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4

녹산을 위해 집을 짓다爲祿山起第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2 · 한자 143자 · 낭독 1.4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唐書曰。帝爲祿山起第京師。以中人督役。戒曰。善爲部署。祿山眼孔大。毋令笑我爲。鎖戶交䟽。臺觀池沼華簪。帟幕率緹繡。金銀爲篣筐籬。大抵服御。雖乘輿不能過。帝登勤政樓。幄坐之左。張金雞大障。置特榻詔祿山坐。以示尊寵。太子諫幄坐非人臣當得。帝曰。胡有異相。我欲猒之。帝又曰。胡有叛相。

『당서』에 이르기를, 임금이 녹산을 위해 서울에 집을 지었다. 내시에게 역사를 감독하게 하며 타이르기를 「잘 배치하라. 녹산은 눈구멍이 크니 나를 비웃게 하지 마라」 하였다. 자물쇠와 문, 창살과 누대와 못이 화려하고 휘장은 다 붉은 비단수였다. 금과 은으로 삼태기와 조리를 삼았다. 대개 옷과 수레가 임금의 것으로도 넘어서지 못할 정도였다. 임금이 근정루에 오르매 휘장 자리 왼쪽에 금닭 그린 큰 가리개를 치고 특별한 걸상을 두어 녹산에게 앉으라 조서하여 높이고 총애함을 보였다. 태자가 「휘장 자리는 신하가 앉을 자리가 아닙니다」 하고 간하니 임금이 「오랑캐에게 남다른 상(相)이 있어 내가 눌러 두려 한다」 하였다. 임금이 또 「오랑캐에게 배반할 상이 있다」 하였다.

胡奴反相帝曾知。斥去猶遲更寵爲。眼孔已容天下大。區區第宅若爲支。

오랑캐 종의 배반할 상을 임금이 일찍이 알았으면서 물리치기를 늦추고 다시 총애하기까지 하였다 눈구멍이 이미 천하를 크게 담았으니 구구한 집 한 채로 어찌 감당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