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3 근폭집

변방 고을의 싸움에 익은 군사를 불러 모으고 내지의 민병을 줄여 군사와 농사를 아울러 하게 하며, 항복한 왜인을 처치하기를 청하는 계召募邊郡慣戰之士省內地民兵使兵農兼擧且處置降倭。啓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405자 · 낭독 3.5분

징비록 권3 근폭집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軍卒不爲精抄而冗食者居多軍粮盡皆乏絕而繼餉無策此今日切急之憂故前此累累移文知委不一而足然不知施行與否今因慶尙道軍官聞之則各官民兵調發之弊猶在故農民幾盡失業在陣之軍亦以無食僵仆相望云此自前知其失計而至今因循未改良可痛歎大抵內地民兵百不能當邊郡慣戰之士一今慶州蔚山長鬐密陽機張淸道梁山之間遺民之散處山谷而經年戰鬪心膽已堅者其數不下千萬苟有軍粮而招募爲兵授以弓矢器械以爲戰用則旬日之間應募者雲集而此輩皆本處之人詳知形勢曲折其與客軍之疲弊遠來者相去萬萬矣旣用募軍則內地民兵可漸省之而量數定納根米使之隨其所備或麥或豆或大小米平量收之以爲軍食則軍無冗雜之患民有息肩之暇兵農兼擧戰守有賴今日之計無出於此矣且聞防禦使金應瑞用降倭引出他倭頗多云此兵家善策如知其誠心歸附則待之不可不厚以結其心請成司猛司直告身下送而幷給衣次藍靑布十餘匹使應瑞觀其所爲特爲分給以慰其心而母使有失意逃還之患此等辭緣幷。下識於都元帥及慶尙道監兵使防禦使何如

군졸을 정밀히 가려 뽑지 않아 헛되이 먹는 자가 많고, 군량은 다 떨어졌는데 뒤이어 댈 계책이 없으니 이것이 오늘의 절박하고 급한 걱정입니다. 그러므로 이보다 앞서 여러 차례 공문을 보내어 알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시행하였는지 아닌지 알지 못합니다.

이제 경상도 군관으로 인하여 들으니, 각 고을 민병을 조발하는 폐단이 아직 남아 있어 농민이 거의 다 생업을 잃었고, 진에 있는 군사도 먹을 것이 없어 쓰러져 죽은 자가 서로 바라볼 지경이라 합니다. 이는 전부터 그 계책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이제까지 그럭저럭 고치지 못한 것이니 참으로 통탄할 만합니다.

대저 내지의 민병은 백 사람이라도 변방 고을의 싸움에 익은 군사 하나를 당하지 못합니다. 이제 경주·울산·장기·밀양·기장·청도·양산 사이에 남은 백성으로 산골짜기에 흩어져 살면서 해를 넘겨 싸워 심담이 이미 굳어진 자가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진실로 군량이 있어 불러 모아 군사를 삼고 활과 화살과 무기와 기구를 주어 싸움에 쓰게 한다면, 열흘 사이에 응모하는 자가 구름처럼 모일 것입니다. 이들은 다 그곳 사람이라 형세와 곡절을 자세히 아니, 지치고 고달프게 멀리서 온 객군(客軍)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미 모군(募軍)을 쓴다면 내지의 민병은 차츰 덜 수 있습니다. 수를 헤아려 바칠 쌀을 정하되 그 마련한 바에 따라 보리든 콩이든 굵고 잔 쌀이든 고르게 되어 받아 군량으로 삼는다면, 군사에는 쓸데없고 잡된 걱정이 없고 백성에게는 어깨를 쉴 겨를이 있어, 군사와 농사를 아울러 들어 싸우고 지키는 데 힘입을 것입니다. 오늘의 계책은 이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또 들으니 방어사 김응서(金應瑞)가 항복한 왜인을 써서 다른 왜인을 꾀어 낸 것이 자못 많다 합니다. 이는 병가의 좋은 계책입니다. 만일 그들이 정성된 마음으로 귀부한 줄 안다면 두터이 대접하여 그 마음을 맺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컨대 오위의 벼슬인 사맹(司猛)·사직(司直)의 임명장(告身)을 마련하여 내려보내고, 아울러 옷감으로 남빛·푸른빛 베 십여 필을 주어 응서로 하여금 그 하는 바를 보아 특별히 나누어 주어 그 마음을 위로하게 하고, 뜻을 잃어 도망쳐 돌아가는 걱정이 없게 하소서.

이런 사연을 아울러 도원수와 경상도 감사·병사·방어사에게 하유(下諭)하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협주 2

甲午三月二十九日

저본은 「千萬」이라 하였다.

갑오년 삼월 스무아흐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