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5

양문의 집에 작약이 활짝 피어 양군이 시를 청하기에 짓다梁文家芍藥盛開。梁君請詩爲賦之。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307자 · 낭독 3.3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5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百花開了靜掃空。萬眼渾無一片紅。西隣詩家赤芍藥。活𧰟明冶溫香濃。紅肌花疊爛如蒸。碧股叢低弱不勝。偸裁赤城晚霞灎。奪下碧落朝日昇。鮮葩倒垂露密蘂。點綴金粟排紅燈。乃知造物蓄意慳。留此窈窕仙姝顔。欲將餘巧動新賞。故待春歸芳意闌。滴露洗新猩血釅。微風吹側鶴頭丹。我疑王母朝漢皇。殿前拆破雲錦囊。又疑火帝下閶闔。祝融仙隊拖裠裳。西施玉骨埋泥塵。卷却人問一餉春。芳魂散漫自難收。直作妖花還媚人。故應婀娜嬌無力。猶帶吳宮醺醉色。高唐虛役巫峽夢。楚國枉有陽城惑。可忍相看不殢腸。嫣然向客偏輕盈。白日勺開嬌解笑。黃昏微斂靜含情。梁公好事人所誇。請我試作看花歌。頑桃俗杏粗可狀。我才豈合賦名花。況今落魄情興淺。白也筆老奈花何。謝公曾詠中書階。韓子又歌司馬家。嗟渠妖態生何晚。未使此輩煩吟哦。玉樽浮蟻儻呼斟。掀出風情更一吟。

온갖 꽃이 다 피었다 져 고요히 쓸린 듯 비었고 온 눈에 붉은 조각 하나 없다 서쪽 이웃 시인의 집 붉은 작약이 싱싱하고 밝고 고와 따스한 향기가 짙다 붉은 살결의 꽃잎이 겹쳐 찐 듯 흐드러지고 푸른 줄기 떨기가 낮아 여려서 이기지 못한다 적성(赤城)의 저녁놀 어리는 빛을 훔쳐 마른 듯하고 푸른 하늘에서 아침 해 떠오르는 것을 빼앗아 내린 듯하다 고운 꽃송이가 거꾸로 드리워 이슬 맺힌 꽃술이 빽빽하고 금빛 좁쌀을 점점이 박아 붉은 등을 벌여 놓은 듯하다 이에 알겠다, 조물주가 뜻을 아껴 두어 이 아리따운 선녀의 얼굴을 남겨 둔 것을 남은 재주로 새 구경거리를 일으키려 짐짓 봄이 돌아가고 꽃뜻이 다하기를 기다렸다 이슬 방울이 새로 씻어 성성이 피처럼 짙고 실바람이 비스듬히 불어 학 머리처럼 붉다 나는 의심한다, 서왕모가 한나라 임금에게 조회할 때 전각 앞에서 구름 비단 주머니를 터뜨린 것인가 또 의심한다, 불의 임금이 하늘 문으로 내려올 때 축융(祝融)의 신선 무리가 치마를 끌고 온 것인가 서시(西施)의 옥 같은 뼈가 진흙에 묻히면서 인간 세상의 한 끼니 같은 봄을 걷어 가 버렸다 꽃다운 넋이 흩어져 절로 거두기 어려워 곧바로 요염한 꽃이 되어 도리어 사람에게 아양 떤다 그러기에 하늘하늘 아리따워 힘이 없고 아직도 오나라 궁전에서 취한 빛을 띠었다 고당(高唐)은 부질없이 무협의 꿈을 부렸고 초나라는 공연히 양성(陽城)의 홀림이 있었다 어찌 차마 마주 보고도 애를 태우지 않으랴 방긋이 손님을 향해 유난히 가볍고 하늘거린다 밝은 날엔 활짝 벌어져 아리땁게 웃을 줄 알고 황혼에는 조금 오므려 고요히 정을 머금는다 양공이 일 좋아함은 사람들이 자랑하는 바라 나에게 꽃 보는 노래를 지어 보라 청한다 무딘 복사와 속된 살구는 대강 그릴 수 있으나 내 재주가 어찌 이름난 꽃을 읊기에 맞으랴 하물며 지금은 실의하여 정과 흥이 얕고 이백의 붓도 늙었으니 꽃을 어이하랴 사공(謝公)은 일찍이 중서성 섬돌의 것을 읊었고 한자(韓子)는 또 사마씨 집의 것을 노래하였다 아, 저 요염한 자태는 어찌 이리 늦게 났는가 그 사람들이 읊조리기에 수고롭게 하지 못하였다 옥 술동이에 뜬 개미 같은 술을 혹 따르라 부른다면 풍정을 들추어 다시 한 번 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