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청광록대부 상서좌복야로 물러난 유공의 묘지명銀靑光祿大夫尙書左僕射致仕庾公墓誌銘
觀自古士大夫。其始未嘗不以廉恥操心滿盈爲戒。而及富貴方酣。率翫惜日月。恬不知退者多矣。我僕射府君。大異於是。年六十有四。已登端揆。則其去台鉉。能有幾級而未踐其地耶。但先六載引退。求避溢寵耳。不然。久已升極秩而猶有餘矣。此易所謂知進退存亡。不失其正者歟。庾氏源于錦城之茂松。在版籍爲甲。而公其出也。公諱資諒。字湛然。曾祖諱某皇。檢校太子詹事。祖諱某皇。檢校大子大師。考諱某皇。配某廟功臣門下侍中修文殿大學士判吏部事贈恭肅公。母張氏尙衣奉御諱贊之女。此公之世系也。公爲人。中和毓粹。莊重寡言。仁信足以感人。淸儉足以律世。此公之受之天也。方毅廟時。山東寢盛。公年十六。與貴門子弟約爲交契。公欲引虎官御牽龍行首吳光陟李光挺等與焉。衆莫肯之。公挺然議曰。雖私遊中。文虎俱備。亦得矣。何有不可乎。後必有悔矣。衆咸以爲然。於是使之參焉。未幾庚寅亂。文臣幾蕩盡。凡入交契者皆得免。以吳李二將營救甚力故也。此公之自少。已有知幾之量也。年若干。以宰相子。直補守宮署丞。尋遷大樂署丞。俄出爲龍岡縣令。其爲政。諳練理體。摘發如神。一方稱之。此公之始莅郡也。累歷御史尙衣奉御侍御史戶部郞中御史雜端。賜金紫大府少卿兵刑部侍郞大府卿知三司事判大府司宰事大子詹事判閣門知茶房事。階皆正議。尙書右僕射。階光祿。此公之所歷官序也。其或廉察東南。秉鉞東北。則威風所及。無不股弁。然濟以仁信。故民便之。此公之奉使延譽也。夫三品正秩。入相可冀。而公之判司宰也。反乞郡痛切。以戶部尙書。出知南京留守。此公之辭滿忌盈也。公常以選軍使聽軍政。其廳事上欹柱自立。時譁傳以爲異事。此公之公平無私所感也。其帥關東也。到洛山禮觀音。俄有二靑鳥含花落衣上。又海水一掬許。湧灌其項。世傳此地有靑鳥。凡謁聖者非其人則不見。此公之惇德至信所致然也。越崇慶二年癸酉。引年乞退甚篤。上不得已允之。以銀靑光祿大夫尙書左僕射。得謝家居。與當時卿相之退逸者。爲耆老會。時或置酒盡歡。凡優游養性十有七年。此公之懸車閑適之樂也。歲己丑八月七日。詣耆老會。從容宴飮。還于第。明日方午。忽覽八戒文。夜盥浴。尙安然就寢。及日。呼家人問時。然後翛然而化。享年八十。此公之終也。先是。人有死復生者。自言死至一處。宮觀甚嚴。守者曰。此庾僕射至處也。其說雖荒唐。考公之行。已無愧。及其終如此。則其言亦不可不信。公之生善處也必矣。娶左承宣金諱存中女。凡生子三女二。長曰某。爲國學學諭。早卒。次曰某。今爲判大僕事知御史臺事寶文閣直學士知制誥。季曰某。爲內侍某官。亦先公卒。女長適某官某。早寡。季適某官某。今寡。方葬也。知臺君具公之行錄。託予以銘。予奉書泣。且日。嗚呼。古之遺直也歟。吾不復見仁人君子之若公者矣。銘其敢辭乎。遂銘曰。顯允端揆。惟邦之紀。民方注心。遽釋其位。位不至極。公所自避。公則自避。人歉其意。黃髮壽考。公所不蘄。公雖不蘄。天固相之。正直感神。柱立鳥馴。於公爲常。怪者維人。嗚呼。舊德云亡。模範疇倚。有山巖巖。水灌其趾。是公之宮。吉祥止止。鑱石納竁。眉目萬祀。
예부터 사대부를 보건대 그 처음에는 염치로 마음을 잡고 가득 참을 경계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러나 부귀가 한창 무르익음에 이르러서는 대개 세월을 아까워하며 놀다가 편안히 여겨 물러날 줄 모르는 이가 많았다. 우리 복야 부군(府君)은 이와 크게 달랐다.
