새와 짐승보다 귀한 까닭은 슬기와 생각입니다. 슬기와 생각이 이끄는 것은 예와 옳음입니다. 예와 옳음이 이루어지면 이름과 자리가 이릅니다. 정에 닿는 대로 움직여 즐기고 바라는 데 빠지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그대들이 제 말을 받아들이면 아침에 뉘우치고 저녁에 녹을 먹을 것입니다.」
조와 목이 말하였다.
「우리가 안 지 오래고 가려낸 지도 오래인데 어찌 그대의 말을 기다린 뒤에야 알겠는가. 무릇 삶은 만나기 어렵고 죽음은 이르기 쉽다. 만나기 어려운 삶으로 이르기 쉬운 죽음을 기다리는데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그런데 예와 옳음을 높여 남에게 자랑하고 정과 성품을 굽혀 이름을 부르려 하니, 우리는 그것을 죽느니만 못하다고 여긴다.
한평생의 기쁨을 다하고 살아 있는 동안의 즐거움을 다하고자 하여, 오직 배가 넘쳐 입이 마시고 싶은 대로 못 할까 걱정하고 힘이 지쳐 여색에 정을 마음껏 못 펼까 걱정할 뿐이다. 이름과 소리가 추함이나 목숨이 위태로움을 근심할 겨를이 없다.
또 그대가 나라를 다스리는 재주로 남에게 자랑하며 말로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고 영광과 녹으로 우리 뜻을 기쁘게 하려 하니 또한 낮고 가엾지 않은가.
우리가 또 그대와 가려 보겠다. 무릇 밖을 잘 다스리는 이는 물건이 반드시 다스려지지는 않으면서 제 몸이 아울러 괴롭고, 안을 잘 다스리는 이는 물건이 반드시 어지러워지지는 않으면서 성품이 아울러 편안하다.
그대가 밖을 다스리는 법은 한 나라에 잠깐 행할 수는 있으나 사람의 마음에 맞지 않는다. 우리가 안을 다스리는 법은 천하에 밀 수 있으니 임금과 신하의 도가 그칠 것이다. 우리가 늘 이 재주로 그대를 깨우치려 하였는데 그대가 도리어 저 재주로 우리를 가르치려 하는가.」
자산이 멍하니 응할 말이 없었다. 다른 날 등석에게 일렀다. 등석이 말하였다. 「그대가 참사람과 함께 살면서도 알지 못하니 누가 그대를 슬기롭다 하겠소. 정나라가 다스려진 것은 우연일 뿐이요 그대의 공이 아니오.」
衛端木叔者,子貢之世也。藉其先貲,家累萬金。不治世故,放意所好。其生民之所欲爲,人意之所欲玩者,無不爲也,無不玩也。牆屋臺榭,園囿池沼,飲食車服,聲樂嬪御,擬齊楚之君焉。至其情所欲好,耳所欲聽,目所欲視,口所欲嘗,雖殊方偏國,非齊土之所產育者,無不必致之,猶藩牆之物也。及其游也,雖山川阻險,塗逕修遠,無不必之,猶人之行咫步也。賓客在庭者日百住,庖廚之下不絕煙火,堂廡之上不絕聲樂。奉養之餘,先散之宗族;宗族之餘,次散之邑里;邑里之餘,乃散之一國。行年六十,氣幹將衰,棄其家事,都散其庫藏、珍寶、車服、妾媵。一年之中盡焉,不爲子孫留財。及其病也,無藥石之儲;及其死也,無瘞埋之資。一國之人受其施者,相與賦而藏之,反其子孫之財焉。禽骨釐聞之,曰:「端木叔,狂人也,辱其祖矣。」段干生聞之,曰:「端木叔,達人也,德過其祖矣。其所行也,其所爲也,衆意所驚,而誠理所取。衛之君子多以禮教自持,固未足以得此人之心也。」
위나라 단목숙(端木叔)은 자공의 후손이다. 그 조상의 재물에 기대어 집에 만금이 쌓였다. 세상일을 다스리지 않고 좋아하는 대로 뜻을 놓았다. 사람이 하고자 하는 것과 사람의 뜻이 즐기고자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없고 즐기지 않는 것이 없었다.
