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고 난 뒤의 여러 이야기錄後雜記
戊寅秋長星竟天狀如白練自西向東數月而滅戊子間漢江三日赤辛卯竹山大平院後有石自起立通津縣僵柳復起民間訛言將遷都又東海魚產於西海漸至漢江海州素產靑魚近十餘年絕不產移產於遼海遼東人謂之新魚又遼東八站居民一日無故相驚曰有寇從朝鮮至朝鮮王子十亭轎子到鴨綠江傳相告語老弱登山數日乃定又我國使臣自北京還宿金石山河姓人家其主人言有朝鮮譯官語我云爾有三年酒五年酒毋惜爲樂不久兵至爾軰雖有酒誰其飲之以此遼人疑朝鮮有異志多驚惑云使臣歸。啓其事。朝廷以譯官必有造言生事誣陷本國者逮捕數人鞫於仁政殿庭用壓膝火刑皆不服而死此辛卯年間事明年遂有倭變是知大亂將生人雖未覺而形於兆眹不一其端至於白虹貫日太白經天無歲無之人視爲常事又都城內常有黑氣非烟非霧盤地接天如此幾十餘年其他變恠難以殫記天之告人可謂深切而特人不能察耳
무인년 가을에 긴 별이 하늘에 뻗쳤는데 모양이 흰 비단 같았고, 서에서 동으로 향하여 몇 달 만에 사라졌다. 무자년 무렵에는 한강 물이 사흘 동안 붉었다. 신묘년에는 죽산 태평원 뒤에 돌이 저절로 일어서고, 통진현에 넘어졌던 버들이 다시 일어섰다. 민간에 장차 도읍을 옮긴다는 뜬소문이 돌았다.
또 동해에서 나던 물고기가 서해에서 나더니 점점 한강에까지 이르렀다. 해주는 본디 청어가 나던 곳인데 근래 십여 년 사이 아주 나지 않고 요동 바다로 옮겨 나니, 요동 사람이 이를 「새 고기」라 일렀다.
또 요동 팔참 백성이 하루는 까닭 없이 서로 놀라 말하기를 「도적이 조선에서 온다. 조선 왕자의 가마 열 채가 압록강에 이르렀다」 하여, 서로 전하여 말을 옮기니 늙은이와 어린이가 산에 올랐다가 며칠 만에야 가라앉았다.
또 우리나라 사신이 북경에서 돌아오다가 금석산 하씨 성 가진 사람의 집에서 잤는데, 그 주인이 말하기를 「조선 역관이 나에게 이르되 〈너에게 삼 년 묵은 술과 오 년 묵은 술이 있거든 아끼지 말고 즐겨라. 오래지 않아 군사가 올 것이니, 너희에게 술이 있은들 누가 그것을 마시겠느냐〉 하더라」 하였다. 이 때문에 요동 사람이 조선에 딴 뜻이 있는가 의심하여 많이 놀라고 의혹하였다 한다.
사신이 돌아와 그 일을 아뢰었다. 조정에서는 역관 가운데 반드시 말을 지어 일을 일으켜 본국을 무함하는 자가 있으리라 하여, 몇 사람을 잡아 인정전 뜰에서 국문하고 압슬과 화형을 썼으나 모두 자복하지 않고 죽었다. 이는 신묘년 무렵의 일이요, 이듬해에 드디어 왜변이 있었다.
이로써 알겠다. 큰 난리가 장차 일어나려 하면 사람은 비록 깨닫지 못하나, 조짐에 나타나는 것이 그 실마리가 하나가 아니다. 흰 무지개가 해를 꿰고 태백성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일에 이르러서는 없는 해가 없어 사람들이 예삿일로 보았다. 또 도성 안에 늘 검은 기운이 있어, 연기도 아니요 안개도 아닌 것이 땅에 서려 하늘에 닿았는데 이러기를 십여 년이었다. 그 밖의 변괴는 다 적기 어렵다. 하늘이 사람에게 알림이 깊고 간절하다 할 만하건만, 다만 사람이 살피지 못할 뿐이다.
협주 3
무인년은 1578년, 무자년은 1588년, 신묘년은 1591년이다.
팔참(八站)은 의주에서 요동으로 가는 길목의 여덟 역참이다.
압슬(壓膝)은 무릎을 눌러 자백을 받는 형벌이다.
杜詩長安城頭頭白烏夜飛延秋門上呼又向人家啄大屋屋底達官走避胡蓋記異也壬辰四月十七日賊報至朝野遑遑忽有恠鳥鳴於後苑飛在空中或近或遠只一鳥而聲滿城中人無不聞終日達夜其鳴不暫停如此十餘日。車駕出狩賊入城宮闕廟社公私廬舍一空嗚呼其亦恠甚矣又五月余隨駕至平壤寓於金乃進家乃進語余曰年前有豺屢入城中大同江水赤東邊濁甚西邊淸今果有此變時賊猶未至平壤余聞此語默然不答而心不喜未幾平壤又陷蓋豺乃野獸不合入城市如春秋記鸜鵒來巢六鷁退飛多麋有蜮之類鮮有無其應者天之示人顯矣聖人之垂戒深矣可不懼哉可不愼哉又壬辰春夏間歲星守尾箕尾箕乃燕分而自古言我國與燕同分時賊兵日逼人心洶懼不知所出一日。下敎曰福星方在我國賊不足畏蓋。聖意欲假此以鎭人心故也然是後都城雖失而卒能恢復舊物。旋軫故都賊酋秀吉又不能終逞兇逆而自斃斯豈偶然哉蓋莫非天也
두보의 시에 「장안 성머리의 머리 흰 까마귀가 밤에 날아 연추문 위에서 운다」 한 것은 대개 괴이한 일을 적은 것이다.
임진년 사월 열이렛날에 도적의 기별이 이르니 조정과 민간이 황황하였다. 문득 괴이한 새가 후원에서 울며 공중을 날아 혹 가깝고 혹 멀었는데, 다만 한 마리 새건만 소리가 성 안에 가득하여 듣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온종일 밤을 새우도록 그 울음이 잠시도 그치지 않았고, 이러기를 십여 일이었다. 거가가 성을 나가 피하시고 도적이 성에 들어오니, 궁궐과 종묘사직과 공사의 집이 한꺼번에 비었다. 아, 그 또한 괴이함이 심하다.
또 오월에 내가 거가를 따라 평양에 이르러 김내진(金乃進)의 집에 머물렀다. 내진이 나에게 말하기를 「몇 해 전에 승냥이가 여러 번 성 안에 들어왔고, 대동강 물이 붉었는데 동쪽 가는 몹시 흐리고 서쪽 가는 맑았습니다. 이제 과연 이 변이 있습니다」 하였다. 그때 도적이 아직 평양에 이르지 않았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잠잠히 대답하지 않았으나 마음에 기쁘지 않았는데, 얼마 되지 않아 평양이 또 함락되었다.
대개 승냥이는 들짐승이니 성안 저자에 들어옴이 마땅하지 않다. 춘추에 구욕새가 와서 깃들인 일, 여섯 마리 익새가 물러나 난 일, 고라니가 많았던 일, 역(蜮)이 있었던 일을 적은 것과 같이 그 응함이 없는 것이 드물었다. 하늘이 사람에게 보임이 뚜렷하고 성인이 경계를 드리움이 깊으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며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임진년 봄여름 사이에 세성이 미성과 기성에 머물렀다. 미와 기는 곧 연(燕) 땅의 분야인데, 예로부터 우리나라가 연과 분야를 같이한다 하였다. 그때 적병이 날로 다가와 인심이 흉흉하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루는 교지를 내리시기를 「복성이 바야흐로 우리나라에 있으니 도적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하셨다. 대개 성상의 뜻이 이를 빌려 인심을 진정시키고자 하신 까닭이다. 그러나 이 뒤에 도성은 비록 잃었으나 마침내 옛것을 되찾아 옛 도읍으로 수레를 돌리셨고, 적의 괴수 수길(秀吉)도 끝내 흉악한 역심을 부리지 못하고 스스로 죽었으니, 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대개 하늘 아닌 것이 없다.
