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후집 권3

임 아경이 「채소 심기」 시와 「지당」 시에 화답한 것에 차운하다次韻林亞卿見和菜種詩及地棠詩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2 · 한자 112자 · 낭독 1.2분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3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不須梨棗等於侯。老學鋤園也自符。要見畦蔬森綠脛。擬看村稻嚲黃鬚。營生計拙雖堪愧。憚役奴頑亦故愚。地瘠莫加培養力。苗乾方欲引泉濡。

굳이 배와 대추를 제후에 견줄 것은 없고 늘그막에 밭 매기를 배우니 이 또한 절로 맞네 밭두둑 채소가 푸른 줄기로 빽빽이 선 것을 보고 싶고 마을 벼가 누런 수염을 늘어뜨린 것을 보려 하네 살림 꾸릴 꾀가 서툰 것은 부끄럽다 하겠으나 일 꺼리는 종이 미련한 것 또한 짐짓 어리석네 땅이 메말라도 북돋울 힘을 더하지 못하니 싹이 마르매 이제 샘물을 끌어다 적시려 하네

협주 1

成幹

성간(成幹)이다.

狼狽行藏自君侯。中間官况頗難符。窮愁似可深磨骨。慍色猶無暫見鬚。道欲大伸先少屈。子非今智昔曾愚。飛騰路廓行無礙。會把人文却賁濡。

나아가고 물러남이 낭패스러웠던 것은 그대부터였네 그동안 벼슬살이 형편이 자못 맞기 어려웠지 곤궁한 시름은 뼈를 깊이 갉을 만하건만 성난 기색은 잠시도 수염에 드러난 적 없네 도가 크게 펴지려면 먼저 조금 굽는 법이니 그대가 지금 지혜롭고 옛날에 어리석었던 것이 아닐세 날아오를 길이 트여 가는 데 거칠 것이 없으리니 마침내 사람의 글로 세상을 꾸미고 적시리라

협주 3

公昔自獜守見流謫。

공은 예전에 인(獜) 고을 원으로 있다가 귀양을 갔다.

右二首○此詩。自李君一菜種一任意。君亦爾。故子順之。

위는 두 수다. ○ 이 시는 이군(李君)이 하나는 「채소 심기」로, 하나는 뜻대로 지었다. 그대 또한 그러하므로 나도 그에 따랐다.

故子順之 — 저본 글자는 「子」(그대)이나 「予」(나)의 잘못으로 보아 고쳐 읽었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