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랑 미수가 권 박사 경중에게 벽곡을 나무라며 부친 시에 차운하다次韻李侍郎眉叟寄權博士敬仲責辟糓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1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1첫째 수
孔聖曾無寸土封。三千門弟競攀龍。在陳絶粒眞飢矣。誰見當時肯餌松。
공자께서도 한 치 땅의 봉함이 없었으나 삼천 제자가 다투어 용에 매달렸네 진(陳)나라에서 곡식이 끊겨 참으로 주렸으되 그때 솔을 먹었다는 것을 누가 보았나
협주 1
三首
세 수이다.
2둘째 수
相君骨法貴當封。何必求仙要跨龍。飽食酣眠邀好夢。待看便腹忽生松。
그대의 골상은 귀하여 마땅히 봉해질 것인데 어찌 반드시 신선을 구해 용을 타려 하는가 실컷 먹고 곤히 자며 좋은 꿈을 맞이하고 두둑한 배에 문득 솔이 나는 것을 기다려 보게
3셋째 수
我生嗜酒麴成封。醉欲炮麟更膾龍。何事權君長辟糓。忍敎形貌瘦於松。
내 삶은 술을 즐겨 누룩이 봉지를 이루었고 취하면 기린을 굽고 다시 용을 회 치려 하네 무슨 일로 권군은 늘 벽곡을 하여 차마 모습을 솔보다 여위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