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3 근폭집

비망기로 인하여 군사 훈련의 절목을 논하는 계因備忘記論鍊兵節目。啓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1,186자 · 낭독 10.9분

징비록 권3 근폭집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備忘記近觀兵曹勤於訓鍊深感爲國盡職非人所及第鍊兵雖勤揀兵當精令以冗雜無用者擇之不精苟充行伍只習安坐放丸試劒恐非所謂鍊兵之道也古人鍊兵惟務精而不務多岳飛之兵能以少擊衆者只是精擇而加訓之耳其法射必左右被重鎧超濠日以爲習此非勇力之人不能也古人又敎士足囊以沙漸漸加之戚繼光曰兵須學砲新書有鍊手鍊足鍊身之法敎兵亦多術矣今之敎兵或似未盡予意大加簡閱汰其身殘力弱體鈍足重年多之人只取精壯又必習跑習步且前日所敎毒火毒矢之法若曰無用則已不然不可不傳習而其後似無所聞此意言于訓鍊都監事。傳敎矣鍊兵曲折甚多大槪以意料之則鍊兵如鍊金金非百鍊不可用鍊兵亦必極致其精然後可以投之矢石爭死之地而不亂矣夫金皷旗幟所以鍊其耳目也弩銃劒㦸所以鍊其手足也號令約束所以鍊其心膽也進退前郤所以鍊其實戰也其他營壘器械瞭望哨探節節無不鍊習精熟如手持而足行然後始可爲可用之兵故其初人各致其精其終也能使合萬人爲一心此節制之兵所以無敵於天下也蓋愈精則愈一此如儒家所謂析之極其精而不亂合之盡其大而無餘天下之理無二致也故紀效新書亦云合衆之操頃刻完事目力不能遍及不如小操爲親切假使只有五人而當以五人操鍊有十人而以十人操鍊以此推類雖至於百千之多而其規一也今訓鍊之軍以哨統隊以隊統伍一伍長所率則只是四人也一隊所統則只是六伍也一哨所統則只是三隊也如使哨官責隊長隊長責伍長則所操旣約而所及自廣此軍政之大綱也惟其如是故新書又有申連坐之法一伍中軍士未精器械鈍弊號令不行則併與軍卒伍長而治之一哨中如此則幷與哨官隊長而治之其道也如目之隷綱如枝葉之附幹所謂哨官隊長伍長等各盡其心各操所屬晝夜刻意其庸劣者汰之未習者熟之如恐不及而時月之間兵無有不精者矣當初訓鍊廳事目亦倣此意視各哨軍士成材多寡之數而行其賞罰近者以習陣多事頗爲無暇於此等事今後更加申勅施行在兵曹與將官盡心擧行而已大扺我國自前專不知鍊軍規模今幸得唐人遺法兵曹又極致意漸次成就頗有可觀待其一藝成然後又敎一藝推類廣之淘汰不已則古人左右射重鎧超壕注坡等技次第可學但當爲經遠悠久之計勿使乍作而乍輟朝耕而暮穫也。聖敎大加簡閱只取精壯誠得務精不務多之意極爲允當但古人云兵家亦棄弱而不用其中最精之兵所謂選鋒用之於摧堅陷陣非此不可至於雜類如旗皷手火長等軍亦於弱卒取之要當使之各得其任而已然此但言鍊兵梗槪而已此外鍊將尤重於鍊兵比之象戱則鍊兵其列子也鍊將其當局者也故有岳武穆然後方成岳家之軍有戚繼光然後方成戚家之軍今兵雖頗爲訓鍊而用兵者無其人則如列棊子於局上雖甚整齊而使凡手着之則依舊未勝也今宜於京外武士中搜訪將來可堪統兵者爲訓鍊部曲之任學習陣法自大將以下以及哨官旗隊摠皆於平日自鍊其兵臨戰自用其軍然後庶幾所養卽所用所用卽所養此新書所以旣言鍊兵而必以鍊將終之者也毒火之法已爲傳習於唐人他餘材料已爲聚合但無巴豆故頃者以內醫院餘在巴豆一兩送于都監使之依法合聚待其製成然後試用於畜物以觀可用與否而仍爲行用於諸陣不無效驗矣

비망기에 이르셨습니다.

