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4 근폭집

경상도에서 마땅히 행할 일을 아뢰는 계慶尙道應行事宜。啓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4 · 한자 2,693자 · 낭독 22.6분

징비록 권4 근폭집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一自古兵亂之際必先設營栅以爲據險之地使軍民有所憑恃老弱有所投藏以其公私積蓄盡在其中賊至則依險據守賊去則下山耕種一處如此他處皆然近者十餘里遠者數十里複屯相望形勢連絡則非徒可以保民亦可以禦賊此至切至緊之務故雖將帥守令不知出此而鄕村有識之人往往聚合村民措置方略猶可以保全鄕曲今者中外人情皆以倭賊勢大不可支撑其於設策防守之事一無經意故小民之無知者亦傳相效倣竄伏草間流移轉徙以求偷活於朝夕而其於耕種之務尤不致意以此賊未至而南方之蕩敗日甚更無收拾之望良可痛心今之議者言及山城據險等事則以爲無食無兵不可遽儒此知其一而不知其二者也如欲大擧築城多用人力非今日之所可成也若於山村要險之處招集流民自以其力略設營栅而資以種子牛隻以爲且耕且守之計則固人民之所欲爲者特患爲官員者不爲指揮經理而號令不出於上故民不肯爲耳今以慶尙道言之金海熊川則方爲賊藪已不可言團聚之事昌原去賊藪甚近故亦爲空虛之地此外咸安在鼎津之南而東距昌原五十餘里南距固城三十里而雖屢經倭賊焚蕩然其西面遺民尙多有之苟能於賊退之初趁時招集擇其要險之處而設爲數屯則非徒咸安一郡因此可完而亦可爲宜寧晉州之藩蔽且固城尙云粗完若咸安又爲稍稍安集而與固城形勢相倚則海邊郡邑因此稍稍得成亦可期矣奈何諸將之慮皆不及遠相聚宜寧只以鼎津爲限界其外則皆爲棄地民之來去不問賊之肆行自如往時成允文爲兵使時猶能分遣伏兵於鎭海地境及巖險之間賊自昌原巨濟出來者猶不敢恣意而民得少有賴焉允文罷去繼其後者一切置之相忘之域故遺民曰就散亡且爲零賊所擄掠莫能禁止良可痛心倭賊善用鳥銃槍刀輕生突戰我軍欲角力於原野之中則誠難制勝若或擇於形勢險固四無林木巖石之地或雖土山而絕無攀緣俯瞰之處設爲栅壘四隅多載石車而待之賊雖千萬難以陷敗蓋地勢如此而以逸待勞則賊之長技皆不得施而我可以專力制之何者鳥銃雖及遠而從山下向天直放豈能傷人至於槍刀突戰之技亦不得施於山下如前日幸州之戰是也如是而野無所掠其勢不數日將疲困自退乘其惰歸之際出勁兵設伏林薄之問處處邀截或擊其尾或攻其腰則賊勢自衰而我勢自張趙充國所謂羗易以計破難用兵碎者此之謂也咸安郡守安沃頗善於其任人心不至厭苦云且此人在北道素以善戰名令元帥各別以前項所陳辭緣分明指授令於咸安要害處如防禦山餘航山等地團聚一境之民諄諄曉諭或一處或二三處設爲木栅以爲入保之地平時多設瞭望以知賊來而及此春節於山下率人民大開屯田必須身操畚鍤與民同苦咸安土地肥饒甲於一道每水田一斗地秋收四五石其利不可勝言如使誠心爲此不獨咸安之民也四方之民聞風來會不久將成大陣農隙依此操鍊有事則與大軍協力掎角其爲防備之䇿實無大於此者若安沃善於此任而顯有成效則不次超擢以爲諸人之勸亦無不可然此但擧咸安一郡而言耳他如固城鎭海昆陽泗川河東一帶郡邑守令皆當責以此事必期成效而今年招集人民多少耕墾廣狹措置防守方略能否一一考課無得悠悠泛泛如前日之爲其有成效者顯然陞擢其惰慢不事者律外行罰疲軟不能勝任者一一汰去事都元師及巡按御史巡察使處。下識何如

