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지(全履之)가 글을 논한 편지에 답하는 글答全履之論文書
月日。某頓首。履之足下。間闊未覿。方深渴仰。忽蒙辱損手敎累幅。奉翫在手。尙未釋去。不惟文彩之曄然。其論文利病。可謂精簡激切。直觸時病。扶文之將墮者已。甚善甚善。但書中譽僕過當。至況以李杜。僕安敢受之。足下以爲世之紛紛效東坡而未至者。已不足導也。雖詩鳴如某某輩數四君者。皆未免效東坡。非特盜其語。兼攘取其意。以自爲工。獨吾子不襲蹈古人。其造語皆出新意。足以驚人耳目。非今世人比。以此見褒抗僕於九霄之上。玆非過當之譽耶。獨其中所謂之創造語意者。信然矣。然此非欲自異於古人而爲之者也。勢有不得已而然耳。何則。凡效古人之體者。必先習讀其詩。然後效而能至也。否則剽掠猶難。譬之盜者。先窺諜富人之家。習熟其門戶墻籬。然後善入其室。奪人所有。爲己之有。而使人不知也。不爾。未及探囊胠篋。必見捕捉矣。財可奪乎。僕自少放浪無檢。讀書不甚精。雖六經子史之文。涉獵而已。不至窮源。況諸家章句之文哉。旣不熟其文。其可效其體盜其語乎。是新語所不得已而作也。且世之學者。初習場屋科擧之文。不暇事風月。及得科第。然後方學爲詩。則尤嗜讀東坡詩。故每歲榜出之後。人人以爲今年又三十東坡出矣。足下所謂世之紛紛者是已。其若數四君者。效而能至者也。然則是亦東坡也。如見東坡而敬之可也。何必非哉。東坡。近世以來。富贍豪邁。詩之雄者也。其文如富者之家金玉錢貝。盈帑溢藏。無有紀極。雖爲寇盜者所嘗攘取而有之。終不至於貧也。盜之何傷耶。且孟子不及孔子。荀楊不及孟子。然孔子之後。無大類孔子者。而獨孟子效之而庶幾矣。孟子之後。無類孟子者。而荀楊近之。故後世或稱孔孟。或稱軻雄荀孟者。以效之而庶幾故也。向之數四輩。雖不得大類東坡。亦效之而庶幾者也。焉知後世不與東坡同稱。而吾子何拒之甚耶。然吾子之言。亦豈無所蓄而輕及哉。姑藉譽僕。將有激於今之人耳。昔李翺曰。六經之詞。創意造言。皆不相師。故其讀春秋也。如未嘗有詩。其讀詩也。如未嘗有易。其讀易也。如未嘗有書。若山有恒華。瀆有淮濟。夫六經者。非欲夸衒詞華。要其歸率皆談王霸論道德與夫政敎風俗興亡理亂之源者也。其辭意宜若有相襲。而其不同如此。所謂今人之詩。雖源出於毛詩。漸復有聲病儷偶依韻次韻雙韻之制。務爲雕刻穿鑿。令人局束不得肆意。故作之愈難矣。就此繩檢中。莫不欲創新意臻妙極。而若攘取古人已導之語。則有許底功夫耶。請以聲律以來近古詩人言之。有若唐之陳子昂,李白,杜甫,李翰,李邕,楊,王,盧,駱之輩。莫不汪洋閎肆。傾河淮倒瀛海。騁其豪猛者也。未聞有一人效前輩某人之體。刲剝其骨髓者。其後又有韓愈,皇甫湜,李翺,李觀,呂温,盧同,張籍,孟郊,劉,柳,元,白之輩。聯鏕竝轡。馳驟一時。高視千古。亦未聞效陳子昂若李杜楊王而屠割其膚肉者。至宋又有王安石,司馬光,歐陽脩,蘇子美,梅聖兪,黃魯直,蘇子贍兄弟之輩。亦無不撑雷裂月。震耀一代。其效韓氏皇甫氏乎。效劉柳元白乎。吾未見其刲剝屠割之迹也。然各成一家。梨橘異味。無有不可於口者。夫編集之漸增。蓋欲有補於後學。若皆相襲。是沓本也。徒耗費楮墨爲耳。吾子所以貴新意者蓋此也。然古之詩人。雖造意特新也。其語未不圓熟者。蓋力讀經史百家古聖賢之說。未嘗不熏鍊於心。熟習於口。及賦詠之際。參會商酌。左抽右取。以相資用。故詩與文雖不同。其屬辭使字。一也。語豈不至圓熟耶。僕則異於是。旣不熟於古聖賢之說。又恥效古詩人之體。如有不得已及倉卒臨賦詠之際。顧乾涸無可以費用。則必特造新語。故語多生澁可笑。古之詩人。造意不造語。僕則兼造語意無愧矣。由是。世之詩人。橫目而排之者衆矣。何吾子獨過美若是之勤勤耶。嗚呼。今世之人。眩惑滋甚。雖盜者之物。有可以悅目。則第貪翫耳。孰認而詰其所由來哉。至百世之下。若有人如足下者。判別其眞贗。則雖善盜者。必被擒捕。而僕之生澁之語。反見褒美。類足下今日之譽。亦所未知也。吾子之言。久當驗焉。不宣。某再拜。
어느 달 어느 날, 아무는 머리를 숙입니다. 이지 족하. 오래 떨어져 뵙지 못하여 바야흐로 깊이 목마르게 우러르고 있었습니다. 문득 손수 쓰신 가르침 여러 폭을 내려 주시어, 손에 받아 들고 즐기며 아직 놓지 못합니다. 글의 빛이 환한 것만이 아니라, 글의 나음과 병듦을 논한 것이 정밀하고 간결하며 매섭고 간절하다 할 만하여, 곧바로 이 시대의 병에 닿고 무너지려는 글을 붙들었습니다. 매우 좋고 매우 좋습니다. 다만 글 가운데 저를 기린 것이 지나쳐 이백과 두보에 견주기까지 하였으니, 제가 어찌 감히 받겠습니까.