담과 집과 대와 정자와 동산과 못과 마시고 먹는 것과 수레와 옷과 소리와 음악과 궁녀가 제나라와 초나라 임금에 견주었다. 그 정이 좋아하는 것과 귀가 듣고자 하는 것과 눈이 보고자 하는 것과 입이 맛보고자 하는 것에 이르러서는, 비록 먼 데 치우친 나라의 것이라 제나라 땅에서 나고 자란 것이 아니라도 반드시 이르게 하지 않는 것이 없어 마치 제 울타리 안의 물건 같았다. 그가 노닐 때에는 산과 내가 막고 험하며 길이 멀어도 반드시 가지 않는 데가 없어 마치 사람이 몇 걸음 걷는 것 같았다.
뜰에 있는 손이 날마다 백을 넘고, 부엌 아래 연기와 불이 끊이지 않고, 마루와 곁채 위에 소리와 음악이 끊이지 않았다.
받들어 기르고 남은 것은 먼저 겨레붙이에게 흩고, 겨레붙이에게 흩고 남은 것은 다음으로 고을과 마을에 흩고, 고을과 마을에 흩고 남은 것은 이에 온 나라에 흩었다.
나이 예순에 기운과 몸이 쇠하려 하자 그 집안일을 버리고 그 곳간과 보배와 수레와 옷과 첩을 모두 흩었다. 한 해 안에 다 없어졌고 자손을 위하여 재물을 남기지 않았다.
그가 앓을 때에 약과 침을 마련할 것이 없었고 그가 죽을 때에 묻을 밑천이 없었다. 온 나라 사람 가운데 그의 베풂을 받은 이들이 서로 거두어 묻고 그 자손에게 재물을 돌려주었다.
금골리(禽骨釐)가 듣고 말하였다. 「단목숙은 미친 사람이다. 그 할아비를 욕보였다.」
단간생(段干生)이 듣고 말하였다. 「단목숙은 트인 사람이다. 덕이 그 할아비를 넘었다. 그가 행한 바와 그가 한 바가 뭇 사람의 뜻에는 놀라운 것이나 참된 이치가 취하는 바다. 위나라 군자는 예와 가르침으로 저를 지키는 이가 많으니 참으로 이 사람의 마음을 얻기에 모자란다.」
孟孫陽問楊朱曰:「有人於此,貴生愛身,以蘄不死,可乎?」曰:「理無不死。」「以蘄久生,可乎?」曰:「理無久生。生非貴之所能存,身非愛之所能厚。且久生奚爲?五情好惡,古猶今也;四體安危,古猶今也;世事苦樂,古猶今也;變易治亂,古猶今也。既聞之矣,既見之矣,既更之矣,百年猶厭其多,況久生之苦也乎?」孟孫陽曰:「若然,速亡愈於久生,則踐鋒刃,入湯火,得所志矣。」楊子曰:「不然。既生,則廢而任之,究其所欲,以俟於死。將死,則廢而任之,究其所之,以放於盡。無不廢,無不任,何遽遲速於其閒乎?」
맹손양이 양주에게 물었다. 「여기 사람이 있어 삶을 귀히 여기고 몸을 사랑하여 죽지 않기를 바란다면 되겠습니까.」
말하였다. 「이치에 죽지 않음이 없다.」
「오래 살기를 바란다면 되겠습니까.」
말하였다.
