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문 동각이 고원의 여러 학사에게 드린 삼백 운 시에 차운하다次韻吳東閣世文呈誥院諸學士三百韻詩
濮陽吳公世文。自北使見劾。入洛閑居。一日。與金東閣瑞廷。置酒鄭員外文甲林園。予訪之預飮坐末。吳公誇予曰。古今詩集中。無有押三百韻詩者。予嘗著三百二韻詩。呈誥院諸學士。子豈和之耶。因出其詩示之。是日還家。次韻賡和。奉寄吳公。兼簡鄭員外,金東閣。
복양(濮陽)의 오세문(吳世文) 공이 북쪽에 사신으로 갔다가 탄핵을 받고 서울에 들어와 한가로이 지냈다. 하루는 김서정(金瑞廷) 동각(東閣)과 함께 정문갑(鄭文甲) 원외(員外)의 숲 동산에 술자리를 벌였는데, 내가 찾아가 말석에 끼어 마셨다. 오공이 나에게 자랑하여 말하기를 「예와 이제의 시집 가운데 삼백 운을 단 시는 없다. 내가 일찍이 삼백두 운의 시를 지어 고원(誥院)의 여러 학사에게 드렸는데, 그대가 어찌 화답하겠는가」 하고, 이어 그 시를 꺼내 보였다. 이날 집에 돌아와 운을 따라 화답하여 오공에게 부치고, 아울러 정 원외와 김 동각에게도 보낸다.
협주 1
幷序
서문을 아울렀다.
東都古樂國。宮殿有遺基。靑史窺陳迹。淳風記昔時。晉江初渡馬。周洛始鑽龜。渤海環爲沼。扶桑繚作籬。千年開際會。累聖享雍煕。肇制宮懸樂。初陳蕝纂儀。儉勤師大夏。荒怪黜因墀。國士登韓信。朝臣重孔戣。恩榮同雨霈。號令劇雷馳。冠帶風雲盛。謳歌日月遲。誰成平子賦。堪賭孟堅辭。經野當星紀。擾甿循土宜。乾坤歸黍籥。造化入爐槌。嚼鑯忠臣膽。聯珠墨客詩。魚鱗卿相宅。螭首帝王碑。大學迎三老。鴻臚受四夷。樓暗巢鳳閣。官認紀龍司。翼翼呀雙闕。泱泱闢大池。仙眞留異迹。賢聖揭宏規。犬首侔東岱。蛟川倣左伊。茹連多衆彥。石畫秘深惟。鸑鷟爭騈翼。驊騮競接綏。珥蟬皆貴胄。批鳳亦淸姿。覆被應欺豹。牽裾或慕毗。遒文誇絶壁。神略較靈蓍。仁範笙篁雅。弘儒黼黻披。辭淸長笛嘏。意逸幅巾咨。競躡班聯緊。誰辭政事埤。孤雲金馬客。東海玉林枝。射策鳴中國。馳聲震四陲。高芬繁肹蠁。遺韻遠委蛇。世欲終炎漢。賢多匿默台寰區歸統壹。古國產英奇。夫子尤鍾秀。淸時特挺姿。九經偏嗜易。三寶最先慈。制作平呑脁。哇淫一掃摛。早騰千里足。曾備四時皮。鯁正李和鼎。風流袁孝尼。詩高成七步。孝過問三笞。白玉元難汚。懸衡豈易欺。骨淸雙鶴髓。文麗水蠶絲。後學螟蛉化。諸儒鳥雀隨。濯纓承異睠。頮面奏新詞。抗志曾高峭。低顔肯哫訾。自珍紉佩蕙。難掩脫囊錐。步緯該金樻。精神撿玉匙。句吳玄系遠。大伯素風垂。海內唯方朔。關東獨魯丕。短編嘲踸踔。古篆辨蠉蚑。師道肩韓愈。時名揖庾羲。再乘東去馹。三駕北征轙。壯觀誇幽薊。高遊繼虢郿。薤盂初作守。薏苡孰興疑。理叶人歌政。徵期帝受釐。土風猶帶羯。邊俗例如羆。靑犢何勞剪。羶戎尙可縻。威聲加絶塞。忠信質靈祇。巨鼈那游井。飛龍旋躍陂。才英登陸厥。文翰委微之。銀漏聲霑滴。花甎影陸離。制詞書繭紙。宣饌飫瓊糜。微毒遭蜂蠆。多言任鷾鴯。卷舒懷伯玉。著述慕崔琦。吾道寧終否。斯文要復施。閑居雖效岳。古事必咨岐。貶斥名彌著。陵兢志莫禔。果承申命密。更荷渥光熹。風翼幾垂退。蘭筋又見羈。聲詩皆有寓。國病尙堪理。妙藝標三絶。淸修去八疵。文章兼飾吏。正直合膺禧。薄宦拘繩墨。公才稱鼎𮮥。雪霜侵鬢髮。江海吼䏏脾。家有生塵甑。門多擊䡺輜。儒功文塚在。忠膽劒鋒知。已結蕭公綬。猶垂董氏帷。淸歡陪柏殿。慶日趁天祺。御筆登遷拜。朝儀省闕遺。天威纔咫尺。雨澤洽霑滋。傴僂端容止。矜莊愼唾洟。自稱居祿隱。還笑著書癡。忽受言綸降。光承使節持。虎鞍揮電策。鼉鼓舊雷椎。代郡麾驍騎。幷州選壯兒。菈林據狒猬。擿漻䍡鯤鮞。旨味宜春酒。寒羞大谷梨。土聞生䱯鰼。時記韻鶊鸝。命服雖披紫。儒冠不改緇。鳳觴纖手奉。龍管絳脣吹。畫戟森庭陛。香風徹道歧。年祥占格澤。軍事驗觜觿。雉堞連秦塞。虹橋矗楚圯。射堋時或峙。妓樂日相追。春水浮鸂□〔⿰漱鳥〕。淸沙立鷺鷥。芳園開荳蔻。露架拆酴醾。怪石𨻵如癭。盤松曲似䟸。列城行攬轡。虎衛凜交鈹。映日旗羆䟴。隨風弁鵲玻。仙倡馳白象。介士騁蒼騅。鮮水觀滮𭱌。源山歷險巇。騰身捫去鶴。游目送翩鵻。戱索高連漢。驚毬逬越壝。時淸唯燕喜。訟息好遊嬉。摶虎專詞賦。成鳧鬪奕棋。雪兒歌律句。玉女獻琛褵。已分親羅綺。從敎惹粉脂。使星還入漢。猗竹佇瞻淇。紈扇中捐棄。金刀莫贈貽。朝廷踈敬叔。權貴忌桓彝。直道甘三黜。長謠發五噫。怨尤心豈敢。賢達古如斯。一室耽閑適。高門笑伺窺。白頭傭作尉。絳帳樂爲師。久欠石渠講。何如衢室諮。解嘲聊自慰。答難亦云罷。樂可忘憂止。歌何歎已而。一生窮到骨。萬事笑持頤。月樹空驚鵲。雷天尙伏螭。去非陶靖節。罷異夏侯孜。令弟仙驂遠。君家玉樹虧。我曾同意氣。才豈角雄雌。孔戶窺彌奧。曺墻入愈罙。碧雲何獨趙。明月不須隋。共怯當鋒刃。其能搖𢧕鍦。辭堪驅宋玉。意欲剪王伾。逝矣乘風久。嗟哉斲堊誰。見詩增感慨。懷舊自悽□〔⿰忄而〕。獨洒長康淚。猶思德秀眉。唯公承鷟薦。當世作駰,僖。莫便隨麋鹿。須期戴鵔鸃。流光憐分寸。外物視銖錙。相訪曾交臂。淸吟自撚髭。慚將栖薈羽。仰觸刺天鬐。主喜迎王粲。予深慕賈逵。幽居誇釣濮。奇迹說遊㶟。恰有淸風襲。元無素議玼。橫彈翻見中。貧病却難醫。莫歎辰安在。端知德不衰。那隨鳧唼藻。會與鳳含蕤。京兆眞瑚璉。王郞愧桷榱。坦懷無畛域。深識剖毫釐。千首詩張祐三都賦左思。一鳴登鷺序。新沐振蟬緌。豈但校天祿。猶堪羈谷蠡。曩陪淸廟寢。肅奉紫壇祠。摩扢陳三俎。擩燔辨六齍。磑磑芳已積。鬻鬻意逾祗。桂酒淸如潑。山罍滿不欹。腹褰張猛𥲤。角握省豐犧。夙夜唯供職。蒸嘗但潔粢。栗齋循典祀。譎詭黜淫魑。卉汩臚精信。綏將降福禠。須知暮召偃。誰肯夜呼祈。拜相應看字。移官早夢尸。賢猶凌向戍。事豈聞陳寅。景行高山仰。長材大廈施。接人多款款。友直亦偲偲。劇郡尋煩敝。歸程遠問𡤯。軺䡕行轞轞。騂驈走駓駓。木末爭猿捷。峯頭趁鳥奞。鷺濤奔瀇瀁。鼇岫杳㟪𡿔。繞浦煙村暗。沿溪石棧逶。卸鞍遊散誕。援筆舞瀏漓。渴飮寒泉液。疑含凍醴澌。幽禽窺睥睨。走獸奮髬髵。繃絡攀蘿薜。橚槮過柞桵。下車開郡閣。擁劒課邊陴。童戱猶馴雉。軍蒐競獻貔。卦分畦块圠。星散屋逶迤。廨館堪方軌。賓筵擬履齊。錢釭明爍爍。竿衽轉僛僛。銀鏤凝蓴菜。金鱗泛黍酏。豐廚炮鵽鷃。珍膳味鮫鯔。軒嚳看如虱。陳隋笑若蚳。酷憐唯宋𧰟。射遞盡吳姬。