하나. 예로부터 병란 때에는 반드시 먼저 영채를 세워 험한 데를 의지할 땅으로 삼아, 군사와 백성이 믿고 기댈 곳이 있고 늙고 약한 이가 몸을 숨길 곳이 있게 하며, 공사(公私)의 쌓아 둔 것을 다 그 안에 두었습니다. 적이 오면 험한 데를 의지하여 지키고 적이 가면 산에서 내려와 밭 갈고 씨 뿌렸습니다. 한 곳이 이러하면 다른 곳도 다 그러하여, 가까우면 십여 리 멀면 수십 리에 겹친 둔이 서로 바라보고 형세가 이어집니다. 그러면 한갓 백성을 지킬 뿐 아니라 또한 적을 막을 수 있으니, 이는 지극히 절실하고 지극히 긴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장수와 수령이 이런 데서 나올 줄 모르더라도, 시골에 아는 것이 있는 사람이 이따금 마을 백성을 모아 방략을 조처하면 오히려 고을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다.

이제 안팎의 인정이 다 왜적의 세력이 커서 버틸 수 없다 하여, 계책을 세워 지키는 일에 한 가지도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는 것 없는 백성도 서로 전하여 본받아 풀숲에 숨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아침저녁의 목숨만 구차히 이으려 하고, 밭 갈고 씨 뿌리는 일에는 더욱 뜻을 두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적이 이르지 않고도 남쪽이 무너짐이 날로 심하여 다시 거둘 가망이 없으니 참으로 마음 아픕니다.

이제 의논하는 이들이 산성에 웅거하는 따위 일을 말하면 먹을 것도 없고 군사도 없어 갑자기 할 수 없다 합니다.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만일 크게 일으켜 성을 쌓고 사람의 힘을 많이 쓰려 한다면 오늘에 이룰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산골 마을의 요긴하고 험한 곳에서 흩어진 백성을 불러 모아 제 힘으로 대강 영채를 세우게 하고 씨앗과 소를 대어 주어 한편 갈고 한편 지킬 계책을 삼는다면, 이는 진실로 백성이 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다만 걱정은 관원 된 자가 지휘하고 경영하지 않아 호령이 위에서 나오지 않는 까닭에 백성이 즐겨 하지 않을 뿐입니다.

이제 경상도로 말하면 김해(金海)·웅천(熊川)은 바야흐로 적의 소굴이 되어 이미 모여 뭉치는 일을 말할 수 없고, 창원(昌原)은 적의 소굴에서 매우 가까운 까닭에 또한 텅 빈 땅이 되었습니다. 이 밖에 함안(咸安)은 정진(鼎津) 남쪽에 있어 동쪽으로 창원과 오십여 리, 남쪽으로 고성(固城)과 삼십 리 떨어져 있습니다. 비록 왜적이 여러 번 불사르고 쓸어 갔으나 그 서쪽 면에는 남은 백성이 아직 많습니다. 진실로 적이 물러난 처음에 때를 타 불러 모아 요긴하고 험한 곳을 가려 몇 개의 둔을 두면, 한갓 함안 한 고을이 이로 말미암아 온전해질 뿐 아니라 또한 의령(宜寧)·진주(晉州)의 울타리가 될 수 있습니다. 또 고성은 아직 대강 온전하다 하니, 만일 함안이 또 차츰 편안히 모이어 고성과 형세가 서로 기대면 바닷가 고을이 이로 말미암아 차츰 이루어지기를 또한 기약할 만합니다.

어찌하여 여러 장수의 생각이 다 멀리 미치지 못하여, 의령에 서로 모여 다만 정진으로 지경을 삼고 그 밖은 다 버린 땅으로 여깁니까. 백성이 오고 가는 것을 묻지 않고 적이 멋대로 다니는 것이 예사롭습니다. 지난날 성윤문(成允文)이 병사(兵使)였을 때에는 그래도 진해(鎭海) 지경과 바위 험한 사이에 복병을 나누어 보낼 수 있었으므로, 창원·거제(巨濟)에서 나오는 적이 그래도 감히 멋대로 하지 못하여 백성이 조금이나마 힘입을 수 있었습니다. 윤문이 갈려 간 뒤 그 뒤를 이은 자는 모든 것을 서로 잊은 지경에 버려두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은 백성이 날로 흩어져 없어지고 또 흩어진 적에게 노략질을 당하여도 막을 수 없으니 참으로 마음 아픕니다.