「이치에 오래 삶이 없다. 삶은 귀히 여긴다고 있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몸은 사랑한다고 두텁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오래 살아 무엇 하겠느냐. 다섯 정의 좋아하고 미워함이 옛날도 지금과 같고, 팔다리의 편안함과 위태로움이 옛날도 지금과 같고, 세상일의 괴로움과 즐거움이 옛날도 지금과 같고, 바뀌고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짐이 옛날도 지금과 같다. 이미 들었고 이미 보았고 이미 겪었으니 백 해도 오히려 그 많음이 물리는데 하물며 오래 사는 괴로움이랴.」
맹손양이 말하였다. 「그러하다면 빨리 없어지는 것이 오래 사는 것보다 나으니 칼날을 밟고 끓는 물과 불에 들어가면 뜻한 바를 얻겠습니다.」
양자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이미 살았으면 놓아 맡겨 그 하고자 하는 바를 다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죽으려 하면 놓아 맡겨 그 가는 바를 다하고 다함에 이른다. 놓지 않는 것이 없고 맡기지 않는 것이 없으니 어찌 그 사이에서 더디고 빠름을 다투겠느냐.」
楊朱曰:「伯成子高不以一毫利物,舍國而隱耕。大禹不以一身自利,一體偏枯。古之人損一毫利天下不與也,悉天下奉一身不取也。人人不損一毫,人人不利天下,天下治矣。」禽子問楊朱曰:「去子體之一毛以濟一世,汝爲之乎?」楊子曰:「世固非一毛之所濟。」禽子曰:「假濟,爲之乎?」楊子弗應。禽子出語孟孫陽。孟孫陽曰:「子不達夫子之心,吾請言之。有侵若肌膚獲萬金者,若爲之乎?」曰:「爲之。」孟孫陽曰:「有斷若一節得一國,子爲之乎?」禽子默然有閒。孟孫陽曰:「一毛微於肌膚,肌膚微於一節,省矣。然則積一毛以成肌膚,積肌膚以成一節。一毛固一體萬分中之一物,奈何輕之乎?」禽子曰:「吾不能所以答子。然則以子之言問老聃、關尹,則子言當矣;以吾言問大禹、墨翟,則吾言當矣。」孟孫陽因顧與其徒說他事。
양주가 말하였다. 「백성자고(伯成子高)는 터럭 하나로도 남을 이롭게 하지 않고 나라를 버리고 숨어 밭을 갈았다. 대우는 제 한 몸으로 저를 이롭게 하지 않아 몸 한쪽이 말랐다. 옛사람은 터럭 하나를 덜어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도 하지 않았고 천하를 다 들어 제 한 몸을 받드는 것도 취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터럭 하나를 덜지 않고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지 않으면 천하가 다스려진다.」
금자(禽子)가 양주에게 물었다. 「그대 몸의 터럭 하나를 버려 한 세상을 건진다면 그대는 그리하겠소.」
양자가 말하였다. 「세상은 본디 터럭 하나로 건질 바가 아니오.」
금자가 말하였다. 「가령 건진다면 그리하겠소.」
양자가 대꾸하지 않았다.
금자가 나와 맹손양에게 말하였다. 맹손양이 말하였다.
「그대는 선생의 마음에 이르지 못하였소. 내가 말해 보겠소. 그대의 살갗을 침노하여 만금을 얻는다면 그대는 그리하겠소.」
말하였다. 「하겠소.」
맹손양이 말하였다. 「그대의 마디 하나를 잘라 한 나라를 얻는다면 그대는 그리하겠소.」
금자가 잠자코 한동안 있었다.
맹손양이 말하였다. 「터럭 하나는 살갗보다 작고 살갗은 마디 하나보다 작으니 뚜렷하오. 그러나 터럭 하나가 쌓여 살갗을 이루고 살갗이 쌓여 마디 하나를 이루오. 터럭 하나도 본디 한 몸 만 갈래 가운데 한 물건인데 어찌 가벼이 여기겠소.」
금자가 말하였다. 「나는 그대에게 답할 바를 알지 못하겠소. 그러나 그대의 말을 노담과 관윤에게 물으면 그대의 말이 마땅할 것이요, 내 말을 대우와 묵적에게 물으면 내 말이 마땅할 것이오.」
맹손양이 이에 그 무리를 돌아보며 다른 일을 말하였다.
楊朱曰:「天下之美歸之舜、禹、周、孔,天下之惡歸之桀、紂。然而舜耕於河陽,陶於雷澤,四體不得暫安,口腹不得美厚;父母之所不愛,弟妹之所不親。行年三十,不告而娶。及受堯之禪,年已長,智已衰。商鈞不才,禪位於禹,戚戚然以至於死。此天人之窮毒者也。鮌治水土,績用不就,殛諸羽山。禹纂業事讐,惟荒土功,子產不字,過門不入;身體偏枯,手足胼胝。及受舜禪,卑宮室,美紱冕,戚戚然以至於死。此天人之憂苦者也。武王既終,成王幼弱,周公攝天子之政。邵公不悅,四國流言。居東三年,誅兄放弟,僅免其身,戚戚然以至於死。此天人之危懼者也。孔子明帝王之道,應時君之聘,伐樹於宋,削迹於衛,窮於商周,圍於陳蔡,受屈於季氏,見辱於陽虎,戚戚然以至於死。此天民之遑遽者也。凡彼四聖者,生無一日之歡,死有萬世之名。名者,固非實之所取也。雖稱之弗知,雖賞之不知,與株塊無以異矣。桀藉累世之資,居南面之尊,智足以距羣下,威足以震海內;恣耳目之所娛,窮意慮之所爲,熙熙然以至於死。此天民之逸蕩者也。紂亦藉累世之資,居南面之尊;威無不行,志無不從;肆情於傾宮,縱欲於長夜;不以禮義自苦,熙熙然以至於誅。此天民之放縱者也。彼二凶也,生有從欲之歡,死被愚暴之名。實者,固非名之所與也。雖毀之不知,雖稱之弗知,此與株塊奚以異矣?彼四聖雖美之所歸,苦以至終,同歸於死矣。彼二凶雖惡之所歸,樂以至終,亦同歸於死矣。」
양주가 말하였다.