蜀郡民歌袴。金陵妓奉匜。好山高赤石。奇貨富朱提。簿領長堆案。朝衣少襯椸。恩能懷密老。威已懾王姨。已罷割雞手。還栖傾鳳椅。輕裝廻沃轡。新服拂凉絺。歷閱溪山勝。都忘道里疲。魂勞懸貝闕。耳想聽龍篪。尙欲徵三穗。方圖戴九𤪌。歸來戢羽翮。俯仰改騮驪。舊列薪猶積。孤忠石不移。端居長隱几。淸夢尙乘軧。書圃誰爲伴。仁隣孰與比。一錢當不蓄。萬卷本何裨。幅被勝狐貉。盤蔬當□〔⿰魚霍〕鮧。攄懷唯酩酊。知命敢嗚戱。冠櫑初投謁。門墻不見麾。惘然迷界限。怳未測津涯。霜若碧天遠。露寒殷葉萎。夕陽嗟暮矣。凉夜問何其。扼腕俱相笑。論情頗自悲。草堂初飮水。塵釜晚燃萁。避謗雖緘口。逢時必壯頄。威儀誠棣棣。闒茸謾嘻嘻。我愛榮陽秀。才如巴郡貲。栢臺彈吏懦。肺石活民羸。已歷三關塞。曾駈九折阺。䟽書應脫腕。草檄僅生眡。灊縣嘗觀霍。琅邪亦渡濰。歲行臨尾次。王事赴乾維。朅入龍灣鎭。行侵鴨綠湄。軍容看仡仡。胡眼笑睢睢。左衽猶旁午。中心尙忸怩。家皆藏劒槊。人罕用鎡錤。始使生榛地。渾爲聚笠甾。蝥弧欺考叔。鯨賦壯崔倕。飛輓勞何憚。澄淸志不隳。芳晨開宴衎。哀曲感孀嫠。吟共毛中令。遊煩筆下邳。何須行劫劫。暫可息騤騤。江上停歸旆。舟中命別巵。岫眉晴脈脈。波練靜漪漪。過鴈飛驚棹。潛龜伏負坻。霧濃迷遠島。水落見空汦。草色連迢遞。湖光接渺瀰。林猑聲嗝□〔⿰口殼〕。沙鳥羽襂襹。錦碎叉紅鯉。萍浮釣白魾。華筵鋪玳瑁。寶杓送鸕鷀。坐到三竿日。狂傾一石甀。昔何榮赫煽。今反退嚘咿。公輩皆如此。皇天亦似私。嗟予生薄命。浪迹幾多朞。仙李徒攀託。蘧廬暫寓羈。自猶慙蹇短。誰忍飾顴𩔆。陋愧如□〔⿰曹阝〕鄶。名知似斗箕。頃逃雲水窟。高避網羅危。燠室經寒候。涼臺禦暑曦。傍墻培棗栗。匝地種桑桋。玉羽馴他鶴。莎鞦射却鶅。弄琴彈淥水。琢句覓淸琪。綠竹環階砌。靑松蔭梠㮰。剝苔新廢井。墾土理荒菑。穴伏梢麕子。山僵蹂虎屍。幽栖難奈久。出試見他辴。更欲依諸葛。何妨薦費褘。但聞天子聖。唯重巨儒耆。剪拂徒勞爾。駑頑亮若兹。無緣離釣築。何計脫蓬茨。玉蘊常藏櫝。珠潜敢潤碕。生涯何落魄。心事好參差。賈島驢恒跨。桓公馬未騎。篆沙羅鳥雀。網戶對蛛蜘。何羨燕尊隗。何期宋賞耏。京塵工化素。世路劇彎崎。自笑詩千紙。難償市一劑。韶聲忘嗜味。商頌莫憂飢。愛酒緡錢盡。無薪牡木炊。靑春▣▣▣。白日避陰葵。紙帳唯愁裂。荷衣不用紕。看書雙眼損。多病一身㾨。渴把柸濡口。行將杖拄肢。逍遙高漆吏。伏竄吊湘纍。路置桃椎屩。庭無貢禹綦。人雖譏放曠。我本恥嚅㖇。觸地生矛戟。渾身帶蒺䔧。數間初卜宅。一褐自安卑。稚子呼麤糲。山妻欠羃䍦。常關孫敬戶。如在冶長縲。憶昨尋三老。移時遣百罹。陽春嘉唱郢。繢綵譬遊濉。附翼方欣覿。揚眉各自怡。繞園芟草莽。掃地剪榛椔。林菓高難摘。池鱗俯可麗。餦餭何讓窡。臛臇不辭攲。愛客皆任昉。推賢盡宋畸。張溪題弱柳。潘圃詫芳荽。颺綠還憐蒜。抽黃始見蓶。已移三色李。將種九光芝。石井絙繩索。山齋峙柱榰。盃籌三百計。斗酒十千釃。代奏醙兼醑。交斟酎雜醨。濡毫懷化墨。嘗荈定州瓷。已許來函杖。何曾怒擧欙。幽情高谷口。遠目極峩□〔⿱山眉〕。古木蒼苔澁。高楸碧葛虆。岸巾同踞石。蠟屐更升岯。盥漱臨泉氿。徘徊拂樹㯅。林深餘宿靄。洞密聚曾颸。幸共傾千日。何嗟對九疑。幽香尋杜若。俗嗜屛餳飴。要極歡情耳。何拘末禮爲。乍如魚得水。退作鳥黏黐。夜臥唯莞葦。朝飧只蕨藄。緖言難接耳。思淚謾成眵。飢鼠空窺案。寒鷄已上塒。厲風嚴朔漠。反炤指崦嵫。久欲成勦體。唯憂被詅嗤。潛心彌眑眑。索句益孳孳。未復同君樂。那堪使我疧。濮陽超世尙。履道結茅期。出處知誰與。攀援獨我推。飮將同綠蟻。食亦共蹲鴟。耽學期便腹。評詩到擘肌。洪爐容利鈍。明鏡納姸媸。獸傅重箋狛。蟲篇細問雖。師傅尊孟喜。兄事擬僧彌。强自呈蕪拙。多慙側曄猗。
동도(東都)는 옛적 즐거운 나라라 궁전에 남은 터가 있다 푸른 역사에서 묵은 자취를 엿보고 순박한 풍속이 옛날을 적었다 진강(晉江)에서 처음 말이 건넜고 주나라 낙읍에서 비로소 거북을 지졌다 발해가 둘러 못이 되고 부상(扶桑)이 감아 울타리가 되었다 천 년의 만남이 열려 여러 성군이 화락함을 누렸다 처음으로 궁현(宮懸)의 음악을 짓고 처음으로 띠풀을 세워 의례를 엮었다 검소하고 부지런함은 대하(大夏)를 스승 삼고 허황하고 괴이함은 인지국(因墀國)의 것을 물리쳤다 나라의 선비로 한신(韓信)을 올리고 조정 신하로 공규(孔戣)를 중히 여겼다 은혜와 영화는 쏟아지는 비 같고 호령은 우레가 달리는 것보다 빨랐다 갓과 띠에 풍운이 성하고 노랫소리에 해와 달이 더디다 누가 평자(平子)의 부를 이루랴 맹견(孟堅)의 글과 겨룰 만하다 들을 다스림은 별자리에 맞추고 백성을 길들임은 땅의 마땅함을 따랐다 하늘과 땅이 기장과 피리에 돌아가고 조화가 풀무와 망치에 들었다 쇠를 씹는 충신의 쓸개요 구슬을 꿴 문인의 시다 고기비늘처럼 늘어선 정승의 집이요 이무기 머리를 새긴 제왕의 비다 태학에서 삼로(三老)를 맞고 홍려(鴻臚)에서 사방 오랑캐를 받았다 다락은 어두워 봉새가 깃든 누각이요 벼슬은 용으로 벼리를 삼은 관청으로 알았다 우뚝우뚝 두 대궐이 입을 벌리고 넘실넘실 큰 못을 열었다 신선이 기이한 자취를 남기고 어질고 거룩한 이가 큰 법을 내걸었다 견수(犬首)는 동쪽 태산과 같고 교천(蛟川)은 왼쪽 이수(伊水)를 본떴다 이어 붙듯 여러 뛰어난 이가 많고 굳은 계책이 깊은 생각에 감춰졌다 봉황이 다투어 날개를 나란히 하고 준마가 다투어 고삐를 잇는다 매미 장식을 단 이는 다 귀한 집 자손이요 봉황을 가르는 이도 맑은 모습이다 덮어 입음은 표범을 속일 만하고 옷자락을 끄는 것은 더러 신비(辛毗)를 그린다 굳센 글은 깎아지른 벼랑을 자랑하고 신묘한 꾀는 신령한 시초와 견준다 인범(仁範)은 생황처럼 아정하고 큰 선비는 수놓은 무늬를 펼친다 말이 맑기는 긴 젓대의 아름다움이요 뜻이 뛰어나기는 복건 쓴 이의 감탄이다 다투어 반열의 긴한 자리를 밟으니 누가 정사의 낮은 일을 사양하랴 고운(孤雲)은 금마문(金馬門)의 나그네요 동해의 옥 숲 가지다 책문을 쏘아 중국에 이름을 울리고 소리를 달려 사방 변방을 