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11

혜원사에 남겨 쓰다留題惠元寺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89자 · 낭독 2.9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11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城中望北嶺。一髮雲外揷。杳然飛鳥背。誰謂着脚躡。可恠一箇身。已度碧千疊。高樓出樹杪。勢若飛來鴿。道人出門迎。霞襯半肩衲。步惜紫苔破。笑憐空谷答。件件淸景多。一一似可拾。秋光濃欲滴。山氣欝相襲。異石或千鱗。奇松皆七鬣。刳木作飛溝。遠與泉脉接。解敎他山水。繚繞走自及。大勝倒甁斟。何煩抱甕汲。上有聖僧居。華構高岌嶪。危階挾兩崖。七十有三級。未登頭已旋。已陟心彌讋。道人隨我來。身快猿猱捷。如行氈毯中。擧足輕躞蹀。相將禮眞容。雙手蓮花合。朅來臥匡床。窓樹風颼颯。穹豐一蒼巖。鼇伏堂之脅。中虛容幾人。大或屋許立。僧言此一穴。伊昔盎口狹。有僧曰惠元。於此修白業。後輩競鑿開。伋以廣栖集。雲屛任舒卷。石戶能開闔。嗟我本狂直。世味備相涉。不如早歸來。得此幽興愜。學道師應癯。遺形我方𢟯。塊然兩槁木。相對度小劫。

성안에서 북쪽 고개를 바라보니 한 올 터럭이 구름 밖에 꽂혔다 아득히 나는 새의 등이라 누가 발을 붙여 밟는다 하랴 괴이하다, 한 몸이 이미 푸른 천 겹을 건넜다 높은 다락이 나무 끝에 솟아 형세가 날아온 비둘기 같다 도인이 문을 나와 맞으니 노을이 한쪽 어깨 가사에 어린다 걸음은 붉은 이끼 깨짐을 아끼고 웃음은 빈 골짜기가 답함을 어여삐 여긴다 낱낱이 맑은 경치가 많아 하나하나 주울 만한 듯하다 가을빛이 짙어 방울지려 하고 산 기운이 우거져 서로 스민다 기이한 돌은 더러 천 비늘이요 기이한 솔은 다 일곱 갈기다 나무를 파서 나는 도랑을 만들어 멀리 샘 줄기와 잇는다 다른 산의 물로 하여금 감아 돌아 절로 이르게 할 줄 안다 병을 기울여 따르는 것보다 훨씬 낫고 어찌 번거로이 항아리를 안고 긷랴 위에 거룩한 중이 사는 곳이 있어 화려한 얽음이 높이 우뚝하다 위태로운 층계가 두 벼랑을 끼고 일흔세 계단이다 오르기도 전에 머리가 이미 어지럽고 오르고 나니 마음이 더욱 떨린다 도인이 나를 따라오는데 몸이 시원해 원숭이처럼 날래다 마치 담요 위를 가는 듯 발을 드는 것이 가벼이 사뿐사뿐하다 서로 이끌고 진영에 예를 올리며 두 손을 연꽃처럼 합한다 와서 평상에 누우니 창가 나무에 바람이 쏴쏴 분다 우묵하고 큰 푸른 바위 하나가 자라처럼 집 옆구리에 엎드렸다 속이 비어 몇 사람을 담으며 커서 혹 집을 세울 만하다 중이 이르기를, 이 굴이 옛날에는 동이 아가리처럼 좁았는데 혜원(惠元)이라는 중이 있어 여기서 깨끗한 업을 닦았고 뒷사람들이 다투어 파서 열어 넓혀서 깃들어 모이게 하였다 한다 구름 병풍은 펴고 걷힘을 맡기고 돌문은 열리고 닫힐 줄 안다 아, 나는 본디 미치고 곧아 세상 맛을 두루 겪었다 일찍 돌아옴만 못하니 이 그윽한 흥이 흡족함을 얻었다 도를 배워 스님은 응당 여위었고 형체를 잊어 나는 바야흐로 게으르다 우두커니 두 마른 나무가 서로 마주해 작은 겁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