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각 오세문(吳世文)께 조수를 논하여 보낸 글寄吳東閣世文論潮水書
月日。良醞丞同正李某。謹再拜奉書于東閣大丈先生座下。僕不揆頑騃。自未冠時。已脫略同輩。喜與先生長者遊。然未有博大眞儒如先生輩者而得與之遊。日聞所不聞也。先生長我無慮三十餘年。則雖子畜之弟畜之尙可。而乃許以忘年。僕安敢當之。日昨。枉車騎顧僕於蓬蓽之中。索僕近所著詩文。方垂覽之際。從容謂之曰。吾嘗著潮水論。未曾示人。子好學者也。異日過我。當以見示。僕聞之。自以爲今之能文博古老儒宿學。不爲不多。而獨以僕爲可敎。將示以箱中之祕寶。如僕者宜萬萬榮且感也。迨數日造謁而請之。則翻然改曰。吾之論。不足觀也。子亦著若論若說。窮釋潮之所自。然後吾亦示之也。而卒不爲之借觀。僕初不知先生之有此論。以先生先及之。故不憚道遠。趨造於門墻。而反不許觀。甚恨甚恨。噫。僕涉學日淺。新進小生也。何足知潮之所以進退盈縮之理哉。如知之。又何必要公之論而痛欲見耶。夫鳥獸草木常生常化之理。陰陽奇耦之數。寒暑往來之變。與夫天地所以玄黃。日月所以盈昃。其道茫昧。宜若不可測知。然經傳子史。講之之詳。故凡老於儒者。雖未能洞然大曉。亦無有不得其彷彿者。而僕尙曚然昧然者。徒以年少識劣。讀書未力故爾。況潮水之源。雖古人猶或罕言。僕是何者。敢以區區之識。紛然辨列。使當世之士撫掌大笑耶。然而先生有以及此者。吾知之矣。此必料僕之決不能著書論潮。先設所難。杜塞來徑。欲勿出其論耳。意者豈以僕爲狂瞽無識。而不欲使之見耶。苟如是。昨之許以見示。特誑我也戲我也。豈篤信君子與人勿欺之意乎。不然。僕豈昨日爲可敎之人。而今日忽狂瞽無識耶。抑或以爲世無知者。而姑傳于後。將以俟來者之知耶。苟如是。先生忍不令同時作者共甘滋液。而獨使異世之士。得前人所未得嘗希世之味。而咀嚼甘芳。飫於口飽於腹耶。是大不然。想先生必不爾也。然則未識先生之志之何如也。若終祕嗇而不出焉。則非吾分所當得。是吾不復有冀矣。但仰問一言。要識其旨歸耳。伏惟先生聽之。先生立論。必有根據。據何書證何人而言耶。若以水經爲據。則水經已有其說。何更有先生之說乎。若以盧肇爲證。則其賦已詳之矣。先生之論。必不能更及也。抑聞釋氏有論。釋氏則因說法而證引耳。非必特地爲海潮而表量剖析也。況以釋氏爲準。則儒家之短也。儒先釋生。通天地曰儒。儒必待釋氏然後言天地耶。是亦非所以爲證也。其餘古人所云地游應海。介人呼吸。陽侯靈胥。鼓怒所作。則尤無所可取也。以先生之宏識博學。當別有所論述。傳播士林。有以聳動衆聽。知世有博物君子宜矣。而何深閉固拒若是之甚耶。僕嘗以水經肇賦。私折衷焉。則水經所謂鰌魚出入有候。故潮之進退有期。此則似爲賤近。雖僕亦未知的信也。盧歙州獨判然決疑。以潮之進退。因乎日其盈其縮。與月同體。因自設十四問。隨而釋之。窮理盡性。妙入毫芒。其法與易象渾天吻合。吾以此爲確論。竊謂後雖有論者。殆未能過此。及聞先生有所論著。汲汲然求見之滋切。如渴者之思飮。痒者之待爬。而未嘗須臾弛念也。伏望閣下不惜祕蘊。還以一言見賜。指其所以證據之意。使小子拂聾披瞽。粲然觀黼黻之文。鏘然聞韶濩之音。則此亦大君子所以諭掖後進之一端也。不宣。某再拜。
어느 달 어느 날, 양온승 동정(良醞丞同正) 이 아무는 삼가 두 번 절하고 동각(東閣) 어르신 좌하께 글을 올립니다.