떨쳤다 높은 향기가 가득 퍼지고 남은 울림이 멀리 굽이친다 세상은 한나라가 끝나려 하고 어진 이는 묵태(默台)로 숨은 이가 많다 온 누리가 하나로 통일되니 옛 나라가 빼어난 인물을 낳았다 선생은 더욱 빼어남을 모았고 맑은 때에 유난히 뛰어난 모습이다 아홉 경서 가운데 『주역』을 유독 즐기고 세 보배 가운데 자비를 가장 앞세운다 글 지음은 사조(謝脁)를 평평히 삼키고 음란한 소리는 한 번에 쓸어 폈다 일찍이 천 리 가는 발을 날리고 일찍이 사철의 가죽을 갖추었다 굳세고 바르기는 솥의 간을 맞춘 이씨요 풍류는 원효니(袁孝尼)다 시가 높아 일곱 걸음에 이루고 효도는 세 번 매 맞음을 묻던 이보다 낫다 흰 옥은 본디 더럽히기 어렵고 달아 놓은 저울을 어찌 쉬 속이랴 뼈가 맑기는 두 학의 골수요 글이 고운 것은 물누에의 실이다 뒤에 배우는 이는 나나니벌처럼 되고 여러 선비가 참새처럼 따른다 갓끈을 씻고 특별한 돌보심을 받으며 낯을 씻고 새 글을 올린다 뜻을 높이 세워 일찍이 가팔랐으니 낯을 낮추어 아첨하기를 즐기랴 스스로 아껴 혜초를 꿰어 차고 주머니를 뚫는 송곳은 가리기 어렵다 별의 걸음은 『금궤경(金樻經)』에 갖추었고 정신은 옥 열쇠로 단속한다 구오(句吳)의 아득한 계보가 멀고 태백(大伯)의 흰 바람이 드리웠다 나라 안에는 오직 동방삭이요 관동에는 홀로 노비(魯丕)다 짧은 글로 절뚝거림을 비웃고 옛 전자로 벌레의 꿈틀거림을 가린다 스승의 도는 한유(韓愈)와 어깨를 겨루고 그때 이름은 유희(庾羲)에게 읍한다 두 번 동쪽으로 가는 역마를 타고 세 번 북으로 가는 수레 고리를 멨다 장한 구경은 유주(幽州)와 계주(薊州)를 자랑하고 높은 놀이는 괵(虢)과 미(郿)를 이었다 부추와 물동이로 처음 원이 되니 율무를 두고 누가 의심을 일으키랴 다스림이 맞아 사람들이 정사를 노래하고 부름을 기약해 임금이 복을 받는다 땅의 풍속은 아직 오랑캐 티를 띠고 변방 풍속은 으레 곰 같다 청독(靑犢)을 무엇하러 애써 베랴 누린내 나는 오랑캐도 오히려 얽어맬 만하다 위엄 있는 소리가 먼 변방에 더하고 충성과 미더움을 신령에게 묻는다 큰 자라가 어찌 우물에서 놀랴 나는 용이 곧 못에서 뛴다 재주 뛰어난 이로 육궐(陸厥)을 올리고 글은 미지(微之)에게 맡긴다 은 물시계 소리가 방울져 젖고 꽃벽돌 그림자가 아롱진다 조서를 고치개비 종이에 쓰고 내리신 음식으로 옥 같은 죽에 물린다 작은 독으로 벌과 전갈을 만나고 말 많음은 제비에게 맡긴다 거두고 폄은 거백옥(蘧伯玉)을 그리고 지어 쓰기는 최기(崔琦)를 사모한다 내 도가 어찌 끝내 막히랴 이 글이 다시 펴져야 한다 한가히 삶은 반악(潘岳)을 본떴으나 옛일은 반드시 갈래를 물었다 내쫓길수록 이름이 더욱 드러나고 조심하고 두려워해도 뜻이 편치 않다 과연 거듭 내린 은밀한 명을 받들고 다시 두터운 빛을 입었다 바람 탄 날개가 몇 번이나 물러나려 했고 난초 힘줄 같은 준마가 또 굴레를 썼다 소리와 시에 다 부친 뜻이 있고 나라의 병도 오히려 다스릴 만하다 묘한 재주는 삼절(三絶)로 표방되고 맑게 닦아 여덟 가지 흠을 없앴다 문장에 아전의 일까지 겸해 꾸미고 곧고 발라 복을 받음이 마땅하다 낮은 벼슬은 먹줄에 매이나 공의 재주는 솥의 진미에 걸맞다 눈과 서리가 귀밑머리를 침노하고 강과 바다가 가슴속에서 울부짖는다 집에는 먼지 이는 시루가 있고 문에는 굴대를 치는 짐수레가 많다 선비의 공은 글 무덤에 있고 충성된 쓸개는 칼날이 안다 이미 소공(蕭公)의 인끈을 맺고 아직 동씨(董氏)의 휘장을 드리웠다 맑은 기쁨으로 잣나무 전각을 모시고 경사스러운 날 천기절(天祺節)에 나아간다 임금의 붓으로 올라 벼슬을 옮기고 조정 의례에서 빠진 것을 살핀다 하늘의 위엄이 겨우 지척이요 비 같은 은택이 흠뻑 적신다 몸을 굽혀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엄숙히 하여 침 뱉고 코 풂을 삼간다 스스로 녹은(祿隱)에 산다 일컫고 도리어 책 짓는 어리석음을 웃는다 문득 내리신 윤음을 받고 빛나게 사절의 부절을 잡았다 범 무늬 안장에서 번개 같은 채찍을 휘두르고 악어가죽 북에 옛 우레 같은 방망이질이다 대군(代郡)에서 날랜 기병을 지휘하고 병주(幷州)에서 씩씩한 사내를 뽑는다 숲을 꺾으며 비비와 고슴도치를 잡고 맑은 물을 헤쳐 그물로 잔고기를 뜬다 맛있기는 의춘(宜春)의 술이요 찬 안주는 대곡(大谷)의 배다 땅에서는 미꾸라지가 난다 들었고 때로는 꾀꼬리의 울림을 적는다 벼슬 옷으로 자줏빛을 입었으나 선비의 갓은 검은 빛을 고치지 않았다 봉황 잔을 가는 손이 받들고 용 피리를 붉은 입술이 분다 그림 창이 뜰 섬돌에 빽빽하고 향기로운 바람이 갈림길까지 사무친다 해의 상서는 격택성(格澤星)으로 점치고 군사의 일은 자휴성(觜觿星)으로 시험한다 성가퀴가 진나라 변방으로 이어지고 무지개다리가 초나라 흙다리처럼 우뚝하다 활 과녁이 때로 우뚝 서고 기생과 풍류가 날마다 잇따른다 봄물에 원앙이 떠 있고 맑은 모래에 해오라기가 섰다 꽃다운 동산에 두구화가 피고 이슬 시렁에 도미화가 터진다 괴상한 돌은 혹처럼 우툴거리고 서린 솔은 굽은 다리처럼 구부러졌다 여러 성을 다니며 고삐를 잡으니 범 같은 호위가 서슬 푸르게 창을 엇댄다 해에 비친 깃발의 곰이 움직이고 바람에 따라 고깔의 까치 구슬이 흔들린다 신선 광대가 흰 코끼리를 달리고 갑옷 입은 군사가 푸른 총이말을 몬다 선수(鮮水)에서 흐르는 물을 보고 원산(源山)에서 험한 데를 지난다 몸을 솟구쳐 날아가는 학을 더듬고 