협주 2
세성(歲星)은 목성이다. 분야(分野)는 하늘의 별자리를 땅의 지역에 나누어 짝지은 것이다.
역(蜮)은 물속에서 모래를 쏘아 사람을 해친다는 벌레다.
倭最奸巧其用兵殆無一事不出於詐術然以壬辰之事觀之可謂工於都城而拙於平壤也我國昇平百年民不知兵猝聞兵至倉皇顚倒遠近靡然皆失魂魄倭乘破竹之勢旬日之間徑造都城使智不及謀勇不及斷人心崩潰莫可收拾此兵家善謀而賊之巧計故曰工也於是乃自恃常勝之威而不顧其後散出諸道任其狂肆兵分則勢不得不弱千里連營曠日持久所謂强弩之末不能穿魯縞而張叔夜所謂女眞不知兵豈有孤軍深入而能善其歸者殆近之矣是以。天兵以四萬攻破平壤平壤旣破則其在諸道者亦皆奪氣雖京城猶據而大勢已縮我民之在四方者處處要擊賊首尾不能相救終不得不遁故曰拙於平壤也嗚呼賊之失計我之幸也誠使我國有一將將數萬兵相時用奇擊斷長蛇分其要脊行之於平壤之敗則其大帥可坐致也發之於京城以南則將使隻輪不返矣如此然後賊心驚膽破數十百年間不敢正視於我而無復後慮矣當時我方積衰力不能辦此。天朝諸將又不知出此使賊從容去來略無懲畏要索萬端於是出於下䇿欲以封貢覊縻之可勝歎哉可勝惜哉至今思之令人扼腕
왜는 가장 간교하여 그 군사 씀이 거의 한 가지 일도 속임수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임진년 일로 보건대, 도성에서는 공교하였고 평양에서는 졸렬하였다 할 만하다.
우리나라는 태평한 지 백 년이라 백성이 군사를 알지 못하더니, 갑자기 군사가 온다는 말을 듣고 창황히 넘어지며 멀고 가까운 데가 쓸리듯 하여 모두 넋을 잃었다. 왜가 대를 쪼개는 기세를 타고 열흘 사이에 바로 도성에 이르니, 지혜 있는 이가 꾀할 겨를이 없고 용맹한 이가 결단할 겨를이 없어 인심이 무너져 수습할 수 없었다. 이는 병가의 좋은 꾀요 도적의 공교한 계책이니, 그러므로 공교하다 한 것이다.
이에 늘 이기던 위엄을 스스로 믿고 그 뒤를 돌아보지 않아, 여러 도에 흩어져 나가 제멋대로 미쳐 날뛰게 하였다. 군사가 나뉘면 형세가 약해지지 않을 수 없고, 천 리에 진영을 잇대어 날을 허비하며 오래 끌었으니, 이른바 굳센 활의 끝은 노나라 얇은 비단도 뚫지 못한다는 것이다. 장숙야(張叔夜)가 「여진이 군사를 알지 못하니, 어찌 외로운 군사로 깊이 들어와 그 돌아감을 잘하는 자가 있으랴」 한 말에 거의 가깝다.
이러므로 천병이 사만으로 평양을 쳐 깨뜨렸고, 평양이 이미 깨지매 여러 도에 있던 자도 다 기운을 빼앗겼다. 비록 서울을 그대로 웅거하였으나 큰 형세는 이미 오그라들었고, 사방에 있던 우리 백성이 곳곳에서 길목을 막아 치니 도적이 머리와 꼬리가 서로 구원하지 못하여 마침내 달아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평양에서 졸렬하였다 한 것이다.
아, 도적이 계책을 그르친 것은 우리의 다행이다. 진실로 우리나라에 한 장수가 있어 수만 군사를 거느리고 때를 보아 기이한 꾀를 써서 긴 뱀을 쳐 끊고 그 허리를 갈랐던들, 평양에서 패한 때에 이를 행하였으면 그 큰 장수를 앉아서 잡을 수 있었을 것이요, 서울 남쪽에서 이를 일으켰으면 장차 수레바퀴 하나도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한 뒤에야 도적의 마음이 놀라고 쓸개가 깨져 수십 백 년 동안 감히 우리를 바로 보지 못하여 뒷근심이 다시 없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바야흐로 쇠약함이 쌓여 힘이 이를 해낼 수 없었고, 천조의 여러 장수도 또 이렇게 할 줄을 알지 못하여, 도적으로 하여금 조용히 오가며 조금도 징계하고 두려워함이 없이 만 가지로 요구하게 하였다. 이에 낮은 계책으로 나아가 봉공(封貢)으로 얽어매려 하였으니, 탄식을 이길 수 있으랴, 애석함을 이길 수 있으랴. 지금도 생각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팔뚝을 부르쥐게 한다.
협주 1
봉공(封貢)은 왜의 괴수를 왕으로 봉하고 조공을 바치도록 허락하여 달래는 일이다.
昔鼂錯上言兵事曰用兵臨戰合刃之急有三一曰得地形二曰卒服習三曰器用利三者兵之大要而勝負之所决爲將者不可不知也倭奴習於攻戰而器械精利古無鳥銃而今有之其致遠之力命中之巧倍蓰於弓矢我若相遇於平原廣野兩陣相對以法交戰則敵之極難蓋弓矢之技不過百步而鳥銃能及於數百步來如風雹其不能當必矣然先擇地形得其山阨險阻林木茂密處散伏射手使賊不見其形而左右俱發則彼雖有鳥銃槍刀皆無所施而可大勝也今擧一事爲證壬辰賊入京城逐日分掠於城外至。園陵亦不保有高陽人進士李櫓稍解操弓有膽氣一日與同伴二人各持弓矢入。昌敬陵不意賊衆大出滿谷中櫓等無以爲計奔入於藤蘿蒙密叢中賊來索之徘徊窺覘櫓等從其內輒射之皆應弦而倒又遷其處往來倐忽賊尤莫能測自是所至見叢薄則遠遠走避不敢近。二陵得全以此見之地形得失成敗隨之方賊在尙州申砬李鎰等若知出此先於兎遷鳥嶺三數十里間伏射手數千人使賊莫測多少則可以制敵乃以烏合之卒不鍊之兵棄其險塞相角於平地宜其敗也余於兵機備言之今又特記之以爲後戒
옛적에 조조(鼂錯)가 군사 일을 올려 말하기를 「군사를 써서 싸움에 임하여 칼날을 맞댈 때의 급한 것이 셋이니, 하나는 지형을 얻음이요, 둘은 군졸이 익숙함이요, 셋은 기구가 날카로움이라」 하였다. 이 셋은 군사의 큰 요체요 이기고 짐이 결단되는 바이니, 장수 된 자가 알지 않을 수 없다.
왜는 치고 싸우는 데 익숙하고 병기가 정하고 날카롭다. 예전에는 조총이 없었으나 이제는 있으니, 그 멀리 미치는 힘과 맞히는 재주가 활과 화살보다 몇 곱절이다. 우리가 만일 넓은 들에서 서로 만나 두 진이 마주하여 법대로 싸운다면 이를 대적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대개 활과 화살의 재주는 백 보에 지나지 않으나, 조총은 능히 수백 보에 미쳐 오기를 바람과 우박같이 하니 당해 내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먼저 지형을 가려 산이 막히고 험하며 나무가 우거진 곳을 얻어 사수를 흩어 매복시키고, 도적이 그 형체를 보지 못하게 하여 좌우에서 함께 쏘면, 저에게 비록 조총과 창칼이 있어도 다 쓸 곳이 없어 크게 이길 수 있다.
