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상서 퇴식재 여덟 노래 — 머리글奇尙書退食齋八詠
玉京南脈。綺里西偏。搜品物之菁華。啓乾坤之扃鐍。地相接於龍首嶺。縹氣上浮。天正分於鶉尾墟。朱芒下射。是造化兒之所未到。非仁智者則熟能居。昔之草徑苔庭。今則歌臺舞館。靈泉恒湧。纖壒不舛。奔流駮柱之間。瀉落靑珉之底。波瀲瀲兮不藍而綠。聲冷冷兮勿絃而鳴。旣能園囿蓬瀛。又作衣冠巢許。數叢凉竹。依稀風雨之天。一片落英。漏洩神仙之境。牡丹有三萼。菖蒲生九花。於是。軒蓋騈闐。盃盤狼藉。酌瓊樽之九醞。羅玉俎之八珍。戒門下無留鄭司農之好客。曰座上恒滿孔大夫之喜賓。麗日舒長。好風搖颺。倚靑松而岸幘。環流水以浮觴。慕蘭亭稧春之遊。追河朔避暑之飮。謝篇韓鉞。主人是令狐相公。孔思周情。坐客皆昌黎儒老。新荷出水。垂柳低軒。紅衣錦羽之禽。浮沈玉沼。緗觜綠毛之鳥。嘐唳金籠。移眞定之甘梨。蒔房陵之縹李。如迎如醉如達如跂。木黨伍於杜牧園。若行若驟若動若跧。石騈羅於奇章。野訝入藏春塢裏。似遊自雨亭前。彎弓一百斤。壯矣猛夫之角力。落筆三千字。藹然才子之摛華。虛閣先秋。深林自籟。仰飛甍而悸魄。俯碧井以澄神。雲鬢玉顔兮艶鬪春花。鵾絃鐵撥兮聲飛晴雹。人生行樂耳。美景不飮何。吾聞太白竹溪。虛作淸時之逸老。裵公水榭。暫爲晚節之退居。何如名敎之場。亦有逍遙之樂。自公而退食。好事者從遊。僕幸接芳隣。屢塵淸會。梁鷰來往。縱依廈屋之陰。海鳥眩悲。徒費大牢之饗。欲一染其柔翰。恐厚辱於名園。雖然奇花異草兮丹靑我心。明月淸風兮。氷雪我眼。物亦厚人多矣。吾將闕詩可乎。若使勝閣欠落霞之篇。謝池無春草之句。則靑山騁絶交之議。芳樹含獻笑之容。聊費一吟。恭呈八詠。
옥경(玉京)의 남쪽 맥, 기리(綺里)의 서쪽 가에 온갖 것의 알짜를 찾아 하늘과 땅의 빗장을 열었다. 땅은 용수령(龍首嶺)에 이어져 아득한 기운이 위로 뜨고, 하늘은 순미(鶉尾)의 자리에서 갈라져 붉은 빛살이 아래로 쏜다. 이는 조화의 아이도 미치지 못한 바이니 어질고 슬기로운 이가 아니면 누가 여기 살겠는가. 옛날의 풀 덮인 길과 이끼 낀 뜰이 이제는 노래하는 대와 춤추는 관(館)이 되었다. 신령한 샘이 늘 솟아 가는 티끌도 어지럽히지 못한다. 얼룩진 기둥 사이로 내달아 푸른 옥돌 바닥에 쏟아진다. 물결은 넘실거려 쪽빛이 아닌데도 푸르고, 소리는 맑아 줄이 없는데도 울린다. 이미 봉래와 영주를 동산으로 삼고 또 소보(巢父)와 허유(許由)를 갓 쓰고 띠 띤 이로 삼았다. 두어 떨기 서늘한 대는 어렴풋이 비바람 치는 하늘 같고, 한 조각 지는 꽃잎은 신선의 지경을 흘려 준다. 모란에는 세 꽃받침이 있고 창포에는 아홉 꽃이 핀다. 이에 수레와 일산이 줄지어 모이고 잔과 소반이 어지럽다. 옥 술동이의 아홉 번 빚은 술을 따르고 옥 도마의 여덟 가지 진미를 늘어놓는다. 문 아래에 정 사농(鄭司農)의 좋은 손을 머물게 하지 말라 하고, 자리 위에는 공 대부(孔大夫)의 반가운 손이 늘 가득하다 한다. 