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7

찐 게를 먹다食蒸蠏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01자 · 낭독 2.1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7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君不見畢郞嗜飮無餘營。但願持螯了一生。又不見錢卿乞郡非他求。唯思有蠏無監州。猩脣熊掌易爽口。只應此味尤宜酒。江童餉我蝤蛑肥。𢅠大臍團多是雌。東海輸芒今已了。後脚差闊眞撥棹。平生讀書辨蟧蟛。定非司徒舊所烹。烹來剖破硬紅甲。半殼黃膏雜靑汁。草泥跳躑雖爾宜。猶被王倫餘怒移。不如入我左手把。日飮無何聊得佐。詩人冷淡食無魚。爛蒸瓠壺客盧胡。瓠壺食盡又何續。更見靑盤堆苜蓿。硬鱗腐肉猶長饞。況此海產如糖甜。急呼赤脚撥新甕。玉蛆星沸香浮動。蠏卽金液糟蓬萊。何必服藥求仙哉。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필랑(畢郞)이 마시기를 즐겨 다른 경영이 없어 다만 게 다리를 쥐고 한평생을 마치기를 바란 것을 또 보지 못하였는가, 전경(錢卿)이 고을을 구한 것이 다른 뜻이 아니라 오직 게는 있고 감주(監州)는 없기를 생각한 것을 성성이 입술과 곰 발바닥은 입에 시원하기 쉽지만 다만 이 맛이 술에 더욱 알맞다 강가 아이가 살진 꽃게를 보내왔는데 딱지가 크고 배꼽이 둥그니 대개 암컷이다 동해에 까끄라기 바치기를 이제 이미 마쳤고 뒷다리가 자못 넓으니 참으로 노 젓는 놈이다 평생 책을 읽어 방게와 참게를 가릴 줄 아니 결코 사도(司徒)가 옛날에 삶던 것이 아니다 삶아다가 굳은 붉은 껍데기를 쪼개니 반쪽 껍데기에 누런 장이 푸른 즙에 섞였다 풀과 진흙에서 뛰놀던 것이 네게 마땅하다 하나 그래도 왕륜(王倫)의 남은 노여움이 옮아 왔다 내 왼손에 들어와 잡히는 것만 못하니 날마다 하염없이 마시는 데 애오라지 안주가 된다 시인은 냉담해 먹는 데 물고기가 없어 푹 찐 박을 놓으면 손님이 껄껄 웃는다 박을 다 먹고 나면 또 무엇으로 이으랴 다시 푸른 소반에 거여목이 쌓인 것을 본다 굳은 비늘 썩은 살에도 오히려 늘 게걸스러운데 하물며 이 바다 것이 엿처럼 달콤함에랴 급히 맨발의 아이를 불러 새 항아리를 열게 하니 옥 같은 구더기가 별처럼 끓어 향기가 떠 움직인다 게가 곧 금액(金液)이요 술지게미가 봉래산이니 무엇하러 약을 먹고 신선을 구하랴

협주 2

蟹。八月輸稻芒於東海神。然後可食。

게는 팔월에 벼 까끄라기를 동해의 신에게 바친 뒤라야 먹을 수 있다.

嶺南謂蝤蛑爲撥棹子。其後脚闊如棹子。

영남에서는 꽃게를 발도자(撥棹子)라 한다. 그 뒷다리가 노처럼 넓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