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후집 권3

이 평장사가 「부(符)」 자 운의 시에 화답해 부쳐 온 것에 차운하다次韻李平章和符字韻詩見寄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3 · 한자 168자 · 낭독 2분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3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願識荊州不願侯。果然風韻闇想符。援松共誓曾披膽。得雪誰多互將鬚。自古交遊先類己。以君賢智勿嫌愚。慶源同出緣猶厚。况更長涵玉德濡。

형주(荊州) 사람을 알고 싶을 뿐 제후 되기는 바라지 않는데 과연 그 풍모와 운치가 속으로 그리던 것과 맞네 소나무를 붙잡고 함께 맹세하며 일찍이 간담을 헤쳤고 흰 눈을 누가 더 얻었나 서로 수염을 겨루네 예부터 사귐은 저와 같은 이를 먼저 하는 법이니 그대의 어짊과 지혜로 이 어리석음을 싫어하지 말게 경원(慶源)에서 함께 나왔으니 인연이 오히려 두터운데 하물며 길이 옥 같은 덕에 젖어 적심에랴

협주 1

仁植

인식(仁植)이다.

解簪長揖謝公侯。坐俟徵呼上帝符。唯愛鶴癯猶白質。敢期松老尙蒼鬚。風波險裏拋官退。水火爭中託酒愚。莫囑殘人爲旱雨。閑雲已卷可堪濡。

비녀를 풀고 길게 읍하여 공후에게 하직하고 앉아서 상제(上帝)의 부름을 기다리네 다만 학이 여위어도 흰 바탕인 것을 사랑하고 감히 소나무가 늙어도 푸른 수염인 것을 기약하네 풍파 험한 속에서 벼슬을 던지고 물러났고 물과 불이 다투는 가운데 술에 기대어 어리석은 체하네 다 늙은 사람에게 가뭄에 비를 빌라 부탁하지 말게 한가한 구름이 이미 걷혔으니 무엇으로 적시랴

협주 1

君詩云。旱久却嫌苗未秀。請敎霖雨一霑濡。故云。

그대의 시에 「가뭄이 오래라 싹이 패지 못한 것이 밉다. 장맛비로 한 번 적셔 주기를 청한다」 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하였다.

憶昔家鄕遇我侯。兩心自合不須符。嬌擎玉硯猶紅臉。笑把金盃各紺鬚。不露鋒鋩君得壽。免爲標的我全愚。閑忙路異雖希覿。筆可書懷莫猒濡。

생각하니 옛날 고향에서 그대를 만났을 제 두 마음이 절로 맞아 부신이 필요 없었네 아리땁게 옥 벼루를 받들던 이는 아직 붉은 뺨이었고 웃으며 금 술잔을 잡던 우리는 저마다 검은 수염이었지 날카로운 끝을 드러내지 않아 그대는 목숨을 온전히 했고 과녁이 되기를 면하려고 나는 어리석음을 온전히 했네 한가함과 바쁨이 길이 달라 만나기는 드물지만 붓으로 마음을 적을 수 있으니 먹 적시기를 싫어 말게

협주 1

予遊鄕時。每於君家作詩。君命妓奉硯。

내가 고향에 노닐 때 늘 그대의 집에서 시를 지었는데, 그대가 기생에게 벼루를 받들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