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4

비자를 보내다送妃子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2 · 한자 216자 · 낭독 2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明皇遺錄曰。漁陽叛書聞。六軍不進。力士奏曰。軍中皆言禍胎尙在行宮。侯元吉前奏願斬貴妃首。懸之太白旗以令諸中。帝叱曰。妃子。後宮之貴人。投鼠尙忌器。何必懸首而軍中方知也。力士奏曰。願陛下面賜妃子死。以慰軍心。貴妃泣曰。上帝之尊。勢豈不庇能一婦人使之生乎。一門俱族。而延及臣妾。得無甚乎。帝曰。萬口一辭。牢不可破。國忠等雖死。軍猶不發。妃子一死。以塞天下之謗。妃子曰。願得帝送妾數步。妾死無憾。左右引妃子去。帝起立目送之。妃子十步九反顧。帝泣下交頤。

『명황유록』에 이르기를, 어양(漁陽)의 반란 소식이 이르매 육군이 나아가지 않았다. 고역사가 아뢰기를 「군중에서 다들 화의 씨가 아직 행궁에 있다 합니다. 후원길(侯元吉)이 앞서 아뢰기를 귀비의 머리를 베어 태백기(太白旗)에 달아 군중에 호령하기를 바란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꾸짖어 「비자는 후궁의 귀인이다. 쥐를 던지려 해도 그릇을 꺼리는 법인데 어찌 굳이 머리를 달아야 군중이 알겠는가」 하였다. 역사가 아뢰기를 「폐하께서 비자에게 직접 죽음을 내리시어 군심을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귀비가 울며 「임금의 높음으로 어찌 한 아녀자를 감싸 살릴 형세가 없겠습니까. 한 집안이 다 멸족되고 신첩에게까지 미치니 너무하지 않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만 입이 한 말이라 굳어 깨뜨릴 수 없다. 국충(國忠) 등이 죽었어도 군사가 오히려 떠나지 않는다. 비자 한 사람이 죽어 천하의 헐뜯음을 막으라」 하였다. 비자가 「임금께서 저를 몇 걸음 보내 주시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하였다. 좌우가 비자를 이끌어 가매 임금이 일어서서 눈으로 배웅하였다. 비자는 열 걸음에 아홉 번을 돌아보았고 임금은 눈물이 턱에 얽혀 흘렀다.

軍情洶洶固難違。忍遣紅顔正掩暉。豈以大唐天子貴。勢窮莫庇一宮妃。

군사의 마음이 흉흉하니 참으로 거스르기 어려워 차마 붉은 얼굴이 한창 빛을 가리게 하였다 어찌 당나라 천자의 귀함으로도 형세가 다하매 한 궁비를 감싸지 못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