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한 병 명漆壺銘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19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自瓠就壺。貯酒是資。頸長腹枵。不咽不歌。我故寶之。漆以光之。惟樽惟罍。曰甕曰甀。其在于邇。惟我所麾。其適于遠。偃蹇莫隨。憐哉是壺。不我敢離。南行萬里。道路嶔崎。前無泠泉。後絶淸池。獨爾所貯。我吻是滋。載於後乘。何必鴟夷。報汝之功。未識何宜。冊爲壺公。酒官是司。
박에서 병이 되어 술을 담는 데 쓰이네 목은 길고 배는 비었으며 목메지도 않고 노래하지도 않네 그래서 나는 이를 보배로 여겨 옻칠하여 빛나게 했네 술동이며 술독이며 항아리며 단지라 하는 것들은 가까이 있을 때는 오직 내가 부리는 대로 하나 먼 데로 갈 때는 뻣뻣하여 따라오지 못하네 사랑스럽다 이 병이여 나를 감히 떠나지 않네 남쪽으로 만 리를 갈 때 길이 험하고 가팔라 앞에는 찬 샘이 없고 뒤에는 맑은 못도 끊겼네 오직 네가 담은 것으로 내 입술을 적셨네 뒤따르는 수레에 실었으니 어찌 반드시 치이(鴟夷)여야 하랴 네 공을 갚기를 어떻게 해야 마땅한지 모르겠네 호공(壺公)으로 봉하여 술 맡은 벼슬을 맡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