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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序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244자 · 낭독 2.5분

징비록 서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懲毖錄》者何?記亂後事也。其在亂前者,徃徃亦記,所以本其始也。鳴呼!壬辰之禍,慘矣!浹旬之間,三都失守,八方瓦解,乘輿播越,其得有今日,天也。亦由祖宗,仁厚之澤,固結於民,而思漢之心未已,聖上事大之誠,感動皇極,而存邢之師屢出。不然則殆矣。《詩》曰:「予其懲,而毖後患。」此《懲毖錄》所以作也。若余者以無似,受國重任於流離板蕩之際,危不持,㒹不扶,罪死無赦。尙視息田畝間,苟延性命,豈非寬典。憂悸稍定,每念前日事,未嘗不惶愧靡容。乃於閑中,粗述其耳目所逮者,自壬辰至戊戌,總若于言,因以狀啓疏文移及雜錄,附其後。雖無可觀者,亦皆當日事迹,故不能去,旣以寓畎畝惓惓願忠之意,又以著愚臣報國無狀之罪云。

『징비록』이란 무엇인가? 난리 뒤의 일을 적은 것이다. 난리 전에 있었던 일도 이따금 적어 두었으니, 그 시작을 밝히려는 것이다.

아아, 임진년의 화는 참혹하였다. 열흘 남짓 사이에 세 도읍을 지키지 못하고 팔방이 무너졌으며 임금의 수레가 도성을 떠나 피란하였으니, 그러고도 오늘이 있게 된 것은 하늘의 뜻이다. 또한 조종(祖宗)의 어질고 두터운 은택이 백성에게 굳게 맺혀 있어 한(漢)나라를 그리듯 나라를 잊지 않는 마음이 그치지 않았고, 임금께서 큰 나라를 섬긴 정성이 황제를 감동시켜 형(邢)나라를 되살려 주던 옛일처럼 구원병이 여러 번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위태로웠을 것이다. 『시경』에 「나는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날의 근심을 삼가노라」 하였으니, 이것이 『징비록』을 지은 까닭이다.

나 같은 사람은 못난 몸으로 나라가 흔들리고 떠돌던 때에 나라의 무거운 소임을 맡고서도, 위태로운 것을 붙들지 못하고 넘어지는 것을 부축하지 못하였으니 죽어도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런데도 오히려 시골 밭이랑 사이에서 숨을 쉬며 구차히 목숨을 이어 가니, 어찌 너그러운 은전이 아니겠는가. 두려움과 놀람이 조금 가라앉은 뒤로는 지난날 일을 생각할 때마다 황송하고 부끄러워 몸 둘 곳이 없었다. 이에 한가한 가운데 내 귀와 눈이 미친 것을 거칠게 적으니 임진년부터 무술년까지 모두 얼마쯤 되는 말이요, 이어서 장계(狀啓)와 상소와 오간 공문과 잡록을 그 뒤에 붙였다. 볼 만한 것은 없으나 또한 모두 그날의 자취라 버릴 수 없었다. 이로써 밭이랑에 물러나서도 간절히 충성을 바라던 뜻을 부치고, 또 어리석은 신하가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죄를 드러내려 함이다.

협주 2

思漢之心 — 한나라가 망한 뒤에도 옛 백성이 한나라를 그리워하였다는 옛일에 빗댄 말이다. ― 옮긴이

存邢之師 — 제(齊)나라 환공이 오랑캐에게 망할 뻔한 형(邢)나라를 되살려 준 춘추 시대의 옛일이다. 여기서는 명나라 구원병을 가리킨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