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보배의 산七寶山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遺事云。明皇於勤政樓。以七寶粧成山。座高七尺。召諸學士講議經旨及時務勝者得升焉。唯張九齡論辨風生。升此座。餘人不可階也。
『유사』에 이르기를, 명황이 근정루(勤政樓)에서 일곱 보배로 산을 꾸미고 자리 높이를 일곱 자로 하여 여러 학사를 불러 경서의 뜻과 시무를 논하게 하고 이긴 이가 그 자리에 오르게 하였다. 오직 장구령(張九齡)만이 논변에 바람이 일어 이 자리에 올랐고 다른 이는 오르지 못하였다.
談經漢殿惟重席。落筆龍門只奪袍。爭及開元張學士。獨升七寶玉山高。
한나라 궁전에서 경을 말함에 오직 자리를 겹쳤고 용문(龍門)에서 붓을 놀림에 다만 도포를 빼앗았다 어찌 개원의 장 학사가 홀로 일곱 보배 옥산 높은 데 오른 것에 견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