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33

최정빈(崔正份)이 보문각 대학사를 사양하나 허락하지 않는 교서崔正份讓寶文閣大學士不允敎書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197자 · 낭독 1.7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3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署閣曰寶文。蓋宋所制。而我朝亦置之。選當代名儒。以充學士。其以宰相處之。則加大以別之也。苟有贍識宿望者。樞密亦得兼焉。是爲特異之恩。而求之近古。無有幾人矣。卿文能華國。德足經邦。以輪翮之長才。處樞機之重地。身已綰於金紫。手不釋於縑緗。其晝夜讀書之勤。若少壯隷業之始。達位之篤學如此。寡人於今日見焉。詞句之勁峭也。何止作五言城。記識之淹通也。實可謂九經庫。然文章之任猶闕。在眷注之意何如。是用特崇書殿之資。蓋示詞臣之貴。以此答稽古之力。又何必抗章而辭。云云。

운운.

각을 두어 보문이라 한 것은 대개 송나라가 만든 제도인데 우리 조정도 두었다. 그때의 이름난 선비를 뽑아 학사로 채우되, 재상으로 그 자리에 두면 큰 대 자를 더하여 가렸다. 진실로 넉넉한 식견과 오랜 명망이 있으면 추밀도 겸할 수 있었으니, 이는 남다른 은혜라 가까운 예전에서 찾아도 몇 사람 없다.

경은 글로 나라를 빛낼 만하고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기에 넉넉하다. 바퀴와 깃죽지 같은 뛰어난 재주로 기밀의 무거운 자리에 있다. 몸은 이미 금자의 인끈을 매었으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밤낮으로 글 읽는 부지런함이 젊어서 학업을 익히던 처음과 같다. 높은 자리에 이르고도 배움에 도타움이 이와 같음을 과인이 오늘 보았다.

글귀가 굳세고 가파르니 어찌 오언시의 으뜸이라는 일컬음에 그치겠으며, 기억하고 아는 것이 깊고 통하니 참으로 구경의 곳간이라 이를 만하다. 그러나 문장의 소임이 아직 비었으니 돌보는 뜻에 어떠하겠는가. 이에 특별히 보문각의 품계를 높여 글 짓는 신하의 귀함을 보인다. 이로써 옛것을 상고한 힘에 갚으니 또 어찌 굳이 글을 올려 사양하는가.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