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도사 성안의가 일을 피한 것이 아님을 아뢴 장계調度使成安義非緣厭避職事狀
當日到付摠督使尹承勳牒呈內分兵曹正郞成安義經理提督南下時非但境上不爲來迎稱以慶州軍糧收拾處置事落後則事完之後大兵駐在處所當進來而安東府中乘夜過去有若隱避者然如此避事之人不可不重治以警他人向前成安義。朝廷處置按法重究事狀。啓云臣前在慶州時蔚山運糧方急成安義其時在大丘遍尋山谷避役之民大丘軍糧一千石一時輸送慶州安義因隨到慶州而適值大軍退來上項大丘軍糧負戴在途者將至散失臣令安義及李詠道等分道收拾輸入於慶州松溪縣收儲又令安義查點慶州遺在軍糧分給各陣軍人數日後安義回報於安東臣前此已。啓請令李詠道成安義分管左右道軍糧故安義省其病親於榮川地後時方往在右道措置糧餉等事今見尹承勳狀。啓則安義過安東不見摠督使誠不爲無失然必以大軍已回而又緣臣狀。啓以致如此與無故厭避者有異近日國綱解弛任事之臣率多占便自安不肯奔走職事臣常痛憤此習而今此成安義事情則臣所詳知而尹承勳各在他處臣狀。啓辭緣或未及知而有此狀。啓故不敢不達
오늘 도착한 총독사 윤승훈(尹承勳)의 첩정에, 「분병조 정랑 성안의(成安義)가 경리와 제독이 남쪽으로 내려올 때 경계에 나와 맞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경주의 군량을 거두어 처치하는 일이라 일컫고 뒤에 처졌으며, 일이 끝난 뒤에는 대군이 머무는 곳으로 마땅히 나아와야 하는데 안동부 안을 밤을 타 지나가 마치 숨어 피하는 자와 같았습니다. 이처럼 일을 피하는 사람은 무겁게 다스려 다른 사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으니, 위의 성안의를 조정에서 처치하여 법에 따라 무겁게 다스리소서」 하였습니다.
신이 앞서 경주에 있을 때 울산으로 군량 나르는 일이 바야흐로 급하였는데, 성안의가 그때 대구에 있으면서 산골짜기를 두루 찾아 부역을 피한 백성을 모아 대구 군량 일천 석을 한꺼번에 경주로 실어 보냈고, 안의도 따라 경주에 이르렀습니다. 마침 대군이 물러 오는 것을 만나 위의 대구 군량으로 지고 이고 길에 있던 것이 흩어져 없어질 지경이므로, 신이 안의와 이영도(李詠道) 등에게 길을 나누어 거두게 하여 경주 송계현으로 실어 들여 간직하게 하였고, 또 안의에게 경주에 남아 있는 군량을 조사하여 각 진의 군사에게 나누어 주게 하였습니다.
며칠 뒤 안의가 안동으로 돌아와 보고하였습니다. 신이 이보다 앞서 이미 이영도와 성안의로 하여금 좌도와 우도의 군량을 나누어 맡게 하기를 아뢰어 청하였으므로, 안의가 영천(榮川) 땅에서 병든 어버이를 뵌 뒤 지금은 우도로 가서 군량을 조치하는 일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 윤승훈의 장계를 보니, 안의가 안동을 지나며 총독사를 뵙지 않은 것은 참으로 허물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대군이 이미 돌아갔고 또 신의 장계로 말미암아 이리 된 것이니, 까닭 없이 일을 싫어 피한 자와는 다릅니다.
요즈음 나라의 기강이 풀어져 일을 맡은 신하들이 흔히 편한 자리를 차지하여 스스로 편안하려 하고 맡은 일에 부지런히 다니려 하지 않으니, 신은 늘 이 버릇을 통분히 여깁니다. 그러나 이번 성안의의 사정은 신이 자세히 아는 바이고, 윤승훈은 서로 다른 곳에 있어 신의 장계 사연을 미처 알지 못하고 이 장계를 올린 듯하므로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협주 2
영천(榮川) — 지금 경북 영주
편 이름의 조도사(調度使)는 본문의 분병조 정랑 성안의(成安義)를 이른다. 윤승훈의 첩정과 장계도 같은 문서이며, 앞 편에서는 윤승훈을 총관사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