나이 예순넷에 이미 상서의 우두머리 자리에 올랐으니 정승 자리까지 몇 계단이나 남아 그 땅을 밟지 못하였겠는가. 다만 여섯 해 앞서 물러나 넘치는 은총을 피하기를 구하였을 뿐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벌써 가장 높은 품계에 올라 오히려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주역」에 이른바 나아가고 물러남과 있고 없어짐을 알아 그 바름을 잃지 않는다는 것인가.
유씨(庾氏)는 금성(錦城)의 무송(茂松)에서 비롯하여 호적에 으뜸가는 집안이니 공이 그 집에서 났다. 공의 휘는 자량(資諒)이요 자는 담연(湛然)이다. 증조 아무개는 돌아간 검교 태자첨사요, 할아버지 아무개는 돌아간 검교 태자태사다. 아버지 아무개는 아무 임금의 사당에 배향된 공신으로 문하시중 수문전 대학사 판이부사였고 공숙공(恭肅公)의 시호를 받았다. 어머니 장씨는 상의봉어 찬(贊)의 딸이다. 이것이 공의 계보다.
공의 사람됨은 치우침 없이 화하고 순수함을 길렀으며 무겁고 말이 적었다. 어짊과 미더움은 사람을 움직이기에 넉넉하였고 맑음과 검소함은 세상을 바로잡기에 넉넉하였다. 이것이 공이 하늘에서 받은 것이다.
의종(毅宗) 때에 산동(山東)이 점점 성하였다. 공이 열여섯에 귀한 집 자제들과 약속하여 사귐의 모임을 맺었는데, 공이 무관인 어견룡 행수 오광척(吳光陟)·이광정(李光挺) 들을 끌어들여 함께하려 하였다. 여럿이 즐겨 하지 않았다. 공이 꿋꿋이 의논하여 말하였다. 「비록 사사로이 노는 모임이라도 문과 무를 다 갖추면 또한 좋다. 무엇이 안 될 것이 있는가. 뒤에 반드시 뉘우칠 일이 있으리라.」 여럿이 다 옳게 여겨 이에 그들을 참여시켰다. 얼마 뒤 경인(庚寅)년 난에 문신이 거의 다 쓸려 없어졌으나 무릇 그 모임에 든 이는 다 벗어났다. 오씨와 이씨 두 장수가 힘써 구해 준 까닭이다. 이것이 공이 젊어서부터 이미 낌새를 아는 도량이 있었던 것이다.
나이 얼마에 재상의 아들로 바로 수궁서(守宮署) 승에 보임되었다. 이어 태악서 승으로 옮겼고 이윽고 나가 용강현(龍岡縣) 현령이 되었다. 그 정사는 다스림의 요체에 익숙하고 들추어냄이 귀신 같아 한 고장이 일컬었다. 이것이 공이 처음 고을에 다다른 것이다.
여러 벼슬을 두루 거쳤다. 어사·상의봉어·시어사·호부낭중·어사잡단을 지냈고, 금자(金紫)를 받고 대부소경·병부시랑·형부시랑·대부경·지삼사사·판대부사재사·태자첨사·판합문지다방사를 지냈으니 품계는 다 정의대부였다. 상서우복야에 이르러서는 품계가 광록대부였다. 이것이 공이 지낸 벼슬의 차례다.
혹 동남을 살피고 동북에 도끼를 잡으매 위엄의 바람이 미치는 곳마다 다리를 떨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어짊과 미더움으로 건졌으므로 백성이 편안히 여겼다. 이것이 공이 명을 받들어 기림을 넓힌 것이다.
무릇 삼품의 바른 품계면 재상에 들기를 바랄 만하다. 그런데 공은 판사재사로 있을 때 도리어 고을살이를 간절히 빌어 호부상서로 나가 남경(南京) 유수를 맡았다. 이것이 공이 찬 것을 사양하고 가득 참을 꺼린 것이다.