왜적은 조총과 창칼을 잘 쓰고 목숨을 가벼이 여겨 부딪쳐 싸우니, 우리 군사가 벌판 가운데서 힘을 겨루려 하면 참으로 이겨 누르기 어렵습니다. 만일 형세가 험하고 굳으며 사방에 숲과 바위가 없는 땅을 가리거나, 비록 흙산이라도 붙잡고 오르거나 굽어볼 곳이 전혀 없는 데를 가려 목책과 보루를 세우고 네 귀에 돌을 실은 수레를 많이 두고 기다린다면, 적이 비록 천만이라도 무너뜨리기 어렵습니다. 대개 지세가 이러한 데서 편안함으로 수고로움을 기다리면 적의 장기가 다 펴지지 못하고 우리는 힘을 오로지하여 누를 수 있습니다. 어째서인가 하면, 조총이 비록 멀리 미치나 산 아래에서 하늘을 향하여 곧바로 쏘니 어찌 사람을 상하게 하겠습니까. 창칼로 부딪쳐 싸우는 재주에 이르러서도 산 아래에서는 펴지 못하니, 지난날 행주(幸州) 싸움이 이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면 들에 노략질할 것이 없어 그 형세가 며칠 못 가 지치고 시달려 절로 물러갈 것입니다. 그 게을리 돌아가는 즈음을 타서 굳센 군사를 내어 숲속에 복병을 두고 곳곳에서 맞아 끊으며, 혹은 그 꼬리를 치고 혹은 그 허리를 치면 적의 형세는 절로 쇠하고 우리 형세는 절로 펴질 것입니다. 조충국(趙充國)이 이른바 「강족(羌族)은 계책으로 깨뜨리기는 쉬워도 군사로 부수기는 어렵다」 한 것이 이를 이름입니다.

함안군수 안옥(安沃)이 자못 그 소임을 잘하여 인심이 싫어하고 괴로워하는 데 이르지 않는다 합니다. 또 이 사람은 북도(北道)에 있을 때부터 본디 잘 싸운다고 이름이 있었습니다. 원수(元帥)로 하여금 각별히 앞에 아뢴 사연으로 분명히 지시하게 하시고, 함안의 요해처인 방어산(防禦山)·여항산(餘航山) 같은 땅에 한 지경의 백성을 모아 간곡히 타이르며, 한 곳이나 두세 곳에 목책을 세워 들어가 지킬 땅으로 삼게 하소서. 평시에는 망보는 자리를 많이 두어 적이 오는 것을 알게 하고, 이 봄철을 맞아 산 아래에서 백성을 거느리고 둔전을 크게 열되 반드시 몸소 삼태기와 삽을 잡아 백성과 괴로움을 함께하게 하소서.

함안은 땅이 기름져 한 도에서 으뜸이라, 논 한 마지기마다 가을에 너덧 섬을 거두니 그 이로움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정성으로 이를 하게 한다면 함안 백성뿐 아니라 사방의 백성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어 오래지 않아 큰 진을 이룰 것입니다. 농사 틈에 이에 따라 조련하고 일이 있으면 큰 군사와 힘을 합하여 뿔처럼 버티게 하면, 그 방비하는 계책이 실로 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만일 안옥이 이 소임을 잘하여 드러나게 보람이 있으면 차례를 뛰어넘어 뽑아 올려 여러 사람을 권하는 것으로 삼아도 또한 안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다만 함안 한 고을을 들어 말한 것일 뿐입니다. 그 밖에 고성·진해·곤양(昆陽)·사천(泗川)·하동(河東) 일대 고을의 수령도 다 마땅히 이 일로 책임 지워 반드시 보람 있기를 기약하고, 올해 백성을 불러 모은 수의 많고 적음, 갈아 일군 땅의 넓고 좁음, 막고 지킬 방략을 조처함의 잘하고 못함을 하나하나 고과하여 지난날처럼 흐리멍덩하게 하지 못하게 하소서. 보람이 있는 자는 드러나게 벼슬을 올리고, 게을러 일하지 않는 자는 법 밖으로 벌을 내리며, 무르고 약하여 소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하나 가려 내치는 일을 도원수와 순안어사·순찰사에게 내려 알리심이 어떠하겠습니까.