눈을 놀려 나는 비둘기를 보낸다 줄타기가 높아 은하에 잇닿고 놀란 공이 튀어 담을 넘는다 때가 맑아 오직 잔치의 기쁨이요 송사가 그쳐 놀기에 좋다 범을 잡듯 사부(詞賦)를 오로지하고 오리를 이루듯 바둑을 겨룬다 설아(雪兒)는 율시 구절을 노래하고 옥 같은 여인은 보배와 수건을 바친다 이미 비단을 가까이할 몫이라 여기고 분과 연지가 묻는 대로 맡긴다 사신의 별이 도로 한나라로 들고 아름다운 대는 기수(淇水)를 우두커니 바라본다 흰 비단 부채는 중도에 버려지니 금 칼은 주지 마라 조정은 경숙(敬叔)을 멀리하고 권세 있는 이는 환이(桓彝)를 꺼린다 곧은 도로 세 번 내침을 달게 여기고 긴 노래로 다섯 번 탄식을 낸다 원망하고 탓하기를 마음에 어찌 감히 하랴 어질고 통달한 이는 예부터 이러하였다 한 칸 방에서 한가함을 즐기고 높은 문에서 엿보는 것을 웃는다 흰머리로 품팔이하여 위(尉)가 되고 붉은 휘장에서 스승 되기를 즐긴다 석거각(石渠閣)의 강론은 오래 빠졌으니 구실(衢室)에서 묻는 것과 어떠하랴 「해조(解嘲)」로 애오라지 스스로 위로하고 「답난(答難)」으로 또한 그만둔다 이른다 즐거우면 근심을 잊을 뿐이니 노래에 어찌 「이이(已而)」를 탄식하랴 한평생 가난이 뼈에 사무치고 온갖 일에 턱을 괴고 웃는다 달빛 나무에 까치가 부질없이 놀라고 우레 치는 하늘에 이무기가 아직 엎드렸다 떠남은 도정절(陶靖節)이 아니요 그만둠은 하후자(夏侯孜)와 다르다 아우님은 신선 수레로 멀리 갔고 그대 집의 옥 같은 나무가 이지러졌다 나는 일찍이 뜻과 기운을 같이했으니 재주로 어찌 암수를 겨루랴 공자의 문은 엿볼수록 깊고 조씨의 담은 들수록 더 깊다 푸른 구름이 어찌 조씨에게만 있으랴 밝은 달은 수후(隋侯)의 구슬을 기다리지 않는다 함께 칼날 마주하기를 두려워하니 어찌 짧은 창을 흔들 수 있으랴 글은 송옥(宋玉)을 몰 만하고 뜻은 왕비(王伾)를 베려 한다 갔구나, 바람을 탄 지 오래이니 아, 코끝의 흙을 깎아 줄 이 누구인가 시를 보니 감개가 더하고 옛일을 그리니 절로 슬프다 홀로 장강(長康)의 눈물을 뿌리고 아직도 덕수(德秀)의 눈썹을 생각한다 오직 공이 장작(張鷟)의 뒤를 이어 천거되고 그 세상의 인(駰)과 희(僖)가 되었다 문득 고라니와 사슴을 따르지 말고 모름지기 준의관(鵔鸃冠) 쓰기를 기약하라 흐르는 빛은 한 치를 아끼고 바깥 사물은 하찮게 본다 서로 찾아 일찍이 팔을 맞대고 맑게 읊으며 스스로 수염을 꼰다 부끄럽구나, 덤불에 깃든 날개로 하늘을 찌르는 지느러미를 우러러 건드림이 주인은 왕찬(王粲) 맞기를 기뻐하고 나는 가규(賈逵)를 깊이 사모한다 그윽이 살며 복수(濮水)에서 낚시함을 자랑하고 기이한 자취로 누수(㶟水)에 노닌 일을 말한다 마침 맑은 바람이 스미고 본디 평소의 의논에 흠이 없다 뜻밖의 탄핵에 도리어 맞았으니 가난과 병은 도리어 고치기 어렵다 「때가 어디 있는가」 탄식하지 마라 덕은 쇠하지 않음을 바로 알겠다 어찌 오리를 따라 마름을 쪼으랴 마땅히 봉황과 함께 꽃술을 물으리라 경조(京兆)는 참으로 호련(瑚璉) 같은 그릇이요 왕랑(王郞)은 서까래 노릇을 부끄러워한다 마음이 넓어 경계가 없고 깊은 앎으로 터럭 끝을 가른다 천 수의 시는 장호(張祐)요 삼도(三都)의 부는 좌사(左思)다 한 번 울어 백로 반열에 오르고 새로 머리 감고 매미 갓끈을 떤다 어찌 천록각(天祿閣)에서 책만 교정하랴 오히려 곡려(谷蠡)를 얽어맬 만하다 지난날 맑은 종묘의 침전을 모시고 엄숙히 붉은 단의 제사를 받들었다 갈고 닦아 세 도마를 벌이고 적시고 구워 여섯 곡식을 가린다 겹겹이 향기가 이미 쌓이고 조심조심 뜻이 더욱 공경스럽다 계수 술은 맑아 뿌린 듯하고 산 무늬 술동이는 가득 차 기울지 않는다 배를 걷어 굳센 짐승 우리를 펴고 뿔을 쥐어 살진 희생을 살핀다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오직 맡은 일을 하고 증상(蒸嘗) 제사에 다만 곡식을 정갈히 한다 두려워 삼가며 옛 제사법을 따르고 속임수로 음란한 도깨비를 물리친다 빨리 벌여 정성과 미더움을 늘어놓고 편안히 복 내리기를 받든다 저녁에 부르심이 있을 줄 알아야 하니 누가 밤에 빌기를 즐기랴 정승 절함은 글자를 보아야 하고 벼슬 옮김은 일찍 시동 꿈을 꾸었다 어짊은 오히려 상술(向戍)을 넘으니 일을 어찌 진인(陳寅)에게 들으랴 큰 길을 높은 산처럼 우러르고 긴 재목을 큰 집에 쓴다 사람 대함이 정성스럽고 벗을 곧게 사귐이 또한 간곡하다 번거로운 고을에서 시달림을 찾고 돌아오는 길에 멀리 안부를 묻는다 수레가 덜컹덜컹 가고 붉은 말과 검은 말이 헐레벌떡 달린다 나뭇가지 끝에서 원숭이의 날램을 다투고 봉우리 머리에서 새의 날갯짓을 좇는다 해오라기 같은 물결이 넘실넘실 달리고 자라 같은 산봉우리가 아득히 험하다 개를 두른 안개 낀 마을이 어둡고 시내를 따라 돌 잔도가 굽이친다 안장을 풀고 마음껏 노닐고 붓을 잡아 시원스레 휘두른다 목말라 찬 샘물을 마시니 언 단술의 살얼음을 머금은 듯하다 그윽한 새가 성가퀴를 엿보고 달리는 짐승이 갈기를 세운다 얽힌 덩굴과 담쟁이를 붙잡고 우거진 떡갈나무와 산앵두나무를 지난다 수레에서 내려 고을 관아를 열고 칼을 안고 변방 성가퀴를 살핀다 아이 장난에도 오히려 꿩이 길들고 군사 사냥에서 다투어 비휴를 바친다 괘를 나눈 듯 밭이랑이 울퉁불퉁하고 별처럼 흩어진 집이 구불구불하다 관사는 수레 두 채가 나란할 만하고 손님 자리는 신을 가지런히 할 만하다 돈 모양 등잔이 반짝반짝 