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죽은 아들 법원의 무덤 글殤子法源壙銘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5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沙彌法源。吾子也。捨吾姓而從釋氏者也。年十一。投禪師規公。祝髮爲衲僧。事師甚謹。性警悟。凡使令輒迎導其意。不須頤指。故師最愛之。在寺暴得病。至吾家臥一宵。明日而化。間三日瘞于山。噫。何其倏忽也如此。歲金龍月黃鍾剃度。年水馬律夾鍾反眞。爲僧凡一十六月耳。予遂爲銘詞。刻三尺木板納于壙。寓哀而已。其身與銘。不如速朽。何必鑱諸石。壽其傳哉。銘曰。僧其服一日足。況二冬一夏。汝死猶可。
사미 법원(法源)은 내 아들이다. 내 성을 버리고 석씨(釋氏)를 따른 이다.
열한 살에 선사 규공(規公)에게 몸을 맡겨 머리를 깎고 납의를 걸친 중이 되었다. 스승 섬기기를 매우 삼갔다. 성품이 깨어 있고 밝아, 무릇 시키는 일마다 문득 그 뜻을 미리 맞아 헤아렸으므로 턱짓으로 가리킬 것도 없었다. 그래서 스승이 가장 사랑하였다.
절에 있다가 갑자기 병을 얻어 내 집에 와 하룻밤을 누웠다가 이튿날 죽었다. 사흘을 사이에 두고 산에 묻었다. 아아, 어찌 이토록 빠른가.
경진(庚辰)년 십일월에 머리를 깎았고 임오(壬午)년 이월에 참으로 돌아갔으니, 중 노릇한 것이 무릇 열여섯 달뿐이다.
내가 마침내 명(銘)의 말을 지어 석 자 나무 판에 새겨 무덤 구덩이에 넣으니 슬픔을 부칠 뿐이다. 그 몸과 명은 빨리 썩는 것만 못하다. 어찌 굳이 돌에 새겨 그 전함을 오래게 하겠는가.
명에 이른다. 중의 옷은 하루만 입어도 넉넉하거늘 하물며 두 번의 겨울과 한 번의 여름이랴 네가 죽은 것도 오히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