공이 일찍이 선군사(選軍使)로서 군정을 다스릴 때 그 청사의 기울어진 기둥이 저절로 섰다. 그때 떠들썩하게 전하여 기이한 일로 여겼다. 이것이 공의 공평하고 사사로움 없음이 움직인 바다.
공이 관동(關東)을 맡았을 때 낙산(洛山)에 이르러 관음(觀音)께 예를 올렸다. 이윽고 푸른 새 두 마리가 꽃을 물고 옷 위에 내려앉았다. 또 바닷물 한 움큼쯤이 솟아올라 그 목덜미에 쏟아졌다. 세상에 전하기를, 이 땅에 푸른 새가 있어 무릇 성인을 뵈러 온 이가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면 보이지 않는다 한다. 이것이 공의 도타운 덕과 지극한 미더움이 이룬 바다.
숭경 이년 계유(癸酉)에 나이를 들어 물러나기를 매우 간절히 빌었다. 임금이 마지못해 허락하여 은청광록대부 상서좌복야로 벼슬을 놓고 집에 있게 되었다. 그때 물러나 한가로이 지내는 재상들과 기로회(耆老會)를 만들어 때로 술자리를 벌여 즐거움을 다하였다. 무릇 넉넉히 노닐며 성품을 기른 것이 열일곱 해였다. 이것이 공이 벼슬을 내려놓고 한가로이 누린 즐거움이다.
기축(己丑)년 팔월 이레에 기로회에 나아가 조용히 잔치하여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한낮에 문득 팔계문(八戒文)을 보았고, 밤에 씻고 목욕하고도 오히려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 날이 밝자 집안사람을 불러 때를 물은 뒤에 홀연히 죽었다. 누린 나이가 여든이다. 이것이 공의 마침이다.
이에 앞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있었다. 스스로 말하기를, 죽어서 한 곳에 이르니 궁궐과 도관이 매우 엄숙하였는데 지키는 이가 「여기는 유복야가 이를 곳이다」 하였다 한다. 그 말이 비록 황당하나 공의 행실을 살펴보면 이미 부끄러움이 없고 그 마침이 이와 같았으니 그 말 또한 믿지 않을 수 없다. 공이 좋은 곳에 난 것이 틀림없다.
좌승선 김존중(金存中)의 딸에게 장가들어 무릇 아들 셋과 딸 둘을 낳았다. 맏이 아무개는 국학 학유가 되었으나 일찍 죽었다. 다음 아무개는 지금 판태복사 지어사대사 보문각 직학사 지제고다. 막내 아무개는 내시 아무 벼슬이었는데 또한 공보다 먼저 죽었다. 맏딸은 아무 벼슬 아무개에게 시집갔으나 일찍 과부가 되었고, 작은딸은 아무 벼슬 아무개에게 시집갔는데 지금 과부다.
장사 지낼 즈음에 어사대를 맡은 아드님이 공의 행록을 갖추어 내게 명을 부탁하였다. 내가 글을 받들고 울며 말하였다. 「아아, 옛사람이 남긴 곧음이로구나. 나는 공 같은 어진 사람 군자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 명을 어찌 감히 사양하겠는가.」 마침내 명에 이른다.
밝고 미쁜 복야여 오직 나라의 벼리로다 백성이 바야흐로 마음을 쏟는데 문득 그 자리를 놓았네 자리가 끝까지 이르지 못한 것은 공이 스스로 피한 바라 공은 스스로 피하였으나 사람들은 그 뜻을 서운해하네 누런 머리로 오래 산 것은 공이 구하지 않은 바라 공이 비록 구하지 않았어도 하늘이 진실로 도왔네 바르고 곧음이 신을 움직여 기둥이 서고 새가 길들었네 공에게는 예삿일인데 괴이하게 여긴 것은 오직 사람이었네 아아 옛 덕이 가셨으니 본보기를 누구에게 기대랴 산이 있어 우뚝하고 물이 그 밑동을 적시네 이것이 공의 집이니 길하고 상서로움이 머무는구나 돌에 새겨 무덤에 넣으니 그 모습이 만 년에 이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