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적의 형세를 아뢰고, 김응서를 별장으로 대구에 머물게 하며 충청병사 이시언을 재촉해 여러 장수와 힘을 합쳐 적을 잡게 하기를 청하는 계陳慶尙道賊勢請以金應瑞爲別將留駐大丘又請促忠淸兵使李時言往慶尙道與諸將同力捕賊。啓
臣頃在慶尙道目見本道事勢十分危迫而右道之勢尤急謹以一二愚見妄爲狀啓此外未盡之意欲於復。命時。啓達而臣病劇疲困未卽書啓近日伏見都元帥權慄及防禦使權應銖等狀啓右道之賊已踰洛東江下流自靈山昌寧玄風密陽淸道晝夜散掠已及大丘慶山之境都元帥亦不能駐在大丘是其中道皆爲賊藪幸而蔚山之賊觀望未動若一時俱動則左右道淪陷之勢將不遠臣竊料本道乃國之門戶府庫如使鳥嶺以南盡爲賊有則江原忠淸全羅次第瓦解而大事去矣臣念及此事爲之夜不能寐臨飡忘食臣觀右道出沒之賊與前日賊勢不同前則賊兵必大張旗幟多數出來故我國之民或隱匿山谷以避鋒刃賊去則還爲聚集略事耕作以度朝夕今則賊或什伍成群或數百爲運變着我國人衣服使被擄之人前導橫行晝伏夜行潜相掩襲故雖幽深山谷無處不到人民不能躱避盡罹於鋒刃不然則皆爲被擄而去安有如此寒心之事乎我國將官等不能瞭望體探賊來而不知賊去而不知從前如此而今則道內空虛尤甚左右道相距數百里間只有成允文鄭起龍以些少軍兵把截兩道中間一帶空虛尤甚但有防禦使權應銖在慶山東奔西馳難望䇿應前日請於大丘置陣以通左右道氣脈者爲是故也見在諸將中惟郭再祐金應瑞可堪此任今聞再祐一陣不起云如此遷延而賊勢日熾則事無及矣金應瑞雖在白衣從軍之中而近日蔚山之役略有微勞且其所率降倭皆是力戰之卒若令金應瑞專當大丘而與權應銖連勢且令密陽府使李英等收拾密陽靈山淸道玄風昌寧等處之兵略成軍形以爲討賊收拾地方之計則事雖已晚猶可及圖也臣來時金應瑞牒呈于臣云在此別無所爲事且其率領降倭亦無得食資活之路願以軍官隨行於臣處云蓋其意自以客將寄寓道內事勢難便故如此云云此人旣以罪令從軍責效雖不可遽授將任但以中路別將之名使之留在其處添其軍數又除出大丘所在粮餉以爲軍粮使降倭等不至缺望而力於戰鬪似爲宜當且蔚山之戰降倭等多有立功者而久不行賞此屬皆不能無怨幷令軍功廳查覈論賞慰諭分給激勵其心亦係權時之宜也且忠淸兵使李時言遷延時日尙未下去云極爲未便臣在慶尙道時忠淸監司金信元移牒於臣云調兵勢難且本道亦不可無主將李時言不當更赴南方云云臣答以慶尙右道賊勢如此若右道不保則次第將及於忠淸道速爲下送云云今見都元帥權慄狀啓則李時言以軍粮不辦尙未前進云軍粮鳥嶺等處亦不無餘儲尙州星州大丘皆有軍粮軍到其處自可就食教急之兵當倍道幷行今乃遲延引日以失事機甚可惜也此亦當自。朝廷嚴辭峻責使之到日馳赴先下大丘與金應瑞權應銖等合勢驅逐其處賊勢稍退則金應瑞權應銖雖留在信地而李時言則移軍右連更與鄭起龍勦捕右道之賊勢不可已大扺春節已深而賊勢如此人民盡散地方空虛之後雖欲築城屯田以爲經遠之圖誰與爲之此賊兇計萬端其連營屯結之處自蔚山至順天九百餘里更有巨濟南海爲其巢穴土地膏腴甲於南方今使零賊出沒分掠於數百里之間盡驅我國遺在之民使不得耕種其處而海邊一帶招集被擄之徒蜂屯蟻聚肆意屯耕仍於要害處據險築城首尾連絡他日雖欲以數萬兵甲取之其勢極難故今日之事當在於早决不在於持久臣病中精神昏耗未能細陳曲折而大槪如此伏乞。下備邊司商度施行如何