협주 2

乙未正月

을미년 정월.

저본은 儒·曰·問·識이나 각각 爲·日·間·諭의 잘못으로 봄.

一洛東江下流自金海入海以上歷㓒原靈山昌寧玄風星州仁同善山以達於尙州又一岐自宜寧達於晉州卽所謂岐江稍西則鼎津而皆舟所通行之路也壬辰癸巳賊兵皆以江船運粮餉軍器往來無礙而人不知沿江設險惟郭再祐於江中馬首院等處設木杖賊船流下之時爲杖所礙因從岸上設伏急擊多捕賊船四十餘隻其後賊船又礙於江中岸上之軍圍立相持凡八日而賊之在他處者擧衆來援故不能盡捕當時若有大砲及火箭從岸上亂放則賊必盡殱於水中其不能者特以器械不備故耳今賊中體探之人往往來說賊多備江船以爲行江之計是其兇謀所在不徒然也而我軍如聞虛語不知爲備可乎鼎津以下及洛東江下流與諸淡灘渡涉處若爲木杖則可防水來之賊然人必以人力不足爲諉而沿江有山處如鼎津以上月那山橡木參天直臨江上若發軍數百餘人或用僧軍斫伐流下設杖於要害之處以塞江路不但拒從下流上來賊船亦可以禦左道賊兵之乘淺灘渡來者矣亦知委諸將相機施行事

하나. 낙동강 하류는 김해에서 바다로 들어가고, 그 위로는 칠원(㓒原)·영산(靈山)·창녕(昌寧)·현풍(玄風)·성주(星州)·인동(仁同)·선산(善山)을 거쳐 상주(尙州)에 이릅니다. 또 한 갈래는 의령에서 진주에 이르니 곧 이른바 기강(岐江)이요, 조금 서쪽이 정진인데 다 배가 다니는 길입니다.

임진년·계사년에 적병이 다 강배로 군량과 병기를 실어 오가는 데 거리낌이 없었으나 사람들은 강을 따라 험한 것을 베풀 줄 몰랐습니다. 오직 곽재우(郭再祐)가 강 가운데 마수원(馬首院) 등지에 나무말뚝을 박아 적의 배가 흘러 내려올 때 말뚝에 걸리게 하고, 이어 언덕 위에서 복병을 두어 급히 쳐서 적의 배 사십여 척을 잡았습니다. 그 뒤에 적의 배가 또 강 가운데서 걸리자 언덕 위의 군사가 둘러서서 서로 버티기를 무릇 여드레였는데, 다른 곳에 있던 적이 무리를 들어 와 구원한 까닭에 다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만일 대포와 불화살이 있어 언덕 위에서 어지러이 쏘았다면 적이 반드시 물 가운데서 다 죽었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다만 병기가 갖추어지지 않은 까닭입니다.

이제 적중을 정탐하는 사람이 이따금 와서 말하기를, 적이 강배를 많이 갖추어 강으로 다닐 계책을 삼는다 합니다. 이는 그 흉한 꾀가 있는 바라 헛되지 않은데, 우리 군사가 빈말을 들은 듯이 여겨 채비할 줄 모르니 되겠습니까. 정진 아래와 낙동강 하류와 여러 얕은 여울의 건너는 곳에 나무말뚝을 박으면 물로 오는 적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반드시 인력이 모자란다고 핑계할 것입니다.