저는 제 미련하고 어리석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갓 쓰기 전부터 이미 또래를 벗어나 선생과 어른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생 같은 넓고 큰 참선비를 만나 어울리며 날마다 듣지 못한 것을 들은 적은 없었습니다. 선생은 저보다 어림잡아 서른 해 남짓 위이시니 자식처럼 기르시거나 아우처럼 거두셔도 오히려 마땅한데, 나이를 잊자고 허락하시니 제가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지난날 수레와 말을 굽혀 쑥대와 잡목 속에 있는 저를 찾아 주시고 제가 요즘 지은 시와 글을 찾아보셨습니다. 마침 내려 보시던 참에 조용히 이르셨습니다. 「내가 일찍이 조수론(潮水論)을 지었으나 아직 남에게 보인 적이 없다. 그대는 배움을 좋아하는 이니, 뒷날 나를 찾아오면 마땅히 보여 주겠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스스로 이렇게 여겼습니다. 오늘날 글 잘하고 옛것에 넓은 늙은 선비와 오래 배운 이가 적지 않은데 오직 저만을 가르칠 만하다 여기시어 상자 속의 숨은 보배를 보이려 하시니, 저 같은 자에게는 만 번 영광이요 만 번 고마운 일이라고.
며칠 뒤 찾아뵙고 청하니 문득 말을 바꾸어 이르셨습니다. 「내 글은 볼 것이 없다. 그대도 논이든 설이든 지어 조수가 어디서 오는지를 다 풀어 보라. 그런 뒤에 나도 보여 주겠다.」 그러고는 끝내 빌려 보여 주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선생께 이 글이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선생이 먼저 말을 꺼내셨기에 길 먼 것도 꺼리지 않고 문간으로 달려갔는데 도리어 보기를 허락하지 않으시니, 몹시 한스럽고 몹시 한스럽습니다.
아, 저는 배움에 든 날이 얕은, 갓 나아온 어린 사람입니다. 어찌 조수가 나아가고 물러나고 차고 줄어드는 이치를 알 만하겠습니까. 만일 그것을 안다면 또 무엇 때문에 공의 글을 구하여 애타게 보고 싶어 하겠습니까. 무릇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가 늘 나고 늘 바뀌는 이치, 음과 양의 홀수와 짝수의 셈, 추위와 더위가 오가는 바뀜, 그리고 하늘과 땅이 검고 누런 까닭, 해와 달이 차고 기우는 까닭은 그 길이 아득하여 헤아려 알 수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경과 전과 자와 사에서 이를 자세히 밝혔으므로, 무릇 선비로 늙은 이는 비록 환히 크게 깨치지는 못하여도 그 비슷한 것조차 얻지 못한 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직도 흐릿하고 어두운 것은 한갓 나이가 어리고 아는 것이 얕으며 글 읽기에 힘쓰지 못한 탓입니다. 하물며 조수의 근원은 옛사람도 오히려 드물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무엇이기에 감히 하찮은 아는 것으로 어지러이 따져 늘어놓아 이 세상 선비들이 손뼉 치며 크게 웃게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선생이 이런 말을 꺼내신 까닭을 저는 압니다. 이는 반드시 제가 조수를 논하는 글을 결코 짓지 못할 줄 헤아리시고, 먼저 어려운 것을 놓아 오는 길을 막아 그 글을 내놓지 않으려 하신 것입니다. 생각하기에, 혹 저를 미친 소경으로 아는 것이 없다 여기시어 보이고 싶지 않으신 것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지난날 보여 주겠다 허락하신 것은 다만 저를 속이고 저를 놀린 것이니, 어찌 미덥고 도타운 군자가 남을 속이지 않는 뜻이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제가 어찌 어제는 가르칠 만한 사람이었다가 오늘 갑자기 미친 소경으로 아는 것이 없게 되겠습니까.
