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7 진사록

심 유격에게 글을 올려 그 뜻을 여쭌 뒤 각 진에 분부한 일을 아뢴 장계呈禀沈遊擊指意後分付各陣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524자 · 낭독 4.7분

징비록 권7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昨日。天將釜山院去來之由當日曉馳。啓後平明時進去遊擊下處問安仍呈小書書中大略以老爺約定地界寬立五十日之限者無非虛設故緩行計之地而悶迫之情亦未免有所疑焉自今五十日乃十一月二十日對壘殘卒能堪露處而逃竄之民亦免凍死乎凶狡之賊爲謀百出刈草之外兼刈禾糓其可束手坐視而已耶論以焚蕩之例雖在界內提兵馳逐何如謀聚散在之賊合勢于城中則凶鋒所措不可不策應若至斬殺亦加違約之責乎此等曲折十分商量便賜一言之決仍幷令秦孝男詳細措辭而臣則先出戰所以待本府人民等又如昨日入府時遮道號訴則遊擊似爲愍惻以言慰諭而過及到臣所在處馳去不入只遣孝男回答曰今日當到嘉山行忙路遠玆負厚意所示曲折足知懇迫之情俺之處此更無他意五十日之限已定難動其間若無大段之事雖刈禾穀不必强爲捕斬而知己知彼乃兵家上䇿如有可乘之機力或有餘則雖致大捷有何不可俺計已在掃蕩云云之意保無可疑惟在量勢母或時刻忘戰俺還當在二十一二日間云當初措意固已如此而傍觀之人未及詳知或疑其見賣於講和彼此相疑矣今聞此言尤有所據可破遠近之疑慮設使不卽來援無碍在我之進退卽將此意移文于戰所及左右防禦使處使之更與相議量界進陣以試賊情且俟其便而黃海京畿等道則已於李德淳之還別爲密關使之遍諭諸將母撓於講和之言益勵勤王之志各自奮勇次第前進事丁寧分付以送矣

어제 명나라 장수가 부산원(釜山院)을 오간 곡절은 그날 새벽에 달려 아뢰었습니다. 그 뒤 날이 밝을 무렵 유격이 머무는 곳으로 나아가 문안하고 이어 작은 글을 올렸습니다.

글의 대략은 이러합니다. 「노야께서 지경을 약정하시고 너그러이 쉰 날의 기한을 세우신 것은 모두 헛으로 세우신 것으로, 짐짓 천천히 행하시려는 계책인 줄 압니다. 그러나 답답하고 급박한 정으로는 의심스러운 바가 없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쉰 날이면 곧 십일월 스무날인데, 보루를 맞대고 있는 남은 군사가 한데서 지내기를 견딜 수 있겠으며 달아나 숨은 백성도 얼어 죽기를 면하겠습니까. 흉악하고 교활한 적은 꾀를 백 가지로 내어 풀을 베는 밖에 벼와 곡식까지 아울러 베니, 손을 묶고 앉아서 보고만 있어야 하겠습니까. 불살라 없애는 예로 논하면 비록 지경 안에 있더라도 군사를 이끌고 달려가 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흩어져 있는 적을 모으기를 꾀하여 성안에서 형세를 합치면 흉한 칼끝이 향하는 곳에 대책을 세워 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베어 죽이는 데 이르면 또한 약속을 어겼다고 꾸짖으시겠습니까. 이런 곡절을 십분 헤아리시어 곧 한마디 결단을 내려 주소서」 하고, 이어 진효남(秦孝男)에게도 자세히 말을 갖추어 아뢰게 하였습니다.

신은 먼저 싸움터로 나가 기다렸습니다. 이 고을 백성들이 또 어제 고을에 들어올 때처럼 길을 막고 부르짖어 하소연하니, 유격이 가엾게 여기는 듯 말로 위로하고 지나갔습니다. 신이 있는 곳에 이르러서는 달려 지나가고 들어오지 않은 채 다만 효남을 보내어 회답하였습니다.

「오늘 가산(嘉山)에 이르러야 하는데 길이 바쁘고 머니 이에 두터운 뜻을 저버린다. 보내온 곡절은 간절하고 급박한 정을 넉넉히 알겠다. 내가 이리하는 데에는 다시 다른 뜻이 없다. 쉰 날의 기한은 이미 정하여 움직이기 어려우니, 그사이에 만일 큰일이 없으면 비록 벼와 곡식을 벨지라도 굳이 잡아 벨 것은 없다. 그러나 나를 알고 저를 아는 것은 병가의 으뜸 계책이니, 만일 탈 만한 틈이 있고 힘이 넉넉하면 비록 큰 승리를 거둔들 무엇이 안 되겠는가. 내 계책은 이미 쓸어 없애는 데 있다」 하였으니 의심할 것이 없음을 보장합니다. 오직 형세를 헤아려 잠시도 싸움을 잊지 말 것이며, 「나는 스무하루나 스무이틀 사이에 돌아올 것이다」 하였습니다.

애초에 뜻을 둔 것이 진실로 이러한데 곁에서 보는 이들은 자세히 알지 못하여, 혹 강화에 팔려 넘어간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이쪽저쪽이 서로 의심하였습니다. 이제 이 말을 들으니 더욱 근거가 있어 멀고 가까운 곳의 의심과 염려를 깨뜨릴 만합니다. 설사 곧 와서 구원하지 않더라도 우리 쪽의 나아가고 물러남에는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곧 이 뜻을 싸움터와 좌·우 방어사가 있는 곳에 공문으로 보내어, 다시 서로 의논하여 지경을 헤아려 진을 나아가게 하고 적의 정세를 떠보며 또 그 편한 때를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황해·경기 등 도에는 이미 이덕순(李德淳)이 돌아갈 때에 따로 비밀 공문을 보내어, 여러 장수에게 두루 유시하여 강화한다는 말에 흔들리지 말고 근왕할 뜻을 더욱 가다듬어 저마다 날래게 떨쳐 차례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고 정녕히 분부하여 보냈습니다.

협주 2

壬辰九月

임진년 구월

저본은 母·地이나 각각 毋·也의 잘못으로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