강을 따라 산이 있는 곳, 이를테면 정진 위쪽 월나산(月那山)은 상수리나무가 하늘에 닿을 듯하고 바로 강 위에 임하였습니다. 만일 군사 수백여 명을 내거나 승군을 써서 베어 흘려 내려 요해처에 말뚝을 박아 강길을 막으면, 하류에서 올라오는 적의 배를 막을 뿐 아니라 또한 좌도의 적병이 얕은 여울을 타고 건너오는 것도 막을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여러 장수에게 알려 기틀을 보아 시행하게 할 일입니다.

一僧將惟政方欲修葺龍起山城而患其私力不足令本道巡察使隨便助力且覓給種子使惟政率其軍百餘屯田山下以爲積粟之計事

하나. 승장 유정(惟政)이 바야흐로 용기산성(龍起山城)을 수리하고자 하나 제 힘이 모자람을 걱정합니다. 그 도 순찰사로 하여금 편한 대로 힘을 돕고 또 씨앗을 구해 주어, 승장 유정(惟政)이 그 군사 백여 명을 거느리고 산 아래에서 둔전하여 곡식을 쌓을 계책을 삼게 할 일입니다.

一巡邊使李薲前年以其軍人多爲屯田所得頗優云今李薲罷去若以罷去之故而散失殆盡則今年種子又將別求於他處極爲可慮李薲前年屯田所出幾石用度幾何目今所餘幾何一一句檢詳覈使兵使金應瑞次知以爲今年農作之用而馳。啓實數事。下諭于巡按御史何如

하나. 순변사 이빈(李薲)이 지난해에 그 군사로 둔전을 많이 하여 얻은 것이 자못 넉넉하다 합니다. 이제 이빈이 갈려 갔는데 만일 갈려 간 까닭으로 흩어져 거의 다 없어진다면, 올해 씨앗을 또 달리 다른 데서 구하여야 할 것이니 지극히 염려됩니다. 이빈이 지난해 둔전에서 난 것이 몇 섬이며 쓴 것이 얼마이고 이제 남은 것이 얼마인지 하나하나 조사하여 자세히 밝히고, 병사 김응서(金應瑞)에게 맡아보게 하여 올해 농사에 쓰게 하며 그 실제 수를 급히 아뢰게 할 일을 순안어사에게 내려 알리심이 어떠하겠습니까.

一平時守令之善於其職及不能者監司必待殿最然後有所處置而所謂殿最者亦虛實相蒙毀譽亂實故人無所勸懲而敗官苟免者爲多今此慶尙道下邑皆是殘敗賊在之地守令若視同平時悠悠泛泛則難以濟事况尙州善山金山開寧仁同大丘星州淸道昌寧靈山玄風高靈㓒原密陽彥陽迎日長鬐以及咸安鎭海固城泗川河東昆陽三嘉丹城等邑守令尤重於他處其勸課陞黜檢勅之政監司不可少緩以。朝廷所聞言之昌寧縣監李英星州牧使曹好益有能治之名昆陽郡守李光岳亦聞勤幹而未知虛實此外則全未知如何善山府使李箕賓亦自。朝廷論遞而又聞淸道郡守李聖任多率衙眷貽弊吏民云傳聞之事亦難保其必信實有如此之事則監司尤不當任置而不言也大扺今日守令別無簿書期會决獄供辦之事只能身操畚鍤至誠愛民使流亡還集田野漸闢又能隨其力之所及設爲禦賊之具其所治績不過如此而已能此者爲善不能此者當去上項各邑守令以見在實迹一一題品不待殿最別錄。啓聞以憑處置事行移于巡察使何如

하나. 평시에는 수령이 제 직분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감사가 반드시 벼슬아치 성적을 매기는 전최(殿最)를 기다린 뒤에야 처치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전최란 것도 헛됨과 실상이 서로 뒤섞이고 헐뜯음과 기림이 실상을 어지럽힌 까닭에, 사람들이 권장되고 징계되는 바가 없어 벼슬을 그르치고도 구차히 면하는 자가 많았습니다.