이제 한 가지 일을 들어 증거로 삼는다. 임진년에 도적이 서울에 들어와 날마다 나뉘어 성 밖을 노략하니 능묘까지도 보전하지 못하였다. 고양 사람 진사 이노(李櫓)가 활 잡기를 조금 알고 담기가 있었다. 하루는 동무 두 사람과 더불어 각기 활과 화살을 가지고 창릉·경릉에 들어갔더니, 뜻밖에 도적의 무리가 크게 나와 골짜기에 가득하였다. 노 등이 어찌할 계책이 없어 덩굴이 빽빽한 떨기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도적이 와서 찾으며 서성이고 엿보거늘 노 등이 그 안에서 문득 쏘니, 다 시위 소리에 응하여 거꾸러졌다. 또 그 자리를 옮겨 오가기를 잠깐 사이에 하니 도적이 더욱 헤아리지 못하였다. 이로부터 이르는 곳마다 우거진 떨기를 보면 멀리서 달아나 피하고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여 두 능이 온전함을 얻었다.
이로써 보건대 지형을 얻고 잃음에 이루고 무너짐이 따른다. 바야흐로 도적이 상주에 있을 때 신립(申砬)·이일(李鎰) 등이 만일 이렇게 할 줄 알아서, 먼저 토천과 조령 삼사십 리 사이에 사수 수천 명을 매복하여 도적으로 하여금 많고 적음을 헤아리지 못하게 하였던들 적을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까마귀 떼같이 모인 군졸과 익히지 않은 군사로 그 험한 요새를 버리고 평지에서 서로 겨루었으니 그 패함이 마땅하다. 내가 군사의 기틀을 말한 곳에서 갖추어 말하였으나, 이제 또 특별히 적어 뒷날의 경계로 삼는다.
협주 2
조조(鼂錯)는 한나라 문제 때의 신하다.
창릉·경릉은 고양에 있는 왕릉이다.
城者禦暴保民之所當以堅固爲主古人言城制皆曰雉所謂千雉百雉者是也余平時讀書鹵莾不知雉爲何物每以垜當之甞疑垜但千百則其城至小不能容衆將何以哉及變後始得戚繼光紀效新書讀之乃知雉非垜卽今之所謂曲城甕城者也蓋城無曲城甕城則雖人守一垜而垜間立盾以遮外面矢石賊之來傅城下者不可見而禦之也紀效新書每五十垜置一雉外出二三丈二雉間相去五十垜一雉各占地二十五垜矢力方盛左右顧眄便於發射敵無緣來附城下矣壬辰秋余久留安州念賊方在平壤若一朝西下則行在前面無一遮障處不量其力欲修安州城而守之重陽日偶出晴川江上顧視州城默坐深念者久之忽思得一䇿城外當從形勢別築凸城如雉制而空其中使容人前面及左右鑿出砲穴可從中放砲上建敵樓樓相距千步以上大砲中藏鐵丸如鳥卵者數斗賊多集城外砲丸從兩處交發無論人馬雖金石無不糜碎若是則他堞雖無守兵只使數十人守砲樓而敵不敢近矣此實守城妙法其制雖倣於雉而功勝於雉萬萬矣蓋千步之內敵旣不敢近則所謂雲梯衝車者皆不得用此事余偶思得之其時卽。啓聞。行在後於經席屢發之又欲使人見其必可用丙申春京城東水口門外擇地聚石作之未成而異論紛起廢而不修後日如有遠慮者勿以人廢言修擧此制則其於備禦之道所益不少矣
성이란 사나움을 막고 백성을 보전하는 곳이니 마땅히 굳음을 주로 삼아야 한다. 옛사람이 성 만드는 법을 말할 때 다 치(雉)라 하였으니, 이른바 천 치 백 치라는 것이 이것이다.
내가 평시에 글 읽기를 거칠게 하여 치가 무슨 물건인지 알지 못하고 늘 살받이터로 알았다. 일찍이 의심하기를, 살받이터가 다만 천이나 백이면 그 성이 지극히 작아 무리를 담지 못할 것이니 장차 어찌하랴 하였다. 난리 뒤에 비로소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를 얻어 읽고서야, 치가 살받이터가 아니라 곧 지금의 이른바 곡성(曲城)·옹성(甕城)임을 알았다.
대개 성에 곡성과 옹성이 없으면, 비록 사람마다 살받이터 하나씩을 지키고 그 사이에 방패를 세워 바깥의 화살과 돌을 가리더라도, 도적이 성 밑에 다가붙는 것을 보고 막을 수 없다. 기효신서에는 살받이터 쉰마다 치 하나를 두되 밖으로 두세 길 나오게 하고, 두 치 사이의 거리는 쉰 살받이터요 한 치가 각기 스물다섯 살받이터를 맡게 하였다. 그리하면 화살 힘이 바야흐로 성하고 좌우를 돌아보아 쏘기에 편하니, 적이 성 밑에 붙어 올 길이 없다.
임진년 가을에 내가 오래 안주에 머물면서 생각하기를, 도적이 바야흐로 평양에 있으니 만일 하루아침에 서쪽으로 내려오면 행재소 앞에 한 곳도 막아 가릴 데가 없다 하여, 그 힘을 헤아리지 않고 안주성을 고쳐 지키고자 하였다. 중양날에 우연히 청천강 가에 나가 고을 성을 돌아보며 잠잠히 앉아 깊이 생각한 지 오래더니, 문득 한 계책을 생각해 얻었다.
성 밖에 마땅히 형세를 따라 따로 불거진 성을 쌓되, 치의 제도와 같이 하고 그 안을 비워 사람이 들게 하며, 앞면과 좌우에 포 구멍을 뚫어 그 안에서 포를 놓을 수 있게 하고, 위에는 적루를 세우되 누와 누의 거리를 천 보 남짓하게 한다. 큰 포 안에는 새알만 한 쇠탄환 두어 말을 넣는다. 도적이 성 밖에 많이 모였을 때 포탄이 두 곳에서 엇갈려 나가면, 사람과 말은 말할 것도 없고 쇠와 돌이라도 부서지지 않는 것이 없다. 이같이 하면 다른 성가퀴에 지키는 군사가 없더라도 다만 수십 사람으로 포루를 지키게 하면 적이 감히 가까이하지 못한다. 이는 실로 성 지키는 묘한 법이니, 그 제도는 비록 치를 본떴으나 공효는 치보다 만만 배 낫다. 대개 천 보 안에 적이 이미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면, 이른바 구름사다리와 부딪는 수레를 다 쓰지 못한다.
이 일은 내가 우연히 생각해 얻은 것이라, 그때 곧 행재소에 아뢰었고 뒤에 경연 자리에서도 여러 번 말하였다. 또 사람들로 하여금 반드시 쓸 만함을 보게 하고자 하여, 병신년 봄에 서울 동쪽 수구문 밖에 땅을 가려 돌을 모아 만들다가, 이루지 못하고 딴 의논이 어지러이 일어나 그만두고 닦지 않았다. 뒷날 만일 멀리 생각하는 이가 있거든 사람으로 말을 버리지 말고 이 제도를 닦아 들면, 막아 지키는 길에 이익됨이 적지 않을 것이다.