밝고 장대와 옷깃이 비틀비틀 돌아간다 은실처럼 순채가 엉기고 금빛 비늘이 기장술에 뜬다 넉넉한 부엌에서 메추라기를 굽고 진귀한 반찬으로 상어와 숭어를 맛본다 헌원과 제곡을 이처럼 보고 진(陳)나라와 수(隋)나라를 개미알처럼 비웃는다 몹시 어여쁨은 오직 송나라의 고움이요 번갈아 쏘는 것은 다 오나라 미인이다 촉군(蜀郡)에서는 백성이 바지를 노래하고 금릉(金陵)에서는 기생이 대야를 받든다 좋은 산은 붉은 바위가 높고 기이한 재화는 주제(朱提)의 은이 넉넉하다 장부가 늘 책상에 쌓이고 조복은 옷걸이에 걸릴 때가 적다 은혜는 밀현(密縣) 노인을 품을 만하고 위엄은 이미 왕씨 이모를 두렵게 하였다 이미 닭 잡던 손을 그만두고 도로 봉황 기운 의자에 깃들었다 가벼운 차림으로 고삐를 적셔 돌아오고 새 옷으로 서늘한 갈포를 떨친다 시내와 산의 좋은 경치를 두루 보고 길의 고달픔을 온통 잊었다 넋은 고달파 조개 대궐에 매달리고 귀로는 용 피리 듣기를 생각한다 아직도 세 이삭의 상서를 부르려 하고 바야흐로 아홉 구슬 이기를 꾀한다 돌아와 깃을 거두고 굽어보고 우러르며 말을 바꾼다 옛 반열에 섶이 아직 쌓이고 외로운 충성은 돌처럼 옮기지 않는다 단정히 앉아 늘 안석에 기대고 맑은 꿈에는 아직 수레를 탄다 책의 밭에서 누구를 짝하며 어진 이웃을 누구와 견주랴 한 푼도 쌓아 두지 않으니 만 권의 책이 본디 무슨 보탬이 되랴 한 폭 이불이 여우 담비 갖옷보다 낫고 소반의 나물이 물고기 회를 대신한다 회포를 펴는 데는 오직 흠뻑 취함이니 명을 아는 터에 감히 탄식하랴 갓과 칼을 갖추고 처음 뵈러 갔을 때 문과 담에서 쫓겨나지 않았다 멍하니 경계에 헤매고 어렴풋이 나루와 물가를 헤아리지 못한다 서리는 푸른 하늘처럼 멀고 이슬이 차 붉은 잎이 시든다 저녁 해에 「저물었구나」 탄식하고 서늘한 밤에 「어느 때인가」 묻는다 팔뚝을 부여잡고 함께 서로 웃고 정을 논하다 자못 스스로 슬프다 초당에서 처음 물을 마시고 먼지 앉은 솥에 늦게야 콩깍지를 땐다 비방을 피해 입을 다물었으나 때를 만나면 반드시 광대뼈가 씩씩하리라 위의가 참으로 의젓하고 용렬한 자들은 부질없이 히죽거린다 나는 영양(榮陽)의 빼어남을 사랑하니 재주가 파군(巴郡)의 재물 같다 백대(栢臺)에서 나약한 아전을 탄핵하고 폐석(肺石)으로 여윈 백성을 살린다 이미 세 관문의 요새를 지나고 일찍이 아홉 굽이 비탈을 달렸다 상소를 쓰다 팔이 빠질 듯하고 격문을 초하느라 겨우 눈을 뜬다 첨현(灊縣)에서 일찍이 곽산(霍山)을 보았고 낭야(琅邪)에서 또한 유수(濰水)를 건넜다 해가 미성(尾星) 자리에 이르고 왕의 일로 서북쪽으로 간다 문득 용만진(龍灣鎭)에 들고 가다가 압록강 물가에 다다른다 군사의 모습이 늠름하고 오랑캐 눈이 부라리며 웃는다 옷깃을 왼쪽으로 여민 자들이 아직 분주하고 마음속은 아직 부끄럽다 집집이 칼과 창을 감추고 사람은 호미를 쓰는 이가 드물다 비로소 개암나무 우거진 땅으로 하여금 온통 삿갓을 모으는 곳이 되게 하였다 모호(蝥弧) 깃발은 영고숙(潁考叔)을 속이고 「고래 부」는 최수(崔倕)를 씩씩하게 하였다 군량 나르는 수고를 무엇하러 꺼리랴 맑게 하려는 뜻은 무너지지 않는다 꽃다운 아침에 즐거운 잔치를 열고 슬픈 가락이 과부를 감동시킨다 모중령(毛中令)과 함께 읊고 하비(下邳)의 붓을 번거롭게 한다 무엇하러 급급히 다니랴 잠시 헐떡임을 쉴 만하다 강가에 돌아가는 깃발을 멈추고 배 안에서 이별 잔을 청한다 산봉우리 눈썹이 개어 아득하고 물결 비단이 고요히 잔잔하다 지나는 기러기가 노에 놀라 날고 잠긴 거북이 물가를 지고 엎드렸다 안개가 짙어 먼 섬이 아득하고 물이 빠져 빈 물가가 드러난다 풀빛이 아득히 이어지고 호수 빛이 가없이 닿는다 숲의 짐승 소리가 컥컥거리고 모래밭 새의 깃이 너풀거린다 비단이 부서지듯 붉은 잉어를 작살로 찌르고 부평초 뜨듯 흰 물고기를 낚는다 화려한 자리에 대모(玳瑁)를 깔고 보배 국자로 가마우지 술잔을 보낸다 앉은 채 해가 세 발이나 오르고 미친 듯 한 섬 들이 항아리를 기울인다 옛날엔 어찌 그리 영화가 성하더니 이제는 도리어 물러나 웅얼거리는가 공들이 다 이러하니 하늘도 사사로운 듯하다 아, 나는 박한 명으로 태어나 떠도는 자취가 몇 해였던가 신선 이씨에게 부질없이 붙이고 여관에 잠시 나그네로 머문다 스스로 절뚝거리고 짧음을 부끄러워하니 누가 차마 광대뼈와 턱을 꾸미랴 낮고 좁기가 조(鄫)와 회(鄶) 같아 부끄럽고 이름은 남두성과 키별 같은 줄 안다 지난번 구름과 물의 굴로 달아나 높이 그물의 위태로움을 피하였다 따뜻한 방에서 추운 철을 지내고 서늘한 대에서 더운 볕을 막는다 담 곁에 대추와 밤을 북돋우고 땅을 둘러 뽕나무를 심는다 옥 같은 깃의 남의 학을 길들이고 사초 그넷줄로 꿩을 쏘아 물리친다 거문고를 놀려 「녹수(淥水)」를 타고 시구를 다듬어 맑은 옥을 찾는다 푸른 대가 섬돌을 두르고 푸른 솔이 처마를 그늘 지운다 이끼를 벗겨 새로 버려진 우물을 손보고 흙을 일구어 묵정밭을 다스린다 굴에는 노루 새끼가 엎드리고 산에는 밟힌 범의 주검이 뻣뻣하다 그윽이 사는 것도 오래 견디기 어려워 나가 시험하니 남의 비웃음을 본다 다시 제갈량에게 기대려 하니 비의(費褘)를 천거함이 무슨 해가 되랴 다만 천자가 거룩하다 들었고 오직 큰 선비 어른을 중히 여긴다 다듬고 털어 주어도 헛수고일 뿐 둔하고 완고함이 참으로 이와 같다 낚시와 담쌓기를 떠날 인연이 없으니 무슨 꾀로 쑥대 지붕을 벗어나랴 옥은 늘 궤에 감추어 두고 구슬은 잠겨 감히 