이제 이 경상도 아래 고을은 다 쇠잔하고 무너져 적이 있는 땅이니, 수령이 만일 평시와 같이 보아 흐리멍덩하면 일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상주·선산·금산(金山)·개령(開寧)·인동·대구(大丘)·성주·청도(淸道)·창녕·영산·현풍·고령(高靈)·칠원·밀양(密陽)·언양(彥陽)·영일(迎日)·장기(長鬐)와 함안·진해·고성·사천·하동·곤양·삼가(三嘉)·단성(丹城) 들 고을의 수령은 다른 데보다 더욱 중합니다. 그 권하여 살피고 올리고 내치며 단속하는 정사를 감사가 조금도 늦출 수 없습니다.

조정에서 들은 바로 말하면 창녕현감 이영(李英)과 성주목사 조호익(曹好益)은 잘 다스린다는 이름이 있고, 곤양군수 이광악(李光岳)도 부지런하고 재간 있다 들었으나 헛됨과 실상은 알지 못합니다. 이 밖에는 어떠한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선산부사 이기빈(李箕賓)은 또한 조정에서 논하여 갈았고, 또 들으니 청도군수 이성임(李聖任)은 관아 식솔을 많이 거느려 아전과 백성에게 폐를 끼친다 하는데, 전해 들은 일이라 반드시 미덥다고 보장하기도 어렵습니다. 실로 이런 일이 있다면 감사가 더욱 마땅히 버려두고 말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대저 오늘의 수령은 따로 문서와 기한 안에 회계를 맞추는 일(期會)과 옥사를 판결하고 이바지하는 일이 없습니다. 다만 몸소 삼태기와 삽을 잡고 지극한 정성으로 백성을 사랑하여 흩어진 이들이 돌아와 모이고 밭과 들이 차츰 열리게 하며, 또 그 힘이 미치는 대로 적을 막을 기구를 갖추는 것이니, 그 다스린 공적이 이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이를 잘하는 자는 좋다 하고 이를 잘하지 못하는 자는 마땅히 버릴 것입니다. 위 각 고을 수령을 이제 있는 실제 자취로 하나하나 품평하여 전최를 기다리지 말고 따로 적어 아뢰어 처치할 근거로 삼을 일을 순찰사에게 알리심이 어떠하겠습니까.

一

하나.

巨濟方爲賊藪然其遺民散出者別令縣令安衛十分招募姑聚於南海空閒之地今年則別爲耕種使有生理幸而賊退則爲還保邑居之計然巨濟在海中與上道監司所在處絕遠縣令措置能否監司勢未及聞知此則專委左水使裴楔使之自當檢勅而待其成效與監司。啓聞事

거제는 바야흐로 적의 소굴이 되었으나 그 남은 백성으로 흩어져 나온 자는 각별히 현령 안위(安衛)를 시켜 십분 불러 모아 우선 남해(南海)의 빈 땅에 모으고, 올해는 각별히 밭 갈고 씨 뿌리게 하여 살아갈 길이 있게 하며, 다행히 적이 물러가면 고을로 돌아가 지킬 계책을 삼게 하소서. 그러나 거제는 바다 가운데 있어 윗도의 감사가 있는 곳과 아주 머니, 현령이 조처하는 것이 잘되는지 못되는지를 감사가 형세상 미처 듣고 알지 못합니다. 이는 좌수사 배설(裴楔)에게 오로지 맡겨 스스로 검칙하게 하고, 그 보람을 기다려 감사와 함께 아뢰게 할 일입니다.

一

하나.

海邊各鎭堡如東萊西生浦以及金海熊川賊所方留之處姑置勿論自固城唐浦所乙非浦蛇梁以西各項諸鎭時在與否及各處鎭將某某人今在何處及海邊鮑作干常時能櫓之人尙有因居其處漁釆爲生者則令其邊將各自招募使之安集而亦以其招撫多少知其稱職與否而覈實。啓聞以行賞罰事

바닷가 각 진보(鎭堡) 가운데 동래(東萊)·서생포(西生浦)와 김해·웅천같이 적이 바야흐로 머무는 곳은 우선 두고 논하지 마소서. 고성·당포(唐浦)·소을비포(所乙非浦)·사량(蛇梁)에서 서쪽으로 여러 진이 이제 있는지 없는지와 곳곳 진장 아무아무가 이제 어디 있는지, 또 바닷가 포작간(鮑作干)과 늘 노를 잘 젓던 사람으로 아직 그곳에 그대로 살며 고기잡이로 살아가는 자가 있거든 그 변장으로 하여금 저마다 불러 모아 편안히 자리 잡게 하고, 또 그 불러 어루만진 수의 많고 적음으로 직분에 맞는지 아닌지를 알아 실상을 조사하여 아뢰어 상과 벌을 행할 일입니다.