협주 2
치(雉)는 성벽 밖으로 불거지게 내어 쌓아 옆에서 적을 쏘는 자리다.
살받이터〔垜〕는 성 위에 쌓아 몸을 숨기고 활을 쏘는 자리다.
余在安州時友人金士純爲慶尙右監司有書云欲修治晋州爲死守計先是賊甞一犯晋州不勝而退余答士純云賊早晩必來報來則必用大勢守比舊差難惟當建砲樓以待之可無患遂於書中詳言其制癸巳六月余聞賊復攻晉州謂辛從事慶晋曰晋事甚危幸而有砲樓則猶可支不然難守矣旣而下陜川聞晋已陷丹城縣監趙君宗道亦士純友也爲余言前年與士純同在晉州士純見余書踊躍稱奇卽與幕下士友數人巡城因其地形以爲當設於八處督令伐木浮江而下州民憚其役乃曰前無砲樓猶守郤賊今何用勞人士純不聽材已具始役有日適士純病不起其事遂寢云相與一痛而罷嗚呼士純之不幸卽一城千萬人之不幸也斯固數也非人力之所能容
내가 안주에 있을 때 벗 김사순(金士純)이 경상 우감사가 되어 글을 보내기를 「진주를 고쳐 다스려 죽기로 지킬 계책을 삼고자 한다」 하였다. 이보다 앞서 도적이 일찍이 한 번 진주를 범하였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갔다.
내가 사순에게 답하기를 「도적이 조만간 반드시 와서 앙갚음할 것이요, 오면 반드시 큰 형세를 쓸 것이니 지키기가 예전보다 조금 어려울 것이다. 오직 포루를 세워 기다려야 근심이 없으리라」 하고, 드디어 글 가운데 그 제도를 자세히 말하였다.
계사년 유월에 내가 도적이 다시 진주를 친다는 말을 듣고 종사관 신경진(辛慶晉)에게 이르기를 「진주 일이 심히 위태롭다. 다행히 포루가 있으면 오히려 버틸 수 있으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지키기 어렵겠다」 하였다. 이윽고 합천으로 내려가 진주가 이미 함락되었음을 들었다.
단성 현감 조종도(趙宗道)도 사순의 벗이라 나에게 말하기를 「지난해에 사순과 함께 진주에 있었는데, 사순이 그대의 글을 보고 뛰며 기이하다 일컫고, 곧 막하의 선비 벗 두어 사람과 성을 돌며 그 지형을 따라 마땅히 여덟 곳에 베풀어야 한다 하여 나무 베어 강에 띄워 내리기를 재촉하였습니다. 고을 백성이 그 역사를 꺼려 이르되 〈전에 포루가 없어도 오히려 지켜 도적을 물리쳤거늘 이제 어찌 사람을 수고롭게 하는가〉 하였으나, 사순이 듣지 않고 재목을 이미 갖추어 역사를 시작한 지 며칠 되었는데, 마침 사순이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매 그 일이 드디어 그쳤습니다」 하였다. 서로 한 번 아파하고 파하였다.
아, 사순의 불행은 곧 한 성 천만 사람의 불행이다. 이는 진실로 운수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협주 1
김사순(金士純)은 김성일(金誠一)이니, 사순은 그의 자다.
壬辰四月賊連陷內郡我軍望風潰散無敢交鋒者備邊司諸臣日聚。闕下講備禦之䇿而無以爲計或建議曰賊善用槍刀我無堅甲可禦故不能敵當以厚鐵爲滿身甲長不見物被入賊陣則賊無隙可刺而我可勝矣衆曰然於是大聚工匠晝夜打造余獨以爲不可曰與賊鬪雲合鳥散貴於捷疾旣被滿身厚甲其重不可勝身且不能運何望殺賊數日知其難用遂罷又臺諫請見大臣言計其中一人盛氣斥大臣無謀座上問有何䇿對曰何不於漢江邊多設高棚使賊不得上而俯射之耶或曰賊之鐵丸亦不得上耶其人無語而退聞者傳以爲笑嗚呼兵無常勢戰無常法臨機制變進退合散出奇無窮只在於將而已然則千言萬計皆無用惟在於得一將才而鼂錯所陳三䇿尤係切要闕一不可其餘紛紛者何補焉大抵國家擇將於無事之日任將於有事之際擇之貴精任之貴專當時慶尙道水將則朴泓元均陸將則李珏曹大坤已非才選及其變生巡邊使防禦使助防將等皆自朝廷受命而來各持專斷之權自行號令進退由意而不相統屬正犯輿尸之戒事何由得濟且所養非所用所用非所養將卒不相知皆兵家大忌奈何前車旣覆後不知改至今尙循此塗轍如此而望其無事者特幸耳言之其說甚長非可一二盡嗚呼危哉
임진년 사월에 도적이 안쪽 고을을 잇달아 함락하니, 우리 군사가 적의 기세만 보고도 무너져 흩어져 감히 칼날을 맞대는 자가 없었다. 비변사 여러 신하가 날마다 대궐 아래 모여 막아 지킬 계책을 의논하였으나 계책이 없었다.
어떤 이가 의논을 내기를 「도적이 창칼을 잘 쓰는데 우리는 막을 굳은 갑옷이 없으므로 대적하지 못한다. 마땅히 두꺼운 쇠로 온몸 갑옷을 만들되 길어서 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여, 입고 적진에 들어가면 도적이 찌를 틈이 없어 우리가 이길 수 있다」 하니, 여럿이 옳다 하여 이에 공장을 크게 모아 밤낮으로 두드려 만들었다. 나만 홀로 옳지 않다 하여 말하기를 「도적과 싸움은 구름처럼 모이고 새처럼 흩어지는 것이라 빠름을 귀히 여기는데, 이미 온몸에 두꺼운 갑옷을 입으면 그 무거움을 이기지 못하여 몸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 어찌 도적 죽이기를 바라겠는가」 하였다. 며칠 만에 쓰기 어려움을 알고 드디어 그만두었다.
또 대간이 대신을 뵙고 계책을 말하기를 청하였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기운을 돋우어 대신이 꾀 없음을 배척하였다. 자리에 있던 이가 「무슨 계책이 있느냐」 물으니 대답하기를 「어찌 한강 가에 높은 시렁을 많이 베풀어 도적이 올라오지 못하게 하고 굽어 쏘지 않는가」 하였다. 어떤 이가 「도적의 철환도 올라오지 못하느냐」 하니 그 사람이 말없이 물러났고, 듣는 이가 전하여 웃음거리로 삼았다.
아, 군사에는 일정한 형세가 없고 싸움에는 일정한 법이 없다. 기틀에 임하여 변화를 지어 나아가고 물러나며 모이고 흩어져 기이한 꾀를 다함없이 내는 것은 다만 장수에게 있을 뿐이다. 그런즉 천 마디 말과 만 가지 계책이 다 쓸데없고 오직 한 장수 재목을 얻는 데 있다. 조조가 베푼 세 계책이 더욱 간절하고 요긴하여 하나라도 빠뜨릴 수 없으니, 그 밖의 어지러운 것들이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대저 나라는 일 없는 날에 장수를 가리고 일 있는 즈음에 장수를 맡기니, 가림은 정밀함을 귀히 여기고 맡김은 오로지함을 귀히 여긴다. 그때 경상도 수군 장수는 박홍(朴泓)·원균(元均)이요 육군 장수는 이각(李珏)·조대곤(曺大坤)이니 이미 재주로 뽑은 것이 아니었다. 변이 나매 순변사·방어사·조방장 등이 다 조정에서 명을 받아 와, 각기 오로지 결단하는 권한을 가지고 스스로 호령을 행하며 나아가고 물러남을 제 뜻대로 하여 서로 거느리고 딸리지 않았으니, 바로 주검을 수레에 싣는다는 경계를 범한 것이라 일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겠는가.
