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서 뇌물을 보고 쓴 설舟賂說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1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李子南渡一江。有與方舟而濟者。兩舟之大小同。榜人之多少均。人馬之衆寡幾相類。而俄見其舟離去如飛。已泊彼岸。予舟猶邅廻不進。問其所以。則舟中人曰。彼有酒以飮榜人。榜人極力蕩槳故爾。予不能無愧色。因歎息曰。嗟乎。此區區一葦所如之間。猶以賂之之有無。其進也有疾徐先後。況宦海競渡中。顧吾手無金。宜乎至今未霑一命也。書以爲異日觀。
이자(李子)가 남쪽으로 강 하나를 건널 때 배를 나란히 하여 건너는 이가 있었다. 두 배의 크고 작음이 같고 사공의 많고 적음이 고르며 사람과 말의 수도 거의 비슷했다. 그런데 이윽고 보니 그 배가 나는 듯이 떨어져 가 이미 저쪽 언덕에 닿았는데, 내 배는 아직도 맴돌며 나아가지 못했다. 그 까닭을 물으니 배 안의 사람이 말했다. 「저쪽에는 술이 있어 사공에게 먹였습니다. 사공이 힘을 다해 노를 저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끄러운 낯빛이 없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탄식하였다. 「아, 이 자잘한 갈댓잎 하나가 가는 사이에도 오히려 뇌물이 있고 없음으로 나아감에 빠르고 더디고 앞서고 뒤짐이 있구나. 하물며 벼슬 바다에서 다투어 건너는 가운데, 돌아보건대 내 손에 돈이 없으니 지금까지 벼슬 하나 적시지 못한 것이 마땅하다.」 적어서 뒷날 볼 거리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