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바라보는 대望月臺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遺事曰。玄宗八月十五日夜。與貴妃臨大液池。憑欄望月不盡。帝意不快。遂勑令左右。於池西岸。別築百尺高臺。吾與妃子來年望月。後經祿山之兵。不復置焉。唯有基址而已。
『유사』에 이르기를, 현종이 팔월 보름밤에 귀비와 태액지에 나아가 난간에 기대어 달을 바라보다 다 보지 못하여 임금의 마음이 유쾌하지 않았다. 마침내 좌우에 칙명을 내려 못 서쪽 언덕에 따로 백 자 높은 대를 쌓게 하고 「나와 비자가 내년에 달을 보리라」 하였다. 뒤에 녹산의 군사를 겪고는 다시 쌓지 못하여 다만 터만 남았다.
良辰樂事喜參差。虛築高臺指後期。唯有年年秋夜月。一輪依舊掛天涯。
좋은 때와 즐거운 일이 어긋나기를 좋아하니 헛되이 높은 대를 쌓고 뒷날을 기약하였다 오직 해마다 가을밤의 달만이 한 바퀴 예대로 하늘 끝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