또 기른 바가 쓰는 바가 아니요 쓰는 바가 기른 바가 아니며 장수와 군졸이 서로 알지 못하니, 다 병가의 크게 꺼리는 바이다. 어찌하여 앞 수레가 이미 엎어졌는데 뒤에서 고칠 줄을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 오히려 이 바퀴 자국을 따르는가. 이같이 하고서 일 없기를 바라는 것은 다만 요행일 뿐이다. 말하자면 그 말이 심히 길어 한둘로 다할 수 없다. 아, 위태롭구나.
협주 1
주역 사괘(師卦)에 「군사를 여럿이 거느리면 주검을 수레에 싣는다」 하였으니, 명령이 하나로 나오지 않음을 경계한 말이다.
癸巳正月。天兵發平壤余在軍前先行時臨津氷泮不可渡提督連遣人督造浮橋余至金郊驛見黃海道守令率吏民候餉大軍者滿野余召牛峰縣令李希愿問所率邑人幾何曰近數百余分付曰爾速領邑人登山採葛明日會余於臨津江口不可失期希愿去翌日余宿開城府又明日曉馳至德津堂見江氷猶未盡解氷上流澌半身許下流舟艦不得上京畿巡察使權徵水使李蘋長湍府使韓德遠及倡義秋義軍千餘人集江面皆束手無計余令呼牛峰人納葛綯爲巨索大數圍長可橫江江南北岸各立兩柱相對其內偃置一橫木引巨索十五條鋪過江面兩頭結橫木江面旣濶遠索半沉水不能起衆曰徒費人力余令千餘人各持短杠二三尺穿葛索極力回轉數周互相撑起排比如櫛於是衆索緊束高起穹窿儼然成橋樣刈細柳鋪其上厚覆以草而加之土唐軍見之大喜皆揚鞭馳馬而過炮車軍器皆從此渡旣而渡者益多絞索頗緩近水大軍由淺灘以渡而無責焉余念其時倉卒備葛不多更倍之得三十條則加緊無緩矣後見南北史齊兵攻梁主巋巋與周總管陸騰拒之周人於峽口南岸築安蜀城橫引大索於江上編葦爲橋以渡軍糧正是此法余自謂偶思得之不知古人已行爲之一笑因記其事以爲他日應猝之助云
계사년 정월에 천병이 평양을 떠나매 내가 군사 앞에 있어 먼저 갔다. 그때 임진강 얼음이 풀려 건널 수 없으므로 제독이 잇달아 사람을 보내어 부교 만들기를 재촉하였다.
내가 금교역에 이르러 보니, 황해도 수령이 아전과 백성을 거느리고 대군 먹일 것을 기다리는 자가 들에 가득하였다. 내가 우봉 현령 이희원(李希愿)을 불러 거느린 고을 사람이 얼마냐 물으니 「수백에 가깝습니다」 하였다. 내가 분부하기를 「너는 빨리 고을 사람을 거느리고 산에 올라 칡을 캐어, 내일 임진강 어귀에서 나를 만나라. 기한을 어기지 말라」 하니 희원이 갔다.
이튿날 내가 개성부에서 자고 그 다음 날 새벽에 덕진당에 달려 이르러 보니, 강 얼음이 아직 다 풀리지 않아 얼음 위에 성엣장이 반 몸쯤 흐르고 아래로 배가 올라오지 못하였다. 경기 순찰사 권징(權徵), 수사 이빈(李蘋), 장단 부사 한덕원(韓德遠)과 창의군·추의군 천여 사람이 강가에 모였으나 다 손을 묶고 계책이 없었다.
내가 영을 내려 우봉 사람을 불러 칡을 바치게 하고 꼬아 큰 동아줄을 만드니, 굵기가 두어 아름이요 길이가 강을 가로지를 만하였다. 강 남북 언덕에 각기 두 기둥을 마주 세우고 그 안에 가로지른 나무 하나를 뉘어 놓았다. 큰 동아줄 열다섯 가닥을 끌어 강 위에 펴 건너게 하고 두 끝을 가로지른 나무에 맸다. 강 너비가 이미 넓고 머니 줄이 반이나 물에 잠겨 일어나지 못하매, 여럿이 「한갓 사람 힘만 허비한다」 하였다.
내가 천여 사람으로 각기 두세 자 되는 짧은 막대를 가지게 하여 칡줄에 꿰고 힘을 다하여 두어 바퀴 돌리게 하니, 서로 버티어 일어나 빗살같이 벌여 섰다. 이에 여러 줄이 팽팽히 묶여 높이 일어나 활등처럼 굽어 엄연히 다리 모양을 이루었다. 가는 버들을 베어 그 위에 펴고 풀로 두껍게 덮고 흙을 더하였다. 당군이 보고 크게 기뻐하여 다 채찍을 들고 말을 달려 지나갔고, 포차와 군기가 다 이로 좇아 건넜다. 이윽고 건너는 자가 더욱 많아 꼰 줄이 자못 늘어져 물에 가까워지매, 대군이 얕은 여울로 건넜으나 책망함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니 그때 창졸간이라 칡을 갖춤이 많지 않았으니, 다시 곱하여 서른 가닥을 얻었던들 더 팽팽하여 늘어짐이 없었을 것이다. 뒤에 남북사를 보니, 제나라 군사가 양나라 임금 규(巋)를 칠 때 규가 주나라 총관 육등(陸騰)과 더불어 막았는데, 주나라 사람이 협구 남쪽 언덕에 안촉성을 쌓고 큰 줄을 강 위에 가로 끌어 갈대를 엮어 다리를 만들어 군량을 건넜다 하니, 바로 이 법이었다. 내가 스스로 우연히 생각해 얻었다 하였더니 옛사람이 이미 행한 줄을 알지 못하였으매, 이를 위하여 한 번 웃었다. 인하여 그 일을 적어 뒷날 창졸간에 응할 도움으로 삼는다.
癸巳夏余病臥漢城墨寺洞一日。天將駱尙志訪余于臥次問病甚勤因言朝鮮方微弱而賊猶在境上練兵禦敵最爲急務宜乘此。天兵未回學習鍊兵法以一敎十以十敎百則數年間皆成精鍊之卒可以守國余感其言卽馳。啓于。行在因使所帶禁軍韓士立招募京中得七十餘人往駱公處請敎駱撥帳下曉陣法張六三等十人爲敎師日夜鍊習槍劒筤筅等技旣而余下南方其事旋廢。上見狀啓下備邊司令別設都監訓鍊以尹相斗壽領其事其年九月余自南。召赴。行在迎。駕於海州扈從還都至延安更。命余代領都監事時都城飢甚余請發龍山倉唐粟米一千石日給人二升應募者四集都監堂上趙儆以糓小不能給欲設法限節置一巨石令願募者先擧石試力又令招越土墻丈許能者許入不能者拒之人飢困無氣中格者十一二或在都監門外求試不得顚仆而死未久得數百千人立把摠哨官分部領之又欲敎鳥銃而無火藥有軍器寺匠人大豐孫者以入賊陳多煑火藥與賊囚江華將殺之余特貸其死令煑熖焇贖罪其人感懼爲之盡力一日所煑幾十斤逐日分諸各部晝夜習放第其能否而賞罰之月餘能中飛鳥數月後與降倭及南方之善鳥銃者相較無不及而或過之余上箚請措置軍糧益募兵滿一萬置五營營各隷二千每年半留城中敎鍊半出城外擇閒曠肥饒地屯田積粟輪還遞代則數年之後兵食之源厚而根本固矣。上下其議兵曹不卽擧行卒無見效
계사년 여름에 내가 병들어 한성 묵사동에 누웠더니, 하루는 천장 낙상지(駱尙志)가 누운 자리로 나를 찾아와 병을 묻기를 심히 은근히 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조선이 바야흐로 미약한데 도적이 아직 지경 위에 있으니 군사를 익혀 적을 막음이 가장 급한 일이다. 마땅히 천병이 돌아가지 않은 이때를 타 군사 익히는 법을 배워, 하나로 열을 가르치고 열로 백을 가르치면 두어 해 사이에 다 정예한 군졸을 이루어 나라를 지킬 수 있으리라」 하였다.
