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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에서 물러나면 아무 일이 없어退公無一事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7 · 한자 280자 · 낭독 3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15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1첫째 수

退公無一事。寂寞似孤村。頭岸鹿胎幘。身遮犢鼻褌。虎來猶白日。蚊噆未黃昏。笑矣殘城守。徒勞夢掖垣。

관아에서 물러나면 아무 일 없어 쓸쓸하기가 외딴 마을 같네 머리엔 사슴 가죽 두건을 젖혀 쓰고 몸엔 잠방이 하나를 걸쳤네 범은 대낮에도 내려오고 모기는 해 지기도 전에 무네 우습다 다 낡은 고을의 원이여 부질없이 액원(掖垣)을 꿈꾸는구나

협주 1

七首

일곱 수이다.

2둘째 수

退公無一事。高臥北軒風。壞壁蛇遺蛻。荒階蟻曳蟲。睡餘浮眼纈。病後落頭蓬。笑矣殘城守。形容劇野翁。

관아에서 물러나면 아무 일 없어 북쪽 마루 바람에 높이 누웠네 무너진 벽엔 뱀이 허물을 남기고 거친 섬돌엔 개미가 벌레를 끄네 잠 깬 뒤엔 눈에 아른아른 무늬가 뜨고 앓고 난 뒤엔 쑥대머리가 빠지네 우습다 다 낡은 고을의 원이여 모습이 시골 늙은이보다 심하구나

3셋째 수

退公無一事。暑氣謾蒸人。吟久巾欹領。眠多簟印身。碁閑遊毒手。酒盡錮饞脣。笑矣殘城守。生涯老更貧。

관아에서 물러나면 아무 일 없어 더운 기운이 부질없이 사람을 찌네 오래 읊으니 두건이 옷깃에 기울고 많이 자니 대자리 무늬가 몸에 찍히네 바둑이 한가하니 독한 수를 놀리고 술이 다하니 게걸스러운 입술을 봉하네 우습다 다 낡은 고을의 원이여 살림이 늙을수록 더 가난하구나

4넷째 수

退公無一事。默坐念空王。飢鼠登書架。幽禽入印床。不堪消永日。聊喜向斜陽。笑矣殘城守。無由放舊狂。

관아에서 물러나면 아무 일 없어 잠자코 앉아 부처를 생각하네 굶은 쥐는 책시렁에 오르고 그윽한 새는 인장 상에 드네 긴 날을 견뎌 내기 어렵더니 그런대로 해가 기우는 것이 기쁘네 우습다 다 낡은 고을의 원이여 옛 미친 기운을 놓을 길이 없구나

5다섯째 수

退公無一事。白首若孤囚。未識邦侯樂。空思法從遊。朝廷天共遠。日月水同流。笑矣殘城守。貪官莫退休。

관아에서 물러나면 아무 일 없어 흰머리로 외로운 죄수 같네 고을 원의 즐거움은 알지 못하고 부질없이 임금을 모시고 노닐던 일만 생각하네 조정은 하늘과 함께 멀고 해와 달은 물과 함께 흐르네 우습다 다 낡은 고을의 원이여 벼슬을 탐해 물러나지 못하는구나

6여섯째 수

退公無一事。門外吏人稀。耳靜嫌蟬噪。身拘羨鳥飛。屋矮頭可觸。地窄手難揮。笑矣殘城守。何時告滿歸。

관아에서 물러나면 아무 일 없어 문밖엔 아전도 드무네 귀가 고요하니 매미 우는 것도 밉고 몸이 매였으니 새 나는 것이 부럽네 집이 낮아 머리가 닿을 듯하고 땅이 좁아 손을 휘두르기도 어렵네 우습다 다 낡은 고을의 원이여 어느 때에 임기 찼다 아뢰고 돌아가랴

7일곱째 수

退公無一事。散髮自逍遙。對客蒸蔬菜。呼兒灌藥苗。顔因猒世變。首爲望京翹。笑矣殘城守。剛膓老赤銷。

관아에서 물러나면 아무 일 없어 머리를 풀고 절로 노니네 손을 마주하여 나물을 찌고 아이를 불러 약초 싹에 물을 주네 얼굴은 세상에 물려 변하고 머리는 서울을 바라보느라 쳐드네 우습다 다 낡은 고을의 원이여 굳센 창자도 늙어 다 녹았구나