「천하의 아름다움은 순과 우와 주공과 공자에게 돌아가고 천하의 모짊은 걸과 주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순은 하양에서 밭 갈고 뇌택에서 질그릇을 구우며 팔다리가 잠시도 편하지 못하고 입과 배가 좋고 두터운 것을 얻지 못하였다. 어버이가 사랑하지 않고 아우와 누이가 친하지 않았다. 나이 서른에 아뢰지 않고 장가들었다. 요임금의 자리를 물려받았을 때에는 나이가 이미 많고 슬기가 이미 쇠하였다. 상균(商鈞)이 재주가 없어 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근심스레 죽음에 이르렀다. 이는 하늘 아래 사람 가운데 가장 막히고 시달린 이다.
곤(鮌)이 물과 흙을 다스리다 공을 이루지 못하여 우산(羽山)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우가 그 일을 이어 원수를 섬기며 오직 흙일에 힘써, 아들이 나도 어루만지지 못하고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다. 몸 한쪽이 마르고 손발에 굳은살이 박였다. 순의 자리를 물려받고서도 궁실을 낮추고 예복만 아름답게 하며 근심스레 죽음에 이르렀다. 이는 하늘 아래 사람 가운데 가장 근심하고 괴로워한 이다.
무왕이 마치자 성왕이 어리고 약하여 주공이 천자의 정사를 맡았다. 소공이 기뻐하지 않고 네 나라에 말이 떠돌았다. 동쪽에 세 해를 머물며 형을 베고 아우를 내쳐 겨우 제 몸을 면하고 근심스레 죽음에 이르렀다. 이는 하늘 아래 사람 가운데 가장 위태롭고 두려워한 이다.
공자는 제왕의 도를 밝히고 그때 임금들의 부름에 응하였으나, 송나라에서 나무가 베이고 위나라에서 자취가 지워지고 상나라와 주나라에서 막히고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에워싸이고 계씨에게 굽힘을 받고 양호에게 욕을 보고 근심스레 죽음에 이르렀다. 이는 하늘 아래 백성 가운데 가장 허둥거린 이다.
무릇 저 네 성인은 살아서 하루의 기쁨도 없고 죽어서 만 대의 이름이 있다. 이름이란 참으로 알맹이가 취할 바가 아니다. 기려도 알지 못하고 상을 주어도 알지 못하니 그루터기나 흙덩이와 다를 것이 없다.
걸은 여러 대에 쌓인 재물에 기대고 남면하는 높은 자리에 있어, 슬기가 아랫사람들을 막기에 넉넉하고 위엄이 바다 안을 떨게 하기에 넉넉하였다. 귀와 눈이 즐기는 바를 마음껏 하고 뜻과 생각이 하는 바를 다하며 흐뭇이 죽음에 이르렀다. 이는 하늘 아래 백성 가운데 가장 편안히 놀아난 이다.
주 또한 여러 대에 쌓인 재물에 기대고 남면하는 높은 자리에 있어, 위엄이 행해지지 않는 데가 없고 뜻이 좇아지지 않는 것이 없었다. 기울어진 궁에서 정을 마음껏 하고 긴 밤에 욕심을 놓았다. 예와 옳음으로 스스로 괴로워하지 않고 흐뭇이 베임에 이르렀다. 이는 하늘 아래 백성 가운데 가장 놓아 버린 이다.