내가 그 말에 감동하여 곧 행재소에 달려 아뢰고, 인하여 거느린 금군 한사립(韓士立)으로 서울 안에서 불러 모으게 하여 칠십여 사람을 얻어 낙공의 처소에 가서 가르치기를 청하였다. 낙이 장막 아래 진법에 밝은 장육삼(張六三) 등 열 사람을 뽑아 교사로 삼아, 밤낮으로 창과 칼과 낭선 등의 재주를 익히게 하였다. 이윽고 내가 남방으로 내려가매 그 일이 곧 폐하였다.
임금께서 장계를 보시고 비변사에 내리시어 따로 도감을 베풀어 훈련하게 하시고 정승 윤두수(尹斗壽)로 그 일을 거느리게 하셨다. 그해 구월에 내가 남쪽에서 부름을 받아 행재소에 나아가 해주에서 거가를 맞고 호종하여 도읍에 돌아오는데, 연안에 이르러 다시 나에게 명하시어 도감 일을 대신 거느리게 하셨다.
그때 도성에 주림이 심하였다. 내가 용산창의 당속미 일천 석을 내기를 청하여 날마다 사람에게 두 되씩 주니 응모하는 자가 사방에서 모였다. 도감 당상 조경(趙儆)이 곡식이 적어 다 주지 못하겠다 하여 법을 베풀어 한정하고자, 큰 돌 하나를 놓고 응모하려는 자로 먼저 돌을 들어 힘을 시험하게 하고, 또 한 길쯤 되는 흙담을 뛰어넘게 하여 능한 자는 들이고 능하지 못한 자는 물리쳤다. 사람이 주리고 곤하여 기운이 없으므로 격식에 맞는 자가 열에 한둘이요, 혹은 도감 문밖에서 시험 받기를 구하다가 얻지 못하고 넘어져 죽었다. 오래지 않아 수백 천 사람을 얻어 파총과 초관을 세워 부를 나누어 거느리게 하였다.
또 조총을 가르치고자 하였으나 화약이 없었다. 군기시 장인 대풍손(大豐孫)이란 자가 적진에 들어가 화약을 많이 달여 도적에게 준 일로 강화에 갇혀 장차 죽이게 되었는데, 내가 특별히 그 죽음을 용서하고 염초 달이기로 죄를 속하게 하였다. 그 사람이 감격하고 두려워하여 힘을 다하니 하루에 달인 것이 거의 열 근이었다. 날마다 각 부에 나누어 밤낮으로 놓기를 익히게 하고 그 능하고 능하지 못함을 차례하여 상주고 벌하였다. 한 달 남짓에 나는 새를 맞힐 수 있었고, 두어 달 뒤에는 항복한 왜와 남방의 조총 잘하는 자와 견주어 미치지 못함이 없고 혹 넘기도 하였다.
내가 차자를 올려 군량 마련하기를 청하고, 군사를 더 모아 일만을 채워 다섯 영을 두고 영마다 이천씩 딸리게 하여, 해마다 반은 성 안에 머물러 가르쳐 익히고 반은 성 밖에 나가 비고 기름진 땅을 가려 둔전하여 곡식을 쌓게 하며 돌려 가며 갈마들게 하면, 두어 해 뒤에는 군사와 먹을 것의 근원이 두터워 근본이 굳으리라 하였다. 임금께서 그 의논을 내리셨으나 병조가 곧 거행하지 않아 마침내 보람이 없었다.
협주 3
낭선(筤筅)은 대나무의 잔가지를 그대로 두어 적의 창칼을 얽는 긴 병기다.
당속미(唐粟米)는 명나라에서 온 좁쌀이다.
염초(熖焇)는 화약의 밑감이 되는 흙에서 구워 낸 재료다.
沈惟敬自平壤出入賊中不無勞苦然以講和爲名故不爲我國所喜最後賊留釜山久不渡海李册使逃還。中朝就差惟敬充副使與楊使入倭國移不得要領而回行長淸正等還屯海上於事。中國與我國論議藉藉皆歸咎沈惟敬甚者或言惟敬與賊同謀有叛形我國僧人松雲入西生浦見淸正還言賊欲犯。大明所言絕悖卽具奏。天朝聞者益怒惟敬知禍至憂懼不知所出乃貽書金命元叙其終始以自辨其書曰日月倐馳往事如昨憶昔倭寇貴境直低平壤目中已無八道矣老𣏓㘅。命哨探倭情相機撫馭得與足下曁李體察相會于擾攘之中目擊平壤迤西一帶居民流離愁苦如坐針氈朝不謀夕之狀殊可痛心足下身歷其事不待老!之喋喋者老朽檄召行長相會乾伏山約束不令西侵聽命罔敢踰越者數月延及大兵之至而致平壤之克設或彼時老朽不來倭乘祖公之敗而走義州未可知也平壤一道居民不被其荼毒者貴國之幸莫大矣旣而倭將行長退守王京總兵秀家付將三成長盛等三十餘將合兵連營控險阨要牢不可破碧蹄戰後尤難進取彼時判書李德馨者謁見老朽於開城將謂賊勢旣張大兵且退王京必無可望矣涕泣語老朽云王京根本之地得之可以號召諸道乃今事勢至此將奈之何老朽云徒復王京若無漢江以南諸道事勢亦難展布德馨云苟得王京實出望外漢江以南小邦君臣自能尺寸支撑不難也老朽云我試與爾國圖之務得王京幷復漢江以南諸道乃還王子陪臣方爲全國德馨涕泣叩頭感激云果得如此老爺再造小邦功德不淺鮮矣俄而老朽舟次漢江。王子臨海君等自淸正營遣人奔語老朽云倘得歸國漢江以南不拘何地任意與之老朽不從且與倭將誓云肯還還之不肯還隨爾殺之其他不必言也。王子係貴國儲君老朽敢不知重當此之時寧言殺之而不肯許他事及至釜山損資盡禮多方曲意于。王子前倨慢而後恭敬時有緩急事有輕重不得已也數言之下王京倭退矣沿途營栅遺糧不可勝計矣漢江以南諸道盡得矣。王子陪臣歸國矣終以一封覊縻諸酋歛手於釜山窮海之地候命三年不敢妄動續以封事議成老朽奉命調戢王京復會足下曁李德馨輩云今往封矣倭或退矣貴邦善後之計何如德馨應聲云善後之事小邦君臣責任也老爺不須掛意老朽初聽其言未甞不奇其大有力量大有識見偉然一柱石也及今覈其事實似覺文章功業不相符合老朽不能不爲李判書惜且如釜山竹島諸營未聞卽撤老朽責也而機張西生諸處倭兵盡渡營栅盡焚交割地方官俱有甘結矣何乃淸正一來不聞一戰不折一矢地方官抽身讓之何也旣言漢江以南自能尺寸支撑而何至已得復失若此乎又言善後之事小邦責任何不聞大計止有號泣闕下之一䇿乎法云强弱不當衆寡不敵老朽亦非責難于貴國諸當事但云緩則治其本急則治其標鍊兵修守相時撫馭貴國當事諸賢亦不可寘之不問耳渡海以來老朽四會貴國。王彼此問對之言出于胸臆合于時宜毫無假借毫無虛謬。國王之心老朽之心彼此洞鑑明矣老朽誠謂東事至此可無他慮不期貴國謀臣䇿士機智百端間事迭出內以危言激怒于。天朝外以弱卒挑釁于日本至于松雲一番說話則又出禮法之外其曰前驅伐。大明曰割八道。國王親自渡海歸服頃刻之間二三其說但知此言可使。國王動念矣可激。天朝發兵矣獨不念貴國止有八道若盡許之又許。國王親自渡海歸服則貴國之宗社臣民皆爲日本矣又可取于。二王子耶老朽以爲三尺之童决不失言至此淸正雖橫亦不放肆至此又不念我堂堂。天朝統馭外藩自有大體一恩一威亦自有時必不肯以數百載相傳之屬國置之度外亦不肯縱不奉約束之逆賊擄我藩籬理勢然也老朽極不省事至于內外親疎之別逆順向背之情亦人人之所易曉者矧玆欽承勅命調戢此事成敗休戚關係非輕敢以貴國之事蔑焉不加意耶又敢以日本之橫隱然而不報耶足下深于大體詳于國事用是走書幸足下亮我素衷卽爲上達。國王併使當事羣僚槪知所以旣云仰我。天朝以爲萬全之圖還當聽命處分以冀無疆之福毋徒過計日勞而日拙也至囑不盡觀此書王京以前則鑿鑿可懲矣釜山以後未免支辭隱語然功罪自不相揜後之論惟敬者當以此爲斷案故著之云