또 혹 세상에 알아줄 이가 없다 여기시어 우선 뒤에 전하여 올 사람이 알아주기를 기다리려 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선생은 차마 한때의 글 짓는 이들에게 단 국물을 함께 맛보게 하지 않으시고, 홀로 다른 세상의 선비만이 앞사람이 얻지 못한 세상에 드문 맛을 얻어 달고 향기로운 것을 씹어 입에 넘치고 배에 부르게 하시려는 것입니까. 이는 크게 그렇지 않으니, 선생은 반드시 그러시지 않을 줄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선생의 뜻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일 끝내 숨기고 아껴 내놓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제 분수로 마땅히 얻을 것이 아니니, 저는 다시 바라지 않겠습니다. 다만 우러러 한마디 묻고자 하는 것은 그 뜻이 돌아가는 데를 알고 싶을 뿐입니다. 삼가 선생께서는 들어 주소서.
선생이 논을 세우셨다면 반드시 근거가 있을 것입니다. 어느 글에 의거하고 어느 사람을 들어 말씀하신 것입니까. 만일 《수경(水經)》을 근거로 삼았다면 《수경》에 이미 그 말이 있으니 어찌 다시 선생의 말이 있겠습니까. 만일 노조(盧肇)를 증거로 삼았다면 그 부(賦)에서 이미 자세히 말하였으니 선생의 논이 반드시 거기에 더 미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또 듣건대 불가에도 논이 있다 합니다. 그러나 불가는 법을 설하면서 끌어다 증거로 댄 것일 뿐이요, 굳이 바닷물의 밀물을 두고 헤아리고 쪼개어 밝힌 것은 아닙니다. 하물며 불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유가의 부족함입니다. 유가가 앞이요 불가가 뒤에 났으며, 하늘과 땅을 통하는 이를 유(儒)라 하는데, 유가가 반드시 불가를 기다린 뒤에 하늘과 땅을 말하겠습니까. 이 또한 증거로 삼을 것이 아닙니다. 그 나머지 옛사람이 말한 「땅이 떠서 바다에 응한다」, 「껍데기 있는 것들이 숨을 쉰다」, 「양후(陽侯)와 영서(靈胥)가 성내어 부풀려 일으킨다」는 따위는 더욱 취할 것이 없습니다.
선생의 넓은 앎과 두루 배우심으로 마땅히 따로 지어 놓은 것이 있어 선비들 사이에 퍼뜨려 뭇 사람의 귀를 놀라게 하고, 세상에 사물을 널리 아는 군자가 있음을 알게 하셔야 옳습니다. 그런데 어찌 깊이 닫고 굳게 막기를 이토록 심하게 하십니까.
저는 일찍이 《수경》과 노조의 부를 가지고 가만히 견주어 절충해 보았습니다. 《수경》에 이른 「큰 물고기가 나고 드는 데 철이 있으므로 조수가 나아가고 물러나는 데 때가 있다」는 것은 낮고 얕은 듯하여, 저조차도 딱 믿을 만한지 모르겠습니다. 흡주(歙州) 노조만은 뚜렷이 의심을 갈랐습니다. 조수가 나아가고 물러남은 해에 말미암고, 그 차고 줄어듦은 달과 한 몸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열네 가지 물음을 놓고 따라가며 풀었으니, 이치를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묘함이 털끝까지 들어갔고, 그 법이 역(易)의 상과 혼천(渾天)의 셈에 딱 맞습니다. 저는 이것을 확실한 논으로 여기며, 가만히 생각하기에 뒤에 논하는 이가 있더라도 아마 이보다 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선생께 지어 놓은 것이 있다는 말을 듣고 보기를 구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여, 목마른 이가 마실 것을 생각하고 가려운 이가 긁어 주기를 기다리는 듯 잠시도 마음을 놓은 적이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합하께서는 숨겨 둔 것을 아끼지 마시고 도리어 한마디를 내려 주시어 그 증거로 삼은 뜻을 가리켜 주소서. 어린 저의 먹은 귀를 털어 주고 감긴 눈을 열어 주어, 환하게 무늬 놓은 글을 보고 맑게 울리는 소(韶)와 호(濩)의 소리를 듣게 해 주신다면, 이 또한 큰 군자가 뒤에 오는 이를 가르쳐 이끄는 한 가지 일입니다.
이만 다 펴지 못합니다. 아무는 두 번 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