「요사이 보건대 병조가 훈련에 부지런하니, 나라를 위하여 직분을 다함이 남이 미칠 바 아님을 깊이 느낀다. 다만 군사를 훈련하기는 부지런하나 군사를 고르는 것은 마땅히 정밀해야 한다. 이제 쓸데없고 잡된 자들을 가리기를 정밀히 하지 않고 구차히 행오(行伍)를 채우게 하며, 다만 편안히 앉아 총 놓고 칼 쓰기를 익히게 하니, 이른바 군사를 훈련하는 길이 아닐까 두렵다.

옛사람은 군사를 훈련함에 오직 정밀하기를 힘쓰고 많기를 힘쓰지 않았다. 악비(岳飛)의 군사가 적은 수로 많은 무리를 칠 수 있었던 것은 다만 정밀히 가려 훈련을 더한 것일 뿐이다. 그 법은 활은 반드시 좌우로 쏘게 하고, 무거운 갑옷을 입고 해자를 뛰어넘기를 날마다 익히게 하였으니, 이는 날래고 힘센 사람이 아니면 하지 못한다. 옛사람은 또 군사를 가르칠 때 자루에 모래를 담아 차차 더하게 하였다. 척계광(戚繼光)은 「군사는 모름지기 대포를 배워야 한다」 하였고, 『기효신서(紀效新書)』에는 손을 단련하고 발을 단련하고 몸을 단련하는 법이 있으니, 군사를 가르치는 데도 방도가 많다.

이제 군사를 가르치는 것이 내 뜻을 다하지 못한 듯하니, 크게 가려 뽑아 몸이 상하고 힘이 약하며 몸놀림이 둔하고 발이 무겁고 나이 많은 사람을 덜어 내고 정하고 씩씩한 자만 취하라. 또 반드시 달리기와 걷기를 익히게 하라. 또 지난날 가르친 독화(毒火)·독시(毒矢)의 법은 쓸데없다 하면 그만이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전하여 익히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뒤로 들리는 바가 없는 듯하다. 이 뜻을 훈련도감에 이르라.」

하고 전교하셨습니다.

군사를 훈련하는 곡절이 매우 많습니다마는, 대개 뜻으로 헤아리면 군사를 훈련하는 것은 쇠를 단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쇠는 백 번 단련하지 않으면 쓸 수 없으니, 군사도 반드시 그 정밀함을 지극히 한 뒤에야 화살과 돌이 오가고 죽기를 다투는 자리에 던져 넣어도 어지러워지지 않습니다.

무릇 징과 북과 기치(旗幟)는 그 귀와 눈을 단련하는 것이요, 쇠뇌와 총과 칼과 창은 그 손과 발을 단련하는 것이요, 호령과 약속은 그 마음과 담을 단련하는 것이요, 나아가고 물러남은 그 실제 싸움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그 밖에 영루(營壘)·무기와 기구·망보기·정탐이 마디마디 익숙하게 단련되지 않음이 없어 손으로 잡고 발로 걷듯 된 뒤에야 비로소 쓸 만한 군사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 처음에는 사람마다 제 정밀함을 다하고 그 끝에는 만 사람을 하나의 마음으로 만들 수 있으니, 절제(節制) 있는 군사가 천하에 대적할 이 없는 까닭이 이것입니다.

대개 정밀할수록 더욱 하나가 됩니다. 이는 유가에서 이른바 「나누면 그 정밀함을 지극히 하여 어지럽지 않고, 합하면 그 큼을 다하여 남음이 없다」는 것과 같으니, 천하의 이치는 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효신서』에도 「많은 무리를 모아 조련하면 잠깐 사이에 일이 끝나 눈이 두루 미치지 못하니, 적은 수로 조련하여 친절히 함만 못하다」 하였습니다. 가령 다만 다섯 사람이 있으면 다섯 사람으로 조련하고 열 사람이 있으면 열 사람으로 조련하여, 이로써 미루어 나가면 백이든 천이든 많은 데 이르러도 그 법은 하나입니다.

이제 훈련하는 군사는 초(哨)로 대(隊)를 거느리고 대로 오(伍)를 거느립니다. 오장(伍長) 하나가 거느리는 것은 다만 네 사람이요, 대 하나가 거느리는 것은 다만 여섯 오요, 초 하나가 거느리는 것은 다만 세 대입니다. 초관(哨官)으로 하여금 대장(隊長)을 책임 지우고 대장으로 하여금 오장을 책임 지우게 하면, 조련하는 것이 이미 간략하되 미치는 바가 저절로 넓어집니다. 이것이 군정(軍政)의 큰 벼리입니다.

