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꺼리는 것에 대한 설忌名說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1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李子問吳德全曰。三韓自古以文鳴於世者多矣。鮮有牛童走卒之及知其名者。獨先生之名。雖至婦女兒童。無有不知者。何哉。先生笑曰。吾嘗作老書生。餬口四方。無所不至。故人多知者。而連擧春官不捷。則人皆指以爲今年某又不第矣。以此熟人之耳目耳。非必以才也。且無實而享虛名。猶無功而食千鐘之祿。吾以是窮困若此。平生所忌者名也。其貶損如此。或以公爲恃才傲物。此甚不知先生者也。
이자가 오덕전(吳德全)에게 물었다. 「삼한에서 예로부터 글로 세상에 이름을 울린 이가 많으나, 소 치는 아이와 심부름꾼까지 그 이름을 아는 이는 드뭅니다. 유독 선생의 이름은 아녀자와 아이에 이르기까지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일찍이 늙은 서생 노릇을 하며 사방으로 입에 풀칠하느라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소. 그래서 아는 이가 많은 것이오. 그런데 잇달아 예부의 과거에 응시하고도 붙지 못하니, 사람들이 다들 가리키며 「올해도 아무개가 또 떨어졌다」 하였소. 이 때문에 사람들의 귀와 눈에 익었을 뿐이지 반드시 재주 때문은 아니오. 또 실상 없이 헛된 이름을 누리는 것은 공 없이 천 종의 녹을 먹는 것과 같소. 나는 이 때문에 이처럼 궁하고 곤하오. 평생 꺼리는 것이 이름이오.」
그가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이와 같았다. 어떤 이는 공이 재주를 믿고 남에게 오만하다 하는데, 이는 선생을 몹시 알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