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35

등사랑 검교상서호부시랑 행상서도관원외랑으로 자금어대를 받은 윤공의 묘지명登仕郞檢校尙書戶部侍郞行尙書都官員外郞賜紫金魚袋尹公墓誌銘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911자 · 낭독 8.3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5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予爲文。至碑碣銘誌。苟不誠其人信其實。固拒而不受。心竊道曰。南山之石。其有何辜。忍雕損貞姿。書溢美之辭耶。及尹公之卒也。旣得誠其人。又得其實。故不可以不敍。公諱承解。字子長。樹州守安縣人也。三韓功臣內史令明義公尹逢之七世孫也。曾祖檢校大子詹事諱衡。皇祖大樂署丞諱壽。皇考檢校戶部尙書行尙書戶部郞中賜紫金魚袋諱裕延。皇公實尙書府君第二子也。少力學。年十八。中司馬試一科。再擧春官不捷。以門蔭從仕。調補知水州事判官。水州號俗阜。率爲人求得。故鮮克淸廉。政皆姑息。吏狃成習。頗緩弛無紀。公到官。一切以法繩之。吏畏憚莫敢正視。凡約束一如條禁。無敢犯者。以政異聞。秩滿。除玄德宮錄事。尋遷左右衛錄事參軍事。俄出爲珍島縣令。淸約一如水州所理。威愛則加焉。縣在海中。腥陋有蠻䝤風。凡應對賓客。不似沿路他郡。奉使者苦之。公悉更革。使如巨官大邑。又民恃魚鹽。不甚力農。公督令歸畝。始也民有憚色。及得其入。然後顧樂趨之。雖歲儉不匱。入爲神虎衛錄事參軍事。癸巳歲。輦下兵起。衣冠搢紳。無不逃竄。公獨守官確固。神色自若。上聞而嘉之。召見面奬曰。昔聞若之忠勇。今見其實。改授神虎衛別將。公以虎職非本情。故不受。後拜閣門祗侯。旋擢監察御史。出爲西北道分臺。先是。成州豪儻。擅殺官妓。前後奉使者。初欲窮理其狀。延及平民。無不械縛。闔郡騷擾。未幾置而不問。由是常爲貨賂之藪。公入州。鞫按詳審。得首謀與手殺者誅之。餘悉不理。一州安之。內外俱慶。入爲尙食奉御。賜緋魚袋。又遷尙書都官員外郞。賜金紫。上嘗遣諫官宋端南。方採訪十年來前後典郡者之政績優劣。水州以公所理擧爲最。凡三十年矣。宋公曰。朝旨以十年爲界。此甚遼遠。恐違詔條之意。吏民曰。天子所以遣使臣。弟求異政耳。尹公遺愛。至今未嘗去民心。尙如前日。故擧之。豈論遠近耶。皆伏地叩頭。其請至痛切。宋公頷而奏之。上益嘉嘆。有司亦不敢訾焉。某年月日。得疾卒于第。年若干。某月日。葬于某山。夫人張氏。大府卿諱忠義女也。生子男二人。曰松筠曰松竹。松筠嘗倅密城。以淸苦嚴毅聞。松竹尙爲散官。女一人。未適人。公爲人資端直敢言。所至率淸素。家無甔石之儲。凡不問家事。怡怡如也。旦夕但以奉官守職爲志。眞朝廷之正人也。而官不過員郞。惜哉。子松筠等。敍公之世系官爵。因人之與予有舊者。來請銘於予。予不敢拒者。以予先君嘗與公同寮。每見訪。衮衮接話言。予雖未測淵源。頗窺畔岸。又所書遺迹。則皆播在人口。而非其嗣之列以來請者。是非誠其人信其實者耶。故執筆而銘之云。遺子百金。惟禍之召。公獨以淸。萬世之寶。有鬱斯岡。𡪡安宅兆。公保於此。迺子孫之保。刻銘納竁。爲後之考。

내가 글을 짓되 비갈과 명지에 이르러서는, 그 사람을 미쁘게 여기고 그 사실을 믿지 못하면 굳이 물리치고 받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혼자 말하였다. 「남산의 돌이 무슨 허물이 있기에 차마 곧은 자태를 쪼아 상하게 하고 지나치게 기리는 말을 새기랴.」 윤공이 죽음에 이르러서는 그 사람을 미쁘게 여길 수 있었고 또 그 사실을 얻었으므로 적지 않을 수 없었다.

공의 휘는 승해(承解)요 자는 자장(子長)이니 수주 수안현(守安縣) 사람이다. 삼한공신 내사령 명의공 윤봉(尹逢)의 칠대손이다. 증조는 검교태자첨사 휘 형(衡)이요, 할아버지는 대악서승 휘 수(壽)며, 아버지는 검교호부상서 행상서호부낭중으로 자금어대를 받은 휘 유연(裕延)이다. 공은 실로 상서 부군의 둘째 아들이다.

젊어서 배움에 힘써 열여덟에 사마시 한 과에 붙었다. 두 번 예부의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오르지 못하고 문음으로 벼슬에 나아가 지수주사 판관에 임명되었다. 수주(水州)는 풍속이 넉넉하다 일컬어져 대개 사람들이 구하여 얻는 자리였다. 그러므로 청렴한 이가 드물고 정사가 다 눈앞만 꾸미는 것이어서 아전들이 버릇이 되어 자못 늘어지고 기강이 없었다. 공이 부임하여 모든 것을 법으로 다잡으니 아전들이 두려워 감히 바로 보지 못하였다. 단속하는 것이 한결같이 조목과 금령대로여서 감히 범하는 이가 없었다. 정사가 남다르다고 알려졌다.

