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7 진사록

유지를 받든 뒤에 적의 정세와 북도 적의 형세를 달려 보고한 장계有。旨祇受後馳報賊情及北道賊勢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813자 · 낭독 6.8분

징비록 권7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本月十一日都承旨成貼有。旨書狀。天兵近當更爲前進非但接應事重亦慮粗定人心更或搖動卿其姑留鎭定更加措置事有。旨臣到嘉山祗受臣留此一二日檢勅定州以北接應之事欲還向安州臣受。命措備糧餉他餘利害非臣所管而憂慮之極未免妄陳所懷卽全賊勢猖獗益甚本道之事十分危迫平壤之賊旣無退歸之期而我軍敢戰之士死亡日多至於三縣乃一道根本軍糧所資且通於黃海京畿及下三道者皆由此路若三縣不保則順安雖有十萬之師而不可仍駐賊之散渙西出者將不可禦矣側聞三縣之軍前後死傷者不知其數僵屍如麻民心震懼而昨日有鳳山校生姜遇獵見臣于安州言賊兵自他處更聚于黃州者其數甚多云不無合勢之憂十六日之戰我軍進迫平壤而賊兵之數多於前日云且傳者言大同江賊新造船隻頗多纔聞我軍將進必招集醜類于遠近爲添兵拒戰之計萬一分道幷出乘我困怠直擣空虛則將何以支吾其爲寒心不可勝言今日之勢平壤未復出中興之望邈無其期矣加以各處軍器蕩然當初期運江邊弓箭輸到於順安肅川者亦多而數番之戰幾盡散射安州留在長片箭只各一千餘部又漸取去將不日匱竭更何以繼之耶此皆切迫之憂矣唐兵雖有先聲而尙不前來往來擺撥兒者臣觀其氣色多有畏怯縮忸之狀沿途徐行到處遲滯凡兵以氣用以勢勝若此者殊甚可慮大槪近日遠近民心頗奮將士用命所患者無一將才極爲痛悶軍糧則見儲之數外知委各官使之漸收秋租而今年道內各色貢物及內需司各司奴婢身貢皆令作米稍减其數使公私兩便庶幾軍儲不竭幷令該司早爲量處北道體探僧人覺慧等又以高原郡守邊潤牒呈及定平人燕應國等五人永興貢生李汝諒等文狀來到因言其道之事云高原郡守邊潤隱匿郡地賊尋來圍抱潤僅以身免有一民以本弓射賊三人卽死餘賊叩頭求哀之際又欲射之而弓折賊因突進搜索山中避亂之人盡皆屠戮死者數千其他處處男女枕籍而死者不知其數賊分處設伏見人輒殺人民皆隱避深谷不能出野餓死者亦多其遺民逢此僧見公文無不涕泣皆言苦待官軍來活我輩云而民之壯健者雖往往欲射賊而無一人持弓矢者計無所出云又言賊兵已到鏡城爲北兵使所敗。王子時住會寧事村民傳說未能知其虛實矣

이달 열하룻날 도승지가 관인을 찍은 유지 서장에 「명나라 군사가 머지않아 다시 앞으로 나아올 것이니, 맞아 응하는 일이 중할 뿐 아니라 겨우 진정된 인심이 다시 흔들릴까도 염려된다. 경은 우선 머물러 진정시키고 조처를 더하라」 하셨는데, 신이 가산(嘉山)에 이르러 삼가 받았습니다. 신은 이곳에 하루 이틀 머물며 정주(定州) 북쪽의 맞아 응할 일을 단속한 뒤 안주(安州)로 돌아가려 합니다.

신은 명을 받아 군량을 마련하고 있으니 그 밖의 이해는 신이 맡은 바가 아니나, 근심이 지극하여 망령되이 품은 생각을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적의 형세가 미쳐 날뛰는 것이 더욱 심하여 본도의 일이 십분 위태롭고 급박합니다. 평양의 적은 이미 물러갈 기약이 없고 우리 군사 가운데 감히 싸우는 군사는 죽는 이가 날로 많습니다. 세 고을로 말하면 한 도의 뿌리라 군량이 말미암는 바이고, 또 황해·경기와 아래 세 도로 통하는 길이 다 이곳을 지납니다. 만일 세 고을을 지키지 못하면 순안에 비록 십만 군사가 있어도 그대로 머무를 수 없고, 적이 흩어져 서쪽으로 나오는 것을 장차 막지 못할 것입니다.

