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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양식을 서둘러 실어 오기를 청하다請急運唐糧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419자 · 낭독 3.5분

징비록 권9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天兵入京畿界今已十五日糧料接濟百計無䇿前後船運後西江者五千餘石以黃海道金郊站所儲米豆二千餘石更取於海州延安牛峯兎山等邑添補而猶未能足在東坡者米豆幷四千餘石今方更爲流下後西江以爲添補之計提督初欲於今日進兵不意天雨連日道路泥濘馬腹皆沒勢難進兵連留若此而日氣猶未快晴此後遲速亦難預料加以開城府人民渙散尙未還集凡事不成頭緒三道體察使俞泓因。天將發牌來到聞持平柳夢寅所言已遞體察之任卽發向江華臣本以愚昧且初非所管地方凡運糧調軍等事茫不知首水末而倉卒當此罔知攸措雖文移於全羅忠清監司督南方之糓而遠水不救近火何能及時調度且京畿以及江原之界兵火之餘數百里內無復人煙軍民無不飢困負戴運糧者相繼道死而平安節度使李薲之軍時在坡州絕糧已久死者甚多更無推移接濟之路尤爲痛憫京城倭賊體探之人皆言尙無出去之狀昨日谷山郡守馳報內安邊賊將奉。二王子向入德源云賊謀兇譎難測得無堅守窟穴以待後兵乎事事可慮。朝廷各別講求善䇿唐糧輸到之事星火措置而北道防備等事亦十分申勅待變以防意外之患

명나라 군사가 경기 지경에 들어온 지 이제 이미 보름입니다. 양식을 대는 데 온갖 꾀를 내어도 방책이 없습니다. 앞뒤로 후서강(後西江)에 배로 실어 온 것이 오천여 섬이고, 황해도 금교참에 쌓아 둔 쌀과 콩 이천여 섬에 해주·연안·우봉·토산 등 고을에서 다시 가져다 보태었으나 오히려 넉넉하지 못합니다. 동파에 있는 쌀과 콩 아울러 사천여 섬은 이제 바야흐로 다시 후서강으로 흘려 내려보내 보탤 계획입니다.

제독이 처음에는 오늘 군사를 나아가게 하려 하였으나, 뜻밖에 비가 며칠 내려 길이 진창이 되어 말 배가 다 빠지니 형세가 군사를 나아가게 하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잇달아 머무는데 날씨가 아직 쾌히 개지 않으니 이 뒤의 더디고 빠름도 미리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개성부 백성이 흩어져 아직 돌아와 모이지 않아 모든 일이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삼도체찰사 유홍(俞泓)은 명나라 장수가 패문을 낸 까닭에 왔다가, 지평 유몽인(柳夢寅)이 한 말을 듣고 이미 체찰의 소임을 갈리어 곧 강화로 떠났습니다. 신은 본디 어리석고 어두운 데다 애초에 맡은 지방도 아니어서 양식을 나르고 군사를 조발하는 따위 일에 머리와 끝을 아득히 알지 못하는데, 창졸간에 이를 당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비록 전라·충청 감사에게 공문을 보내 남쪽 곡식을 독촉하나 먼 물이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하니 어찌 제때 조달할 수 있겠습니까.

또 경기에서 강원 지경에 이르기까지 병화를 겪은 나머지 수백 리 안에 인가의 연기가 다시 없습니다. 군사와 백성이 굶주리고 곤하지 않은 이가 없어, 지고 이고 양식을 나르던 자가 잇달아 길에서 죽습니다. 평안절도사 이빈(李薲)의 군사는 파주에 있는데 양식이 끊어진 지 이미 오래여서 죽은 자가 매우 많고 다시 옮겨 대어 줄 길이 없으니 더욱 아프고 민망합니다.

서울 왜적을 살피러 간 사람이 다 아직 나갈 낌새가 없다고 말합니다. 어제 곡산군수의 급한 보고에, 안변의 적장이 두 왕자를 받들고 덕원으로 들어갔다 합니다. 적의 꾀가 흉하고 간교하여 헤아리기 어려우니, 소굴을 굳게 지켜 뒤따르는 군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일마다 염려스러우니 조정에서는 각별히 좋은 방책을 강구하소서. 명나라 양식을 실어 오는 일을 불똥처럼 급히 조치하시고, 북도를 지키는 일도 십분 신칙하여 변을 기다려 뜻밖의 근심을 막으소서.

협주 1

二月九日

이월 아흐렛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