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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지(鄭麟趾)의 서문鄭麟趾序

훈민정음 訓民正音 · 세종(世宗)과 집현전 학사들 · 1446년 (조선 세종 28) · 단락 6 · 한자 558자 · 낭독 4.7분

훈민정음 해례 세종이 스물여덟 자를 만들고 그 까닭과 쓰는 법을 적은 책. 「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로 시작하는 머리말과, 글자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밝힌 제자해가 함께 실렸다. 글자를 만든 사람이 그 원리를 손수 적어 남긴 예는 세계에 달리 없다.

有天地自然之聲,則必有天地自然之文。所以古人因聲制字,以通萬物之情,以載三才之道,而後世不能易也。然四方風土區別,聲氣亦隨而異焉。蓋外國之語,有其聲而無其字。假中國文字以通其用,是猶枘鑿之鉏鋙也,豈能達而無礙乎。要皆各隨所處而安,不可强之使同也。

하늘과 땅에 저절로 그러한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하늘과 땅에 저절로 그러한 글이 있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소리를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고 삼재(三才)의 도를 실었으니, 뒷세상에서 바꿀 수 없었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저마다 다르니 소리와 기운도 그에 따라 다르다. 대개 중국 밖의 말은 그 소리는 있어도 그 글자가 없다. 중국의 글자를 빌려 쓰임에 통하게 하니, 이는 모난 자루를 둥근 구멍에 끼우는 것과 같아 서로 어긋난다. 어찌 막힘없이 통할 수 있겠는가. 요컨대 다 제가 놓인 자리를 따라 편안할 것이요,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다.

吾東方禮樂文章,侔擬華夏。但方言之語,不與之同。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治獄者病其曲折之難通。昔新羅薛聰,始作吏讀,官府民間,至今行之。然皆假字而用,或澁或窒,非但鄙陋無稽而已,至於言語之間,則不能達其萬一焉。

우리 동방의 예악과 문장은 중국에 견줄 만하다. 다만 우리말이 그와 같지 않다. 글을 배우는 이는 그 뜻이 밝히기 어려움을 걱정하고, 송사를 맡은 이는 그 곡절이 통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한다.

옛날 신라의 설총(薛聰)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지어 관청과 민간에서 지금까지 쓴다. 그러나 다 글자를 빌려 쓰는 것이라 껄끄럽기도 하고 막히기도 한다. 거칠고 근거 없을 뿐 아니라, 말을 적는 데 이르러서는 그 만분의 하나도 전하지 못한다.

癸亥冬,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略揭例義以示之,名曰訓民正音。象形而字倣古篆,因聲而音叶七調,三極之義、二氣之妙,莫不該括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簡而要,精而通,故智者不終朝而會,愚者可浹旬而學。以是解書,可以知其義。以是聽訟,可以得其情。字韻則淸濁之能辨,樂歌則律呂之克諧。無所用而不備,無所往而不達。雖風聲鶴戾,鷄鳴狗吠,皆可得而書矣,遂命詳加解釋,以喩諸人。

계해년 겨울에 우리 임금께서 정음 스물여덟 자를 처음으로 지으시고, 보기와 뜻을 간략히 들어 보이시며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하셨다. 꼴을 본떠 글자는 옛 전자(篆字)를 닮았고, 소리를 따라 음은 일곱 가락에 맞는다. 삼극(三極)의 뜻과 두 기운의 묘함을 싸안지 않음이 없고, 스물여덟 자로 굴려 바꿈이 끝이 없다.

간략하면서 요긴하고 정밀하면서 통하므로, 슬기로운 이는 아침나절이 다 가기 전에 깨치고 어리석은 이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이것으로 글을 풀면 그 뜻을 알 수 있고, 이것으로 송사를 들으면 그 실정을 얻을 수 있다. 글자의 소리로는 맑고 흐림을 가릴 수 있고, 노래로는 가락을 고르게 할 수 있다. 쓰는 데마다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고 가는 데마다 통하지 않음이 없다.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 닭 울음과 개 짖는 소리까지도 다 적을 수 있다. 마침내 자세히 풀이를 더하여 뭇사람을 깨우치라 명하셨다.

於是,臣與集賢殿應敎臣崔恒、副校理臣朴彭年、臣申叔舟、修撰臣成三問、敦寧府注簿臣姜希顔、行集賢殿副修撰臣李塏、臣李善老等,謹作諸解及例,以敍其梗槪。庶使觀者不師而自悟。若其淵源精義之妙,則非臣等之所能發揮也。

이에 신이 집현전 응교 신 최항(崔恒), 부교리 신 박팽년(朴彭年), 신 신숙주(申叔舟), 수찬 신 성삼문(成三問), 돈녕부 주부 신 강희안(姜希顔), 행(行) 집현전 부수찬 신 이개(李塏), 신 이선로(李善老) 들과 더불어 삼가 여러 풀이와 보기를 지어 그 얼거리를 펴 보였습니다. 보는 이가 스승 없이도 스스로 깨치게 하려 함입니다. 그 깊은 뿌리와 정밀한 뜻의 묘함으로 말하면 신들이 능히 드러낼 바가 아닙니다.

恭惟我殿下,天縱之聖,制度施爲超越百王。正音之作,無所祖述,而成於自然。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而非人爲之私也。夫東方有國,不爲不久,而開物成務之大智,蓋有待於今日也歟。

삼가 생각건대 우리 임금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이시라, 제도를 베푸심이 온 임금을 뛰어넘으셨습니다. 정음을 지으심은 앞선 이를 이어받은 바 없이 저절로 그러함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어찌 그 지극한 이치가 어디에나 있어서이지, 사람이 사사로이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릇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 오래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만물을 열고 일을 이루는 큰 슬기는 대개 오늘을 기다린 것인가 합니다.

正統十一年九月上澣,資憲大夫禮曹判書集賢殿大提學知春秋館事、世子右賓客臣鄭麟趾拜手稽首謹書。

정통 십일년 구월 상순에, 자헌대부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지춘추관사 세자우빈객 신 정인지(鄭麟趾)는 두 손 모아 머리를 조아리고 삼가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