신이 지난번 경상도에 있으면서 본도의 사세가 십분 위태롭고 급박한 것을 눈으로 보았는데, 우도(右道)의 형세가 더욱 급하였습니다. 삼가 한두 가지 어리석은 소견을 망령되이 장계로 올렸고, 그 밖에 다하지 못한 뜻은 복명할 때에 아뢰려 하였으나 신의 병이 심하고 고단하여 곧 글로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요사이 삼가 도원수 권율(權慄)과 방어사 권응수(權應銖) 등의 장계를 보니, 우도의 적이 이미 낙동강 하류를 넘어 영산·창녕·현풍·밀양·청도로부터 밤낮으로 흩어져 노략하여 이미 대구·경산 지경에 이르렀고, 도원수도 대구에 머무르지 못한다 합니다. 이는 중간 길이 다 적의 소굴이 된 것입니다. 다행히 울산의 적이 관망하고 움직이지 않으나, 만일 한꺼번에 다 움직인다면 좌도와 우도가 함몰될 형세가 멀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가만히 헤아리건대 본도는 곧 나라의 문호요 창고입니다. 만일 조령 남쪽이 다 적의 것이 된다면 강원·충청·전라가 차례로 무너져 큰일이 글러질 것입니다. 신은 생각이 여기에 미쳐 밤에 잠들지 못하고 밥상을 마주하고도 먹기를 잊습니다.
신이 보건대 우도에 나고 드는 적은 지난날의 적세와 다릅니다. 전에는 적병이 반드시 기치를 크게 벌이고 많은 수로 나왔으므로, 우리 백성이 더러 산골짜기에 숨어 칼날을 피하였다가 적이 가면 도로 모여 대강 밭을 갈아 아침저녁을 지냈습니다. 이제는 적이 더러 열씩 다섯씩 떼를 이루고 더러 수백씩 한 무리가 되어, 우리나라 사람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사로잡힌 사람을 앞세워 이끌며 멋대로 다닙니다. 낮에는 엎드리고 밤에 다니며 가만히 서로 엄습하므로, 아무리 깊숙한 산골짜기라도 이르지 않는 데가 없어 백성이 피하지 못하고 다 칼날에 걸리며, 그렇지 않으면 다 사로잡혀 갑니다. 어찌 이같이 한심한 일이 있겠습니까.
우리 장수들은 망보고 정탐하지 못하여 적이 와도 모르고 적이 가도 모릅니다. 전부터 이러하였습니다마는 이제는 도내가 텅 빈 것이 더욱 심합니다. 좌도와 우도가 서로 수백 리 떨어진 사이에 다만 성윤문(成允文)·정기룡(鄭起龍)이 얼마 안 되는 군사로 막고 있을 뿐이요, 두 도 중간 한 띠는 빈 것이 더욱 심합니다. 다만 방어사 권응수가 경산에 있어 동으로 달리고 서로 달리니 책응(策應)을 바라기 어렵습니다. 지난날 대구에 진을 두어 좌도와 우도의 기맥을 통하게 하기를 청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지금 있는 여러 장수 가운데 오직 곽재우(郭再祐)와 김응서(金應瑞)가 이 소임을 감당할 만합니다. 이제 들으니 곽재우의 한 진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합니다. 이같이 끌다가 적세가 날로 성해지면 일이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김응서는 비록 백의종군하는 가운데 있으나 요사이 울산 싸움에 조금 공로가 있었고, 또 그가 거느린 항복한 왜인(降倭)이 다 힘써 싸우는 군졸입니다. 만일 김응서로 하여금 오로지 대구를 맡아 권응수와 형세를 잇게 하고, 또 밀양부사 이영(李英) 등으로 하여금 밀양·영산·청도·현풍·창녕 등지의 군사를 거두어 대강 군사 모양을 이루어 적을 치고 지방을 거두어들일 계책을 삼게 한다면, 일이 비록 이미 늦었으나 오히려 도모할 만합니다.
