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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천보 시절을 읊은 역사시 — 머리글開元天寶詠史詩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117자 · 낭독 1.2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予讀書之間。見唐明皇遺迹。開元已前。勤政致理。太平之業。幾於貞觀。天寶已後。怠於政事。嬖寵鉗固。信用讒邪。遂致祿山之亂。至播遷西蜀。幾移唐祚。可不悲夫。是用拾善可爲法惡可爲誡者。播于諷詠。雖事有不關於上者。其時善惡。皆上化之漸染。故幷掇而詠之。豈敢補之風雅。聊以示新學子弟而已。

내가 책을 읽는 사이에 당 명황(明皇)의 남은 자취를 보았다. 개원(開元) 이전에는 정사에 부지런하여 다스림을 이루었으니 태평의 업적이 정관(貞觀)에 가까웠다. 천보(天寶) 이후에는 정사에 게을러 총애하는 이에게 매이고 참소하는 간사한 자를 믿고 쓰다가, 마침내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불러 서촉(西蜀)으로 쫓겨 옮기기에 이르러 당나라의 명운이 거의 옮겨질 뻔하였다. 어찌 슬프지 않은가. 이에 본받을 만한 착한 일과 경계로 삼을 만한 나쁜 일을 주워 읊조림에 실었다. 비록 임금과 관계없는 일이라도 그때의 착하고 나쁨은 다 임금의 교화가 점점 물든 것이므로 아울러 뽑아 읊었다. 어찌 감히 「풍(風)」과 「아(雅)」를 보태겠는가. 애오라지 새로 배우는 자제들에게 보이려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