심유경(沈惟敬)이 평양에서부터 도적 가운데 드나들어 수고로움이 없지 않았으나, 강화를 이름으로 삼은 까닭에 우리나라의 기뻐하는 바가 되지 못하였다. 맨 뒤에 도적이 부산에 머물러 오래 바다를 건너지 않으니, 이 책사(册使)가 도망하여 돌아가매 중조에서 유경을 뽑아 부사로 채워 양 사신과 함께 왜국에 들어갔다가 요령을 얻지 못하고 돌아왔고, 행장(行長)·청정(淸正) 등이 돌아와 바다 위에 둔쳤다.
이 일에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논이 자자하여 다 심유경에게 허물을 돌리고, 심한 자는 「유경이 도적과 한가지로 꾀하여 배반할 형상이 있다」 하였다. 우리나라 중 송운(松雲)이 서생포에 들어가 청정을 보고 돌아와 「도적이 대명을 범하고자 하며 그 말이 매우 패악하다」 하여 곧 천조에 갖추어 아뢰니, 듣는 이가 더욱 노하였다. 유경이 화가 이름을 알고 근심하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이에 김명원(金命元)에게 글을 보내어 그 처음과 끝을 서술하여 스스로 변명하였다. 그 글에 이르기를,
「해와 달이 빨리 달려 지난 일이 어제 같습니다. 생각건대 지난날 왜가 귀국 지경을 노략하여 바로 평양에 이르렀을 때, 눈 안에 이미 팔도가 없었습니다. 늙은 몸이 명을 받들어 왜의 정황을 살피고 기틀을 보아 어루만져 다스리다가, 족하와 이 체찰사와 어지러운 가운데 서로 만남을 얻었습니다. 평양 서쪽 일대 백성이 흩어져 시름하고 괴로워하여, 바늘 담요에 앉은 듯 아침에 저녁을 꾀하지 못하는 모양을 눈으로 보니 자못 마음이 아팠습니다. 족하가 몸소 그 일을 겪었으니 늙은 몸의 지껄임을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늙은 몸이 격문으로 행장을 불러 건복산에서 서로 만나 약속하여 서쪽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니, 명을 듣고 감히 넘지 못한 것이 두어 달이었고, 끌어 대군이 이름에 미쳐 평양을 이김에 이르렀습니다. 설혹 그때 늙은 몸이 오지 않았던들, 왜가 조공(祖公)의 패함을 타 의주로 달렸을지 알 수 없습니다. 평양 한 도의 백성이 그 독한 해를 입지 않은 것은 귀국의 다행이 이보다 큼이 없습니다.
이윽고 왜장 행장이 물러나 왕경을 지키고, 총병 수가(秀家)와 부장 삼성(三成)·장성(長盛) 등 서른 남은 장수가 군사를 합하고 진영을 잇대어 험한 데를 잡고 요긴한 데를 막으니 굳어서 깨뜨릴 수 없었고, 벽제 싸움 뒤에는 더욱 나아가 취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때 판서 이덕형(李德馨)이 개성에서 늙은 몸을 뵈옵고, 도적의 형세가 이미 펴지고 대군이 또 물러가니 왕경은 반드시 바랄 것이 없다 하며 울며 이르되 〈왕경은 근본이 되는 땅이라 얻으면 여러 도를 불러 모을 수 있는데, 이제 일의 형세가 이에 이르렀으니 장차 어찌하리까〉 하였습니다. 늙은 몸이 이르되 〈한갓 왕경만 되찾고 한강 이남 여러 도가 없으면 일의 형세가 또한 펴기 어렵다〉 하니, 덕형이 이르되 〈진실로 왕경을 얻으면 실로 바람 밖입니다. 한강 이남은 작은 나라 임금과 신하가 스스로 한 자 한 치를 버티기 어렵지 않습니다〉 하였습니다. 늙은 몸이 이르되 〈내가 시험 삼아 너의 나라와 더불어 도모하되, 왕경을 얻고 아울러 한강 이남 여러 도를 되찾으며 왕자와 배신을 돌려보내게 하여야 바야흐로 온전한 나라가 되리라〉 하니, 덕형이 울며 머리를 조아려 감격하여 이르되 〈과연 이같이 되면 노야께서 작은 나라를 다시 만드심이라, 공덕이 얕고 적지 않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이윽고 늙은 몸이 배로 한강에 머무르매, 왕자 임해군 등이 청정의 진영에서 사람을 보내어 달려와 이르되 〈만일 나라에 돌아가게 되면 한강 이남은 어느 땅이든 가리지 말고 뜻대로 주소서〉 하였습니다. 늙은 몸이 좇지 않고 또 왜장과 더불어 맹세하여 이르되 〈돌려보내려거든 돌려보내고, 돌려보내지 않으려거든 너희 마음대로 죽이라. 그 밖의 것은 말할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왕자는 귀국의 세자 될 분이니 늙은 몸이 감히 중함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이때를 당하여 차라리 죽이라 말할지언정 다른 일은 허락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부산에 이르러서는 재물을 덜고 예를 다하여 여러 가지로 왕자에게 뜻을 굽혔으니, 앞에는 거만하고 뒤에는 공경한 것은 때에 늦고 급함이 있고 일에 가볍고 무거움이 있어 마지못한 것입니다.
두어 마디 말 아래 왕경의 왜가 물러갔고, 길을 따른 진영과 남긴 곡식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며, 한강 이남 여러 도를 다 얻었고, 왕자와 배신이 나라에 돌아왔습니다. 마침내 한 봉함으로 여러 괴수를 얽어매어 부산 궁벽한 바닷가에 손을 거두고 삼 년을 명을 기다리며 감히 망령되이 움직이지 못하였습니다.
