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집에서 술을 차리고 꽃을 감상하다 취한 뒤에 붓 가는 대로 쓰다陳澕家置酒賞花。醉後走筆。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1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作詩非名花。筆下無妍詞。絶欲遇仙紅。膓錦時一披。及看此花𧰟。意極反如癡。終朝索一句。吟苦寒螿悲。畢竟寡好語。對花顔何施。花亦向我笑。低昂似相欺。有如多情子。浪憶一妖姬。道傍忽邂逅。相對空逶遲。脉脉竟無言。况奈論佳期。請君勸我醉。更賞夭夭枝。詩從醉裏出。儻可敵嬌姿。
시를 짓는 데 이름난 꽃이 아니면 붓 아래 고운 말이 나오지 않네 몹시도 신선 같은 붉은 꽃을 만나 비단 같은 창자를 한 번 펴 보고 싶었네 막상 이 꽃의 고움을 보니 뜻이 극에 달해 도리어 어리석은 듯하네 아침이 다하도록 한 구를 찾으며 괴로이 읊으니 찬 매미처럼 슬프네 끝내 좋은 말이 적으니 꽃을 마주하고 무슨 낯을 펴랴 꽃도 나를 향해 웃으며 숙였다 쳐들었다 하며 속이는 듯하네 마치 정 많은 사내가 부질없이 한 어여쁜 여인을 생각하다가 길가에서 문득 만나 마주하고 부질없이 머뭇거리는 것 같네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고 끝내 말이 없으니 하물며 좋은 기약을 논하기야 그대에게 청하노니 나에게 취하기를 권하게 다시 어여쁜 가지를 감상하리 시가 취한 속에서 나온다면 혹 고운 자태를 대적할 만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