저 두 모진 이는 살아서 하고자 하는 대로 한 기쁨이 있고 죽어서 어리석고 사납다는 이름을 입었다. 알맹이란 참으로 이름이 주는 바가 아니다. 헐어도 알지 못하고 기려도 알지 못하니 이 또한 그루터기나 흙덩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저 네 성인은 아름다움이 돌아가는 바이나 괴로움으로 끝에 이르러 다 같이 죽음으로 돌아갔고, 저 두 모진 이는 모짊이 돌아가는 바이나 즐거움으로 끝에 이르러 또한 다 같이 죽음으로 돌아갔다.」
楊朱見梁王,言治天下如運諸掌。梁王曰:「先生有一妻一妾而不能治,三畝之園而不能芸,而言治天下如運諸掌,何也?」對曰:「君見其牧羊者乎?百羊而羣,使五尺童子荷箠而隨之,欲東而東,欲西而西。使堯牽一羊,舜荷箠而隨之,則不能前矣。且臣聞之:吞舟之魚,不游枝流;鴻鵠高飛,不集汙池。何則?其極遠也。黃鐘大呂,不可從煩奏之舞。何則?其音疏也。將治大者不治細,成大功者不成小,此之謂矣。」
양주가 양(梁)나라 왕을 뵙고 천하 다스리기를 손바닥에 굴리듯 한다고 말하였다.
양나라 왕이 말하였다. 「선생은 아내 하나와 첩 하나를 두고도 다스리지 못하고 세 이랑 남새밭도 김매지 못하면서 천하 다스리기를 손바닥에 굴리듯 한다 하니 어찌 된 일이오.」
대답하였다.
「임금께서는 저 양 치는 이를 보셨습니까. 백 마리 양이 떼 지었는데 다섯 자 아이에게 채찍을 지워 따르게 하면 동으로 가고자 하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고자 하면 서로 갑니다. 요임금에게 양 한 마리를 끌게 하고 순임금에게 채찍을 지워 따르게 하면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또 신이 들으니 배를 삼키는 물고기는 갈래 물에 노닐지 않고 큰 기러기와 고니는 높이 날아 더러운 못에 모이지 않는다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그 끝이 멀기 때문입니다.
황종과 대려는 자잘한 가락의 춤에 좇을 수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그 소리가 성글기 때문입니다.
큰 것을 다스리려는 이는 잔 것을 다스리지 않고 큰 공을 이루는 이는 작은 것을 이루지 않는다 함이 이를 이르는 것입니다.」
楊朱曰:「太古之事滅矣,孰誌之哉?三皇之事若存若亡,五帝之事若覺若夢,三王之事或隱或顯,億不識一。當身之事或聞或見,萬不識一。目前之事或存或廢,千不識一。太古至于今日,年數固不可勝紀。但伏羲已來三十餘萬歲,賢愚、好醜,成敗、是非,無不消滅,但遲速之間耳。矜一時之毀譽,以焦苦其神形,要死後數百年中餘名,豈足潤枯骨?何生之樂哉?」
양주가 말하였다.
「아득한 옛일은 스러졌으니 누가 그것을 적었겠는가. 삼황의 일은 있는 듯 없는 듯하고, 오제의 일은 깨어 있는 듯 꿈꾸는 듯하고, 삼왕의 일은 더러는 숨고 더러는 드러나 억에 하나도 알지 못한다. 제 몸이 겪은 일도 더러는 듣고 더러는 보아 만에 하나도 알지 못한다. 눈앞의 일도 더러는 남고 더러는 없어져 천에 하나도 알지 못한다.
아득한 옛날부터 오늘까지 해수는 참으로 다 적을 수 없다. 다만 복희 이래로 삼십여만 해에 어짊과 어리석음과 좋음과 미움과 이룸과 무너짐과 옳음과 그름이 스러지지 않은 것이 없으니 다만 더디고 빠름의 사이일 뿐이다.
한때의 헐고 기림을 뽐내어 그 신과 꼴을 태우고 괴롭히며 죽은 뒤 몇백 해 사이의 남은 이름을 구한들 어찌 마른 뼈를 적시겠는가. 삶에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楊朱曰:「人肖天地之類,懷五常之性,有生之最靈者也。人者,爪牙不足以供守衛,肌膚不足以自捍禦,趨走不足以從利逃害,無毛羽以禦寒暑,必將資物以爲養,任智而不恃力。故智之所貴,存我爲貴;力之所賤,侵物爲賤。然身非我有也,既生,不得不全之;物非我有也,既有,不得而去之。身固生之主,物亦養之主。雖全生,不可有其身;雖不去物,不可有其物。有其物,有其身,是橫私天下之身,橫私天下之物。不橫私天下之身,不橫私天下物者,其唯聖人乎!公天下之身,公天下之物,其唯至人矣!此之謂至至者也。」
양주가 말하였다.
