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4

응벽지凝碧池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2 · 한자 113자 · 낭독 1.1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明皇雜錄曰。祿山犯闕。王維等數人爲賊拘執于僧寺。一日。逆黨會飮于凝碧池。以梨園數百人奏樂。維聞作詩一絶曰。萬戶傷心生野煙。百官何日再朝天。秋槐落葉深宮裡。凝碧池頭奏管絃。書于壁。賊平。維以此詩免譴。

『명황잡록』에 이르기를, 녹산이 대궐을 범하매 왕유(王維) 등 몇 사람이 도적에게 붙잡혀 절에 갇혔다. 어느 날 역적의 무리가 응벽지(凝碧池)에서 모여 마시며 이원 제자 수백 명에게 풍악을 아뢰게 하였다. 왕유가 이를 듣고 절구 한 수를 지어 「만 집이 마음 상해 들 연기만 이는데, 백관은 어느 날에 다시 조회하랴. 가을 홰나무 잎이 깊은 궁궐 안에 지는데, 응벽지 가에서 관현을 아뢴다」 하고 벽에 썼다. 도적이 평정된 뒤 왕유는 이 시로 죄를 면하였다.

禁池淸浪涴胡塵。獨有王郞自慘神。慷慨題詩眞有膽。賊中寧欠解文人。

대궐 못 맑은 물결이 오랑캐 티끌에 더러워졌는데 오직 왕랑만이 홀로 참담히 마음 아파하였다 강개히 시를 씀은 참으로 담이 있는 일이니 도적 가운데인들 어찌 글 아는 이가 없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