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0

얼룩 삽살개에게 명하는 글命斑獒文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437자 · 낭독 4.2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0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爾毛有文。槃瓠之孫乎。爾捷而慧。烏龍之裔乎。鈴蹄而漆喙。舒節而急筋。戀主之誠可愛。守門之任斯存。予是以嘉乃猛愛乃意。育之於家。以寵以飼。汝雖賤畜。斗精所寄。其靈且智。物孰類爾。主人有命。汝宜竦耳。吠嘗無節人不懼。齧不擇人禍之始。有岌岌戴進賢三梁。言言挾華輈兩廂。帶櫑具佩水蒼。騶哄塡坊。鏘鏘琅琅而至者則汝勿吠。有高文大冊不可稽滯。聖慮念臣儻可奉制。急遣內豎。徵主人詣天陛者至則雖夜汝勿吠。有飣腶盤䐰。皿腌鼎餾。樽醴壺醔。饋先生行束脩者至則汝勿吠。有衣縫腋挾緗帙。欲與主人橫訊直質。踳駮難詰者林林而至則汝勿吠。所可吠且齧者。亦聽於吾。頕實虛乘不虞。穴墻墉窺室廬。謀攫金規竊鈇者則汝速吠速齧勿徐。其或外脂柔內鉗忌。偵人是非。潛毒隱刺者。突梯嚅咡而至則汝吠可也。有老覡淫巫。膯視橫眄。舞幻引怪。以詿以眩者。款扉而求見則汝齧之可也。有黠鬼妖魑緣隙以窺。伺黑以欺則汝吠而追之可也。有伏貍碩鼠鑽墻以處。廁匿睥睨則汝齧而殪之可也。橐有肉毋盜。鼎有湆毋舐。毋登堂。毋撥地。毋離門。毋嗜睡。生雛則惟獢惟獰。豹膺螭尾。以及于主人之孫子宜矣。嗚呼。汝若敬聽吾言。佩以周旋。千歲之後。主人登仙。飮汝以藥。牽而上天。孰曰不然。敬聽敬聽毋忽焉。

네 털에 무늬가 있으니 반호(槃瓠)의 자손인가. 너는 날래고 슬기로우니 오룡(烏龍)의 후예인가. 방울 같은 발굽에 옻칠한 주둥이요, 마디는 느슨하나 힘줄은 급하다. 주인을 그리는 정성이 사랑스럽고 문 지키는 임무가 여기에 있다. 나는 이 때문에 네 사나움을 아름답게 여기고 네 뜻을 사랑하여 집에서 기르며 아끼고 먹인다. 너는 비록 천한 짐승이나 북두의 정기가 깃든 바라, 그 신령하고 슬기로움이 어느 짐승이 너와 같으랴. 주인이 명하는 것이 있으니 너는 마땅히 귀를 곤두세워라.

짖는 데 마디가 없으면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고, 무는 데 사람을 가리지 않으면 화의 시작이다. 우뚝하게 진현관(進賢冠) 세 량을 이고 위엄 있게 화려한 수레의 양쪽을 끼고, 뇌구검(櫑具劍)을 차고 수창옥(水蒼玉)을 차고, 벽제 소리가 골목을 메우며 쟁쟁하고 낭랑하게 오는 이면 너는 짖지 말라. 큰 글과 큰 문서가 있어 지체할 수 없어, 임금의 생각이 신하에게 미쳐 혹 조서를 받들게 하려고 급히 내시를 보내 주인을 대궐 섬돌로 부르러 오는 이가 이르면, 비록 밤이라도 너는 짖지 말라. 저민 고기와 포를 담은 소반, 절인 것을 담은 그릇과 삶은 것을 담은 솥, 단술 동이와 걸러 낸 술병을 가지고 선생에게 드리며 속수(束脩)의 예를 행하러 오는 이가 이르면 너는 짖지 말라. 겨드랑이를 꿰맨 옷을 입고 누른 책갑을 끼고, 주인과 가로 묻고 세로 따져 뒤섞이고 얼룩져 힐난하기 어려운 이들이 줄지어 이르면 너는 짖지 말라.

짖고 물어도 될 것도 또한 내게서 들어라. 어둡고 빈 틈을 타 뜻하지 않게 담을 뚫고 방을 엿보며 금을 움키려 꾀하고 도끼를 훔치려 하는 자면, 너는 어서 짖고 어서 물되 늦추지 말라. 혹 겉은 기름지고 부드러우나 속으로는 집게처럼 꺼려, 남의 시비를 엿보아 몰래 독을 뿌리고 숨어서 찌르는 자가 어물어물 우물거리며 이르면 너는 짖어도 좋다. 늙은 박수와 음탕한 무당이 눈을 부릅뜨고 곁눈질하며 환술을 추고 괴이한 것을 끌어들여 속이고 홀리는 자가 문을 두드려 뵙기를 구하면 너는 물어도 좋다. 약은 귀신과 요사한 도깨비가 틈을 타 엿보고 어둠을 살펴 속이려 하면 너는 짖어 쫓아도 좋다. 엎드린 살쾡이와 큰 쥐가 담을 뚫고 자리 잡아 뒷간에 숨어 흘겨보면 너는 물어 죽여도 좋다.

주머니에 고기가 있어도 훔치지 말고, 솥에 국물이 있어도 핥지 말라. 마루에 오르지 말고, 땅을 파헤치지 말며, 문을 떠나지 말고, 잠을 즐기지 말라. 새끼를 낳거든 오직 사납고 오직 모질어 표범 가슴에 이무기 꼬리로 주인의 손자에게까지 미치는 것이 마땅하다. 아, 네가 만약 내 말을 공경히 들어 몸에 지니고 돌아다니면, 천 년 뒤에 주인이 신선이 되어 오를 때 너에게 약을 먹여 이끌고 하늘에 오르리라. 누가 그렇지 않다 하랴. 공경히 들어라 공경히 들어라, 소홀히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