협주 1

鮑作干 — 바닷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 옮긴이

一

하나.

都元帥以事理言之則當留陣於一道中央兼制左右道軍機之事而自劉總兵撤還之後大丘不便於留住移在右道故與慶州諸將所在形勢絕遠凡事不爲料理約束極爲可慮元師雖不能身巡各營而分遣從事官常行檢勅點閱軍兵器械措置粮餉慰撫軍卒勿使有隔絕疎虞之弊事

도원수는 사리로 말하면 마땅히 한 도의 가운데에 진을 머물러 좌도·우도의 군기 일을 아울러 거느려야 합니다. 그러나 유 총병(劉綎)이 물러 돌아간 뒤로 대구가 머물기에 편치 않아 우도로 옮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주(慶州)의 여러 장수가 있는 곳과 형세가 아주 멀어 모든 일을 헤아려 단속하지 못하니 지극히 염려됩니다. 원수가 비록 몸소 각 영을 돌지는 못하더라도 종사관을 나누어 보내어 늘 단속하고, 군사와 무기와 기구를 점고하며 군량을 조처하고 군졸을 위로하여 막히고 끊겨 허술해지는 폐단이 없게 할 일입니다.

一

하나.

巡邊使李薲已爲罷去右道但有兵使金應瑞脫有衝突之患極爲孤弱自。朝廷欲遣領軍一將使之合力添防於春訊之節而第恐粮餉不繼元帥急速商量事勢及時存粮料可堪幾人幾日之食又自湖南運去者幾何不分晝夜馳。啓事幷下諭于元帥

순변사 이빈이 이미 갈려 가서 우도에는 다만 병사 김응서만 있으니, 혹 부딪치는 근심이 있으면 지극히 외롭고 약합니다. 조정에서 군사를 거느릴 장수 하나를 보내어 힘을 합쳐 봄철에 방비를 더하게 하고자 하나 다만 군량이 잇대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원수가 급히 형세와, 이제 있는 양식이 몇 사람 며칠 먹을 것을 감당할 만한지와, 또 호남에서 실어 갈 것이 얼마인지를 헤아려 밤낮을 가리지 말고 급히 아뢸 일을 아울러 원수에게 내려 알리소서.

一軍律不嚴故人心解弛而事無可爲者往年賊兵不意長驅突入列邑望風瓦解雖有守城守土之臣及領兵把截之將皆奔竄避賊一無防塞之處習以爲常故今日邊將之意若賊來則只有奔北之計無捐生殉國以死禦賊之意極爲痛心今後苟有如此者。朝廷勿論大小斷不容貸此意元帥預爲申勅約束使母致後悔事幷。諭何如

하나. 군율이 엄하지 않은 까닭에 인심이 풀어져 일에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지난해 적병이 뜻밖에 멀리 몰아 갑자기 들어오자 여러 고을이 적의 기세만 보고도 기와처럼 무너졌고, 비록 성을 지키고 땅을 지킬 신하와 군사를 거느려 막을 장수가 있어도 다 달아나 숨어 적을 피하여 한 군데도 막은 곳이 없었습니다. 익어서 예사로 여긴 까닭에 오늘 변장의 뜻이, 만일 적이 오면 다만 달아날 궁리만 있고 목숨을 버려 나라에 죽어 죽음으로 적을 막을 뜻이 없으니 지극히 마음 아픕니다. 이 뒤로 진실로 이런 자가 있으면 조정에서 크고 작음을 물을 것 없이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뜻을 원수가 미리 거듭 신칙하여 단속해 뒤에 뉘우침이 없게 할 일을 아울러 알리심이 어떠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