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1

새로 엮은 《어의촬요방(御醫撮要方)》 서新集御醫撮要方序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317자 · 낭독 2.8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1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夫有生之所重者。身與命而已矣。雖死生壽夭皆關乎天。若因節宣失適。爲疾恙所寇。而無良方妙藥以理之。則其間豈無橫失其命者耶。是古聖賢所以著本草,千金,斗門,聖惠諸方。以營救萬生之命者也。然部秩繁浩。難於省閱。其若寢疾彌留。勢可淹延時日。則謁醫可也。搜諸書求其方。亦可也。至如暴得重病。蒼皇危急。則又何暇謁醫搜書之是爲也。不若採菁撮要。以爲備急之具也。國朝有茶房所集藥方一部。文略效神。可濟萬命。以歲久脫漏。幾於廢失矣。今樞密相公崔諱宗峻。見而惜之。思欲摹印以廣其傳。以此聞于上。上遂欣然頷可。公於是分爲二卷。又添附諸方之最要者。使人繕寫。名之曰御醫撮要。承制勑送西京留守官彫印。使流播於人間。是亦聖朝視民如赤子之仁政也。抑又士君子所以汎濟含生之意也。噫。有善不可蓋者。予守也。公又命之爲序。則其可避乎。敢再拜略書梗槩耳。時丙戌四月日。序。

무릇 삶이 있는 이가 무겁게 여기는 것은 몸과 목숨일 뿐이다. 비록 죽고 살고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이 다 하늘에 달렸다 하나, 만약 조절함이 알맞음을 잃어 병에 침노당했는데 좋은 처방과 묘한 약으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그 사이에 어찌 뜻밖에 그 목숨을 잃는 이가 없겠는가. 이것이 옛 성현이 《본초(本草)》·《천금(千金)》·《두문(斗門)》·《성혜(聖惠)》 같은 여러 처방을 지어 만 생명을 구하려 한 까닭이다.

그러나 편질이 번거롭고 넓어 살펴 읽기 어렵다. 만약 병으로 누워 오래 끌어 형세가 시일을 늦출 만하다면 의원을 찾아가도 좋고 여러 책을 뒤져 그 처방을 구해도 좋다. 그러나 갑자기 중한 병을 얻어 허둥지둥 위급한 데 이르러서는 또 어느 겨를에 의원을 찾고 책을 뒤지겠는가. 알짜를 캐고 요긴한 것을 모아 급할 때 갖출 도구로 삼는 것만 못하다.

나라에 다방(茶房)이 모은 약방문 한 부가 있는데 글은 간략하고 효험은 신묘하여 만 생명을 건질 만하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되어 빠지고 새어 거의 없어질 지경이었다. 이제 추밀상공 최휘 종준(崔諱宗峻)이 이를 보고 아깝게 여겨 찍어 내어 그 전함을 넓히고자 생각하고 이를 임금께 아뢰었다. 임금이 마침내 기꺼이 끄덕여 허락하셨다. 공이 이에 두 권으로 나누고 또 여러 처방 가운데 가장 요긴한 것을 덧붙여 사람을 시켜 베껴 쓰게 하고, 이름을 《어의촬요》라 하였다. 명을 받들어 서경유수관(西京留守官)에 보내 새겨 찍게 하여 인간에 퍼지게 하였으니, 이 또한 거룩한 조정이 백성 보기를 갓난아이같이 하는 어진 정사요 또한 사군자가 널리 살아 있는 것을 건지려는 뜻이다.

아, 착한 일이 있으면 덮어 둘 수 없는 것이 내가 지키는 바다. 공이 또 나에게 서를 지으라 명하니 어찌 피할 수 있으랴. 감히 두 번 절하고 대강을 적을 뿐이다. 때는 병술년 사월 아무 날에 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