물굽이를 적신다 삶이 어찌 이리 영락하며 마음의 일이 자못 어긋난다 가도(賈島)는 나귀를 늘 타고 환공(桓公)은 말을 타지 못했다 모래에 전자를 새기듯 새들이 늘어서고 그물 친 문에서 거미를 마주한다 어찌 연나라가 곽외(郭隗)를 높인 것을 부러워하며 어찌 송나라가 이반(耏班)에게 상 준 것을 기약하랴 서울 티끌은 흰 것을 물들이기 잘하고 세상길은 몹시 굽고 험하다 스스로 웃는다, 시 천 장으로도 저자에서 약 한 첩 값을 갚기 어려움을 소악(韶樂) 소리에 맛을 즐김을 잊고 「상송(商頌)」에 굶주림을 근심하지 않는다 술을 좋아해 꿴 돈이 다하고 땔감이 없어 문빗장 나무로 불을 땐다 푸른 봄 ▣▣▣ 흰 해에 그늘 지는 해바라기를 피한다 종이 휘장은 다만 찢어질까 근심하고 연잎 옷은 선을 두를 것 없다 책을 보다 두 눈이 상하고 병이 많아 한 몸이 여윈다 목마르면 잔을 잡아 입을 적시고 다닐 때는 지팡이로 다리를 버틴다 소요함은 칠원 아전을 높이고 엎드려 숨어 상수(湘水)의 귀양객을 조상한다 길에는 도추(桃椎)의 짚신을 두고 뜰에는 공우(貢禹)의 신끈이 없다 남들이 비록 방탕하다 나무라나 나는 본디 우물쭈물함을 부끄러워한다 닿는 땅마다 창이 돋고 온몸에 남가새를 둘렀다 두어 칸에 처음 집터를 잡고 갈옷 하나로 절로 낮음을 편히 여긴다 어린아이는 거친 밥을 부르고 산골 아내는 너울이 없다 늘 손경(孫敬)의 문을 닫아걸고 공야장(公冶長)의 오랏줄에 있는 듯하다 지난날 세 어른을 찾던 일을 생각하니 한동안 온갖 근심을 보냈다 「양춘(陽春)」의 아름다운 노래를 영(郢) 땅에서 부르고 고운 채색은 수수(濉水)에 노는 것에 견준다 날개에 붙어 바야흐로 뵙기를 기뻐하고 눈썹을 치켜들고 저마다 즐거워한다 동산을 둘러 우거진 풀을 베고 땅을 쓸며 선 채 마른 나무를 자른다 숲의 열매는 높아 따기 어렵고 못의 고기는 굽어보면 잡을 만하다 엿과 산자를 어찌 사양하며 국과 지짐을 젓가락질하기 마다하지 않는다 손님 사랑함은 다 임방(任昉)이요 어진 이 천거함은 다 송기(宋畸)다 장씨 시내에 여린 버들을 쓰고 반씨 밭에 향기로운 고수를 자랑한다 푸르게 날려 도리어 마늘을 어여삐 여기고 누렇게 뽑혀 비로소 유채를 본다 이미 세 빛깔 오얏을 옮겨 심고 장차 아홉 빛 지초를 심으려 한다 돌우물에 두레줄을 늘이고 산집에 기둥 받침을 세운다 술잔 셈은 삼백을 헤아리고 말술은 만 냥어치를 거른다 번갈아 흰 술과 맑은 술을 올리고 서로 진한 술과 묽은 술을 섞어 따른다 붓을 적셔 회화(懷化)의 먹을 쓰고 정주(定州) 자기로 차를 맛본다 이미 지팡이 짚고 오기를 허락하였으니 어찌 성내어 들것을 들었으랴 그윽한 정은 곡구(谷口)보다 높고 먼 눈은 아미산 끝까지 다한다 늙은 나무에 푸른 이끼가 껄끄럽고 높은 가래나무에 푸른 칡덩굴이 얽혔다 두건을 젖히고 함께 돌에 걸터앉고 밀 먹인 나막신으로 다시 언덕을 오른다 샘가에 임해 씻고 양치하고 오락가락 늘어진 나뭇가지를 떨친다 숲이 깊어 묵은 아지랑이가 남고 골이 빽빽해 겹친 바람이 모인다 다행히 함께 천일주(千日酒)를 기울이니 어찌 구의산(九疑山)을 마주하고 탄식하랴 그윽한 향기로 두약(杜若)을 찾고 속된 기호로 엿과 조청을 물리친다 다만 기쁜 정을 다할 뿐이니 무엇하러 자잘한 예에 얽매이랴 잠깐은 물고기가 물을 얻은 듯하다가 물러나면 새가 끈끈이에 붙은 듯하다 밤에는 오직 왕골과 갈대에 눕고 아침 밥은 다만 고사리다 실마리 말을 귀에 잇기 어렵고 그리운 눈물이 부질없이 눈곱이 된다 굶주린 쥐가 부질없이 책상을 엿보고 추운 닭이 이미 홰에 올랐다 매운 바람이 북쪽 사막에 매섭고 되비치는 볕이 엄자산(崦嵫)을 가리킨다 오래 간결한 문체를 이루려 하나 다만 서투른 자랑으로 비웃음 살까 근심한다 마음을 잠기니 더욱 그윽하고 시구를 찾음에 더욱 부지런하다 아직 그대와 즐거움을 함께하지 못하니 어찌 나를 병들게 함을 견디랴 복양(濮陽)은 세상을 뛰어넘어 높고 이도리(履道里)에 띠집 지을 것을 기약한다 나가고 물러남을 누구와 함께할지 아는가 붙들어 끌어 줌은 홀로 나를 밀어 준다 마시면 함께 푸른 개미 뜬 술이요 먹으면 또한 함께 토란이다 배움에 빠져 배 불룩해지기를 기약하고 시를 평함이 살을 가르는 데까지 이른다 큰 풀무는 날카로움과 무딤을 다 받아들이고 밝은 거울은 고움과 미움을 다 들인다 짐승에 대해서는 박(狛)의 주를 거듭하고 벌레 편에서는 수(雖)를 자세히 묻는다 스승으로는 맹희(孟喜)를 높이고 형으로 섬김은 승미(僧彌)에 견준다 억지로 거칠고 졸렬한 것을 바치니 곁에서 빛나고 아름다움이 몹시 부끄럽다
협주 95
新羅第五十六王金傅降我大祖。大祖妻以長女。改新羅爲慶州。爲公食邑。吳公自言新羅王外孫。曾寓居東京。故論東京事。
신라 제56대 임금 김부(金傅)가 고려 태조에게 항복하자 태조가 맏딸을 시집보내고 신라를 고쳐 경주(慶州)라 하여 그의 식읍으로 삼았다. 오공이 스스로 신라 임금의 외손이라 하고 일찍이 동경(東京)에 살았으므로 동경의 일을 논한다.
洛。周之東京。故比之。
낙읍(洛邑)은 주나라의 동경이므로 견주었다.
新羅記云。膺一千年之業。新羅㮲記。九百九十九年。
『신라기(新羅記)』에 「천 년의 업을 받았다」 하였고, 『신라수기(新羅㮲記)』에는 구백구십구 년이라 하였다.
拾遺記曰。因墀國獻五足獸。如師子。蘓詩曰。荒怪還須問子年。
『습유기(拾遺記)』에 「인지국(因墀國)이 발이 다섯인 짐승을 바쳤는데 사자 같았다」 하였다. 소식(蘇軾)의 시에 「허황하고 괴이한 일은 도리어 자년(子年)에게 물어야 한다」 하였다.