「사람은 하늘과 땅의 무리를 닮고 오상(五常)의 성품을 품었으니 산 것 가운데 가장 신령한 것이다.
사람이란 손톱과 어금니가 지키기에 넉넉하지 않고 살갗이 스스로 막기에 넉넉하지 않고 달음질이 이로움을 좇고 해로움을 피하기에 넉넉하지 않으며, 털과 깃이 없어 추위와 더위를 막지 못한다. 반드시 물건에 기대어 기르고 슬기에 맡기며 힘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슬기가 귀한 바는 나를 있게 함이 귀한 것이요, 힘이 천한 바는 물건을 침노함이 천한 것이다.
그러나 몸은 내가 가진 것이 아니니 이미 났으면 온전히 하지 않을 수 없고, 물건은 내가 가진 것이 아니니 이미 있으면 버릴 수 없다. 몸은 참으로 삶의 주인이요 물건 또한 기름의 주인이다.
비록 삶을 온전히 하여도 그 몸을 제 것으로 할 수 없고, 비록 물건을 버리지 않아도 그 물건을 제 것으로 할 수 없다. 그 물건을 제 것으로 하고 그 몸을 제 것으로 하는 것은 천하의 몸을 함부로 사사로이 하고 천하의 물건을 함부로 사사로이 하는 것이다.
천하의 몸을 함부로 사사로이 하지 않고 천하의 물건을 함부로 사사로이 하지 않는 이는 오직 성인이리라. 천하의 몸을 공변되게 하고 천하의 물건을 공변되게 하는 이는 오직 지극한 사람이리라. 이를 지극함의 지극함이라 이른다.」
楊朱曰:「生民之不得休息,爲四事故:一爲壽,二爲名,三爲位,四爲貨。有此四者,畏鬼,畏人,畏威,畏刑。此謂之遁民也。可殺可活,制命在外。不逆命,何羨壽?不矜貴,何羨名?不要勢,何羨位?不貪富,何羨貨?此之謂順民也。天下無對,制命在內。故語有之曰:人不婚宦,情欲失半;人不衣食,君臣道息。周諺曰:『田父可坐殺。』晨出夜入,自以性之恆;啜菽茹藿,自以味之極;肌肉麤厚,筋節𦝘急,一朝處以柔毛綈幕,薦以粱肉蘭橘,心㾓體煩,內熱生病矣。商魯之君與田父侔地,則亦不盈一時而憊矣。故野人之所安,野人之所美,謂天下無過者。昔者宋國有田夫,常衣縕黂,僅以過冬。暨春東作,自曝於日,不知天下之有廣廈隩室,綿纊狐貉。顧謂其妻曰:『負日之暄,人莫知者。以獻吾君,將有重賞。』里之富室告之曰:『昔人有美戎菽、甘枲莖芹萍子者,對鄉豪稱之。鄉豪取而嘗之,蜇於口,慘於腹,衆哂而怨之。其人大慙。子此類也。』」
양주가 말하였다.
「사람이 쉬지 못하는 것은 네 가지 일 때문이다. 첫째는 오래 삶이요 둘째는 이름이요 셋째는 자리요 넷째는 재물이다. 이 넷이 있으면 귀신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고 위엄을 두려워하고 형벌을 두려워한다. 이를 달아나는 백성이라 한다.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으니 목숨을 마름질함이 밖에 있다.
운명을 거스르지 않으면 어찌 오래 삶을 부러워하겠는가. 귀함을 뽐내지 않으면 어찌 이름을 부러워하겠는가. 세력을 구하지 않으면 어찌 자리를 부러워하겠는가. 가멸음을 탐하지 않으면 어찌 재물을 부러워하겠는가. 이를 따르는 백성이라 한다. 천하에 맞설 것이 없으니 목숨을 마름질함이 안에 있다.
그러므로 말에 이르기를, 사람이 혼인하고 벼슬하지 않으면 정과 욕심이 반은 없어지고, 사람이 입고 먹지 않으면 임금과 신하의 도가 그친다 하였다.