오직 이러하므로 『기효신서』에 또 연좌(連坐)의 법을 펴 두었습니다. 한 오 안에 군사가 정밀하지 못하고 병기가 무디고 낡으며 호령이 행해지지 않으면 군졸과 오장을 아울러 다스리고, 한 초 안에 이러하면 초관과 대장을 아울러 다스립니다. 그 길이 그물눈이 벼리에 매인 것 같고 가지와 잎이 줄기에 붙은 것 같으니, 이른바 초관·대장·오장 들이 저마다 마음을 다하여 제 딸린 무리를 조련하되 밤낮으로 뜻을 새겨 용렬한 자는 덜어 내고 익히지 못한 자는 익게 하기를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듯 한다면, 한 달 사이에 군사가 정밀해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당초 훈련도감의 사목(事目)도 이 뜻을 본떠 각 초 군사가 재주를 이룬 많고 적음을 보아 상벌을 행하게 하였습니다마는, 요사이 진(陣) 익히는 일이 많아 이런 일에 자못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 뒤로는 다시 더 단단히 일러 시행하는 것이 병조와 장수(將官)가 마음을 다하여 거행하는 데 달렸을 뿐입니다.

대저 우리나라는 전부터 군사를 훈련하는 규모를 전혀 알지 못하였는데, 이제 다행히 중국 사람의 남긴 법을 얻었고 병조가 또 지극히 뜻을 두어 차츰 이루어 가니 볼 만한 것이 자못 있습니다. 한 재주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린 뒤에 또 한 재주를 가르쳐 미루어 넓히고 가려 내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옛사람의 좌우로 쏘기, 무거운 갑옷 입고 해자 뛰어넘기, 비탈 달려 내리기 따위의 재주를 차례로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마땅히 멀고 오랜 계책을 세워, 잠깐 하다가 잠깐 그치거나 아침에 갈고 저녁에 거두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교(聖敎)에 「크게 가려 뽑아 정하고 씩씩한 자만 취하라」 하심은 참으로 정밀함을 힘쓰고 많음을 힘쓰지 않는 뜻을 얻으신 것이라 지극히 마땅합니다. 다만 옛사람이 이르기를 「병가(兵家)도 약한 자라고 버리지는 않는다」 하였는데, 그 가운데 가장 정밀한 군사 곧 가려 뽑은 정예(選鋒)는 굳센 것을 꺾고 진을 함몰시키는 데 쓰는 것이라 이들이 아니면 안 됩니다. 기고수(旗皷手)와 밥 짓는 군졸(火長) 따위 잡된 무리에 이르러서는 약한 군졸 가운데서 취하여, 요컨대 저마다 제 소임을 얻게 하면 될 뿐입니다.

그러나 이는 다만 군사를 훈련하는 대강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이 밖에 장수를 단련하는 일이 군사를 훈련하는 것보다 더욱 무겁습니다. 장기에 견주면 군사를 훈련함은 그 벌여 놓은 말이요, 장수를 단련함은 판을 두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악무목(岳武穆, 곧 악비)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악씨(岳氏)의 군사가 이루어졌고, 척계광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척씨(戚氏)의 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군사는 비록 자못 훈련되었으나 군사를 쓰는 사람이 없으면, 장기 말을 판 위에 벌여 놓아 비록 심히 가지런하더라도 서툰 손으로 두게 하면 예전대로 이기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마땅히 서울과 밖의 무사 가운데 앞으로 군사를 거느릴 만한 사람을 찾아 훈련 부곡(部曲)의 소임을 삼아 진법을 배워 익히게 하되, 대장 이하로 초관·기총·대총에 이르기까지 다 평소에 스스로 제 군사를 단련하고 싸움에 임하여 스스로 제 군사를 쓰게 한 뒤에야, 기른 것이 곧 쓰는 것이요 쓰는 것이 곧 기른 것이 되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효신서』가 이미 군사 훈련을 말하고도 반드시 장수 단련으로 끝맺은 까닭입니다.

독화의 법은 이미 중국 사람에게 전하여 익혔고 그 나머지 재료도 이미 모았습니다. 다만 도감에 파두(巴豆)가 없으므로 요사이 내의원에 남아 있는 파두 한 냥을 보내어 법대로 모아 짓게 하였습니다. 다 만들어지기를 기다린 뒤에 짐승에게 시험하여 쓸 만한지 아닌지를 보고, 이어 여러 진에서 행하여 쓰면 효험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협주 2

同月

같은 달

저본은 이 자리를 訓鍊廳이라 적었을 수 있다. 한 관청이므로 「훈련도감」으로 맞추었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