이어 봉하는 일의 의논이 이루어지매 늙은 몸이 명을 받들어 왕경에서 조처하고 가라앉히는데, 다시 족하와 이덕형의 무리를 만나 이르되 〈이제 봉하러 가니 왜가 혹 물러가려니와, 귀국의 뒷일을 잘할 계책이 어떠하뇨〉 하니, 덕형이 소리에 응하여 이르되 〈뒷일을 잘함은 작은 나라 임금과 신하의 책임이니 노야께서 마음에 걸어 두실 것이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늙은 몸이 처음 그 말을 듣고 그 크게 역량이 있고 크게 식견이 있어 우뚝한 한 기둥돌이라 기이히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 사실을 캐어 보매 글과 공업이 서로 맞지 않음을 깨닫는 듯하니, 늙은 몸이 이 판서를 위하여 애석히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부산과 죽도의 여러 진영이 곧 걷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늙은 몸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기장·서생 여러 곳의 왜병이 다 건너가고 진영과 목책이 다 불탔으며 넘겨받은 지방관이 다 다짐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청정이 한 번 오매 한 번 싸웠다는 말도 듣지 못하고 화살 하나 꺾음도 없이 지방관이 몸을 빼어 내어 주었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이미 한강 이남을 스스로 한 자 한 치 버틸 수 있다 하였거늘, 어찌 이미 얻은 것을 다시 잃음이 이에 이르렀습니까. 또 뒷일을 잘함이 작은 나라의 책임이라 하였거늘, 어찌 큰 계책을 듣지 못하고 다만 대궐 아래 울부짖는 한 계책만 있습니까.
병법에 이르되 〈강하고 약함이 당하지 못하고 많고 적음이 대적하지 못한다〉 하였으니, 늙은 몸이 또한 귀국의 일 맡은 여러분을 어렵게 책망함이 아니라, 다만 느슨하면 그 근본을 다스리고 급하면 그 끝을 다스린다 이르는 것입니다. 군사를 익히고 지킴을 닦으며 때를 보아 어루만져 다스림은, 귀국의 일 맡은 여러 어진 이도 버려두고 묻지 않을 수 없을 뿐입니다.
바다를 건너온 뒤로 늙은 몸이 네 번 귀국 임금을 뵈어, 피차에 묻고 대답한 말이 가슴속에서 나와 때의 마땅함에 합하여 털끝만큼도 빌려 꾸밈이 없고 털끝만큼도 헛되고 그릇됨이 없었습니다. 국왕의 마음과 늙은 몸의 마음을 피차 환히 비추어 밝습니다. 늙은 몸이 진실로 동쪽 일이 이에 이르렀으니 다른 근심이 없으리라 하였더니, 뜻밖에 귀국의 꾀하는 신하와 계책하는 선비가 기지를 백 가지로 내어 이간하는 일이 번갈아 나왔습니다. 안으로는 위태로운 말로 천조를 격노하게 하고, 밖으로는 약한 군졸로 일본에 틈을 돋우었으며, 송운의 한 번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또 예법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말에 〈앞장서 대명을 친다〉 하고 〈팔도를 베어 준다〉 하고 〈국왕이 몸소 바다를 건너 돌아와 복종한다〉 하였으니, 잠깐 사이에 그 말이 두세 가지였습니다. 다만 이 말이 국왕의 생각을 움직이게 하고 천조를 격동하여 군사를 내게 할 줄만 알았고, 홀로 생각하지 못한 것은 귀국에 다만 팔도가 있을 뿐이니 만일 다 허락하고 또 국왕이 몸소 바다를 건너 복종함을 허락하면, 귀국의 종묘사직과 신하와 백성이 다 일본의 것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또 두 왕자에게서 무엇을 취하겠습니까. 늙은 몸은 생각하되, 세 자 어린아이라도 결코 말을 잃음이 이에 이르지 않을 것이요 청정이 비록 횡포하나 또한 방자함이 이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또 생각하지 못한 것은, 우리 당당한 천조가 밖의 울타리를 거느림에 스스로 큰 체통이 있어 한 번 은혜하고 한 번 위엄함에 또한 스스로 때가 있으니, 반드시 수백 해를 서로 전한 속국을 헤아림 밖에 두려 하지 않을 것이요, 또한 약속을 받들지 않는 역적을 놓아 우리 울타리를 사로잡게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니, 이치와 형세가 그러합니다. 늙은 몸이 지극히 일을 살피지 못하나, 안팎과 친하고 성근 분별과 거스르고 순하며 향하고 등지는 정은 또한 사람마다 쉬이 아는 바입니다. 하물며 이에 칙명을 공경히 받들어 이 일을 조처하고 가라앉힘에, 이루고 무너지며 기쁘고 슬픈 관계가 가볍지 않으니, 감히 귀국의 일을 업신여겨 뜻을 더하지 않겠으며, 또 감히 일본의 횡포를 숨기고 알리지 않겠습니까.
족하는 큰 체통에 깊고 나랏일에 자세하므로 이로써 글을 달려 보냅니다. 바라건대 족하는 나의 본디 마음을 살펴 곧 국왕께 올려 아뢰고, 아울러 일 맡은 여러 관원으로 그 까닭을 대개 알게 하소서. 이미 우리 천조를 우러러 만전의 도모로 삼는다 하였은즉, 도리어 마땅히 명을 듣고 처분을 좇아 끝없는 복을 바랄 것이요, 한갓 지나친 계교로 날로 수고하고 날로 졸렬해지지 마소서. 지극히 부탁하며 다하지 못합니다」 하였다.
이 글을 보건대, 왕경 이전은 또렷하여 징험할 만하고 부산 이후는 갈라진 말과 숨긴 말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공과 죄가 스스로 서로 가리지 못하니, 뒤에 유경을 논하는 자는 마땅히 이것으로 판단할 안건을 삼아야 할 것이므로 적는다.
협주 4
저본에 「老𣏓」·「老!」로 된 자리가 있으나 모두 「老朽」(늙은 몸)의 잘못으로 봄.
이 책사(册使)는 왜를 봉하러 가던 정사 이종성(李宗城)이고, 양 사신은 양방형(楊方亨)이다.
족하(足下)는 편지에서 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니, 여기서는 김명원을 가리킨다.
조공(祖公)은 앞서 평양에서 패한 명나라 장수 조승훈(祖承訓)이다.
沈惟敬遊說士也平壤戰後再入賊中此人之所難卒能以口舌代甲兵驅出衆賊復此數千里末梢一事參差不免大禍哀哉蓋平行長最信惟敬其在京城時惟敬密言於行長曰汝輩久留此不退。天朝更發大兵已從西海來出忠淸道斷汝歸路此時雖欲去不可得我自平壤與汝情熟故不忍不言耳於是行長懼遂出城此事沈惟敬自言於金右相命元而金相爲余言之如此
심유경은 달래어 설득하는 선비다. 평양 싸움 뒤에 다시 적진에 들어갔으니 이는 사람이 어려워하는 바다. 마침내 입과 혀로 갑옷과 병기를 대신하여 뭇 도적을 몰아내고 이 수천 리를 되찾았다. 끝에 한 가지 일이 어긋나 큰 화를 면하지 못하였으니 슬프다.
대개 평행장(平行長)이 유경을 가장 믿었다. 서울에 있을 때 유경이 행장에게 가만히 말하기를 「너희가 오래 여기 머물러 물러가지 않으면, 천조가 다시 대군을 내어 이미 서해로 좇아와 충청도로 나아가 너의 돌아갈 길을 끊으리니, 이때에는 가고자 하여도 얻지 못하리라. 내가 평양에서부터 너와 정이 익은 까닭에 차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이에 행장이 두려워하여 드디어 성을 나갔다. 이 일은 심유경이 스스로 우상 김명원에게 말하였고, 김 정승이 나에게 말한 것이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