주나라 속담에 이르기를 『밭 늙은이는 앉혀 두면 죽는다』 하였다.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오는 것을 스스로 성품의 떳떳함이라 여기고, 콩을 씹고 콩잎을 먹는 것을 스스로 맛의 지극함이라 여긴다. 살과 살갗이 거칠고 두꺼우며 힘줄과 마디가 굳고 켕긴다. 하루아침에 부드러운 털옷과 두꺼운 휘장에 두고 기장밥과 고기와 난초와 귤을 올리면, 마음이 저리고 몸이 답답하며 속에 열이 나 병이 생긴다. 상나라와 노나라 임금이 밭 늙은이와 땅을 나란히 하면 또한 한 시각도 못 되어 지칠 것이다.
그러므로 들사람이 편히 여기는 바와 들사람이 좋게 여기는 바를 천하에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이른다.
옛날 송나라에 밭 갈던 이가 있어 늘 삼베 헌 솜옷을 입고 겨우 겨울을 났다. 봄이 되어 밭일을 하며 볕을 쬐면서 천하에 넓은 집과 따뜻한 방과 솜과 여우와 담비 갖옷이 있는 줄 알지 못하였다.
제 아내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볕을 등에 지는 따뜻함을 아는 이가 없구려. 이것을 우리 임금께 바치면 큰 상이 있을 것이오.』
마을의 가멸은 집 사람이 일러 주었다. 『옛사람 가운데 콩을 맛있다 하고 삼대와 미나리와 개구리밥 씨를 달다 하여 고을 어른에게 기린 이가 있었소. 고을 어른이 가져다 맛보니 입이 쏘이고 배가 아파 뭇 사람이 비웃고 원망하였소. 그 사람이 크게 부끄러워하였소. 그대가 이 무리요.』」
楊朱曰:「豐屋、美服、厚味、姣色,有此四者,何求於外?有此而求外者,無厭之性。無厭之性,陰陽之蠹也。忠不足以安君,適足以危身;義不足以利物,適足以害生。安上不由於忠,而忠名滅焉;利物不由於義,而義名絕焉。君臣皆安,物我兼利,古之道也。鬻子曰:『去名者無憂。』老子曰:『名者實之賓。』而悠悠者趨名不已。名固不可去,名固不可賓邪?今有名則尊榮,亡名則卑辱;尊榮則逸樂,卑辱則憂苦。憂苦,犯性者也;逸樂,順性者也。斯實之所係矣。名胡可去?名胡可賓?但惡夫守名而累實。守名而累實,將恤危亡之不救,豈徒逸樂憂苦之間哉?」
양주가 말하였다.
「넉넉한 집과 아름다운 옷과 두터운 맛과 고운 빛깔, 이 넷이 있으면 무엇을 밖에서 구하겠는가. 이것이 있으면서 밖에서 구하는 것은 물릴 줄 모르는 성품이다. 물릴 줄 모르는 성품은 음과 양을 좀먹는 것이다.
충성은 임금을 편안히 하기에 넉넉하지 못하고 제 몸을 위태롭게 하기에 꼭 알맞다. 옳음은 물건을 이롭게 하기에 넉넉하지 못하고 삶을 해치기에 꼭 알맞다. 위를 편안히 함이 충성에서 말미암지 않으면 충성이라는 이름이 스러지고, 물건을 이롭게 함이 옳음에서 말미암지 않으면 옳음이라는 이름이 끊긴다. 임금과 신하가 다 편안하고 물건과 내가 아울러 이로운 것이 옛날의 도다.
육자가 말하기를 『이름을 버리는 이는 근심이 없다』 하고, 노자가 말하기를 『이름은 알맹이의 손님이다』 하였다. 그런데도 어릿어릿한 이들이 이름을 좇기를 그치지 않는다.
이름은 참으로 버릴 수 없는 것인가. 이름은 참으로 손님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인가. 이제 이름이 있으면 높고 영화롭고 이름이 없으면 낮고 욕되다. 높고 영화로우면 편하고 즐겁고 낮고 욕되면 근심스럽고 괴롭다. 근심스럽고 괴로움은 성품을 범하는 것이요 편하고 즐거움은 성품을 따르는 것이다. 이것이 알맹이가 매인 바다.
이름을 어찌 버리겠는가. 이름을 어찌 손님으로 삼겠는가. 다만 이름을 지키다가 알맹이를 얽매는 것이 미울 뿐이다. 이름을 지키다가 알맹이를 얽매면 장차 위태롭고 없어짐을 건지지 못할까 걱정할 것이니 어찌 다만 편하고 즐거움과 근심스럽고 괴로움 사이의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