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8

이날 술자리가 끝나 조금 쉬며 서넛이 차만 마시는데, 스님이 금귤·모과·붉은 감을 내어 손을 대접하고 다시 좋은 술 한 병을 들고 오다 — 하룻밤 일을 적다是日飮闌小息。唯三四人相對飮茶而已。及夜半。坐久體煩。睡暈著眼。師出金橘木爪紅杮。餉于坐客。未及一嚼。不覺眠魔之頓去也。俄而喚沙彌。沙彌鼻鼾不應。師笑入房中。手挈美酒一壺。坐客皆盧胡大笑。於是小酌數四盃。漸引靜中之樂。噫。平生適意之遊。恐他日不復得也。因著一篇。以記一宵之事爾。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110자 · 낭독 1.1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8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二紀落浮遊。塵土日滿膓。一聞淸夜話。已覺渾身霜。何況滿盤菓。一一餘仙香。奇哉洞庭橘。玉腦流寒漿。我是李衡後。此味宜我嘗。霜杮肌肉脆。殷赤眩目光。愛此赬虬卵。不入金烏場。木瓜紅半頰。片片落銛鋩。珍投何以報。愧無瓊玖將。餘寒在牙齒。似入氷雪鄕。適意一宵樂。平生安敢忘。

스물네 해를 떠돌아다니며 티끌이 날마다 창자에 가득하였다 한 번 맑은 밤 이야기를 들으니 이미 온몸이 서리처럼 서늘함을 깨닫는다 하물며 소반에 가득한 과일이 낱낱이 신선의 향기를 남김에랴 기이하다, 동정(洞庭)의 귤이여 옥 같은 골에서 찬 즙이 흐른다 나는 이형(李衡)의 후손이니 이 맛은 내가 맛봄이 마땅하다 서리 맞은 감은 살이 무르고 검붉어 눈빛이 아찔하다 이 붉은 규룡의 알을 사랑하니 금 까마귀 마당에는 들지 않는다 모과는 붉은 것이 뺨의 반이요 조각조각 날카로운 칼날에 떨어진다 귀한 것을 던져 주시니 무엇으로 갚으랴 옥으로 드릴 것이 없어 부끄럽다 남은 찬 기운이 이에 있어 얼음과 눈의 고장에 든 듯하다 뜻에 맞은 하룻밤의 즐거움을 평생 어찌 감히 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