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9 진사록

명나라 군사가 평양에 들어간 것을 아뢰다馳。啓天兵已入平壤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117자 · 낭독 1분

징비록 권9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從事官金信元馳報內當日巳時到降福院後站唐將已爲接戰四面攻城放炮之聲如雷如震巳末體探軍官李繼命馳報內唐兵破七星門而入我軍自含毬門而入時方厮殺云云平壤一城似已收復不勝慶幸之至謹先馳。啓臣方進去順安檢勅軍糧等事接濟計料唐糧運轉等事更乞急速措置

종사관 김신원(金信元)의 급한 보고에, 그날 사시에 강복원(降福院) 뒷참에 이르니 명나라 장수가 이미 싸움을 벌여 사면으로 성을 치는데 포 놓는 소리가 우레 같고 벼락 같았다 하였습니다. 사시 끝 무렵 정탐 군관 이계명(李繼命)의 급한 보고에는, 명나라 군사가 칠성문을 깨뜨리고 들어가고 우리 군사는 함구문으로 들어가 바야흐로 어우러져 싸운다 하였습니다.

평양 한 성을 이미 도로 찾은 듯하니 경사스럽고 다행함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먼저 급히 아룁니다. 신은 이제 순안(順安)으로 나아가 군량 따위 일을 단속하여 대어 줄 계획입니다. 명나라 양식을 옮기는 일은 다시 빌건대 급히 조치하소서.

협주 3

正月八日

정월 여드렛날

저본은 金信元이다. jb-101과 같은 사람으로, 도원수 김명원(金命元)과는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 ― 옮긴이

저본은 體探이다. 이 책이 같은 일을 「정탐」으로 적으므로 그에 맞추었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