임기가 차자 현덕궁 녹사에 임명되고 이어 좌우위 녹사참군사로 옮겼다. 얼마 뒤 나가서 진도현령이 되었는데, 맑고 검소하기가 한결같이 수주에서 다스리던 것과 같았고 위엄과 사랑은 더하였다. 현은 바다 가운데 있어 비리고 누추하며 오랑캐 같은 풍속이 있었다. 손을 맞아 대접하는 것이 길가의 다른 고을과 같지 않아 사신 받든 이들이 괴로워하였다. 공이 다 고쳐 큰 관사와 큰 고을같이 되게 하였다. 또 백성이 물고기와 소금을 믿고 농사에 힘쓰지 않았다. 공이 다그쳐 밭으로 돌아가게 하니 처음에는 백성이 꺼리는 낯빛이 있었다. 그 거둠을 얻은 뒤에야 도리어 즐겨 좇았고 흉년이 들어도 모자라지 않았다.

들어와 신호위 녹사참군사가 되었다. 계사년에 서울에서 병란이 일어나 벼슬아치들이 달아나 숨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공만은 홀로 자리를 굳게 지키며 낯빛이 태연하였다. 임금이 듣고 아름답게 여겨 불러 보고 낯을 대하여 기렸다. 「예전에 네 충성과 용기를 들었는데 이제 그 실상을 본다.」 신호위 별장으로 고쳐 주었으나 공은 무관 벼슬이 본디 뜻이 아니라 하여 받지 않았다.

뒤에 각문지후에 임명되고 곧 감찰어사로 뽑혀 나가 서북도 분대가 되었다. 이에 앞서 성주(成州)의 호걸들이 함부로 관기를 죽였다. 앞뒤로 사신 받든 이들이 처음에는 그 사실을 끝까지 캐려 하여 평민에까지 미쳐 칼을 씌워 묶지 않은 이가 없었고 온 고을이 시끄러웠는데, 얼마 못 가 버려두고 묻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늘 뇌물의 소굴이 되었다. 공이 고을에 들어가 캐어 묻기를 자세히 살펴, 앞장선 자와 손수 죽인 자를 찾아내어 죽이고 나머지는 다 다스리지 않았다. 온 고을이 편안해하고 안팎이 함께 기뻐하였다.

들어와 상식봉어가 되어 비어대를 받았고 또 상서도관원외랑으로 옮겨 금자를 받았다. 임금이 일찍이 간관 송단남(宋端南)을 보내어 십 년 이래 앞뒤로 고을을 맡았던 이들의 치적이 나은지 못한지를 살피게 하였다. 수주에서는 공이 다스린 것을 들어 으뜸으로 삼았으니 무릇 삼십 년 전 일이었다. 송공이 말하였다. 「조정의 뜻은 십 년으로 한계를 삼았는데 이는 너무 멀어 조서의 뜻에 어긋날까 두렵다.」 아전과 백성이 말하였다. 「천자가 사신을 보내신 까닭은 다만 남다른 정사를 구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윤공이 남긴 사랑이 지금까지 백성의 마음을 떠난 적이 없어 오히려 지난날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든 것이니 어찌 멀고 가까움을 따지겠습니까.」 모두 땅에 엎드려 이마를 조아리니 그 청함이 지극히 간절하였다. 송공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뢰니 임금이 더욱 아름답게 여겨 감탄하였고 유사도 감히 헐뜯지 못하였다.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병을 얻어 집에서 죽으니 나이가 얼마였다. 아무 달 아무 날에 아무 산에 묻었다. 부인은 장씨(張氏)로 대부경 휘 충의(忠義)의 딸이다. 아들 둘을 낳으니 송균(松筠)과 송죽(松竹)이다. 송균은 일찍이 밀성(密城)의 부관이 되어 맑고 괴로움을 견디며 엄하고 굳센 것으로 알려졌고, 송죽은 아직 산관이다. 딸 하나는 아직 시집가지 않았다.

공의 사람됨은 바탕이 단정하고 곧아 바른말을 하였고, 이르는 곳마다 맑고 검소하여 집에 한 섬의 쌓임도 없었다. 집안일은 묻지 않고 화락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다만 벼슬을 받들어 직분을 지키는 것으로 뜻을 삼았으니 참으로 조정의 바른 사람이다. 그런데 벼슬이 원랑에 지나지 않았으니 아깝다.

아들 송균 등이 공의 세계와 관작을 적고, 나와 오랜 사귐이 있는 사람을 통해 와서 내게 명을 청하였다. 내가 감히 물리치지 못한 것은, 내 선친이 일찍이 공과 한 관아에 있어 찾아올 때마다 도도히 이야기를 나누었으므로 내가 비록 그 깊이는 헤아리지 못하였으나 자못 그 물가나마 엿보았기 때문이다. 또 적은 남은 자취는 다 사람들 입에 퍼진 것이요 그 아들이 늘어놓아 와서 청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그 사람을 미쁘게 여기고 그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붓을 잡아 명을 짓는다.

아들에게 백금을 남기는 것은 오직 재앙을 부르는 일이다. 공은 홀로 맑음으로써 하였으니 만세의 보배다. 울창한 이 언덕에 무덤 자리를 편안히 잡았다. 공이 여기서 보전되니 곧 자손의 보전이다. 명을 새겨 광중에 넣어 뒷사람의 상고가 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