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산속에 노닐다 벽에 쓰다偶遊山中。書壁上。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5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久爲紅塵客。浪走無時休。到山本無意。偶爾得玆遊。無奈愛山人。獨往嫌無儔。相逢許聯轡。出郭行悠悠。雲煙漸掩靄。始覺向林丘。苒苒松上霧。冷冷石間流。相將入僧舍。小酌語綢繆。已愜幽居趣。又欲便成留。迺知中下性。反覆隨所由。趨世悅紛華。入山樂淸幽。明朝返都城。又縛營生謀。嗟哉更何言。未免塵緣拘。要當婚嫁畢。始脫籠中囚。
오래 붉은 티끌의 나그네가 되어 부질없이 달려 쉴 때가 없었다 산에 온 것은 본디 뜻이 없었고 우연히 이 놀이를 얻었다 어찌하랴,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홀로 가기에 짝 없음을 싫어함을 서로 만나 고삐를 나란히 하기를 허락하고 성곽을 나서 느릿느릿 간다 구름과 안개가 점점 자욱해지니 비로소 숲 언덕으로 향함을 깨닫는다 솔 위의 안개는 하늘하늘하고 돌 사이 물은 졸졸 흐른다 서로 이끌고 절집에 들어 조금 마시며 정답게 이야기한다 이미 그윽이 사는 멋에 흡족하여 또 곧 머물고 싶어진다 이에 알겠다, 중하(中下)의 성품은 뒤집히며 말미암는 바를 따름을 세상을 좇으면 어지러운 화려함을 기뻐하고 산에 들면 맑고 그윽함을 즐긴다 내일 아침 서울로 돌아가면 또 살림 꾀에 얽매이리라 아, 다시 무슨 말을 하랴 티끌 인연에 매임을 면하지 못한다 마땅히 혼인을 다 마친 뒤에야 비로소 조롱 속 갇힘을 벗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