족하는 세상에서 어지러이 동파를 본떠 이르지 못한 이들은 이미 이끌 것이 없다 하셨습니다. 시로 이름난 아무아무 네댓 분조차 다 동파를 본뜸을 면하지 못하여, 그 말만 훔치는 것이 아니라 그 뜻까지 아울러 빼앗아 제 솜씨로 삼는다 하셨습니다. 오직 그대만은 옛사람을 밟아 따르지 않아 그 말 지음이 다 새 뜻에서 나와 남의 귀와 눈을 놀래기에 넉넉하니, 이 세상 사람과 견줄 바가 아니라 하셨습니다. 이로써 저를 기려 아홉 하늘 위로 들어 올리셨으니, 이는 지나친 칭찬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그 가운데 이른바 말과 뜻을 새로 지어낸다는 것은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는 스스로 옛사람과 달라지고자 하여 그리 한 것이 아니요, 형세가 어쩔 수 없어 그리 된 것일 뿐입니다. 왜 그런가. 무릇 옛사람의 체를 본뜨는 이는 반드시 먼저 그 시를 익혀 읽은 뒤에야 본떠서 이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훔치는 일조차 오히려 어렵습니다. 도둑에 견주면, 먼저 부잣집을 엿보아 그 문과 담을 익혀 잘 안 뒤에야 그 방에 잘 들어가 남의 것을 빼앗아 제 것으로 삼으면서도 남이 모르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머니를 더듬고 상자를 열기도 전에 반드시 잡힙니다. 재물을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어려서부터 멋대로 놀아 단속이 없어 글 읽기가 그리 정밀하지 못하였습니다. 육경과 자와 사의 글조차 대충 훑었을 뿐 근원을 파는 데는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하물며 여러 집의 글귀 풀이한 글이겠습니까. 이미 그 글에 익지 못하였으니 그 체를 본뜨고 그 말을 훔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새 말을 어쩔 수 없이 지어내는 까닭입니다.
또 세상의 배우는 이들은 처음에 과거 글을 익혀 시 읊을 틈이 없고, 과거에 오른 뒤에야 바야흐로 시 짓기를 배우니 더욱 동파의 시 읽기를 즐깁니다. 그래서 해마다 방이 나붙은 뒤에는 사람마다 「올해 또 동파 서른이 나왔다」 합니다. 족하가 이른 「세상의 어지러운 이들」이 이것입니다. 그 네댓 분 같은 이는 본떠서 이른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또한 동파입니다. 동파를 본 듯이 공경해도 좋으니, 굳이 그르다 할 것이 무엇입니까.
동파는 근세 이래 넉넉하고 호방하여 시의 영웅입니다. 그 글은 부잣집의 금과 옥과 돈과 조개가 곳간에 차고 넘쳐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도둑이 빼앗아 가진다 해도 끝내 가난해지지 않으니, 훔친다고 무엇을 상하겠습니까.
또 맹자는 공자에 미치지 못하고 순자와 양웅은 맹자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공자 뒤에 크게 공자를 닮은 이가 없는데 오직 맹자가 본떠 거의 가까웠고, 맹자 뒤에 맹자를 닮은 이가 없는데 순자와 양웅이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뒷세상에서 「공맹」이라 하고 「가웅」이니 「순맹」이니 하는 것은 본떠서 거의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네댓 분도 비록 동파를 크게 닮지는 못하였으나 또한 본떠서 거의 가까운 이들입니다. 뒷세상에서 동파와 나란히 일컫지 않을 줄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런데 그대는 어찌 그토록 막으십니까. 그러나 그대의 말이 또한 어찌 쌓인 것 없이 가볍게 나왔겠습니까. 우선 저를 기리는 것을 빌려 요즘 사람들을 흔들려 하신 것일 뿐입니다.