平子作東京賦故云。
평자(平子) 장형(張衡)이 「동경부(東京賦)」를 지었으므로 이렇게 말하였다.
孟堅作東都賦。
맹견(孟堅) 반고(班固)가 「동도부(東都賦)」를 지었다.
周禮。櫌甿以土宜。旣以東京比周洛。故云。
『주례(周禮)』에 「땅의 마땅함으로 백성을 길들인다」 하였다. 이미 동경을 주나라 낙읍에 견주었으므로 이렇게 말하였다.
新羅記。築碧骨池。又於宮開大池。
『신라기』에 벽골지(碧骨池)를 쌓고 또 궁에 큰 못을 열었다 하였다.
新羅有仙郞事蹟。
신라에 선랑(仙郞)의 사적이 있다.
新羅記。有犬首祠。東都賦云。勤岱祈嵩。
『신라기』에 견수사(犬首祠)가 있다 하였다. 「동도부」에 「대산(岱山)에 힘쓰고 숭산(嵩山)에 빈다」 하였다.
三國史。東京有蛟川。東京賦云。左伊右瀍。
『삼국사(三國史)』에 동경에 교천(蛟川)이 있다 하였다. 「동경부」에 「왼쪽은 이수(伊水), 오른쪽은 전수(瀍水)」라 하였다.
謂朴仁範,薛聦。
박인범(朴仁範)과 설총(薛聰)을 이른다.
崔致遠字孤雲。入唐。一擧及第。同年顧雲贈詩曰。一箭射破金門策。
최치원(崔致遠)의 자는 고운(孤雲)이다. 당나라에 들어가 한 번에 급제하였다. 같은 해에 급제한 고운(顧雲)이 시를 주어 「화살 하나로 금문(金門)의 책문을 쏘아 깨뜨렸다」 하였다.
西京賦云。聲淸暢而委蛇。注云。餘聲詰曲也。
「서경부(西京賦)」에 「소리가 맑고 시원하게 굽이친다」 하였고, 주에 「남은 소리가 구불구불한 것이다」 하였다.
謂新羅季代。
신라 말기를 이른다.
周書曰。治峯本姓默台。避時難改焉。廣韻。支字韻台字。注云。姓也。出姓苑。
『주서(周書)』에 「치봉(治峯)은 본디 성이 묵태(默台)였는데 그때의 어려움을 피해 고쳤다」 하였다. 『광운(廣韻)』 지(支) 운의 태(台) 자 주에 「성이다. 『성원(姓苑)』에 나온다」 하였다.
水蠶異氷蠶。
수잠(水蠶)은 빙잠(氷蠶)과 다르다.
公嘗集諸生敎授。
공이 일찍이 여러 학생을 모아 가르쳤다.
公曾爲翰林。
공이 일찍이 한림(翰林)이 되었다.
公兼通陰陽。唐藝文志。有金樻經三卷。
공은 음양(陰陽)에도 아울러 통하였다. 『당서』 예문지에 『금궤경(金樻經)』 세 권이 있다.
黃庭經云。結珠固精養神根。玉匙金鑰常堅完。公亦通道家故云。
『황정경(黃庭經)』에 「구슬을 맺어 정기를 굳혀 신의 뿌리를 기르니 옥 열쇠와 금 자물쇠가 늘 굳고 온전하다」 하였다. 공이 또한 도가에 통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하였다.
言公之徵還。
공이 부름을 받아 돌아온 것을 말한다.
公自守郡還。復爲翰林。
공이 고을 원에서 돌아와 다시 한림이 되었다.
公在翰林。以事克彈免官。
공이 한림으로 있을 때 일 때문에 탄핵을 받아 벼슬에서 물러났다.
洞冥記曰。孟岐。淸河逸人也。年可七百歲。語及周初時事。
『동명기(洞冥記)』에 「맹기(孟岐)는 청하(淸河)의 숨은 사람이다. 나이가 칠백 살쯤 되어 주나라 초기의 일을 말하였다」 하였다.
公復爲翰林。
공이 다시 한림이 되었다.
樂天註云栢殿行陪賞。
백낙천의 주에 「백전(栢殿)에서 이따금 구경을 모셨다」 하였다.
金坡遺事曰。翰林每遇天慶天祺節。預先一月。降入馬遞云云。
『금파유사(金坡遺事)』에 「한림은 천경절(天慶節)과 천기절(天祺節)을 만날 때마다 한 달 앞서 역마를 내려 보낸다」 운운하였다.
公始拜批於閣門。
공이 처음으로 합문(閣門)에서 벼슬을 받았다.
禮記云。不敢唾洟。
『예기』에 「감히 침 뱉고 코 풀지 않는다」 하였다.
今春爲雲中道監倉使。
올봄에 운중도(雲中道) 감창사(監倉使)가 되었다.
西京賦云。鼻赤象據狒猬。梗林爲之靡菈。
「서경부」에 「붉은 코끼리를 끌고 비비와 고슴도치를 잡으니 뻣센 숲이 이 때문에 꺾여 쓰러진다」 하였다.
西京賦云。擿漻澥設䍡樔鯤鮞。注云。䍡。網也。鯤鮞。小魚也。
「서경부」에 「맑은 물굽이를 헤쳐 그물을 쳐 잔고기를 뜬다」 하였고, 주에 「나(䍡)는 그물이요, 곤이(鯤鮞)는 작은 물고기다」 하였다.
山海經北山注云。茈湖多䱯鰼魚。
『산해경』 북산경 주에 「자호(茈湖)에 습어(鰼魚)가 많다」 하였다.
天文志云。格澤見則不耕而穫也。
「천문지」에 「격택성(格澤星)이 나타나면 갈지 않고도 거둔다」 하였다.
天文志。觜觿三軍事。明則軍儲盈。
「천문지」에 「자휴성(觜觿星) 셋은 군사의 일이니 밝으면 군량이 넉넉하다」 하였다.
脚曲也。
다리가 굽은 것이다.
山海經云。背北鮮之山。又云。北至源山。
『산해경』에 「북선산(北鮮山)을 등진다」 하였고, 또 「북으로 원산(源山)에 이른다」 하였다.
四愁詩云。美人贈我金錯刀。注云。喩君榮我以爵祿。
「사수시(四愁詩)」에 「고운 이가 나에게 금 새긴 칼을 주었다」 하였고, 주에 「임금이 벼슬과 녹으로 나를 영화롭게 함을 비유한 것이다」 하였다.
公嘗敎授。
공이 일찍이 가르쳤다.
公弟世才字德全。爲名儒。今卽世。
공의 아우 오세재(吳世才)는 자가 덕전(德全)이니 이름난 선비였는데 이제 세상을 떠났다.
予與德全。爲忘年交。
나는 덕전과 나이를 잊은 벗이 되었다.
公祖及考皆登第。爲名儒。公繼之。唐張鷟登進士第。孫薦有文辭。充史官。子又新第進士。孫讀又進士第。故云云。
공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다 급제하여 이름난 선비가 되었고 공이 그것을 이었다. 당나라 장작(張鷟)이 진사에 오르고 손자 장천(張薦)이 글재주가 있어 사관이 되었으며, 아들 장우신(張又新)이 또 진사에 급제하고 손자 장독(張讀)이 또 진사에 급제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하였다.
後漢孔僖與孫駰爲友。梁郁曰云云。駰,僖不對。
후한의 공희(孔僖)가 인(駰)과 벗이 되었는데 양욱(梁郁)이 이러이러하게 말하자 인(駰)과 희(僖)가 대답하지 않았다.
賈逵通五經。學者羨慕。
가규(賈逵)가 오경에 통하니 배우는 이들이 부러워하고 사모하였다.
公旣自北入洛。予訪之。類篇云。㶟。鴈門水名也。
공이 북쪽에서 서울로 들어오자 내가 찾아갔다. 『유편(類篇)』에 「누(㶟)는 안문(鴈門)의 물 이름이다」 하였다.
唐書。崔弘禮爲兵部尙書。晚務多積。素議玼之。
『당서』에 「최홍례(崔弘禮)가 병부상서가 되었는데 늦게 일이 많이 쌓이니 평소의 의논이 그를 흠잡았다」 하였다.
