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5 근폭집

남한산성을 보고 와서 권응원에게 실제 벼슬자리를 내려 산성 일을 맡기기를 청하는 계往見南漢山城後仍請權應元除授實職使之勾管山城事。啓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390자 · 낭독 3.2분

징비록 권5 근폭집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臣等往見南漢山城地勢甚好衆山束聳城在半空之上外面不知有城而中有平野土田人居亦有之城皆以礱石築之今則頹圯處甚多登最高處則京畿秃城以下及江華摩利山皆在眼底更無遮障處上有烽燧與南山相應若隨便修葺爲積粟屯守之計則可爲永久之利壬辰年州人權應元等率鄕兵在廣州賊來多數射殺至七月邊彥璲來集其兵結陣於平地應元勸令入保山城而彥璲恐其不便於遁走未久爲賊所掩全軍覆敗而廣州不能守一州之人至今言及彥璲無不歎息痛恨也權應元今以山倉監造事在其處臣招見問其變初之事其人頗勇健無㥘曾以單身遇賊射殺甚多賊不敢近廣州之人亦多言者其時軍功。啓本或多道梗不達僅爲加設軍資正而廢棄於鄕當此之時如此力戰之士所當收拾以備驅策臣令爲山城別將使之仍居城內招集舊日義兵餘在者若干名漸次訓鍊矣如除授六品以上實職以獎舊功別責新效而勾管山城之事募民入聚明年於山下定金坪沃饒之地稍設屯田則數年之間可以經營漸成貌㨾爲益必多但官爵之事不敢擅便敢。禀

신들이 남한산성을 가서 보니 땅 형세가 매우 좋습니다. 뭇 산이 묶은 듯 솟아 성이 반공중에 있어 바깥에서는 성이 있는 줄 모르는데, 안에는 평평한 들과 밭이 있고 사람 사는 집도 있습니다. 성은 다 다듬은 돌로 쌓았으나 이제는 무너진 곳이 매우 많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면 경기 독성(禿城) 아래와 강화 마리산(摩利山)이 다 눈 아래 있고 다시 가리는 곳이 없으며, 위에 봉수가 있어 남산과 서로 응합니다. 만일 편한 대로 손질하여 곡식을 쌓고 둔쳐 지킬 계책을 삼으면 길이 이로울 것입니다.

임진년에 고을 사람 권응원(權應元) 등이 향병을 거느리고 광주에 있으면서 적이 오자 많이 쏘아 죽였습니다. 칠월에 이르러 변언수(邊彥璲)가 와서 그 군사를 모아 평지에 진을 쳤는데, 권응원이 산성에 들어가 지키기를 권하였으나 변언수가 산성에 들면 달아나기 어려울까 두려워하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적에게 덮쳐 온 군사가 무너지고 광주를 지키지 못하였으니, 한 고을 사람이 이제까지 변언수를 말하면 탄식하고 몹시 한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권응원이 이제 산창(山倉) 짓는 일을 감독하느라 그곳에 있으므로 신이 불러 보고 변이 처음 일어났을 때 일을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자못 날래고 굳세며 겁이 없어, 일찍이 홀몸으로 적을 만나 쏘아 죽인 것이 매우 많아 적이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였다 하고 광주 사람도 그렇게 말하는 이가 많습니다. 그때 군공을 아뢴 계본이 길이 막혀 이르지 못한 것이 많아 겨우 가설 군자정(軍資正)이 되었을 뿐 시골에 버려져 있습니다. 이런 때를 당하여 이처럼 힘껏 싸운 군사는 마땅히 거두어 부릴 곳에 대비해야 합니다.

신이 산성 별장으로 삼아 그대로 성 안에 살면서 지난날 의병 가운데 남은 몇 사람을 불러 모아 차츰 훈련하게 하였습니다. 만일 육품 이상 실제 벼슬자리(實職)를 내려 옛 공을 기리고 따로 새 공을 책임 지우며, 산성 일을 맡겨 백성을 모아 들어와 살게 하고 내년에 산 아래 정금평(定金坪)의 기름진 땅에 둔전을 조금 베풀면, 몇 해 사이에 경영하여 차츰 꼴을 이루어 이로움이 반드시 많을 것입니다. 다만 벼슬 주는 일은 감히 마음대로 하지 못하여 감히 여쭙니다.

협주 1

十一月八日

십일월 여드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