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의 집에서 순채를 먹다友人家食蓴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1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烹氷古未聞。子忽誇能烹。呼來細相見。是之謂蓴羹。似氷而不融。遇烹而愈精。所以曰烹氷。令我聞之驚。我生無點累。自負心地淸。口常食俗物。喉底烟塵生。今日啖此菜。縷縷銀絲輕。齒頰帶霜雪。不覺失狂酲。何必學張翰。却向江東行。
얼음을 삶는다는 말은 예로부터 듣지 못했는데 그대가 문득 삶을 수 있다 자랑하네 불러다 자세히 보니 이것이 이른바 순채국이었네 얼음 같으면서 녹지 않고 삶을수록 더욱 곱네 그래서 얼음을 삶는다 한 것이니 내가 듣고 놀랐네 내 삶에는 점 하나 허물이 없어 마음자리 맑음을 스스로 자부하나 입으로는 늘 속된 것을 먹어 목구멍 밑에 연기와 티끌이 이네 오늘 이 나물을 먹으니 올올이 은실처럼 가볍네 이와 뺨에 눈서리를 띠어 어느새 미친 숙취가 사라졌네 어찌 반드시 장한(張翰)을 배워 도리어 강동으로 가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