신이 올 때 김응서가 신에게 첩정(牒呈)하여 이르기를 「여기 있어도 따로 할 일이 없고, 또 거느린 항복한 왜인도 먹여 살릴 길이 없으니 군관으로 신의 처소를 따라가기를 원한다」 하였습니다. 대개 그 뜻은 스스로 객장(客將)으로 도내에 붙어 있어 사세가 편치 못하다 여긴 까닭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사람이 이미 죄로 종군하여 공효를 책임 진 터이라 갑자기 장수의 소임을 줄 수는 없습니다마는, 중간 길 별장(中路別將)의 이름으로 그곳에 머물러 있게 하여 그 군사 수를 더해 주고, 또 대구에 있는 군량을 덜어 내어 군량으로 삼아 항복한 왜인들이 바라던 것을 잃지 않고 싸움에 힘쓰게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또 울산 싸움에 항복한 왜인들 가운데 공을 세운 자가 많은데 오래도록 상을 행하지 않으니, 이 무리가 다 원망이 없을 수 없습니다. 아울러 군공청(軍功廳)으로 하여금 조사하여 논상하고 위로하여 나누어 주어 그 마음을 격려하게 하는 것도 때에 맞는 마땅한 일입니다.
또 충청병사 이시언(李時言)이 날을 끌어 아직 내려가지 않았다 하니 지극히 온당치 못합니다. 신이 경상도에 있을 때 충청감사 김신원(金信元)이 신에게 이문(移文)하여 이르기를 「군사를 조발하기가 어렵고 또 본도에도 주장(主將)이 없어서는 안 되니, 이시언이 다시 남쪽으로 가는 것은 마땅치 않다」 하였습니다. 신은 「경상우도의 적세가 이러하니 만일 우도를 지키지 못하면 차례로 충청도에 미칠 것이라, 속히 내려보내라」고 답하였습니다.
이제 도원수 권율의 장계를 보니 이시언이 군량을 마련하지 못하여 아직 나아가지 않았다 합니다. 군량은 조령 등지에도 남은 것이 없지 않고 상주·성주·대구에 다 군량이 있으니, 군사가 그곳에 이르면 저절로 먹을 수 있습니다. 급한 싸움에 나가는 군사는 마땅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갑절로 달려가야 하거늘, 이제 지체하여 날을 끌어 기회를 잃으니 매우 애석합니다. 이 또한 마땅히 조정에서 엄한 말로 준절히 꾸짖어 이르는 날로 달려가게 하되, 먼저 대구로 내려가 김응서·권응수 등과 형세를 합쳐 그곳의 적을 몰아내게 하고, 적세가 조금 물러나면 김응서와 권응수는 제가 맡은 자리(信地)에 머물러 있게 하되 이시언은 군사를 옮겨 우도로 이어 다시 정기룡과 함께 우도의 적을 잡게 하는 것이 형세상 그만둘 수 없습니다.
대저 봄철이 이미 깊었는데 적세가 이러하여, 백성이 다 흩어지고 지방이 텅 빈 뒤에는 비록 성을 쌓고 둔전하여 멀리 내다보는 계책을 삼고자 한들 누구와 더불어 하겠습니까. 이 적의 흉한 꾀는 만 가지라, 그 영을 잇대어 둔치고 맺은 곳이 울산에서 순천까지 구백여 리요, 다시 거제와 남해가 그 소굴이 되었으며 땅이 기름져 남방에서 으뜸입니다. 이제 조각난 적으로 하여금 수백 리 사이에 나고 들며 나누어 노략하게 하여, 우리나라에 남은 백성을 다 몰아내어 그곳에서 갈고 심지 못하게 하고, 바닷가 한 띠에는 사로잡힌 무리를 불러 모아 벌 떼처럼 개미 떼처럼 모여 멋대로 둔전하며, 요해처에 험한 데를 의지하여 성을 쌓고 머리와 꼬리를 잇대게 한다면, 다른 날 비록 수만 군사로 취하려 한들 그 형세가 지극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일은 마땅히 일찍 결단하는 데 있고 오래 끄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신이 병중이라 정신이 어둡고 소모되어 곡절을 자세히 아뢰지 못하나 대개 이러합니다. 엎드려 빌건대 비변사에 내리시어 헤아려 시행하게 하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