얼핏 들으니 세 고을의 군사로 앞뒤에 죽고 다친 이가 그 수를 알 수 없고 넘어진 주검이 삼대처럼 즐비하여 민심이 벌벌 떤다 합니다. 어제는 봉산(鳳山) 교생 강우렵(姜遇獵)이 안주에서 신을 보고 「적병이 다른 곳에서 다시 황주(黃州)에 모인 수가 매우 많다」 하니, 형세를 합칠 근심이 없지 않습니다. 열엿샛날 싸움에 우리 군사가 나아가 평양으로 다가들었으나 적병의 수가 지난날보다 많았다 합니다. 또 전하는 이가 말하기를, 대동강에 적이 새로 만든 배가 자못 많고, 우리 군사가 나아가려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반드시 멀고 가까운 곳의 더러운 무리를 불러 모아 군사를 보태어 막아 싸울 계책을 삼는다 합니다. 만일 길을 나누어 함께 나와 우리가 고달프고 나른한 틈을 타 빈 곳을 곧바로 찌르면 장차 어찌 버티겠습니까. 그 한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형세로는 평양을 되찾지 못하였으니 중흥의 가망은 아득하여 기약이 없습니다.

게다가 곳곳의 군기가 다 없어졌습니다. 애초에 기약하여 실어 온 강변의 활과 화살로 순안과 숙천에 이른 것도 많았으나 몇 번 싸움에 거의 다 흩어 쏘아 버렸습니다. 안주에 남아 있는 장전과 편전은 다만 각각 천여 부뿐인데 또 차츰 가져가니 며칠 안 가 바닥날 것이라, 다시 무엇으로 이어 대겠습니까. 이것이 다 절박한 근심입니다.

명나라 군사는 소문만 앞서고 아직 오지 않는데, 오가는 파발꾼들의 기색을 신이 보니 겁내고 움츠리는 꼴이 많고 길을 따라 천천히 가며 이르는 곳마다 더디게 지체합니다. 무릇 군사는 기운으로 쓰고 형세로 이기는데 이와 같으니 몹시 염려스럽습니다. 대개 요사이 멀고 가까운 민심은 자못 떨쳐 일어나고 장수와 군사도 명을 따르는데, 걱정인 것은 장수 될 재목이 하나도 없는 것이라 몹시 애타고 답답합니다.

군량은 지금 쌓인 수 밖에 각 고을에 알려 가을 조세를 차츰 거두게 하였습니다. 또 올해 도내의 갖가지 공물과 내수사·각사 노비의 신공을 다 쌀로 바꾸게 하고 그 수를 조금 덜어 공사 양쪽이 다 편하게 하면 군량이 마르지 않을 듯하니, 아울러 해당 관사에 명하여 일찍 헤아려 조처하게 하소서.

북도를 정탐한 중 각혜(覺慧) 들이 또 고원 군수 변윤(邊潤)의 첩정과 정평 사람 연응국(燕應國) 등 다섯 사람, 영흥 공생 이여량(李汝諒) 들의 글을 가지고 와 그 도의 일을 말하였습니다.

고원 군수 변윤이 고을 땅에 숨었는데 적이 찾아와 에워싸 변윤이 겨우 몸만 벗어났습니다. 한 백성이 제 활로 적을 쏘아 세 사람이 곧 죽으니 남은 적이 머리를 조아리며 살려 달라 빌던 참에 또 쏘려다가 활이 부러졌습니다. 적이 이 틈에 돌진하여 산속에 피란한 사람을 뒤져 다 죽이니 죽은 이가 수천입니다. 그 밖에 곳곳에서 남녀가 서로 포개어져 죽은 이가 그 수를 알 수 없습니다. 적이 곳곳에 복병을 나누어 두고 사람을 보면 곧 죽이므로 백성이 다 깊은 골에 숨어 들에 나가지 못하여 굶어 죽는 이도 많습니다.

남은 백성이 이 중을 만나 공문을 보고는 눈물 흘리지 않는 이가 없이 다 「관군이 와서 우리를 살려 주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하였습니다. 백성 가운데 씩씩하고 튼튼한 이가 이따금 적을 쏘려 하여도 활과 화살을 가진 이가 하나도 없어 계책이 나올 데가 없다 합니다. 또 말하기를, 적병이 이미 경성(鏡城)에 이르렀다가 북병사에게 패하였다는 것과 왕자가 때마침 회령(會寧)에 머물러 계시다는 일은 마을 백성이 전하는 말이라 그 허실을 알 수 없다 하였습니다.

협주 1

壬辰八月

임진년 팔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