此言金東閣。
이는 김 동각을 말한다.
晉王鑒有榱桷之用。
진나라 왕감(王鑒)은 서까래로 쓸 만한 재목이 있었다.
公曾爲大廟令。
공이 일찍이 태묘령(大廟令)이 되었다.
漢書。美芳磑磑。注云。磑磑。崇積也。
『한서』에 「아름다운 향기가 겹겹이 쌓인다」 하였고, 주에 「외외(磑磑)는 높이 쌓인 것이다」 하였다.
音鬻送神敬懼也。
음은 「육」이니 신을 보낼 때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漢書。卉汩臚。注云。卉汩。速也。臚。陳也。
『한서』에 「훼율려(卉汩臚)」라 하였고, 주에 「훼율(卉汩)은 빠름이요, 여(臚)는 벌여 놓음이다」 하였다.
左傳。宋樂祈告其宰陳寅曰云云。寅知晉政多門。日佳必有難云云。寅音怡。柳韻支字韻。寅字共出陳寅。
『좌전』에 「송나라 악기(樂祈)가 그 가신 진인(陳寅)에게 이러이러하게 말하였다」 하였다. 진인은 진(晉)나라 정사가 여러 문에서 나옴을 알고 「날이 좋아도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 운운하였다. 인(寅)의 음은 「이」다. 『유운(柳韻)』 지(支) 운의 인(寅) 자에 다 진인(陳寅)이 나온다.
公又爲安邊守。
공이 또 안변(安邊)의 원이 되었다.
類篇云。棫。柞也桵也。西京賦云。梓棫橚槮。注云。橚槮。繁蔚貌。
『유편』에 「역(棫)은 떡갈나무요 산앵두나무다」 하였다. 「서경부」에 「가래나무와 떡갈나무가 우거졌다」 하였고, 주에 「숙삼(橚槮)은 무성한 모양이다」 하였다.
龜蒙詩云。仰瞻三皇道。蟻虱在宇宙。
육구몽(陸龜蒙)의 시에 「삼황의 도를 우러러보니 개미와 이가 천지에 있다」 하였다.
皮日休詩云。後至陳隋世云云。大細如蚳䖶。
피일휴(皮日休)의 시에 「뒤에 진나라와 수나라 때에 이르러」 운운하고 「크고 작음이 개미알 같다」 하였다.
陶穀事。
도곡(陶穀)의 일이다.
王夷甫。姨也。事見世說。
왕이보(王夷甫)의 이모다. 일은 『세설신어』에 보인다.
蔡茂爲廣漢守。夢三穗。公亦自安邊守代還。故比之。
채무(蔡茂)가 광한(廣漢)의 원이 되어 이삭 셋 꿈을 꾸었다. 공도 안변 원에서 갈려 돌아왔으므로 견주었다.
漢書云一品九𤪌。
『한서』에 「일품은 아홉 구슬이다」 하였다.
公以闔門剩員。未出官故云。
공이 합문(閤門)의 잉원(剩員)으로 아직 벼슬에 나가지 못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하였다.
予晉訪公宅。
내가 공의 집을 찾아갔다.
此鄭員外文甲。
이는 정문갑(鄭文甲) 원외다.
見松陵集。
『송릉집(松陵集)』에 보인다.
公曾爲御史。
공이 일찍이 어사(御史)가 되었다.
今公爲刑部員外。周禮。大司寇以肺石達窮民之冤。
지금 공은 형부원외(刑部員外)다. 『주례』에 「대사구(大司寇)는 폐석(肺石)으로 궁한 백성의 원통함을 통하게 한다」 하였다.
齊志義陽有三關塞。
『제지(齊志)』에 의양(義陽)에 세 관문의 요새가 있다 하였다.
公癸丑歲。爲杖冬義州分道。
공이 계축년에 의주(義州) 분도(分道)가 되었다.
義州別名也。
의주의 다른 이름이다.
文選詩云。籉笠聚東甾。
『문선』의 시에 「삿갓이 동쪽 묵정밭에 모인다」 하였다.
劉禹錫崔倕碑文云。戎羯猾夏。王師出征。倕乃作伐鯨鯢賦上獻。
유우석(劉禹錫)이 지은 최수(崔倕)의 비문에 「오랑캐가 중원을 어지럽혀 왕의 군사가 나가 치니 최수가 이에 「벌경예부(伐鯨鯢賦)」를 지어 올렸다」 하였다.
思玄賦云伏靈龜以負坻。
「사현부(思玄賦)」에 「신령한 거북이 엎드려 물가를 진다」 하였다.
崔豹古今注。魾魚好群浮水上。若萍。名白魾。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에 「비어(魾魚)는 떼 지어 물 위에 뜨기를 좋아해 부평초 같으므로 백비(白魾)라 한다」 하였다.
公今免官。
공이 이제 벼슬에서 물러났다.
與老子同姓。
노자와 성이 같다.
類篇。桋亦桑也。樹小而條長。
『유편』에 「이(桋)도 뽕나무다. 나무는 작고 가지는 길다」 하였다.
景福賦注云。㮰梠。謂連簷木也。
「경복전부(景福殿賦)」 주에 「비려(㮰梠)는 처마를 잇는 나무를 이른다」 하였다.
予頃寓居北山。自號白雲居士。
내가 지난번 북산에 붙여 살면서 스스로 백운거사(白雲居士)라 호하였다.
葛亮薦費褘。
제갈량이 비의(費褘)를 천거하였다.
吳都賦云。赬丹明璣云云。碕岸爲不枯。林木爲之閏凟。
「오도부(吳都賦)」에 「붉은 단사와 밝은 구슬」 운운하고 「물굽이 언덕이 이 때문에 마르지 않고 숲의 나무가 이 때문에 윤택하다」 하였다.
唐車服志曰。婦人施羃䍦以蔽身。
『당서』 거복지에 「부인은 너울을 써서 몸을 가린다」 하였다.
唐書云。椔翳榛莽。又云。椔剪宗支。
『당서』에 「선 채 마른 나무와 우거진 덤불」이라 하였고, 또 「종실의 갈래를 베어 냈다」 하였다.
鄭公林園兼有池塘
정공의 숲 동산에는 못도 아울러 있다.
以著取物曰欹。
젓가락으로 물건을 집는 것을 「기(欹)」라 한다.
前漢元馮翊宋畸。薦黃霸賢良。
전한의 우풍익(右馮翊) 송기(宋畸)가 황패(黃霸)를 현량(賢良)으로 천거하였다.
蓶似鳥韭而黃。
유(蓶)는 산부추와 비슷하나 누렇다.
晉書。王衍因宴集。爲人所怒。擧欙擲面。
『진서』에 「왕연(王衍)이 잔치에 모였다가 남의 노여움을 사서 그 사람이 들것을 들어 얼굴에 던졌다」 하였다.
木枝下交曰㯅。
나뭇가지가 아래로 얽힌 것을 「사(㯅)」라 한다.
鍾記室詩評曰。文體勦靜。
종기실(鍾記室)의 시평에 「글의 몸이 간결하고 고요하다」 하였다.
靑箱雜記云。文拙而好刻石者。謂之詅嗤。
『청상잡기(靑箱雜記)』에 「글이 졸렬한데도 돌에 새기기를 좋아하는 것을 영치(詅嗤)라 한다」 하였다.
吳公語予曰。欲於家園。結一茅堂。與予計論經書。自樂天居履道里。
오공이 나에게 「집 동산에 띠집 하나를 지어 그대와 경서를 따져 논하고 싶다」 하였다. 백낙천이 이도리(履道里)에 산 데서 온 말이다.
公作毛甲鱗三蟲詩。山海經云。南山獸多狛。注云云。
공이 털·껍데기·비늘 세 벌레의 시를 지었다. 『산해경』에 「남산에 박(狛)이라는 짐승이 많다」 하였고 주에 이러이러하다 하였다.
廣韻云。雖。蟲名。似蜥蜴而小。公旣作群蟲詩故云。
『광운』에 「수(雖)는 벌레 이름이니 도마뱀 비슷하나 작다」 하였다. 공이 이미 뭇 벌레의 시를 지었으므로 이렇게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