옛날 이고(李翺)가 말하였습니다. 「육경의 말은 뜻을 새로 내고 말을 지어 다 서로 본뜨지 않았다. 그래서 《춘추》를 읽으면 《시》가 있은 적이 없는 듯하고, 《시》를 읽으면 《역》이 있은 적이 없는 듯하고, 《역》을 읽으면 《서》가 있은 적이 없는 듯하다. 산에 항산과 화산이 있고 큰 물에 회수와 제수가 있는 것과 같다.」 무릇 육경은 말의 꽃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요, 그 돌아가는 데를 보면 다 왕도와 패도를 말하고 도덕을 논하며 정치와 가르침과 풍속과 흥하고 망하고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근원을 말한 것입니다. 그 말과 뜻이 서로 이어받은 데가 있을 듯한데도 다름이 이와 같습니다.
이른바 요즘 사람의 시는 비록 근원이 《모시》에서 나왔으나, 차츰 다시 소리의 병과 짝 맞춤과 운을 따르고 운을 잇고 겹운 하는 법이 생겨, 새기고 뚫기에 힘써 사람을 얽어매어 뜻을 마음껏 펴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짓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이 얽매임 속에서도 새 뜻을 내어 묘함의 끝에 이르려 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만일 옛사람이 이미 끌어 쓴 말을 빼앗는다면 무슨 공부가 있겠습니까.
청하건대 성률이 생긴 뒤 가까운 옛 시인들로 말해 보겠습니다. 당의 진자앙(陳子昂)·이백·두보·이한(李翰)·이옹(李邕)과 양씨·왕씨·노씨·낙씨 같은 이들은 다 넓고 크고 거침없어 황하와 회수를 기울이고 큰 바다를 뒤엎으며 그 호방함을 달린 이들입니다. 한 사람도 앞사람 아무의 체를 본떠 그 뼈와 골을 발라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 뒤에 또 한유·황보식(皇甫湜)·이고·이관(李觀)·여온(呂溫)·노동(盧同)·장적(張籍)·맹교(孟郊)와 유씨·유씨·원씨·백씨 같은 이들이 재갈을 잇고 고삐를 나란히 하여 한때를 달리며 천고를 높이 보았습니다. 또한 진자앙이나 이백·두보·양·왕을 본떠 그 살을 갈랐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송에 이르러 또 왕안석·사마광·구양수·소자미(蘇子美)·매성유(梅聖兪)·황노직(黃魯直)과 소자첨(蘇子瞻) 형제 같은 이들이 있어, 또한 우레를 떠받치고 달을 찢어 한 시대를 흔들어 빛내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그들이 한씨와 황보씨를 본떴습니까. 유·유·원·백을 본떴습니까. 저는 그 발라내고 가른 자취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마다 한 집을 이루었으니, 배와 귤이 맛이 다르되 입에 맞지 않는 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무릇 엮은 책이 차츰 늘어나는 것은 대개 뒤에 배우는 이에게 보탬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만일 다 서로 이어받는다면 이는 같은 것을 거듭 찍어 내는 것이니, 한갓 종이와 먹을 헛되이 쓰는 일일 뿐입니다. 그대가 새 뜻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이 대개 이것입니다.
그러나 옛 시인은 비록 뜻을 지어냄이 특히 새로웠으되 그 말이 둥글게 익지 않은 것은 없었습니다. 대개 경과 사와 백가와 옛 성현의 말을 힘써 읽어 마음에 익히고 입에 익히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읊을 때에 이르러 견주어 모으고 헤아려, 왼쪽에서 뽑고 오른쪽에서 취하여 서로 밑감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시와 글이 비록 다르나 말을 엮고 글자를 부리는 것은 하나입니다. 말이 어찌 둥글게 익는 데 이르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와 다릅니다. 이미 옛 성현의 말에 익지 못하고 또 옛 시인의 체를 본뜨기를 부끄러워합니다. 어쩔 수 없거나 갑작스레 읊을 자리에 이르면, 돌아보아도 말라붙어 쓸 것이 없으니 반드시 새 말을 따로 지어냅니다. 그래서 말이 설고 껄끄러워 웃음거리 될 것이 많습니다. 옛 시인은 뜻을 지어내되 말을 지어내지 않았는데, 저는 말과 뜻을 아울러 지어내고도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세상의 시인 가운데 눈을 부릅뜨고 저를 밀어내는 이가 많습니다. 어찌 그대만이 이토록 부지런히 지나치게 아름답다 하십니까.
아, 요즘 사람은 눈이 어지러이 흐림이 더욱 심하여 도둑의 물건이라도 눈에 즐거우면 다만 탐내어 즐길 뿐입니다. 누가 알아보고 그 온 데를 따지겠습니까. 백 세 뒤에 족하 같은 이가 있어 참과 거짓을 가른다면, 도둑질 잘하는 이라도 반드시 잡힐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설고 껄끄러운 말이 도리어 기림을 받아 족하의 오늘 칭찬과 같아질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대의 말은 오래되면 마땅히 들어맞을 것입니다.
이만 다 펴지 못합니다. 아무는 두 번 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