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로 인하여 그 일의 체모가 온당치 못함을 아뢰는 계因。傳敎陳其事體非便。啓
伏承。下敎反覆商量沈之形跡固多可疑然其云云之說猶是流聞之語虛實尙爲難知我國不可以此失待。天朝將官此事宋應昌主張而沈爲其嗾使表文先爲經略旗牌取去或有近似者若使中路郡邑故阻其行如拘執者然萬一知其出於。朝廷所命則其事無益而其致忿恨不但今日而已且在此雖或少遲其行而渡鴉水則誰能挽留許筬之行雖急必不得同時幷到北京無疑大抵危難之際酬應之道有萬不同好我者未必加親惡我者未必加疎要之牢籠含蓄泯其形跡勿令好巧之徒窺我淺深而益以爲計此亦一道臣之愚見如此敢。啓
삼가 하교를 받들어 거듭거듭 헤아려 보았습니다. 심유경(沈惟敬)의 자취가 참으로 의심스러운 것이 많으나, 이러쿵저러쿵하는 말은 아직 떠도는 말이라 참인지 거짓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가 이것으로 천조(天朝)의 장수를 잘못 대접해서는 안 됩니다.
이 일은 송응창(宋應昌)이 주장한 것이요 심유경은 그가 부추긴 것입니다. 표문(表文)을 먼저 경략(經略)의 기패(旗牌)가 가져간 것은 더러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마는, 만일 중간 길의 고을로 하여금 일부러 그 길을 막아 붙잡아 두는 것처럼 하게 하였다가 만에 하나 그것이 조정의 명에서 나온 줄 알게 되면, 그 일은 이로울 것이 없고 분하고 한스러움을 부르는 것이 다만 오늘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여기서 비록 그 걸음을 조금 늦춘다 하더라도 아수(鴉水)를 건너고 나면 누가 붙잡아 둘 수 있겠습니까. 허성(許筬)의 걸음이 비록 급하나 반드시 같은 때에 아울러 북경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대저 위태롭고 어려운 때에 응대하는 길은 만 가지로 다릅니다. 우리를 좋아하는 자라 하여 반드시 더 친해지는 것도 아니요, 우리를 미워하는 자라 하여 반드시 더 멀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요컨대 너그럽게 감싸 안아 드러내지 않고(牢籠含蓄) 자취를 없애고, 꾀 많은 무리로 하여금 우리의 얕고 깊음을 엿보아 더욱 꾀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 이 또한 한 방도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이 이러하므로 감히 아룁니다.
협주 3
甲午二月
저본은 성 「沈」 한 자만 적었다.
갑오년 이월
저본은 鴉水다. 명나라로 가는 길에 건너는 강이므로 압록강(鴨水)의 잘못으로 보인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