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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이 개성부로 군사를 돌린 일을 아뢰다提督還軍開城府狀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401자 · 낭독 3.7분

징비록 권9 진사록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昨日提督欲還開城府少休人馬臣與李德馨等多般懇陳大兵一退民心解散之意反覆論辨最後提督發怒曰吾不過欲休兵更進豈有退歸之意爾等何不曉事而煩說如此耶仍爲停行初昏招通事辟左右密語進取之計甚悉且日正月吾本命對衝不吉故落馬又不利於擊賊必須於來月可以進兵傳語陪臣但自知之勿泄於人今日朝以戰馬多死親自設祭適天氣微陰提督言天雨則當退駐開城臣更進請少駐而終不聽只留南兵炮手於江邊馬軍則盡還開城府極爲悶痛大抵提督於二十七日獨引家丁經進不利因此退駐東坡而諸將中如張世爵者尤主退駐之說今又自東坡更退開城府雖云休兵更進而其言亦難料其必然糧料之事臣前已狀。啓當初只備一路一二日之需今大兵留開城者四日留坡州者二日又留東坡者三日顚倒追隨彼此不及罔知所措賊兵尙留京城若大兵從此遽退大事將去臣扣心號天欲死無地更欲極力懇乞未知聽從與否而提督攻城取勝全用南軍及其論功之際北兵居上以此軍情似爲乖張若但以一勝爲功無必進之意則臣等區區才力勢難挽回尤爲痛悶

어제 제독이 개성부로 돌아가 사람과 말을 조금 쉬게 하려 하기에, 신이 이덕형(李德馨) 등과 여러 가지로 간절히 아뢰어 대군이 한번 물러나면 민심이 흩어진다는 뜻을 거듭 논변하였습니다. 마침내 제독이 성내어 「나는 군사를 쉬게 하고 다시 나아가려 할 뿐인데 어찌 물러갈 뜻이 있겠느냐. 너희는 어찌 일을 알지 못하고 이처럼 번거롭게 말하느냐」 하고 이내 가기를 멈추었습니다.

초저녁에 통사를 불러 좌우를 물리고 나아가 칠 계책을 매우 자세히 가만히 말하였습니다. 또 「정월은 내 본명(本命)과 맞부딪쳐 좋지 않은 까닭에 말에서 떨어졌고 또 적을 치는 데 이롭지 못하였다. 반드시 다음 달에라야 군사를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이 나라 신하에게 전하여 다만 스스로 알게 하고 남에게 새지 않게 하라」 하였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싸움말이 많이 죽었다 하여 몸소 제사를 지냈습니다. 마침 날씨가 조금 흐리자 제독이 「비가 오면 마땅히 개성으로 물러가 머물겠다」 하였습니다. 신이 다시 나아가 조금만 더 머물기를 청하였으나 끝내 듣지 않고, 다만 남병(南兵) 포수만 강가에 두고 기병은 다 개성부로 돌려보내니 몹시 민망하고 아픕니다.

대저 제독이 스무이렛날 홀로 친병(家丁)만 이끌고 가벼이 나아갔다가 이기지 못하여 이 때문에 동파로 물러나 머물렀고, 여러 장수 가운데 장세작(張世爵) 같은 자가 더욱 물러가 머물자는 말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제 또 동파에서 다시 개성부로 물러가니, 비록 군사를 쉬게 하고 다시 나아간다 하나 그 말이 반드시 그러하리라고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양식 일은 신이 앞서 이미 장계로 아뢰었습니다. 처음에 다만 한 길 하루 이틀 쓸 것만 갖추었는데, 이제 대군이 개성에 머문 것이 나흘, 파주에 머문 것이 이틀, 또 동파에 머문 것이 사흘이라 엎어지며 뒤쫓아도 이쪽저쪽 미치지 못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적병이 아직 서울에 머물러 있는데 만일 대군이 이로부터 갑자기 물러가면 큰일이 그르쳐질 것입니다. 신은 가슴을 두드리고 하늘에 부르짖어 죽고자 하여도 죽을 땅이 없습니다. 다시 힘을 다해 간절히 빌고자 하나 들어줄지 모르겠습니다.

제독이 성을 쳐서 이길 때에는 오로지 남병을 썼는데 공을 논할 즈음에는 북병이 위에 있으니, 이 때문에 군정(軍情)이 어그러진 듯합니다. 만일 한 번 이긴 것만 공으로 삼고 반드시 나아갈 뜻이 없다면 신들의 보잘것없는 재주와 힘으로는 형세상 되돌리기 어려우니 더욱 아프고 민망합니다.

협주 2

二月三日

이월 사흗날

저본은 南軍이나 같은 편의 南兵과 한 무리이므로 「남병」으로 맞추었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