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의 진風流陣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天寶遺事云。明皇與貴妃至酒酣。使妃子統宮妃百餘人。帝統小中貴百餘人。排兩陣於掖庭中。目爲風流陣。以霞被錦袾。張之爲幟。攻擊相鬪。敗者罰巨觥。以爲戱笑。人議爲不祥之兆。後果有祿山之亂。
『천보유사』에 이르기를, 명황이 귀비와 술이 무르익으면 비자에게 궁녀 백여 명을 거느리게 하고 임금은 어린 내시 백여 명을 거느려 액정(掖庭) 안에 두 진(陣)을 벌이고 풍류진(風流陣)이라 하였다. 노을빛 배자와 비단 저고리를 펼쳐 깃발로 삼고 서로 치고 싸워 진 쪽에 큰 잔으로 벌을 주며 웃음거리로 삼았다. 사람들이 상서롭지 못한 조짐이라 의논하였는데 뒤에 과연 안녹산의 난이 있었다.
禁掖庭深闢鬪場。錦衾霞被散濃香。明皇謾有風流陣。未禦胡雛犯上陽。
깊은 대궐 액정에 싸움터를 열어 비단 이불과 노을 배자에 짙은 향이 흩어진다 명황에게 부질없이 풍류의 진이 있었으나 오랑캐 아이가 상양궁(上陽宮)을 범하는 것은 막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