고운 해가 길고 좋은 바람이 흔들린다. 푸른 솔에 기대어 두건을 젖히고 흐르는 물을 둘러 잔을 띄운다. 난정(蘭亭)의 봄 계제사 놀이를 사모하고 하삭(河朔)의 더위 피하는 술자리를 좇는다. 사씨(謝氏)의 글과 한씨(韓氏)의 도끼이니 주인은 곧 영호(令狐) 상공이요, 공자의 생각과 주공의 뜻이니 앉은 손은 다 창려(昌黎)의 늙은 선비들이다. 새 연잎이 물에서 나오고 늘어진 버들이 마루에 낮다. 붉은 옷 비단 깃 새가 옥 못에 떴다 잠기고, 담황빛 부리 푸른 털 새가 금빛 새장에서 울부짖는다. 진정(眞定)의 단 배를 옮겨 심고 방릉(房陵)의 옥색 오얏을 심었다. 맞이하는 듯 취한 듯 통달한 듯 발돋움하는 듯하니 나무가 두목(杜牧)의 동산에서 무리를 이루고, 가는 듯 달리는 듯 움직이는 듯 웅크린 듯하니 돌이 기장(奇章)의 뜰에 늘어섰다. 장춘오(藏春塢) 안에 든 것인가 놀라고 자우정(自雨亭) 앞에 노니는 듯하다. 활을 백 근이나 당기니 장하다, 사나운 사내의 힘겨룸이여. 붓을 놀려 삼천 자를 쓰니 성하다, 재사의 글 펼침이여. 빈 누각에 가을이 먼저 오고 깊은 숲이 절로 소리를 낸다. 나는 용마루를 우러러 넋이 떨리고 푸른 우물을 굽어 정신이 맑아진다. 구름 같은 살쩍과 옥 같은 얼굴은 고움이 봄꽃과 다투고, 곤계(鵾鷄) 힘줄 줄과 쇠 술대는 소리가 갠 날의 우박처럼 난다. 사람이 살면 즐길 뿐이니 좋은 경치에 마시지 않고 어찌하랴. 내가 들으니 이태백의 죽계(竹溪)는 부질없이 맑은 시절의 숨은 늙은이가 되었고, 배공(裵公)의 물가 정자는 잠시 늘그막에 물러나 사는 곳이 되었다 한다. 어찌 명교(名敎)의 마당에 또한 노니는 즐거움이 있음만 하랴. 공무에서 물러나 밥을 들면 일 좋아하는 이들이 따라와 논다. 나는 다행히 꽃다운 이웃에 닿아 여러 번 맑은 모임을 더럽혔다. 들보의 제비가 오가듯 큰 집 그늘에 기대었고, 바다 새가 어지러이 슬퍼하듯 부질없이 태뢰(大牢)의 대접을 허비하였다. 한 번 붓을 적시고자 하나 이름난 동산을 크게 욕되게 할까 두렵다. 그러하나 기이한 꽃과 별난 풀이 내 마음을 곱게 물들이고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내 눈을 얼음과 눈처럼 씻어 준다. 물건이 사람을 두터이 대함이 또한 많으니 내가 시를 빠뜨려서야 되겠는가. 만일 좋은 누각에 낙하(落霞)의 글이 빠지고 사씨의 못에 봄풀의 구절이 없다면, 푸른 산이 절교의 의논을 펴고 꽃다운 나무가 비웃는 낯빛을 머금으리라. 애오라지 한 번 읊기를 허비하여 삼가 여덟 노래를 드린다.
협주 1
幷引
인(引)을 아울러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