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후집 권2

정월 이튿날 이 평장사가 내가 감을 보내며 지은 시 세 수에 화답하고, 또 지난해 가을 칠월에 중서성 벽에 쓴 시 한 수에 화답하여 몸소 찾아와 주기에 다시 차운하여 답하다正月二日。李平章和予餉柿詩三首。又和予去年秋七月題中書壁上詩一首。親訪見贈。復次韻奉答。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4 · 한자 112자 · 낭독 1.2분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2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眼凡那辨物精麤。納約微誠儻肯無。聞有嗜芹曾獻貴。此人誰是卽今吾。

범상한 눈이 어찌 물건의 곱고 거침을 가리랴 조촐하게 드린 작은 정성을 혹 받아 주시려나 미나리를 좋아해 귀한 이에게 바쳤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바로 지금의 나일세

협주 1

仁植

인식(仁植)

矍鑠眞同老將麤。宣威沙漠似君無。身兼文虎功名重。冷淡儒冠却愧吾。

정정하기가 참으로 늙은 장수처럼 굳세니 사막에 위엄을 떨칠 이로 그대만 한 사람 없네 몸에 문무를 겸하여 공명이 무거운데 쓸쓸한 선비 갓을 쓴 나는 도리어 부끄럽네

협주 1

右一前意

위는 첫째 수로 앞의 뜻이다.

病裏猶披野服麤。形容與舊略同無。誰知兩府雙朱轂。騶哄盈門忽訪吾。

병중이라 거친 베옷을 걸친 채였고 모습이 옛날과 대충 같기나 한지 뉘 알았으랴 중서문하성과 추밀원 두 관부(兩府)의 붉은 수레 둘이 벽제 소리로 문을 메우며 문득 나를 찾을 줄을

협주 3

右二

위는 둘째 수다.

予病中對以常服。

내가 병중이라 평상복으로 맞았다.

時與李樞副同訪。

그때 이 추밀부사와 함께 찾아왔다.

支體尫殘首皓皤。腋扶華省厚顔多。此時已有歸休志。公獨先知意奈何。

팔다리는 약하고 머리는 새하얀데 부축을 받고 재상의 관청에 드니 낯 두꺼움이 많았네 이때 이미 돌아가 쉬려는 뜻이 있었는데 공만이 홀로 먼저 알았으니 어찌하랴

협주 3

右三謝訪

위는 셋째 수로 찾아 준 것에 사례한 것이다.

壁上詩雖末句略含退意。猶不顯言。公見詩卽知。更不入省。

벽에 쓴 시는 끝 구에 물러날 뜻을 조금 담았을 뿐 드러내 말하지는 않았는데, 공은 시를 보고 곧 알아채고 다시는 성(省)에 들어오지 않았다.

右和中書壁上詩

위는 중서성 벽에 쓴 시에 화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